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거명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7 ㅣ 미치 랩 시리즈 6
빈스 플린 지음, 이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죽이고 싶은 놈이 있습니다."

 

 "빈스 플린"의  "미치 랩"시리즈  중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 "제거명령(Consent To Kill)"은 벌써부터 시리즈의 최고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영화화 판권이 팔린 작품 중 하나라는 소식도 이 작품의 국내출간을 기대하는 요인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리고 "빈스 플린"의 죽음은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겠지만 이 작품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특별한 의미가 되면서 여러모로 가슴 뭉클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이의를 제기 할 필요가 없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흡입력이 있어 나는 책을 손에 들고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읽어 내려갔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CIA 대테러요원으로서 자국의 안보에 최우선의 중점을 두면서 세계질서에 위협이 되는 적성국들과 과격집단에 맞서 평화를 수호한다는 대의명분으로 동분서주했다면 이번에는 온전히 개인적인 복수에 촛점을 맞추고 강력하게 대응해나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총 14편의 시리즈 중 순서상으로 거의 중간에 위치하는 이 작품은 그래서 남은 시리즈의 향방을 가늠해보는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미치 랩"에게는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를 더욱 냉혹한 저승사자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겠다.

 

 

전편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핵테러를 저지했던 "미치 랩"에게 아들을 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영적 지도자인 "사에드 아메드 압둘라"는 왕가의 "라시드" 왕자에게 "미치 랩"에 대한 암살을 간청한다. 이제 "미치 랩"의 목에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리지만 상시 신변의 위협이 일상이었던 그에게 이러한 루머는 대수롭지 않았고 그 방심은 예상치도 못한 엄청난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한 쪽에서는 사상 최강의 요원이자 암살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본인이 원치않는 상황에서도 익명성은 보장받지 못한 채 정치계에서는 대테러의 일등방패로 지지하는 세력과 통제불가능한 그의 파워에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세력으로 양분되고 있었고,

 

 

다른 방면으로는 이런 그의 명성이 "미치 랩"의 주가를 폭등시켜 암살계획이 주도면밀하게 진행되도록 만든다. "미치 랩"에 대한 정면돌파는 도저히 승산이 없는 법, 그래서 암살자는 그를 뛰어넘고 싶단 욕망이 간질거려도 배후가 드러나는 걸 염려하는 청부자의 바람대로 사고사로 위장하려고 시도한다. 모두가 꺼려했던 그에 대한 암살작전은 마침내 "미치 랩"의 무시무시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면서 지구 끝까지 복수를 집행하러 추적이 시작된다.  

 

 

사실상 무모해 보였던 "미치 랩"에 대한 암살작전의 결과에는 어떤 변수가 발생하고 그의 복수는 이제 가장 당연하고 순수한 명분이 담기게 된다. 그런 점에서 미국 정부는 그가 택할 선택을 두려워해서 전전긍긍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미치 랩"이 평소 가지고 있었던 정치권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가 다시 한 번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미국 정부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을 조짐이 보인다. 피치 못할 신변상의 사유로 조만간 "임기종료"가 "권력의 이동"으로 이어질 듯 하고 그 틈새를 노리는 들개 무리의 야심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가운데 대테러조직의 운영과 집행을 둘러싼 파워게임은 "미치 랩"과 또 다른 충돌을 일으키면서 이것이 제2차 위협이 된다. 외부의 적도 경계해야 하지만 내부의 적은 더욱 경계해야한다는 비정한 현실이 "미치 랩"의 명줄을 다시 한 번 조여오는데 집안단속이 얼만큼 중요한지를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해 보인다. 

 

 

이대로라면 "미치 랩"에게 힘을 실어주던 지렛대의 한 축이 무너질 참이다. 명령과 통제에 불응하고 자신만의 의지와 판단만으로 독단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그의 방식은 이미 많은 정적들을 만들어냈지만 여태껏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두개의 지렛대였음을 감안하면 그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워질 것 같은 걱정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그보다 중요한 당면의 과제는 "복수"이다. 어떤 개인적인 경사를 앞두고 있었던 "미치 랩"에게 닥친 청천벽력같은 사태는 어쩌면 그의 팬들이 공통적으로 입방을 찧었던 어떤 지적같은 것들이 말이 씨가 되는 것 처럼 잉태된 불행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미워하지만 않았더라면 바뀔 수 있었을까?  마치 "나는 소망한다. "미치 랩"에게 금지된 것을", 같다고 해야할지. 

 

 

당연히 "미치 랩"의 대응은 어느 상황보다 신속하다 못해 몸서리치기까지 하는데 암살자와 청부자 모두 방심 속에, 또는 회피 속에서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차례차례 무참히 궤멸되는 과정들은 왜 "미치 랩"을 건드리는 일이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리는 일보다 더 공포스런 일인지 뼛속 깊이 각인시켜주는 극명한 모범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이슬람권에 대한 지독한 반감은 여전하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유연한 자세를 취할 수만 있다면 액션스릴러로서 이것 이상을 능가하는 강렬함을 체험시켜줄 작품은 보기 드물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읽은 "미치 랩" 시리즈 중 최고의 재미를 안겨다주는 작품으로서 다른 시리즈를 제쳐두고 "안톤 후쿠아"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데올로기의 전쟁이 아닌 "미치 랩"의 개인적인 동기에 의한 사적인 복수극은 헐리웃에서 블록버스터화 하기에 최적의 설정이자 시나리오일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액션 씬으로 영상화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시퀀스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같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번 작품은 결말에서 "미치 랩"이 보여 준 선택에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별한 감성이 전달되는데 대단히 울컥하게 만들 정도의 감동이 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냉혈하고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던 "미치 랩"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치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 놓여있던 적에게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는 그를 보면 낯설기도 하면서 책의 표지에서 나온 묘지의 사진은 제2의 인생을 살게됨을 암시하는 동시에 투병생활중 생을 마감한 "빈스 플린"에 대한 애도가 연상되는 슬픔도 동시에 느껴진다. 이제 그의 작품은 남은 유작들외에 더 이상 신작으로 만날 일은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운 탓인지 자신의 미래를 "미치 랩"에게 어느정도 투영한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는 "제거명령(CONSENT TO KILL)"은 다시 강조하지만 시리즈에 방점을 찍는 역작 중의 역작이다.

 

   고이 잠드소서(1966년- 2013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4
마커스 세이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그는 벌거벗었고, 추웠다. 뻣뻣하게 굳은 혈관 속에서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근육은 칼로 찌르는 듯 아팠고, 피부에는 소름이 돋았다. 힘줄은 곧 끊어질 것을 팽팽했고, 온 몸의 살갗이 쓰라리고 덜덜 떨렸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뭔가가 다리를 감고 있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중략) 그는 캑캑거리며 시커먼 바위를 손톱으로 할퀴면서 기를 쓰고 앞으로 나아갔다. 바다가 그를 세게 잡아당겼지만, 이미 기진맥진한 아이처럼 기어가며 버텼다.

                                                                                                             - 

정말 첫줄부터가 듣던 대로 삼삼하다. 모세혈관이 일제히 팽창하는 것 같은 냉기와 강렬한 생존본능이 도발적이라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무척이나 끌린다. 세상의 종말 같은 해변에서 벌거숭이로 쓰러져있던 남자, 그는 살기 위해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는 몸뚱이를 이끌고 해변의 꼭대기에 올라 간신히 주차해있던 BMW에 몸을 싣는다. 나는 어떻게 이곳에 왔을까? 대체 여긴 어디고 나는 또 누구인가? 몇 번을 되물어도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에 취했었나? 마약중독인가? 차에는 “대니얼 헤이스”라는 보험가입증서와 총 한 자루가 있다. 이에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자신의 기억과 진실을 되찾기 위한 출발을 시작한다. 그 출발점에서 남자는 “대니얼 헤이스”라고 스스로 부르며 대륙을 미칠 듯이 질주하는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말을 살기 위한 전략의 모토로 삼게 된다. “대니얼 헤이스”는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일시적인 기억의 상실이거나 어떤 후유증일거라고 위안 삼으며 기억이 되돌아 올 것으로 확신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대니얼 헤이스”는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우연히 본 TV드라마 <캔디 걸스>의 여주인공 “에밀리 스위트”가 자꾸 생각나고 그녀에 대한 복합적인 잔상들이 잠재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어떤 암시와 메시지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마치 과거 속에서 그녀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렇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계속 헤매고 있을 때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는데... “대니얼 헤이스”와 “에밀리 스위트” 역을 맡은 여배우 “레이니 세이어”는 부부였단 사실을. 그런데 그녀는 누군가에 쫓기다가 벼랑에서 사고가 나 죽었다고 되어있고 사라진 남편 “대니얼 헤이스”가 살인용의자로 수배 중이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대 혼란에 빠져 버린다. 이제 그는 누명을 쓰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자의 신세가 되는데 그를 쫓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베넷”이라는 남자, 그리고 “벨린다”라는 여자. 이들은 누구이며 "대니얼"과 어떤 관계이길래 그를 필사적으로 추적하는 걸까?

 

기억이라는 활동은 실로 교묘한 상징이다. “에밀리 스위트”를 찾아 나서며 기억은 데자뷰 현상을 끊임없이 조율하고서 그녀를 희망의 상징이자 길잡이로 만들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자신을 수시로 이해시켜아만 한다. 그녀는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읽는 동안에 문맥들을 샅샅이 뒤지며 사소한 단서라도 찾으려고 애썼다. 행여나 미로에 발을 들여 출구를 찾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만큼 이야기는 미스터리가 주는 선물을 배신 않도록 다음 페이지에 대한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남겨둔다. 이쯤 되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되니 진실을 향한 걸음이 무척이나 속도감이 있다.

 

“대니얼”이 “레이니”에 대하여 사랑의 감정과 행복한 결정들로 이루어졌던 7년이라는 세월은 은 그야말로 비밀의 커튼을 열어 무엇이 들어있나 들여다보는 과정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말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자신했지만 실제로는 감정기복이 심한 남편에 불과했다는 불편한 진실, 둘은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남들처럼 박 터지게 싸운 폭탄 같은 관계였단 과거도 알게 된다. “대니얼”부부의 약점을 쥐고 목걸이를 요구하는 악당 “베넷”의 경우는 부부의 인생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선사한다. 남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하고선 목적을 위해선 가장 악랄한 수단과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그와 “대니얼”의 대결은 시종일관 땀을 쥐게 했다. 확실히 “레이니”는 “대니얼”의 망각된 기억이 회복되도록, 망각해야 할 부분은 그대로 진행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한 역할이야말로 “대니얼”이 “베넷”의 협박과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자 깊숙이 감추어진 진짜 진실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 네가 과거에 누구였는지, 혹은 네가 뭘 기억하고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야. 네가 지금 누구인지에 관한 거지. 네가 선택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문제인 거라고.” - 391P - 

 

“대니얼”이 “베넷”과 맞닥뜨려 처음으로 자신이 믿는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갈등하고 있을 때 드러난 그것은 인생에서 선택은 과거를 기억하는 저장매체가 되거나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실체가 놀랍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또 한 번의 반전이 기다린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은 끝장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암시를 끝으로 이 신비로운 미스터리는 막을 내린다. 매력이다 못해 감히 “최고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은 “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이다. 그래서 “리 차일드”의 찬사는 허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하이브리드 스릴러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페인문학을 생각하면 라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가 즉각 떠오른다.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를 집필하면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희대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추측할 수 있도록 돈 키호테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여행에세이다. 단순히 스페인 풍물을 소개하는 관광가이드가 아닌 문학의 뿌리를 발견해낸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져서 색다르다.   

 

 

어렸을 적 돈 키호테의 이미지는 단순명료했으니 과대망상증 환자의 모험기 정도, 떠난 길에 붙잡혀서 돌아왔다가 못 참고 다시 떠났던 기인, 그는 결국 노쇠한 말년을 맞이해야 했다는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다. 성인이 되어 이 책을 통해 인식하게 되는 돈 키호테는 이성의 잣대로 자신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믿음은 논리의 한계를 넘어서 무모할 정도로 믿음의 발현을 실천했던 사람이었다. 시대에서 마지막 남은 기사도 정신의 수행자 돈 키호테를 두고 여성들은 기사도는 실종되고 마치 야만과 무례함이 지배하고 있다며 존중받지 못함을 한탄하고 있지만 그러기에 앞서 진정 사랑으로 숭배할만한 여신이 존재하지 않음에 남자들은 힘을 더 얻지 못하고 불행하다 한탄하고 있음을 눈치 채야 하지 않을까? 

 

그랬다. 이 남자는 세속적 안락에 안주해버린 현대인들에게 거세되어버린 신념에 대한 도전의지를 표현하는 상징성에다 소심한 세상의 벽을 깨고나와 풍차에 돌진하듯 전사가 되어 소명이라는 출정식을 치르라고 끊임없이 부채질한다. 남자로서 무모하다고 생각하는가? 저자를 따라 떠난 스페인의 곳곳에는 때론 우리가 홍길동의 출생지를 두고 지방별로 원조논란이 일 듯 그 역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 재미있지 않은가? 그의 사상과 이념에 동조하지 못한다면 한낱 관광수입의 도구로 전락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들엔 돈 키호테에 대한 유서 깊은 자부심이 배어있었다. 세상에 결투를 청한 남자, 둘시네아 공주를 성녀처럼 떠받들었던 남자 돈 키호테에게는 일상에 침잠되지 말고 전투를 치르고서라도 투지로 맞서고 물러섬이 없어야 한다는 용기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질없는 의미 속에 스스로 안주하지 말고 삶을 절대적 가치로 승화한다.   

 

 

"운명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길로 인도하는구나. 저기를 보아라. 산초 판사야.

서른 명이 넘는 거인들이 있지 않느냐. 나는 저놈들과 싸워 모두 없앨 생각이다. 전리품으로 슬슬 재물도 얻을 것 같구나. 이것은 선한 싸움이다. 이 땅에서 악의 씨를 뽑아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는 일이기도 하다." - p.160 -  

 

 

그리고 저자 세르반테스에 대해서도 슬슬 생각해본다. 스페인 알칼라 대학에서 해마다 수여하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은 단일 문학상으로는 유럽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상이라고 하니 역시 그가 없이 문학을 논할 수가 없나보다. 그렇다면 후세에 제대로 이름을 드높인 삶을 살았을 것으로 판단하고 싶다. 또한 이 책에서는 세르반테스뿐만 아니라 역사, 종교, 인문학적 예술론이 집대성되어 이성과 광기가 교차되는 당시 시대상을 잘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읽다보면 떠나고프다.

 

유럽은 언제나 나의 로망이었으니 프리메라리가를 관람하고 싶다는 열망 외에도 스페인의 문화예술, 그 중에서도 돈 키호테 관련 투어를 하고 싶다는 소망은 항상 간절해서 대신 떠나는 여행에세이 앞에 서면 이국적인 사진들로 함께 눈이 덩달아 호강한다. 그리고 '둘시네아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는'이라는 이름을 가진 후식이란 실제 어떤 맛일까? 호기심에 배가 고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슈헤이는 여자라는 성에 뒤흔들렸다. 남자의 내면을 손쉽게 꿰뚫어 보고 약점을 파악해 계속 피해자로 남게 하는 동시에 가해자로 변모하는 여자라는 존재에. 

자신의 아내인 가나미라는 여자는 타고난 날카로운 칼을 지금에 와서는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무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이들에게 주어진 성(性) 전략이었다. (P. 268.)

 

 

다카노 가즈아키는 <제노사이드>에 관한 인터뷰에서 부조리한 현실 문제를 소재로만 그치지 않고 정면으로 파고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자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노라고 밝힌 바 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지적인 면에서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을 수도 있으며, 책을 쓸 때에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고려한다고 말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 소설 <K.N의 비극>은 임신과 중절이라는 사회적으로 민감할 소재로 주제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지만 성공못했다. 

 

 

싸락눈이 불어 닥치는 어두운 밤에 신사입구를 찾아 계단을 오르는 두 소녀가 있다. 신사 안에서는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있었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두 소녀는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눈보라가 심해지기 전에 되돌아가면서 이날의 일을 모두에게 비밀로 하기로 약속한다.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자리에 오른 젊은 무명 자유기고가 나쓰키 슈헤이는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 덕분에 새 아파트를 구입, 이사하면서 아내 가나미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어느 날 가나미는 임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쁜 마음에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지만 슈헤이는 아직 불안정한 수입과 대출상환금이라는 경제적인 문제로 키울 여력이 없으니 차후를 기약하고 중절 수술을 하자고 제안한다. 가나미는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지만 어쩔 수없이 남편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하기로 동의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나미에게 다른 여성의 인격이 나타나고 정신과 의사 이소가이가 그녀의 치유를 위해 나서면서 불안과 두려움은 두 부부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분쿄의료대학병원 정신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소가이는 도다 마이코라는 기혼여성의 상담을 맡았었다. 그녀는 불임이었고 시어머니로부터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모멸과 압박을 받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소가이의 집중관리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뛰어내려 식물인간이 되어버렸었다. 이 일에 충격을 받은 그는 휴직계를 내고 쉬려 했지만 슈헤이의 간절한 요청에 가나미의 정신적 치료를 맡기로 한 것이다.

 

 

이쯤해서 모성애에 대한 미스터리가 발생한다. 그것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여성 특유의 욕구가 아니던가? 부성애로 한데 묶을 수 없는, 절실한 갈망. 임신은 일종의 강박관념인 것인가? 인류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공신은 여자들이 아이를 계속해서 출산해왔기 때문에 종족번식이라는 숙명의 달성이 가능했다. 하지만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세계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점차 변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공포, 거부감 등은 결혼이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여자는 아이 낳는 기계가 아니라며 반발심리가 등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다보니 출산율은 떨어지고 인구감소 문제에다 섹스라는 행위는 종족번식이라는 본능이 아니 쾌락이라는 유희로 활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준비되지 않은 임신은 인공임신중절로 이어져 유기되어 살 처분 되는 애완동물보다 소리 없이 죽어나가는 태아들이 훨씬 더 많게 된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부모가 원하지도 않은 아이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할 성가신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아이도 있는가 하면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아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슈헤이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아이를 포기한다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비윤리적인 처사로 비난하게도 되고,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할 개인적 부담으로 용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심경이 복잡해진다. 가나미의 경우처럼 중절에 동의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정말 낳고 싶다는 절대적 갈망이 또 다른 자아분열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 모호한 여성의 존재는 빙의 인격인지 진짜 영혼이 빙의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슈헤이의 개인적 판단과 이소가이의 의학적 소견이 충돌하며 정신분석학적 이론이 총 동원된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이다. 그리고 슈헤이를 통해 드러난 숨겨진 과거는 생명이란 어떠한 이유로도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임이기에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슈헤이의 내면의 변화와 결단은 처음부터 예상 가능하다. 그리고 가나미의 또 다른 인격의 정체에 대해서도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설마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예상이 결국으로 마감 짓는다. 그리고 또 예상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 결말에 도달하기 전에 벌여놓았던 판을 잘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갈등은 모호하게, 흐지부지하게 덮어버리는 일에 급급했다. 허탈한 마무리에 그나마 달궈 놓은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급속도로 식어버리는 분위기는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어차피 전형적인 시나리오대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번 정도는 반전을 내놓던지 공포라도 집중 부각시키던지 했으면, 아니면 미스터리에 대한 논리적 해결이라도... 전혀 준비된 것도 없이 손님을 집으로 초대한 꼴이다.

 

 

가나미의 불안한 심리상황에 대한 호기심만 부추기고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한 성교육 홍보는 순진하다.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도덕적 불감증에 대한 비판과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준비된 마음가짐까지 교훈에 대한 강박증만이 남고 재미라는 양념을 빠뜨렸으니 싱겁기 그지없구나. 섣부른 기대는 절대 금물, 다카노 가즈아키의 명성에 기대기에는 플롯이 너무 부실하다. 훅 불면 그냥 날아가 버릴 것 같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두에서 인용한 저 문구는 남자라면 격하게 공감할 것이라는 것이다. 여자라는 존재는 남자에게 여신일 때도 있고 미스터리하면서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니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 <7년의 밤>은 한국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고 그 해 각종 언론과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크나큰 화제를 모았었다.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에서 해외작품들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있던 한국문단을 수호하는 대항마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고도 평가 받았었고. 역동적이고 묵직한 서사의 힘은 실로 엄청났고 대단했던 것이 <7년의 밤>이었으니까. 이제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나오는구나....  2년여 만에 나온 이번 신작 <28>은 출간 전부터 주요 언론과 독자들이 올해 한국문학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예정된 평가를 받으며 모두가 세상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화제작이 되어 버렸다. 나도 개인적으로 사전예약을 통한 구매란 걸 처음 경험해보았으니 마치 아이의 출산만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두근두근 심장이 뜀박질하는 설레임.  

 

 

인구 29만이 살고 있는 수도권 인근도시 화양시에 정체불명의 괴질이 발병한다. 아파트에서 개 번식업을 하던 중년남자는 개에 물린 이후로 눈이 빨갛게 붓고 전신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이더니 사망하고 만다. 이것이 최초의 발병 시점. 이 남자를 구조했던 119구조대원들도 하나 둘씩 빨간 눈 괴질에 감염되어 차례차례 죽어나가면서 이 병은 화양시 인구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는 전염병으로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화양시 전체에 비상사태, 아니 사실상 계엄령이나 마찬가지인 도시봉쇄를 통하여 화양시 외부로 동 괴질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자 한다. 이제 화양시는 고립된 도시, 죽음의 도시가 되면서 무법천지가 되고 도시 밖을 탈출하려는 시민들과 이를 저지하는 군인들 간에 피 흘리는 사투가 벌어지게 되고. 

 

‘서재형’은 알래스카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에 참가했던 썰매꾼이었다. 11년 전 자신의 개 썰매팀 ‘쉬차’를 이끌고 결승점으로 질주하던 중에 화이트 아웃에 갇히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늑대들의 습격을 받게 되자 개 썰매와 자신을 이어주는 줄을 끊고 살아남는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개들은 몰살당했다. 썰매 개들의 어머니인 암컷 ‘마야’는 다갈색으로 물었었다 “대장. 내 아이들을 어쨌어?”라고. 그는 살아남았지만 세계 각국의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면서 사랑했던 썰매 개들을 늑대무리에게 희생양으로 내놓았다는 죄책감이 트라우마 되어 평생을 시달린다. 살려내지 못했다는 마음의 짓누름은 귀국 후 화양시에서 유기동물 보호소 ‘드림랜드’의 수의사로 살게 하면서 조금이나마 속죄하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트라우마는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구원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절실하게 잇는 공감이자 인연으로 안내하는 거대한 증언이 되어 계속 반복된다.  

 

 

한진일보 기자 ‘서윤주’는 ‘드림랜드’에 대한 익명의 제보를 받고 ‘서재형’이 “유기견들의 보호자인가? 악질적인 개장수인가?”라는 기사를 써서 그를 궁지에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감동어린 미담으로 TV에 출연했던 ‘서재형’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결정적으로 개 썰매팀 ‘쉬차’의 개들을 몰살시킨 장본인으로 보도한다. 이것이야말로 악의적인 제보에 대한 확인절차 없이 무책임한 언론보도가 진실을 어떻게 호도하는 것인지 제대로 입증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서윤주’는 ‘서재형’을 직접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빨간 눈 괴질이 개에게서 인간에게 전염되는 병으로 보도함으로써 끔찍한 후폭풍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작가 ‘정유정’은 돼지들을 살 처분하는 동영상을 보고 소설 <28>의 시놉시스를 떠 올렸다고 한다. 만약 살 처분해야 하는 대상이 ‘돼지가 아니라 반려동물인 개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고방식은 철저히 이분법적이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들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이 없다. 인간과 개 모두에게 전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이 괴질은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이 개에게, 개가 개에게, 개가 인간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의학적으로도 입증되지 않은 대재앙.  

 

 

화양시들의 개들은 모두 깊은 구덩이 안에서 집단 생매장을 당하게 된다. 이 모든 발병의 원흉으로 개들이 매도당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개들은 죽음을 직감하면서 두려움에 살려 달라고 울부짖고 날뛴다.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개들은 군인들에게 눈을 찔리고 몸뚱이를 꿰뚫린 채 피바다 되어 무저갱으로 떨어져간다. 인간들만이 우월한 종자로 단정 짓고 자신들만이 생존하기 위해 말 못하는 짐승들의 살려달라는 비명을 무참하게 짓밟는다. 진실이라는 가치가 야만적으로 압살당하고 만다. 그제서야 ‘서윤주’는 깨닫게 된다. “살려주세요.”라는 개들의 절규와 살아남았지만 고립된 인간들의 “살려주세요.”는 결코 다르지가 않다는 점을. 

 

 

여기 또 하나의 시점이 존재한다. 약탈, 강간, 살인이 난무하는 무간지옥 화양시에서 희생양으로 전락한 개들의 분노와 생존본능을 대변하는 팀버울프 ‘링고’가 있다.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만 버림받고 투견으로 길러졌던 ‘링고’는 인간을 철저히 증오하고 불신한다. 우연히 ‘서재형’이 키우는 암컷 ‘스타’를 만나 첫눈에 반하면서 그녀만을 바라보며 그녀를 지키며 평생을 함께하는 행복을 꿈꾼다. ‘링고’와 ‘스타’는 이름을 합치면 비틀즈의 멤버 ‘링고스타’가 되는데, 둘은 이름처럼 갈라놓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가 되지만 불행은 ‘스타’의 죽음으로 ‘링고’를 좌절이라는 상실감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에 개입된 ‘동해’와 ‘기준’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다짐한다.

 

 

이 소설은 위에서 언급한 ‘서재형’, ‘서윤주’, ‘링고’, ‘박동해’, ‘한기준’, ‘노수진’까지 모두 다섯 명의 인물과 한 마리의 개의 시점이 번갈아 교차하며 이야기를 하나의 결승점으로 몰고 간다. 전염병이라는 소재는 일반적이나 시종일관 강력한 흡입력으로 깊은 울림과 생생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구축해 둔 인간본성에 대한 탐구가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어떠한 낙관적인 기대나 희망도 없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정말 안타깝고 무고한 죽음이 연이어 계속된다는 전개가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다. 이 사람 만큼은 살려내고 싶다고 바람을 걸어보지만 냉정하게도 그 가혹한 운명은 비켜가지 못했다. 죽어도 싼 놈이 있는가 하면 미처 피지 못한 한 떨기 생명 앞에서는 전염병에 대한 역학적 분석은 한낱 헛된 소망일뿐이다. 이 모든 것은 죽음이라는 특급열차에서 하차하지 못하고 끝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소름끼치는 비극인지를 증언하고 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 한.... 

 

  

그래서일까? 다 읽고 나면서 긴 숨을 내쉬었다. 한참 동안을 숨을 죽여 가며 읽었던 것 같다. 실로 어마어마하다. 섬세한 묘사에 더해진 치밀한 긴장감, 게다가 미칠 듯이 폭주하는 이야기라는 힘은 외면하기가 힘들다. 한국소설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흡족함이란...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야성과 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구원과 속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군림하고 지배할 권리가 있는 포식자가 아님을 안다면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외경심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라고 읽은 소설이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