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드러머 걸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4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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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수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반목과 상처, 증오를 남긴 채 30년이 지난 현재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다. 역사와 국가의 대립은 필연적으로 정보전을 낳게 마련이고 국제 정세의 민감한 흐름 속에서 개인의 존재와 가치가 어떻게 소모되고 희생당하며 잊혀져 가는지에 주목해온 그간의 작품세계와 궤를 같이 하는 작품 <리틀 드러머 걸>은 독일 바트 고데스베르트에서 사제 폭탄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타겟은 이스라엘 노무관의 처삼촌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성발언으로 주목받아 왔던 탈무드 학자였던 것.

 

 

그러나 애꿎은 희생자만 발생하였고 피가 피를 부르는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된다.이에 이스라엘 정보국의 쿠르츠는 이 전쟁의 균형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시키고자 한다. 쿠르츠는 이 비밀 첩보작전의 계획을 짜기 위해 정예요원 3인조를 불러 모았고 3인조의 급조를 통하여 특별한 지위에 올라선 사병조직을 결정한다. 이 첩보작전을 최전선에 수행할 엘리트가 필요하였는데 이 표적으로 영국 여배우 찰리를 물망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것처럼 세심하고 치밀한, 당사자가 자신이 거미줄에 빠져든 줄도 모른 채, 서서히 포섭하여 세뇌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할 필요가 있었다. 자국민이 아닌 제3국의 인물을 첩보원으로 등용하자면 강압이 아닌 자연스런 교육이 효과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적들에게도 의심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 마찰과 파장을 피하고 싶었던 이유에서다.찰리라는 여배우를 포섭, 세뇌하는 과정들은 한편의 연극대본을 짜서 사랑에 빠진 여심을 공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었다.

 

 

요제프라는 가명을 가진 요원을 자연스럽게 찰리의 주변에 투입한다. 그리고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직접적으로 이성으로서의 유혹을 섣불리 시도하진 않지만 이것만으로도 확실한 효과가 드러난다. 시크한 듯, 무심한 것처럼 굴다가 결정적일 때에는 밀당을 해서 두 사람  마침내 사랑에 빠진 연인사이가 된다. 사랑에 더욱 눈이 먼 쪽은 당연히 찰리였다. 요제프가 가르치면 귀를 기울였으며, 그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것이며, 죽으라면 죽겠노라고 맹세하는 가련한 여인이다. 찰리의 마음을 공략하고 조종하는 요제프.

 

 

찰리가 처음부터 테러전의 첩보원으로 발탁된 진정한 이유는 그녀의 성격 때문이었다. 상당히 영리하고 배우로서의 재능도 갖춘 그녀지만 타고난 반골 기질은 임무수행에 더 없이 적합한 캐릭이었으니 유대인도 팔레스타인도 아닌 제3자로서 그나마 팔레스타인 측에 상대적인 호의와 지지를 보낸다는 정치적 성향을 다소 고려해야만 했다. 요제프는 그런 그녀를 아주 천천히 세뇌시킨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먼저 이용한 후 그녀의 직업적 특성인 연기라는 측면을 비집고 들어간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연극은 사적인 고백이 아니라 실용적이어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의식화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더불어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이 논리를 그들은 대테러에 대항하는 선전선동으로 감화시키고자 했고 완전히 말려든 찰리를 보면서 이데올로기라는 맹목적 신념 앞에서 마치 무대에 캐스팅된 배우가 생과 사를 연기하는 것과 과연 다를 바 없는 것인지에 대한 회색빛 공허감이 밀려든다. 그런 만큼 배우에게 중요한 무대에서의 연극을 보다 더 큰 현실이란 공간에서 펼치는 그 연기란 행위를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만 찰리와 그녀를 지켜보는 나 자신이 소속에 대한 정체성에 상당한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그녀는 과연 이스라엘의 편에서 일하고 있는 지, 아니면 팔레스타인의 편에서 일하고 있는 것인지 마지막 페이지에 다가가면서도 끝내 확신할 수 없었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닐 것이다.

 

 

확신할 것은 단 하나, 비정한 세계에서 사랑 하나만을 믿고 전선을 누비고 다닌 그녀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객관적 시각에서 재조명할 기회를 던지고 무대 뒤로 쓸쓸히 사라지는 순간 그토록 역설했던 사랑의 고귀한 가치는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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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리학자의 비행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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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팩션계의 거봉 로버트 해리스의 <어느 물리학자의 비행>은 금융•경제와 IT산업과 스릴러가 크로스 오버하는 형식의 작품으로 스위스 제네바의 증권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쩐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알렉산더 호프만은 천재 물리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로, 스위스의 CERN(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에서 일했던 천재이다. 강입자 충돌기 분야에서 6년 있었고 인공 지능의 알고리듬을 연구하다 파트너 휴고 쿼리를 만난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호프만 투자 테크놀로지를 창립하여 헤지 펀드를 내놓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해지를 헤지로 잘못 표기한 것 아닐까 할 정도로 생소한 용어였다.

 

 

헤지 펀드는 주식시장에서 투자심리 위축을 미리 예상하여 주가가 하락할 때 매입하여 수익을 올리는 방식인 듯 한데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호프만 투자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사고능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방대한 정보와 각종 변수들을 대입하여 컴퓨터의 알고리듬이 주가를 분류, 판단하도록 하는 인공지능시스템을 통해 투자자들을 불러 모으려던 참이었다.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호프만은 자신이 주문한 적도 없는 찰스 다윈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란 고가의 고서가 자택으로 배달되어 온 것이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 상태를 흑백사진 속에 묘사하여 동물적 반응을 그려낸 연구서였다. 특히 두려움이 극한에 이르면 어떠한 변화에 도달하게 되는지 관심을 둘 것을 암시하는 것 같은 메모의 삽입이 들어있어서 더욱 께름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보냈는지, 무슨 이유로 보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보안이 철저하다고 자부했던 그의 자택에 괴한이 침입하여 습격을 하고 사라지는 일까지 일어난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세계증권가의 주가 등•하락을 실시간 체크하며 헤지펀드가 가져다줄 부의 창출에 혈안이 되어있는 호프만은 돈 앞에서 냉혈한이 되어버리는 남자였다. 수익에 좀 더 집중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신분을 도용한 누군가가 선물로 보낸 이유는 정신세계를 분열시켜 미치도록 만들고자 하는 음모가 아닐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요새는 뜸해 보이기는 한데 예전에 주식열풍이 불 때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아 주식에 몽땅 투자했다가 쪽박 찬 사람들을 많이 목격하였다.

 

 

그 방면에 완전 무지했던 나는 주식은 마약과도 같다고 생각하였고 간혹 수익을 낸 사람들을 보며 군침 흘리며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한번 주식에 빠지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고 오로지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이 만사가 되어버린 폐인들의 대박 꿈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이 소설 속에서 돈이 돈을 낳는 황금알에 감히 눈길 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전인미답의 세상이다. 전 세계의 돈은 그렇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돈을 물어다주는 전설적인 창업자 호프만의 복음은 신도들에게 신화가 되어가려던 참인 것이다.

 

 

알고리듬에 바탕을 둔 특별한 투자펀드를 앞세워서.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두려움에 빠지는 순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며 공황을 먹고 사는 알고리듬은 이익 창출 가능한 데이터로 수정한다는 그 이론과 논리 앞에 다수는 철저히 무력하다. 자본주의 시대는 철저히 돈이 매긴 가치에 지배당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배제한 디지털 머니가 변동성 수준이 위험한 수준에까지 폭주하는 후반부는 대공황을 불러 올 수 있을 정도의 가공할 위협이었다. 이야기의 그 흐름을 쫓아가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이번에도 공부해가며 읽어야 할 스릴러임에는 틀림없다.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고는 하나 기초적인 지식이 없으면 계속 돌파해 나가는 데에 무리가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염려도 된다. 과연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연출할 영화는 스릴러적 감성 외에 관객들을 어떻게 이론무장을 시킬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는 점에서. 덧붙여 이 소설의 한글제목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The Fear Index>가 어떻게 <어느 물리학자의 비행>이 되었는지를... 아! 그러고 보니 호프만이 원래 물리학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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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인
쓰카사키 시로 지음, 고재운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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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머릿속을 지배하는 불길한 느낌을 감지하고서도 도리야마 도시하루는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에 집에서 아내와 오붓한 저녁약속을 위해 돌아갈 때만 해도 애써 기분 탓이려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 나올 때 아는 척 하던 남자도 무시했다. 그런데 그가 집에 도착하니 기이한 그림이 펼쳐져 있다. 조명 나간 거실은 컴컴한데다 웬 촛불이 열일곱 개씩이나 세팅되어 있질 않나. 결정적으로 아내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뜨악하고 있을 때 걸려온 낯선 이의 전화는 멘붕에 빠진 도리야마의 귀를 의심케 하는 아내 미유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아니, 그럼 아내랑 판박이처럼 닮은 저 시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곧이어 두 남자가 형사라고 신분을 밝히면서 자신을 들쑤시다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도리야마는 좀 전까지 누워있던 아내의 시체가 깜쪽같이 사라진 것에 당황하여 도주하기 시작한다. 도주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방문객의 정체를 폭로하며 도주하라 부추긴 전화가 또 왔고 이에 주저함 없이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만약 나라면 이 상황에 어찌 대처하였을까? 막막하였을 것 같다. 다급히 쫓기는 신세를 보호해줄 바람막이가 변변히 존재하기나 할까,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확실성의 연속에서 천운처럼 도움을 주는 오쿠무라 지아키는 인생은 예측불가의 변수가 분명 있는 듯하다. 그녀의 정체가 궁금하고 낯선 이를 돕는 의도에 불순물이 섞여 있지는 않는지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의심했으니 설마가 사람 잡을 확률에 대비했던 것이다.

 

 

 

그녀의 도움을 받으며 도리야마는 과거 자신의 인생이 조작되어 있다는 충격적 진실에 직면하는데 기억의 왜곡이 정말 흥미진진하다. 전형적인 음모론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온 과정을 헛되게 무너뜨릴 반전이 있다면 얼마나 허무해질까? 반대로 밋밋하고 평범한, 불행한 삶을 살아온 나 자신이 누군가의 기억으로 세뇌당해 왕자가 거지된 것 같은 형국이었다면 이 또한 정체성에 대혼란을 느껴 바로 잡고자 하는 욕구로 발버둥 치며 보상받고자 했을 것 같다. 도리야마는 결국 이중생활은 한 셈인데 축적되어 있던 기억을 싹 밀어내고 다른 기억으로 장착되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론이 무척이나 신선하다.

 

 

 

몸은 하나, 인생은 리필. 그야말로 진시황이 그토록 염원하던 불로불사가 영험한 약초 같은 식이요법의 효능에 기대지 않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건 획기적이다.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것이지. 좋은 기억만 들고 이 몸에서 살다가 몸이 사멸하면 다른 몸으로 이사하면 되니까 무한리필이 가능하다는데 정말 나 자신부터 실현하고 싶은 꿈같은 과학이다. 윤리적 문제는 도외시하고 책 속의 미스터리와 문학적 완성도까지 제외하더라도 그 같은 기술에 입각한 상상만 내내 하는 동안 기분이 업 되는 착각 속에서 읽게 된다. 영화로도 나왔지만 책이 주는 미묘한 기분은 생생하다. 상상력과 추리, SF가 절묘하게 융합하여 재밌는 스릴러로 탄생했으니 칭찬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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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크라이 카오스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레너드 로젠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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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크라이 카오스>는 이론과 캐릭터로 양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는 작품쯤 되겠다. 개인적으로 수학에 강한 알레르기가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프랙탈 이론, 카오스 이론 등을 바탕으로 한 수학적 이론과 경제적 접근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 “앙리 푸앵카레”를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의 증손자로 설정해 놓고 육체적인 강인함 못지않게 지적탐구를 강조하는 미스터리로 창조해냈다.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는 실제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수학과 수리물리학, 천체역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했던 인물로 특히 카오스 이론의 정립에 지대한 역할을 한 유명인사로 알려져 있다. 대신 이 작품의 주인공 “푸앵카레”는 할아버지의 경력과는 상관없이 인터폴 형사로 30년을 누비고 다닌 노회한 베테랑이다. 성격이 진중하고 학구파 스타일인 그는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불의와는 결코 타협을 보지 않는 억척 형사로 명성을 날렸는데 정년을 앞두고 가족과의 단란한 노후를 꿈꾸어 왔다. 다만 몰아내고 또 몰아내도 악의 본질적 뿌리를 도려내지 못함을 아쉬워 할 뿐이었다.

 

 

“푸앵카레”의 마지막 전리품이 될지도 모를 범죄자는 기독교 원리주의에 입각하여 이슬람교 성인남자들과 소녀들을 대량 학살한 짓을 지시하고 동참한 죄목으로 인터폴의 국제 지명수배를 받아왔던 구, 유고 연방 출신의 “스티포 바노비치”였다. 장기간에 걸쳐 끈질긴 추적 끝에 마침내 체포하여 법의 심판을 넘길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이것으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노비치”는 자신을 구금한 “푸앵카레”에 앙심을 품고 그의 가족들에 대하여 살해 위협을 한다. 아니 실제로 안타까운 희생양이 발생한다. “바노비치”의 청부살인 사주를 피해 가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테러로 보호시스템에 균열이 일어나 손녀딸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는 “바노비치”의 위협에도 법과 이성에 호소한 대응으로 안주했던 이 노 형사는 비로소 복수심에 살의를 품는다.

 

 

하지만 “푸앵카레”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WTO 각료 회의 보안 총괄을 담당하게 되었던 그가 현지에 도착하였을 때 폭발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폭발원인으로 로켓 추진에 주로 사용되는 원료인 “과염소산 암모늄'으로 밝혀지고 이 폭발에 의해 호텔 꼭대기 층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대형 참사였던 것이다. 다른 투숙객들은 무사했는데 폭발이 발생한 호텔방의 투숙객 "제임스 펜스터"라는 하버드대 교수이자 수학자만이 사망했다. 단 한사람만을 표적으로 노렸다는 심증이 굳어지는 가운데 희생자가 30세이고 WTO 회의에서 강연예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대체 수학자를 노린 암살이 발생한 동기가 무엇인지에 관해 갑론을박이 난무한다.

 

 

정치적 음모도, 애정문제도 아닌 불확실한 추측을 뒤로 한 채, 인터폴에 의해 수사를 맡게 된 "푸앵카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펜스터"가 연구했던 “프랙털 이론”을 근간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며 단서를 차근차근 수집하지만 가닥이 잡히지 않는 수학문제나 마찬가지 형국이다.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는데 조교, 약혼자 같은 케이스는 기본이며 동료 수학자 등도 만나면서 진척 없는 진행상황에 힘들어 한다. 이와 동시에 "바노비치"가 "푸앵카레"의 가족들을 노린 청부살인에 복수까지 해야만 하는 이 남자는 세상의 중심에서 혼돈에 빠져 울 것 같은 최대난관에 빠진다.

 

 

중간 중간 “프랙털 이론”을 언급했는데 한 부분을 확대할 때 그 확대된 부분이 확대전의 성질이나 모양을 유지하는 그림이나 도형을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첨언하면 나뭇가지들이 일정한 비율이 되는 지점에서 두 가지로 갈라진다는 규칙 하에서는 가지의 어느 부분을 선택해 확대해도 전체 나무 모양과 같은 모양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성질을 ‘자기 유사성’이라고 한다. 자기 유사성을 가지는 기하학 구조를 뜻하는 “프랙털 이론”은 현대 수학부분에서 중요하며, 이 이론은 수많은 다른 학문 분야에도 응용되고 있는 아주 유용한 이론이라고 한다. 이 작품 속에서는 이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관련 사진들을 예시로 들며 비교하는 방식을 자주 쓰고 있다. “프랙털 이론”에 대한 단면적인 이해가 물론 쉽지가 않거니와 수학자들이 숫자와 상징만으로 방정식을 만들어 인간행동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모형화 할 수 있다는 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개념들이 “펜스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동기를 밝혀내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키포인트가 되리란 걸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관용을 모르는 아집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여 폭력을 선택하는 종교적 배격이 이제껏 관습화되었던 이슬람 원리주의를 뒤 집은 구도마저 상당한 오해를 무색하게 한다. 이것은 신종플루처럼 전염되는 병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수학은 서로 다른 것에 같은 이름을 부여하는 예술이라고 했던가? 일정한 패턴을 찾아 예측하는 것, 지식을 바라보는 순수한 사랑을 넘어서 재능은 경제적 탐욕을 충족시킬만한 방정식을 구현하였기에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목숨을 담보로 한 필사의 회피, 마침내 실체가 드러나며 반전으로 끝맺는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집대성을 통해 머리 쓰는 지적 미스터리, 이해하여 받아들일 것인가? 어렵다며 고갤 절레절레 저을 것인가? 순전히 독자의 개인적인 지적능력이 크게 좌우하게 될 것 같아서 상당히 격렬한 수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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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ㅣ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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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가와이 간지의 데뷔작이다. 읽은 지는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야 감상을 남긴다는 건 기대에 못 미친 것에 대한 불만이 남았다는 반증이다. 서문을 여는 일기형식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과 동일한 패턴이다. 하지만 오마주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단순한 차용에 불과하다. 무엇이 문제였나?

 

 

도쿄 시내에서 여섯 번에 걸쳐 일어난 연속살인사건. 첫 번째 희생자는 머리가 없고 차례대로 발견된 총 여섯 구의 시체들은 머리 외에 팔, 다리 등 각각의 신체 부위가 사라진 상태로 발견된다. 단서라고는 머리카락 말고는 없으니 범인은 처음부터 치밀하고 완벽한 살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범인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나 분노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신체의 특정부위를 잘라내 사라졌을 뿐이었으니 이래서야 과연 범인의 살인동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될 리가 없다.

 

 

이 때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구원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일을 맡게 된 일원이 있었으니 바로 가부라기, 히메노, 마사키, 사와다로 구성된 수사팀이다. 사건을 전담하게 된 수사팀의 리더를 가부라기가 맡게 되는데 한 번도 남들을 통솔 지휘해 본 경험이 없는 그가 팀의 리더가 되어 스스로 긴장을 많이 하지만 허술해 보이는 팀원들의 팀웍은 생각보다 척척 잘 맞아 떨어졌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낸 이들은 결국 실마리를 찾아낸다. 의미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가부라기 형사에게 보낸 의문의 이메일 한 통에서 시작한다. 발신자는 “데드맨”이라고 했다. 이 제보가 결정적 단서가 되어 40년 전 재판 기록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분명 죽은 여섯 사람들은 관계적 측면에서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였지만 누군가에 의해 한 맺힌 삶을 끝내야했던 “원한”을 산 접점이 발단이었음이 드러나는데 그 추리과정은 복잡한 룰이 아니라 가공된 사연이 만들어낸 프로세스의 답사이었을 뿐이다. 추측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대로 길을 따라가면 되니까 두뇌게임을 요할 일은 없어지는 것이다. 일단 술래의 그림자가 발견되면 이제 게임은 그것으로 끝이다. 무의미한 복수다. 복수해야 할 대상자가 없으니 애꿎은 희생양을 사냥한다는 그 의중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죄 라고.

 

 

추리가 아닌 스릴러가 되는 후반부는 초반의 아조트 살인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쓰잘 데 없는 사기적 농간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지경이다. 기껏 기대와 호기심을 최대한 부풀려 놓았으면 오리지날의 트릭에 맞서진 못하더라도 적당히 라도 잔재주를 부려 최소한의 재미라도 충족시켰어야 했다. 단지 눈 가리고 아웅 이라니... 게다가 범인의 발악은 흡사 구로다케 요의 <그리고 숙청의 문을 열고>를 연상시키지나 않나, 도무지 창의성과 기지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실망의 연속일 뿐이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미하리라. 근래 보기 드문 속도감 있는 가독성이 일순 무색할 정도로 비참하고 남루하다. 아이디어를 자신만의 것으로 재창조하지 못한 작가적 역량의 한계는 왜 미스터리를 읽는가에 대한 성의 없는 얼버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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