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1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착수 미생 1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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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추리/스릴러 소설만이 아니라 만화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장르인데 최근 웹툰에도 점차 관심을 늘리고 있다. 종이 책에서 e-book이라는 제본형식의 점유율이 변화하고 있는 이유는 판매량의 감소와 함께 원자재 상승도 무시할 수 없기도 할 것인데 빌려 본다는 인식이 더 강한 만화에서는 웹툰은 일반 장르소설에 비해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더욱 선호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자 현실일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지도 모른다. 인기 웹툰들은 한해에 수억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고 연재된 작품은 책으로 묶어져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 가운데 초대형 히트작들은 드라마, 영화나 연극 혹은 뮤지컬로 각색되면서 콘덴츠 고갈에 시달리는 대중문화계에 소중한 자양분을 구축한 것이다.

 

"슬램덩크"의 단행본을 모으던 시절은 더 이상 도래하지 않을 것이며 그 당시의 기쁨과 설레임은 과거 속의 추억일 뿐이다. 물론 지금도 만화방은 출입하고 있다. "더 파이팅", "열혈강호", "사상 최강의 제자 켄이치"같은 작품들이 현재 열렬히 애호하고 있는 만화들인데 웹툰으로 관심을 돌리자면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되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에 지금 언급하고자 하는 여기 소개하는 "미생"이  역시 애호하는 웹툰들이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은 헌혈 상품으로 받았다. ABO Friends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정기적으로 헌혈에 참여하고 있는데 컬처 피크닉 시즌4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고 보니 헌혈에 대한 보람은 물론이요,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에 대한 인연도 되새겨 보게된다. 영화 "이끼"를 먼저 본 후에 웹툰을 정 주행했는데 강우석 감독의 연출력이 구린 탓도 있었지만 확실히 원작이 더 강렬하고 후덜덜 했었다. 이후 작가와 웹툰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던 차에 이번에 본 "미생"은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느낌이 팍 팍 오더라.

 

인생은 거대한 바둑판

그 위에 던지는 오늘의 한수!

 

새벽같이 일어나 기보 책을 보며 혼자 바둑돌을 놓아보던 아이는 열한 살의 나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기사를 꿈꾸지만 7년 만에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나서게 된다. 인생 제2막의 시작!!

검정고시 출신 고졸이 후견인의 백으로 취직하여(낙하산이란 말씀) 특기도 없지만 박 터지는 업무를 수행하며 숨 가쁘게 돌아가는 종합상사의 인턴사원으로, 그리고 계약직이지만 정식 사원이 되기 위해 경쟁이라는 전투를 치르고 있는 청년 장그래의 입사기를 담고 내고 있는 것이 이번 1권이다.

 

장그래는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이라는 경력 말고는 가방끈도 짧고 일반직으로 들어가기에는 자격미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기가 있다면 그에 합당한 보직에 적재적소 배치되겠지만 하이얀 백지상태의 사원은 모두에게 낙하산이란 딱지가 붙는다는 뼈아픈 지적은 장그래에게 처음의 호의는 의구심으로 차차 불편한 편견으로 이어질 수밖에는 필연의 과정들이다. 그 점을 모를 리 없는 장그래가 이제 더 이상 바둑처럼 실패하지 않겠노라고 자신에 허락된 불빛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다짐 앞에서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그를 본받으라며 무언의 독려를 보내고 싶다.

 

그가 가진 장점이라면 우유부단해 보일지도 모를 신중함과 통찰력, 그리고 바둑을 통해 배운 집중력이다. 장그래가 만난 상사들은 다행히도 합리적이고 부하직원에 대한 배려를 할 줄 한다. 욕 먹어가며 일을 배우면서 동료인턴들과 정식 입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피 튀기는 입사 P·T 시험을 거치는 중이다. 세상은 훨씬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친절하다고 오산했지만 곧 그것이 차갑고 냉정한 현실이 뒷통수를 치고 있음을 깨닫고 맘을 고쳐먹는다. 한석율 같은 캐릭이 그랬다.

 

자신은 회사에서 절대로 필요로 하는 유능한 인재라서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큰 소리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료들에게 폭탄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분이다. 심지어 사장이랑 밥도 같이 먹은 사이라고 떠벌이는 한심한 존재이다. 팀 P·T 발표를 같이 할 파트너로서 모두가 만만한 장그래에게 접근해 환심을 사고 그와 한조가 되어 상대적으로 돋 보이고자하는 꿍꿍이가 한석율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녀석은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로채서 자신의 것으로 보충해 살아남고자 하는 더러운 기생충 같은 놈이다. 장그래가 만든 PT를 보고 다시 하라고 말한 이유는 그런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기에 장그래는 바둑의 정석대로 선수를 치기로 한다. 어찌 보면 모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경쟁해야 할 상대가 어떡하든 내게 배신을 때리고자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는다. 상대의 행보가 수 읽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대신 균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영역을 점차 키운다. 조화를 중시하여 순리대로 흘러가며 앞날을 대비하되 발톱을 숨기는 것, 바둑에서 배운 행마를 가져가는 방식을 장그래는 선택한다.

 

"그리고... 너 몇 살이냐?"

"네...?"

"말 안 할래?(이 좀만이가...)"

 

-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낸 장그래의 반격. 멋지다. -

 

그래서 모두가 뒤에서 비웃고 쑥덕거리는 누클리어 밤 조화가 어떠한 산물로 빛을 발할 지, 장그래는 이러한 악조건을 딛고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에서 살아남은 자 될 것인지(당연히 되겠지만...) 차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기대가 크다. 그리하여 바둑과 직장생활의 교집합이라는 이색설정을 통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재미와 교훈을 전달하는 "미생"은 현존 최고의 웹툰임에는 분명하다. 인생이라는 백지를 그려낼 장그래!!!  여성인턴 안영이도 속을 알 수 없지만 은근 매력있는 인물중 한 명인데 설마 러브라인은 없겠지. 어쨌거나 인터넷에서 계속 정주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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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라이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9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9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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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느 순간에도 나의 사명은 간섭받지 않는다.

 형사이든 아니든 이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은 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에겐 더 이상 총도, 배지도, 뒤를 받쳐줄 동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4년 전 미해결 사건으로 남은 살인 사건을 뒤짚어가는

탐정 해리 보슈의 첫 번째 이야기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 크라임 소설의 마스터 마이클 코넬리"해리 보슈" 시리즈를 아직도 읽어본 적 없거나 잘 모르겠다는 독자 층들을 보면 어떻게 이런 쿨한 작가를 외면할 수 있을까라며, 속으로 비난 아닌 비난을 할 때가 있다. 특정작가에 대한 고유의 취향은 개인의 선택이지 그 누구도 강요할 일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마이클 코넬리라면, 해리 보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의 반사신경을 나타내고 있으니 아무래도 단단히 빠져있는 듯하다.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탄환의 심판" 이후로 해리 보슈는 구경하기 힘들어졌고 그 텀이 상당히 길어져서 애태우더니 결국에는 새색시 마냥 수줍게 문을 열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 ! 어찌나 그리웠고 반갑던지... 그 설레이는 맘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그런 흥분들을 점차 가라 앉혀본다. 해리 보슈 시리즈로만 따진다면 아홉번째에 해당되며 전작 "유골의 도시" 이후 해리 보슈가 경찰을 그만두고 독자적인 수사활동을 벌이는 시기를 담고있는 이번 이야기는 조직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맴도는 그가 어딘가 연약해 보이면서 쉽지않은 결단을 내리는 강단 또한 확인할 수 있다. 부러질지언정 결코 꺾이지 않겠노라는....

 

들라크루아 가의 한 어린 소년의 유골이 발견된 비극적 사건을 해결하면서 무고한 용의자를 희생양 삼아 공적에 이용하려는 무능한 경찰조직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악에 대한 승산없는 승부 속에서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떳떳하고 싶어했던 해리 보슈는 출세라는 동아줄을 잡지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을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그간 자신이 수집해둔 과거 미결 사건들 중에서 해리 보슈는 4년 전 발생했던 영화사 여직원 살인사건을 다시 수사하기로 하는데 강도에게 성폭행 당해 살인당한 것처럼 보였던 그 사건은 얼마 후 마피아의 검은 돈을 훔친 여성도둑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촬영 도중 일어난 현금강탈 사건과 연계된 것으로 의혹을 받았던 적이 있다.

 

가짜 돈 대신 리얼함을 극대화시키고 싶었던 감독이 진짜 현금 2백만 달러를 은행에서 빌려 촬영 후 반납하기로 약정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강도단이 들이닥쳐 총격전 끝에 돈을 들고 달아났던 것이다. 두 사건의 고리를 찾아보던 해리 보슈에게 동료경찰들과 FBI까지 그의 수사를 방해하고 손을 뗄 것을 강요한다. 탄압이라는 압박.....

 

30년 가까운 세월을 국가 조직 안에서 살면서 외부 세계와의 고립을 심화시켜왔고 '우리와 그들'이라는 윤리관을 발전시켰다.

정의 실현 광신도 집단이었던 나는 거기서 잘려나와 바깥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이젠 더 이상 '우리'의 일원이 아니라 '그들'의 일원인 것이다. (P.30)

 

 

 

 

경찰배지를 반납한 해리 보슈에게 LA경찰의 일원이 아니라는 현실은 공권력에 기대지 못하게 된 한 남자의 험난한 분투가 생각만큼 쉽지않은 일임을 깨닫게한다. 관용차량도 제공받을 수도 없고 수사를 위한 주요정보에 접근하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하니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이란 이런 상황일 것이다. 확실히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자가 겪게되는 정신적 고립상황은 해리 보슈와 옛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오랫만에 재회하게 된 후배 키즈민 라이더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강력반 파트너라는 관계와 진로방향이 해리 보슈의 독단으로 깨어진 것에 분노를 표시하는 그녀에게서 영리하고 똑 부러져서 호감이었던 과거 속의 참한 이미지가 사라져버리고 이해득실에 집착하게 된 세속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너무나도 미약한 실날로 지탱되고 이어져있음을 되새겨보는 게 그리 놀랄 말한 일은 아닌가보다. 그렇게 변하는 게 사람, 사람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누구보다도 환상의 복식조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했던 해리 보슈키즈민 라이더의 날선 관계가 다시 원만해졌으면 좋겠는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해리 보슈의 심경변화와 그녀에 대한 진심어린 설득만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돌아 선 키즈민 라이더의 마음을 온전히 되돌리는 건 순전히 해리 보슈의 몫이니까.

 

나는 단발이론의 신봉자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에 빠져 여러 번의 정사를 가질 수도 있지만,

자기 이름이 새겨진 사랑의 총알에 피격될 기회는 딱 한 번 뿐이다.

이 총알에 맞은 행운아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영광의 상처를

누린다는 것.

이것이 소위 단발이론이다. (P.144)

 

"트렁크 뮤직""보이드 문"이 에피소드처럼 은근슬쩍 소개되는 소설 속 사건은 애초에 인간의 헛된 망상에서 비롯된 예견된 위협이었고 돈을 두고 저지르는 배신의 난무와 한순간에 행복이라는 열차에서 굴러 떨어져야만 했던 안타까운 죽음도 있는가하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못한 채 타인을 도구로 이용만하려는 편협된 이기심까지, 모든 것이 빛이 없는 동굴 속이다. 그렇게 절망이라는 어두운 시궁창을 허우적거리기만 하다 끝에 가서는 달관하고 자조하게 되리란 것이다.

 

해리 보슈에게는 이러한 사건들이 언제나 그를 기진맥진하게 만들면서 상처와 회한만을 남게 할 뿐이었다. 이 세상이 잃어버린 빛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제목이 의미하는 "로스트 라이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래서 해리 보슈는 언제나 외롭고 고독했다. 3인칭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지는 해리 보슈를 제일 힘들게하는 건 언제나 전처 엘레노어 위시와의 단절된 관계였고 그를 끊임없이 시험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행히도 신은 그동안 그에게 내린 처사가 가혹했었다는 후회가 있었을까? 이전에도 스쳐간 여자들이 있었지만 사랑이라는 총알 한 방이 깊숙이 관통한 해리 보슈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축복이자 선물이 마지막을 후끈한 감동으로 달군다. 어둠 속 동굴에서 분노의 감정을 밀어내고 따스한 물결로 상처를 씻어내고 그가 잃어버렸던 빛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 순간 어느 길을 택해야할지 알았고, 마음 속에 다함이 없다는 걸 알았다고 고백하는데 얼마만에 찾아 온 행복이련가, 악마가 시샘하여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앗아가지나 말아야 할텐데.... 지금까지 해리 보슈의 여정을 빠짐없이 따라왔던 독자라면 정말 잊지못할 엔딩이 될 것이다.

 

그는 미소짓고 마침내 구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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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립트 스토리콜렉터 15
아르노 슈트로벨 지음, 박계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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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잔인하고 엽기적이다는 감상은 스릴러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뗄려야 뗄수도 없는 필요불가결한 선택이자 취향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사이코 스릴러를 표방하는 독일작가 아르노 슈트로벨 <스트립트>도 이를 간과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 취합하여 대중들의 눈을 붙드는데 처음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뜻 보았을 때엔 돼지가죽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피부였던 그 물건이 여대생 니나에게소포로 배달되면서 자극적인 서두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용의자로 의심되는 몇몇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 범인이 누구냐와 엽기적인 산물에 단순한 촛점이 모아지는 것이기에 범인의 살인 행위에 대한 과정 묘사나 피해여성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겪게되는 피폐한 정신세계와 살아 남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심리묘사, 탈출시도 등 새장과 새장밖에서 벌어지는 진실게임이 더 생생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상당하다.

 

그리고 형사 에르트만마티센이라는 캐릭터 또한 같은 독일작가인 넬레 노이하우스피아보덴슈타인을 연상시키는 면도 적잫은데 단순히 혼성 파트너라는 점 말고도 신경쇠약에 걸린 정서불안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 있어서도 매우 닮아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인간적인 매력도 찾을 수 없거니와 어설픈 투톱 시스템의 부조화, 상사 슈토어만에르트만과의 갈등까지 모든 것이 평면적이고 납작하다는 것이다. 특히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불협화음이 발생하게 된 배경 자체가 과거에 있었던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삼고 있는데 그 같은 설정도 들여다보면 그다지 공감도 안되고 가당치 않다는 생각도 든다. 거의 초보자급 발상이 아닌가 싶기까지 한데 좀 더 뭐랄까? 과감하게 파고들어 제대로 된 파격과 광기, 집착을 정면에서 묘사했어야 했다.

 

단지 범인이 저지른 엽기적인 행위를 다른 누군가가 이를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유효기간이 짧은 충격이 스쳐지나가면 그때부터 지지부진한 흐름이 끝까지 이어나갈 뿐이지. 소설 전반을 완전 장악하는데엔 처절하게 실패했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사건해결 후에도 개운하지가 않고 허전하며 결말에서 보여주는 정의구현 식 마무리는 작가의 치기가 정점에 다다른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냥 경박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기도 한다. 표지로 혹해서 실망으로 끝나버린 이 작품, 왠만해선 독일 스릴러는 대체로 내 정서와 거리가 멀다는 확인만 다진 계기가 되었다. 참을 수 없는 지루함!!! 심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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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매미 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7
하무로 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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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무사로서 당연한 각오일지도 모르지만, 싸움터에서 창칼을 휘두르고 있을 때라면 또 몰라도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일 것 같다. 그러나 슈코쿠에게는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터럭만큼도 없다. (P.26)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합니다. 오십 년 뒤, 백 년 뒤에는 수명이 다하지요.

나는 그 기한이 삼년 뒤로 정해진 것일 뿐.

하면 남은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P.27) 

 

모든 싸움은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된다. 그리고 사람 간의 인연도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가로 나카네 헤이에몬의 휘하로 일하던 단노 쇼자부로는 우연히 성내 집무실에서 우발적인 시비에 휘말려 싸움을 벌여 힐복에 처할 뻔 했다가 조건부 사면을 받고 목숨을부지하게 된다. 대신 무카이야마촌에 유폐 중인 도다 슈코쿠를 은밀히 감시하라는 명을 받고 그를 만난다. 일찍이 군 부교와 요닌을 지내면서 문무를 겸하고 농민들을 가족같이 대해 심복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 바로 도다 슈코쿠였다. 하지만 여인과 밀통하고 시동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실각해 7년 동안 유폐중이었다.

 

그 같은 죄목들은 도다 슈코쿠로서는 억울한 누명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조용히 가족들과 칩거 중이었다. 원래는 즉시 할복하여야 했으나 미우라 가보의 편찬을 수행중이라 집행을 유예받고 있었는데 3년간의 기한을 부여받아 일을 마치는 10년 째 되는 해에 할복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가보의 편찬을 도우라는 명목하에 그를 감시해야하는 단노 쇼자부로는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날은 점점 다가오고....

 

개인적으로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난세를 살아간 과거 속의 인물들의 치열한 삶들은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에 대한 반면교사라는 소중한 교훈이자 간접적 체험의 장이 되기에 언제나 소재를 불문하고 동경과 선망의 장르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일본 역사소설들은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 가장 재미도 있으면서 접할 기회도 많은데 전국시대가 아니더라도 영주와 무사는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은 단골소재들이다.

 

그렇다면 할복은 어떠한가? 무사다운 명예로운 자살이라는 사상이 아직도 현대를 살고있는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과거의 제도이다. 오죽하면 할복을 "복부에는 인간의 영혼과 애정이 깃들어있다. 용사의 배를 갈라 무사도를 지킨다."고 정의하고 있을 정도니 비겁한 삶을 거부한 용기나 무사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방편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도다 슈코쿠의 입장에서는 도망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목숨이 아까워 밤잠을 설쳐야할 정도로 괴롭다. 그렇지만 유한적 삶을 소중히 여겨 의미있게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살아갈 뿐이다. 다만 그도 최후의 순간은 어떠한 심정일지 미리 짐작하지 못하는 것 말고는 가보편찬에 세월을 보내고 있어 3년 후는 기약이 없다.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갈 날이 줄어들며 피말리는 세월 속에서 다가올 죽음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강직한 올곧음 때문에 단노 쇼자부로는 이윽고 도다 쇼코쿠의 인품에 점차 감화된다. 그러면서 이 남자가 감내해야 했던 사건들의 진실엔 그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간적인 면모가 담겨있던지 나 또한 끊임없이 매료되었다가 때로는 안타까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또한 어느 시대를 살더라도 약육강식의 논리는 가진 자의 논리대로 밀어붙여 가지지 못한 자의 눈과 귀를 막고 수탈에 또 수탈을 가할 뿐이기에 기득권의 유지에 혈안이 되어 허울좋고 위선적인 체통은 무엇이 효율이고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지를 외면한다. 그 점에서 전국통일이 이루어진 연후의 영주들이 농민들로부터 연공을 징수하면서 다져놓은 계급구조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경계선에 있다는 것도 도다 슈코쿠의 말 못할 처지를 지켜보는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는 현실에 낙담해서 고개 돌려 농민들의 피폐함을 결코 외면하지 않기에 시간만 허락했다면 갈등을 조정하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공감대 형성에 앞장 섰겠지만 운명의 여신이 그의 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아들 녀석의 친구인 아카기의 억울한 죽음을 항변하려는 아버지로서의 기개와 곁에서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가족들, 특히 아들 이쿠타로의 시선은 애잔하기 그지없어서 마음 속에 이루어질 수없는 미련이 계속 맴돈다. 때때로 세상의 비겁함을 비집어 들어가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불꽃같은 남자 도다 슈코쿠야말로 진정한 호인이자 무사도정신의 아이콘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앞에 다가온 죽음을 앞두고도 여름 한 철에 치열하게 노래하며 그 수명을 다할 저녁매미처럼 가을을 모른 채 하루살이 삶을 살아가는 이 남자를 보며 새삼 산다는 것에 우리 모두는 감사해야 한다. 애달픈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주변의 연들을 이어 살아가는데 힘을 주고 싶다는 그 방식을 기억하자. 진정한 "의"란 무엇인가를 이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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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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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호러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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