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
제이콥 톰스키 지음, 이현주 옮김 / 중앙M&B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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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살면서 호텔에 숙박할 기회가 얼마나 될까? 손에 꼽을 정도라서 집을 놔두고 출장 등을 이유로 다른 곳에서 숙박을 한다면 모텔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비용이 저렴하니까. 그래서 10년차 호텔리어이자 저자인 제이콥 톰스키가 자전적 경험담을 토대로 써내려간 <나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를, 친숙하진 않지만 한번쯤 관심 기울여 볼만한 호텔이라는 특정장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읽어보는 일도 괜찮을 법하다. 호텔은 겉보기에 별로 특별한 일들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곳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집결한 또 하나의 사회공동체이다.   

 

 

적나라한 고발에서 때론 낯 뜨겁기도 하고 솔직하기도 하면서 고객의 입장에서 모르고 지나쳤던 유용한 팁도 제시해준다. 호텔 직원들도 서비스업에 종사하지만 그들도 어차피 감정의 기복이 살아있어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저질러지는 각종 상술들, 자칭 VIP 고객이라 불리는 손님들의 추태, 불건전한 행각 등은 고객의 이름으로 욕망을 배출시키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대접받기를 원하는 이중적 심리를 날카롭게 꼬집는 모습에서 특정한 직종에서 살아남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저자 제이콥 톰스키는 앞서 언급했듯이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호텔의 10년 차 베테랑 호텔리어이다. 대학 졸업 후 직업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 대리주차 요원이 된 것을 계기로 호텔이라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된다. 그는 탁월한 서비스 능력으로 승승장구해서 뉴욕 맨해튼의 특급 호텔까지 진출하게 되지만 그와 호텔업계는 사실상 궁합이 맞질 않았나 보다. 호텔에서 벌어지는 각종 추잡스러운 일들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두고 나와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를 발칙하게 고발하는 책을 썼고 이것이 히트를 쳤던 셈이다. 

 

 

발칙하지만 괘씸하지 않은 이 책은 고발과 애증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세상은 요구하는 만큼 수용해줘야 한다는 물물교환의 법칙이 통용되어야만 하고 사람과 사람은 결국 정과 약간의 배려만 더해진다면 더 이상 눈을 부릅뜨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가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갑질 따윈 하지 말라고 말이다. 서비스업을 무시하지 말자는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는 “호텔손님에게 알려주면 안 되지만 알려주기로 결심한 몇가지 팁”은 주목할 만하다. 기억해두었다가 실전에 써먹으면 유용하면서 그 유머스러함에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걸리게 된다. 

 

 

“신용카드가 승인이 안 난다고요? 그럴 리 없어요. 다시 해 보세요”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구겨진 지폐도. 고장 난 자판기도 아니니 즉시 은행에 카드신고를 할 것. 처음부터 예비카드를 복수 지참했어야 하지 않을까? 지당한 말씀이다. “당신을 위한 직원을 찾으라.”는 어떨까? 모든 호텔직원이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차별을 불러오려면 팁이 가진 막대사탕을 활용하자. 당연히 뇌물이 아니라 그에게 좀 더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원한다는 인식을 전환시켜주는 지혜이다. 인색하지 말고 즉시즉시 건네주면서 맘에 들었다면 직원의 이름이나 인상착의를 기억 내지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소환해낼 수 있는 요령이 중요하다. 인맥은 비즈니스에만 해당되지 않으니 과감히 쌓아두는 것이 이 세계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될 테니까 허둥대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대비하자는 말이다. 결국 돈과 인맥이라는 이름의 친분은 세상만사 형통되는 만국공용어란 사실을 잊지는 말자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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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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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서 스릴러 신간이 나온다고 했을 때, 그것도 대박작이라는 풍문이 조금씩 들려왔을 때, 아직 펄스에서 출간된 작품을 아직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누구의 작품일지 내심 궁금했었다. 그런데 영국 작가 모 헤이더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럼 2012년 에드거상의 영예를 안겨다 준 (Gone)”이 나오는 건가? 했다. “(Gone)”이 제목에 들어간 다른 작품에 만족한 적 있어 그런 줄 알았고 그런 소문도 좀 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출간된 작품은 난징의 악마(The Devil Of Nanking)였는데 (Gone)”이 잭 캐프리 시리즈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걸 감안하면 2편도 국내출간 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건너뛸 일은 없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난징의 악마가 스탠드얼론이라고 해서 격이 떨어지거나 유명세에 뒤쳐질 우려는 전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또한 진정한 화제작이었고 왜 지금까지 한국에 선을 보이지 않았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에드거상을 수상하며 기쁨의 표정을 짓고 있는 모 헤이더의 모습이 묘한 매력도 풍기는 것도 같은데 실제 그녀의 이력은 실로 다양하면서도 특이하다. 교육행정가에서부터 도쿄에서의 호스티스 생활까지 도무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직업군을 두루두루 거쳤는데 역시 눈에 뜨이는 점은 호스티스 경력일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의 여주인공이 같은 영국 여성에다 도쿄로 건너와 호스티스로 일을 하고 있으니 자신의 경험담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영국 출신의 20대 여성 그레이는 우연히 1937년 중국 난징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부터 그것의 진실규명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그녀를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낸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 취급을 해버린다. 그녀는 난징대학살의 진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솔직히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벽안의 여성이 그 문제를 조사하고 밝혀낸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상자 수도 정확한 집계 없이 들쭉날쭉하고 날조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과 서슬어린 협박 앞에서 당당하게 그 시절의 일들을 공표하라고 하는 것은 감히 목숨을 내걸라고 떠미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레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동경대의 중국인 교수 스충밍을 예고 없이 찾아와 1937중국 난징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잔학한 행위를 촬영한 16미리 필름이 보고 싶다고 매달린다. 스충밍 교수는 필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거절하지만 끈덕지게 달라붙는 그녀의 집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든 교수는 필름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어떤 대가를 요구한다. 체재비를 벌기 위해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의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게 된 그레이에게 손님 중에서 야쿠자 조직인 후유키파 수장 후유키에 접근해 그가 복용하는 어떤 약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했던 것.

 

 

 

그레이가 후유키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을 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전개되던 그레이의 1인칭 시점에서 스충밍 교수의 19371인칭 시점으로 넘어가면서 화자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두렵고 소름끼치는 그날의 비극과 야만, 그리고 폭발하는 광기 속에서 무지몽매한 국가와 개인의 범죄행위를 지켜보면서 아직 과거는 종결되지 않고 무덤 속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칠뿐이라는 점도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한다. 누가 그 나라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느냐며 말이다.

 

 

 

 

그런 생각을 안고 1937년 중국 난징을 회상해본다. 당시 젊었던 스충밍 교수는 미신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아내가 곧 아이를 출산할 순간에 임박해 있었다. 그 와중에 국민당 장개석 총통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믿음으로 일본군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은 수호할 것이라고 오판했다다가 무기력하게 패퇴하는 국민당의 군대 대신 새로이 입성하게 된 일본군에게 다시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설마 일본군이 중국국민들을 함부로 대할까? 아닐 것이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할 것이라 믿었지만 결국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다. 

 

 

 

 

일본군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악귀들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민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과 고문 등 잔학한 살육을 저지른다. 한 번 발동 걸린 이들은 피 맛에 들려 무차별적인 살인을 마치 게임을 하듯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탱크로 머리를 뭉개고 목을 베고 강간 후 살인하면서 도시는 완전히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시체는 거대한 산을 이루고 흘러넘치는 피는 온 세상을 오직 붉은 색 하나로만 물들인다. 

 

 

 

 

다시 현재의 도쿄. 그레이는 후유키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실로 위험천만한 접근을 계속 시도한다. 후유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곁을 지키는 일본인 여 간호사의 살기도 점점 위험수위를 높여간다. 남자같이 억센 체격의 간호사는 실제 휴우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을 차례차례 제거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살인마였다. 이제 그레이의 의도를 간파한 간호사를 위시한 후유키 일파의 본격적인 추적과 그레이의 사생결단 도주가 목조건물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숨바꼭질하게 되면서 스릴감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턱 밑까지 무시무시한 살의를 내비치면서 잠시도 숨을 멈출 수 없이 연속된 서스펜스의 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물리적 경계가 마침내 진실이라는 실체에 도달하게 되면 정말 속이 뒤집히는 순간이 온다.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당시 난징의 악마 또는 난징의 염라대왕이라고 불리던 자가 누구인지, 당시 소문으로 떠돌던 그 문제적 물건은 단순한 야만과 광기를 넘어서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상에 의해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끔찍한 산물이었다.

 

 

 

그 소름끼치는 사태는 망각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마치 전통을 계승하는 거룩한 행위나 되는 것처럼 저질러왔던 그 만행은 실로 역겨워 토가 나올 지경이다. 도저히 떨쳐내지 못 할 슬픔과 한을 평생을 업보처럼 지고 왔을 스충밍 교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으려 했고 처절한 오욕을 견뎌내야만 했던 그의 믿지 못할 사연들은 이 작품이 전 세계 독자들의 찬사 속에서도 정작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만큼은 금서가 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유를 제시하기 때문에 참혹함에 수도 없이 몸서리치게 된다.

 

 

 

현재의 일본인 후손들은 과거 자신의 선대들이 저지른 이 같은 만행을 역사왜곡과 은폐라는 눈가림에 속고 있고 양심에 가책을 물어볼 어떠한 기회도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우경화를 통해 다시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총리는 중국과의 센가쿠 열도 분쟁과 관련해서 일본의 힘을 보여주겠노라고 자신 있게 다짐하고 있는데 대표적 우익 인사 중 한 명이었던 할아버지 같은 범죄자의 피가 흐르는 것을 어떻게 막아보고자 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살고 싶었던 한줄기 소망을 무참히 총칼로 짓밟았던 그들에게 반성 없는 우호와 선린은 한낱 영혼 없는 메아리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렇기에 난징은 우리의 역사가 아니지만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었던 우리들이라면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은 단순히 장르소설 독자에 한정짓지 말고 더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특별히 기억에 남을 작품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된다. 그래서 난징의 악마를 기습 출간한 펄스의 혜안에 깊이 감탄하면서 후속작 아파치는 물론이요 모 헤이더의 나머지 작품들도 신속히 공개하여 이 목타는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암튼 최고다 난징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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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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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런 인과응보가 있어서라는 식의

설명 따윈 전혀 필요 없다.

괴이한 일은 어디까지나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으로서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P.18>

 

 

북 로도에서 나온 미쓰다 신조의 작품으론 두 번째인 이 작품은 공포소설 편집자에서 작가로 전업한 가 시간과 공간이 다른 두 사건을 관찰하는 시점인 액자소설 구성을 하고 있어 독특한 호러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건 모두에 등장한 엿보는 소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내기에 앞선 이야기들이 으스스합니다. 실제 밤에 잠들 때 마다 누군가가 창문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지, 잠들어 있는 동안 천장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특정 존재가 있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으로 오싹해졌던 경험들이 꽤 되거든요.

 

 

주인공 는 공포 체험담을 채집하여 이를 소설 소재로 활용해왔는데 우연히 재야민속학자의 노트를 손에 넣게 됩니다. 50년 전 대학 시절에 실제 체험하였던 수기가 들어 있는데 는 편집자 시절에 채집했던 공포 체험담이 생각나 두 체험담 사이에 놓인 상관관계에 대해 놀라면서 불안에 떨게 됩니다.

 

 

<엿보는 저택의 괴이>

 

도쿠라 시게루는 대학 4학년 여름방학 중 산간마을에 있는 대여 별장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관리인으로부터 낯선 순례자를 직접 상대말고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지시를 받습니다.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한명이 딸랑거리는 방울소리를 듣고서는 어린 소녀와 어머니와 마주치게 되어 홀린 듯 따라갔다가 정체불명의 장소에 다녀옵니다. “시게루일행은 호기심에 해당 장소를 찾아 나섰다가 어느 마을에서 괴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리고 실제로 찾아온 죽음.

 

<종말 저택의 흉사>

 

지금으로부터 50년전 민속학자 아이자와는 자살한 대학 친구 사야오토시에게서 노조키메라는 존재가 집안에 눌러붙어 있다는 애기를 들은 후 직접 그의 본가를 찾아갑니다. 본가 종말 저택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의 장례식 행렬과 맞닥뜨리고 장례식 행렬을 뒤따르는 소녀를 발견합니다. 공포와 기분 나쁜 예감에다 낯선 이방인을 경원시하는 마을 사람들.

 

 

확실히 괴담, 괴이는 일부러 갈구하며 소환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노조키메는 확증이나 증거는 없지만 그 책임소재에 관해선 불편하고 꺼림칙하지만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해도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엿보기 때문에 짊어져야할 업보인 듯합니다. 엿보는 여자의 뜻을 가진 노조키메는 조금의 틈만 있어도 엿보기 때문에 관이라는 완벽한 밀실형태가 아닌 다음에야 피할 도리가 없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데 집단의식의 덩어리가 숨어서 훔쳐보는 것과 맞물려 피해자는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네요. 그것들이 실제 증언과 수기라는 형식이기에 호러와 미스터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그 경계에서 뒤늦게 합리적 해석을 시도하여도 이미 마음속에 드리워진 두려움의 실체는 완전히 걷어내진 못합니다.

 

 

여전히 안개정국인 셈이지요. 그래서 비합리적인 호러의 매력은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호러와 미스터리를 적절하게 안분해서 논리적으로 푼다는 일이 어려운 작업인 동시에 그 자체만으로도 미쓰다 신조는 즐길 이유가 충분하며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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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8
도쿠나가 케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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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순정을 돌려주세요!"

"뭐? 나한테 줬웠어?"​

<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제목도 참 긴데다 무지 요상합니다. 무슨 내용일지 도저히 감도 안 잡힌 상태에서도 비채에서 발간된 일본 청춘소설이니까 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일단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까 제목이 말하는 건 추상적인 의미라기 보다 소설 속 주인공들 실제 캐릭터를 일목요연하게 압축 정리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여기서 소녀는 말이죠. 올해 스물다섯 먹은 아야카라는 아가씨예요. 낮에는 택배회사 콜센터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순정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콜센터에서 일하기로 한 것은 잔업이 없기 때문에 만화가를 꿈꾸는 자신의 진로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던 것이지만 상담원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죠. 조금만 전활 늦게 받거나 택배 도착이 지연된다든지 하는 온갖 이유들로 고객들의 불만과 항의가 폭주할 때 마다 진땀 흘릴 정도로 사과하고 달래주어야만 하니까요. 

 

연애가 주제인 순정만화의 경우는 특히 작가가 전심전력을 다해

자신의 번뇌를 원고에 쏟아 붓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상형의 남자와 이런 식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키스신의 얼굴 각도는 이렇게.

허리를 감싼 팔의 강도는 이 정도까지 등

 

수많은 망상을 종이 위에 구현한다. <P.46> 

 

그래도 오로지 순정만화가가 되겠다는 일념만으로 하루하루 벅차게 버텨나가지만 성공한다는 보장 없이 모든 것이 불투명할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중년 아저씨랑 길에서 우연히 부딪치면서 출판사에서 투고할 원고를 그 남자가 넌지시 훔쳐보지 않았을까 염려하게 되는데요.   결정적으로 그 사람이 콜센터 소장 대리로 부임해버리면서 더욱 안절부절 못하게 되죠. 순정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비밀로 감추어두었기에 마치 성인비디오를 몰래 보다 들킨 남자의 심정이었던 겁니다. 무엇인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있지만 자신 있게 커밍아웃 못한 채 이중생활 할 정도로 자신도 없고 남들의 인식도 부끄러웠던 탓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신을 스파이라고 말하는 엉뚱한 남자입니다. 스파이 활동을 하는 진짜 이유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고 그녀와 이 남자는 은밀한 이중생활을 통해서 불안한 미래에 개념치 않으려 하는 당찬 발걸음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리하여 항상 덤벙대고 실수를 저지르며 사랑이라는 착각에 빠졌다가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는 동안 아야카는 짧은 기간 동안 스파이로 왔다가 사라진 그 남자를 통해 희망과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동기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문체는 상큼발랄한데다 에피소드는 무겁지 않게 일상 미스터리가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어 가독성이 무척 좋습니다. 특히 순정만화의 본질과 직업관을 사못 진지하게 설득하고 있어 유익(?)했고요마지막에는 보너스로 아야카가 단기집중연재 공모전 응모 작품으로 쓴 <내가 사랑한 스파이>라는 순정소설 단편이 실려 있으니 마지막까지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그러보니 007 시리즈 제목인데요 ㅋㅋㅋ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학비를 부담할 형편이 안 되는 한 여고생이 학교 측의 사주를 받아 라이벌 학교에 전학생으로 위장 전입하여 운영 상 기밀을 빼내려 스파이 활동을 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로맨스의 흥행공식인 물과 불 같이 상반된 성격의 남녀가 티격태격하다 골인하게 된다는 오글거리는 설정을 참 진지하게 코믹하게 잘 그려낸 수작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자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항상 멋진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아간다는 본능이 있군요. 

 

때문에 잠자던 소녀의 본능이 깨어나거나 그런 소녀의 본능을 달콤하게 훔쳐보게 되거나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야카의 청춘과 사카키 쓰카사<화과자의 안>의 여주 안짱의 청춘은 놀랍도록 닮은꼴이라 같이 웃다가도 절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샘솟네요. 그래서 <화과자의 안>을 재미나게 읽으셨다면 이 소설도 같이 읽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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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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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도조 겐야 시리즈 출발을 알리는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으로 시작해서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가 귀향한 기분인데 후속작을 읽으면서도 그 시작은 어땠을지 항상 궁금하긴 했었지요. 민속학적 괴담에 본격추리를 접목시키는 개성 있는 작풍답게 어느 산골마을의 가가치가 무신당에서 벌어지는 기도와 축귀는 말 그대로 오싹 하군요.사기리라는 이름이 도돌이표처럼 대물림되는 이 가문의 기괴함도 한 몫 하지만 할머니와 손녀가 무녀와 혼령받이로 조를 짜서 의식을 진행하던 차에 소녀가 마룻바닥에 온몸을 구불구불 기어오르던 모습은 충분히 공포스럽습니다.

 

 

그렇게 뜸들이지 않고 바로 성격을 드러내는 서막을 잠시 지나 공간적 배경을 돌아보자면 외지와 고립된 첩첩산중의 이 마을은 가가치가가미구시가라는 두 가문이 양립하는 곳입니다. 각각 윗집큰 산집으로 불리는 이곳에 방랑 환상소설가 도조 겐야가 괴담을 수집하러 찾아오는데요그냥 돌려보내면 섭할 거라 생각했던지 괴이한 죽음이 잇따르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염매때문이라고 수근 대면서 공포와 기이함이 마을을 뒤덮게 됩니다.

 

여기서 '염매'의 의미는

가위 누르는 귀신

짚으로 만든 인형(제웅)을 매개로 삼는 주술의 일종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려고 귀신에게 빌거나 방술을 쓰는 행위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자 그 어떤 마물보다 가장 꺼림칙한 존재

 

이 책에선 3번으로 정의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만 무녀, 넘어서는 안 될 곳을 가서 어떤 체험을 한 소년, 죽은 언니가 돌아왔다고 믿는 소녀, 실종된 아이들까지 불가해한 상황들은 괴사에 얽힌 수수께끼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야 할지,도조 겐야에게 주어진 과제가 됩니다. 따라서 이때의 경험과 문제 해결능력은 이후 가는 곳 마다 따라다니는 괴이에 대한 해결사 경력의 초석이 되는 것이겠지요. 아마도 라이센스를 그에게 발급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초현실적인 공포가 미스터리보다 더 강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지만 결국 중반까지 뿌려놓은 음습하고 사위스러운 기운에 가려져 있다가 치밀한 논리에 의하여 회수하고 나면 그 길이 비로소 눈에 보인다는 방식은 여전히 빛나는 독창적 아이디어입니다. 그래서 이 산골마을의 인습과 민간신앙, 그것들에 기반하여 신권을 휘두르는 무녀에 관한 설정까지 포함한 민속학적 바탕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설정이었음을 인상적으로 입증합니다. 그렇게 출발은 좀 투박했지만 후속작에서 더 발전해나간 상상력을 이미 확인했으니까 이만하면 읽는 쾌감은 있었던 셈이네요. 전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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