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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2 - 송지나 장편소설 ㅣ 신의 2
송지나 지음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어떤 경우에도 왕의 방패가 되라고.
죽는 순간에도 왕을 지키며 죽으라고 가르쳤으니까.
허나..... 멈칫하던 마음이 다시 묻는다.
그게 뭐 그리 애달픈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과연 더 분한 일인가?
춥다. 냉기기 뼛속 깊이 스며든다. 얼어붙은 호수 위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꿈속의 그 곳에서 아버지는 미소 지으며 아들에게 "아직 못 찾았느냐"고 물으신다. 그리운 목소리에 답을 하려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간신히 꿈을 깬다. 그래, 하늘로 돌아가시려는 그 분을 강제로 붙잡지 않았는가? 의식이 남아있는 한 최영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지켜야 할 도리는 신의, 이제 그 분을 어떡해서든 무탈한 상태로 하늘나라로 돌려 보내드려야만 한다. 그것이 고려무사의 언약이다.
은수는 대학시절 짝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온 마음을 다해 그 남자를 따라다니며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다. 다신 이런 경험 따윈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다짐 또 다짐했건만 대장에게는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인다. 뭐지 이런 기분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평생 표정 없는 얼굴이었을 대장을 보면 화가 나고 붙들어서 성치 않은 그의 몸을 강제로 치료하고 싶은데 왜? 숨어서 이렇게 지켜보아야만 하는 걸까? 도대체... 왜? 왜? 왜?
최영 그 놈이 적월대의 대장이었던 문치후의 제자였다고? 그 문치후가 자질을 탐내었던 아이가 최영이라는 말을 듣고 기철은 최영에게 호기심이 동한다. 절대 내공의 소유자인 기철은 자신의 호적수를 찾지 못하게 되자 무공으로 겨룰 일도 없어지면서 세상사는 일이 따분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최영이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일단 소유하고 싶어 한다. 용도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늘 아래 믿을 자는 오로지 최영, 너뿐이다. 나는 힘없는 이 나라에서 새로운 왕이 되려한다. 그러나 아무도 믿을 자가 없다. 민심은 돌아선지 오래고, 신하들은 덕성부원군에 빌붙어 나를 능멸하려고 하는 간신들만 득실거린다. 하지만 최영 이 남자라면 나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아니면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지 그의 마음을 돌려야한다. 자신과 왕비를 고려로 호송하는 임무를 마치고 우달치 대장의 자리를 던지려는 그에게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싶다. 공민왕은 자신의 유약함을 탓하며 자포자기의 심정에 놓여있다가도 그래도 나는 이 나라의 군주인데 믿고 의지할 충성스런 신하가 하나쯤은 있어야 이 보위를 지켜낼 수 있는 선결과제라고 고민한다.
전하, 그대는 이미 오래전에 저를 잊으셨겠지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대의 뒤를 따라 걸었지요. 그대를 얼마나 그리워했던지. 그 웃는 얼굴이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그대가 고려의 왕자 강릉대군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대와 소통하고 싶어 일부러 고려의 말을 배웠고 저를 가엾은 고려의 여인으로 아셨을테죠. 저는 원나라의 공주지만 고려라는 나라와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모릅니다. 그냥 그대를 연모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바마마를 졸라 혼인을 하였습니다. 고려의 여인인 줄 아셨던 그대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겠지만 저는 머나먼 이국땅으로 그대를 따라 온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저에게 부디 마음을 여시고 미우나 고우나 지아비로서 당당한 위용을 보여주세요. 천길 낭떠러지 앞에 선 듯 안절부절 못하는 그대의 모습에 속이 타들어갑니다. 그리고 최영 그 자는 저에게도 소중한 신하입니다. 제 목숨을 구명한 생명의 은인이니까요. 비록 정략결혼의 형식이 되어버렸지만 고려의 국모가 된 노국공주는 공민왕과의 옛 추억의 끈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아마도...
“신의” 2편이다. 흔히 “이 몸이 죽고 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로 유명한 최영은 고려 충절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소설 속에서는 아직 세상에 무심한 보통남자로 그려지고 있을뿐이다. 그에게는 과거 적월대의 일원으로 왜구무리들을 소탕하고 고려의 안위에 충심을 다한 적이 있지만 무능하고 방탕한 선대의 왕의 폭정에 문치후 대장과 목숨같이 사랑했던 여인 매희를 비롯한 동료들을 차례대로 잃은 후에는 마음의 문에 빗장을 걸었다.
충성을 바칠 나라도 왕도 모두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그래서 공민왕과 덕성부원군 기철 모두가 자신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냉담한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의선님을 다시 그 세상으로 돌려보내야만 한다는 언약 때문에 얼음장 같은 그의 내면에도 변화가 생길 조짐이 엿보인다. 누군가의 편에 서야한다는 선택이 기로에서 말이다.
“신의 2권”을 읽으면서 드라마와 달리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역시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이다. 원나라의 내정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고려의 현실 앞에서 공민왕은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개혁의 깃발을 아직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최영을 탐하는 그도 남자로서의 능력에 질투하고 왕비에게 다정한 말보다 억하심정으로 퉁명스레 대하는 대목에서는 의기소침한 모습도 보여 진다. 왕은 태어나는 것인가? 대신 어떻게 왕을 만들 것 인가?에 대한 고민과 숙제가 엿보이는 상황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기철에게 맞설 힘도, 의지도, 마스터플랜도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왕비에 대한 연민도 빼놓을 수 없겠다. 드라마에선 도도한 한 떨기 꽃 같은 아름다움만 존재했을 뿐인 그녀는 오로지 사랑 앞에서 결단을 내리고 위기에 처한 신하를 지키고자 하는 강단이 있어 소설과 드라마에서 배역이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캐릭터인 것 같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은 시련을 이겨내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인데 소설을 읽으면서 주안점으로 맞춰도 좋을 만큼 그녀의 사랑 이야기는 참 애절하더라.
경창군도 2권에서 가슴 절절하게 만든 인물들 중 하나인데 아직 천진난만할 나이지만 격변의 폭풍을 힘없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린 경창군이 너무 가여워서 오열할 뻔 했다. 그 어린 것이 무슨 죄라고? 그렇게 이 소설의 이야기가 다음 권으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등장인물들의 방황과 애통한 마음에 감정이입이 심화되는 것 같아. 시대를 잘못 태어났을 뿐인 이들이 홀로 설 것인가, 복속될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는 재미뿐만 아니라 통찰을 동시에 던져주기 때문에 3권이 기다려진다. 그래서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되냐고? 난 이미 깊은 사랑에 빠진 기분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