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예수
고진하 지음 / 비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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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부터가 어떤 선입견을 심어줄 여지가 농후하기 때문에 선뜻 책을 고르지 못할 때가 분명 있을 겁니다. 그것이 어느 종교를 가리킬 때, 그 종교적 색채에 따라 선택의 폭이 달라질 테죠. 특정종교에 심취해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신자유무를 떠나 를 가장 먼저 앞장세우고 있다 판단은 좀 달라지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다 읽고 났을 때 마지막으로 곁을 지키는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겠어요.

 

 

지금은 소설에 치중된 독서지만 학창시절 어설프게나마 시집을 즐겨 읽었던 적도 있었는데 서점에 가면 적은 분량의 시집은 항상 휴대하기 편했고 를 읽는다는 행위자체에서 마치 나 자신이 인텔리가 된 것 같은 착각도 좀 했었지 않나 싶군요. 그렇다면 이 시집을 넓게 보자면 기독교적 색채를 넘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정서적으로 공감될만한 따뜻한 작품들이 30여 편 이상 실려 있다고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그 들에 대한 고진하님의 에세이 형태의 해설도 음미하기에 참 좋은데다 누군가의 낭송으로 눈 감아 상상의 나래, 맘껏 펼쳐보고 싶습니다

 

 

여기 실려 있는 동서양의 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품으로는 김지하님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손꼽아 봅니다.

 

 

(중략)

넓은 세상 드넓은 우주

사람 짐승 풀벌레

흙 물 공기 바람 태양과 달과 별이

다 함께 지어놓은 밥

 

아침저녁

밥그릇 앞에

모든 님 내게 오신다 하소서

 

손님 오시거든

마루 끝에서 문간까지

마음에 능라 비단도

널찍이 펼치소서

 

 

세상만물.. 심지어 미물에게까지 이라는 존칭으로 깍듯이 받들어 모시며 무한대의 애정과 관심 그리고 귀천을 따지지 않는 넉넉한 마음씨로 손님을 맞으라고 합니다. 누구든 귀하신 몸, 따뜻한 밥 한술 드시고 가실 수 있게 마음의 비단을 미리 깔아 두었으니 걱정 마시라며 다독이는 듯하지 않나요? 흐르는 강물에 내 몸을 맡겨서 오욕칠정에 찌든 육신을 먼저 정화 하는 일부터 준비해야만 합니다. “김지하님은 그렇게 무심했던 주위를 둘러보아 우리 자신과 만나고 가까워지는 일 또한 소중한 힘이라는 메시지도 잊지않아요. 그래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도 영롱하고 상큼한 였습니다.

 

 

 

이쯤해서 문득 생각나는 만화가 있습니다. 중학생일 때 어느 여성지에서 우연히 본 4컷 만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줄거리는 대충 이래요. 어느 올드미스가 오빠, 제발 나 시집좀 보내줘.”라며 시정하자 오빠는 쿨하게 그래.”라고 답했습니다. 며칠 후 우체부 아저씨가 찾아와 소포를 그녀에게 전해줍니다. 개봉해 보았더니 시집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순간 일그러진 올드미스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나는데 언어유희 식 개그코드와 잘 맞았던지 박장대소했었지요. 여기에 영향을 받은 저는 아직도 남아 버티고 선 주위 올드미스님들께 책임지고 시집보내드릴게요.”라고 해놓고 이 시집을 택배로 부쳐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기는 합니다. 읽으면 가고 싶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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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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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아슬아슬한 인생, 역사 속으로 몸을 던지는 위험을 택한 인생" <515>

 

 

러시아의 작가이자 정치인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삶을 전기형식으로 써내려간 엠마뉘엘 카레르<리모노프>는 듣던 대로 문학적 다큐멘터리라 일컬을만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80년대 초반 그를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당시 리모노프<러시아 시인은 덩치 큰 깜둥이를 좋아해>라는 거칠고 도발적인 제목의 소설로 성공이란 열매를 맛보던 시절이었다는군요.

 

 

 1942년 소련 스탈린 정권시절 비밀정보기관 요원의 아들로 태어난 리모노프는 길바닥에서 뒹굴면서 난잡한 섹스와 무차별적 폭음, 싸움과 절도 등 어느 것 하나 얌전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질풍노도의 청춘기를 보냈습니다. 경찰서도 밥 먹듯이 들락날락 하던 그에게서 흡사 분노조절 장애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그는 거칠 것 없이 터지던 활화산이자 용기백배한 성품에 불도저 같은 추진력까지 겸비한 거대한 산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장대하고 파란만장한 삶이란 이런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모스크바와 뉴욕, 파리 등을 거치며 전위문학가로서의 독특한 길을 걸었던 작가이기도 하죠. 세르비아에서는 내전에 참전해 악명을 떨치기도 하다가 귀국해서는 민족볼세비키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했던 것입니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히 정의내리 힘든 리모노프의 행보는 이윽고 지저분한 외모에(특히 트레이드마크 같은 턱수염) 록 그룹의 리더보컬이거나 종교지도자 같은 마력으로 대중들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 선동정치 공작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힘으로 세상에 깡으로 맞서겠노라 다짐했던 그입니다.

    

 

하지만 마냥 순탄했던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정치탄압인지는 몰라도 무기 밀매와 카자흐스탄 쿠데타기도 등의 명목으로 체포, 구금되어 감방생활도 좀 합니다. 현재는 푸틴에 맞서는 야권 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드라마틱하지 않습니까? 글재주가 없어 이 정도밖에 설명할 순 없는 점이 안타까울 정도로 상 남자의 표상인 것 같아요.

 

 

대화체라고는 사실상 찾아볼 길 없는 건조한 문체를 통하여 작가가 이 남자에 대하여 말하려했던 의도나 태도라고 할까, 일단 매력을 거부하지 않은 채 인생 그대로의 위험을 날 것대로 연대기적 서술을 하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한 인물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자제하려 애쓰는 게 보입니다. 일단 만나보면 알 것이다, 인생역정을 느긋하게 따라가다 보면 관점이라는 녀석은 다양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을 담담하지만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슬아슬한 모험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을까요? 아님 사악한 악당으로 변모시켰을까요? 전 아직도 그를 판단할 능력을 회복 못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과연 그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지... 러시아적 남자, 러시아적 삶이 궁금하시다면 기꺼이 책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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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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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는 여덟 살 소년입니다.

부모님은 늘 언성을 높여가며 싸워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이라 매번 전쟁입니다. 두 분을 어떡하던지 화해시켜 드리고 싶지만 어린 테오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때론 고등학생인 마틸다누나에게 의논해보지만 관심 밖이라는 차디찬 반응만 돌아올 뿐이죠. 이제 테오에게 하나의 바람이 생겼어요. 바로 필승불패의 전략가 나폴레옹을 만나는 것이랍니다. 가족의 화목이야말로 지상과제이자 기필코 승리해야할 전투가 되면서 나폴레옹이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테오가 바라보는 어른들은 늘 전투에서 패배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무던히도 많이 싸우지만 실제로 늘 지고 있어서 어쩌다 이긴다는 게 드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승리를 원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몫이란 거죠. 그러면서 자신만만해하는 허풍쟁이들. 그런데 나폴레옹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는데... 절망합니다. 왜냐하면 죽었다니까요.

그래도 그를 만나려면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른들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요. 하지만 어른들뿐만 아니라 누나까지 모두가 어린 소년의 질문에 처음엔 건성으로 흘려들으니까 아이는 더욱 혼란스럽게 되지요.

 

 

처음부터 집중해서 성심껏 대답하는 척이라도 했다면 테오가 죽음에 대한 고민을 덜 심각 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결국엔 무심하면서도 불명확한 대답들만 마지못해 내놓는데 미래에 어떤 삶을 살건 지 미리 준비해라.”, “나쁜 욕하면 지옥에 가는 거야.”, “십계명이 뭔지 궁금하면 성경책을 읽어봐.”, “네가 내 손자라는 건 말도 안 돼.”, “사람은 죽으면 다시 환생하기 때문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따위의.

 

 

더 이상 이런 어른들한테 답을 구해봤자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하게 된 테오는 죽음을 준비하죠. 죽을 날짜와 장소와 방법까지...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테오가 던지는 질문들이 대단히 거창한 것이 아니라 천진난만하면서도 솔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상천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른들이 들려줄 인생의 해답은 고루하고 뻔할 뻔자가 될 처지지요. 그래서 죽음만큼은 무겁지만 테오의 시각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내내 반짝반짝하며 힘차게 전진합니다. 어른들이었다면 필시 분위기가 달라졌을 테지요. 하지만 죽음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무엇인가 보이지 않은 희망이랄까, 빛이 저 너머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이제 나폴레옹을 죽어 만남으로서 가족의 화목을 되찾겠단 여덟 살 아이의 소망은 애틋하면서 눈부신 성장기가 되어 진정한 승리를 잃어버린 어른들의 경직된 마음에 깊고 아름다운 울림을 전합니다. 그렇게 고통 속의 여정이 마지막에 와서 감동적인 우화로 막을 내릴 때 "테오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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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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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게 되어도

그딴 건 어차피 단순한 허물일 뿐이야. 안은 텅텅 비었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녀석은 그런 거에 매달리지 말고

 속이 꽉 찬 아이랑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은데.” <303쪽 중에서>

 

 

<테두리 없는 거울>은 두 번째로 만나는 츠지무라 미즈키의 단편입니다.

 ‘나오키상수상작인 <열쇠 없는 꿈을 꾸다>에서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를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했었는데 이번에 나온 이 단편집은 장르성격이 노스탤직 호러라고 하기에 군말 없이 선택하게 되었어요. 사실 노스탤직이란 의미가 옛것에 대한 향수라고 했을 때, 다섯 편의 단편들은 누구나 어렸을 적 들어봤음직한 괴담들이 줄지어 나오는데요, 분명 공포를 맛보리라 하고 들어왔는데 페이지가 줄어들면서 어랏하는 순간 전혀 다른 정서로 다가옵니다. 슬프고 애처로운 느낌들이 뒷맛으로 남는 것 같아요.

 

 

가령 계단의 하나코에서 아이카와선생이 과학실에 들어갔을 때 지사코양은 그대로 복도에 서 있다든지, “아빠, 시체가 있어요.”에서 집안에서 시체가 줄줄이 발견되는데도 의외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아버지와 마치 자원봉사 온 것 같은 남친을 보며 이 사람들 비현실적으로 용감한 게 아닌가 싶었죠. 게다가 시체매장 현장에서 여주와 남친은 화기애애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식의... 그런 쿨한 분위기엔 어떤 복선을 암시하고 있었던 거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무언가 있다고 운을 띄우는 전개에 빠져들면 참 묘하단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대박이었던 단편들은 따로 있습니다. 네 번째 단편인 테두리 없는 거울과 마지막 단편인 “8월의 천재지변입니다. “테두리 없는 거울은 일종의 연애주술 같은 것으로 간주해야 할 듯한데, 심야에 촛불을 켜두고 거울을 등지면 미래의 남편감이 비쳐진다는 식의, 좀 많이 들어본 단골괴담이라서 친숙하더라구요. 10대 시절에 이런 괴담을 들을 때면 실제로 이런 또래 여자아이들이 있기는 하는 걸까? 있다 치면 정해진 애정운을 믿으려드는 걔네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물론 재미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 시도가 무모해보였던 겁니다.

 

 

그래서 여학생인 가나코가 남학생 도야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거울 점에 일희일비하다가 그 끝이 어디를 향할 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었던 반전!!! “아비코 다케마루의 모 작품의 그 반전을 연상케 하는, 그러면서도 씁쓸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평범할 뻔 했던 이야기를 교묘하게 잘 뒤집어 놓은 솜씨가 인상적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단편은 왕따 소년과 그 소년을 감싸다 어느 새 같이 왕따로 내몰린 또 다른 소년에게 나타난 구세주같이 등장한 친구 유짱이야기입니다. “유짱은 친구가 없다며 놀림 받던 신지가 욱하는 마음에 가상의 친구로 만들어냈던 아이죠. 실제로 그런 친구가 있다고 우겨보지만 결국 거짓말로 들통 난 후에 더욱 심하게 괴롭힘을 당할 때 혜성같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신지교스케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는데 원래는 없었을 존재였기 때문에 어디서 온 누구인지? 그 정체가 수상쩍습니다.

 

 

중간에 오두막이던가, 셋이 같이 놀러 갔다가 유짱이 바닥에 떨어진 그 무엇을 바라보던 장면에서 혹시나 했었는데... 으음 결론은 의외로 현실적인 끝맺음이었어요. 그지만 유짱의 정체와 운명이랄까 하는 대목은 끝내 감정이 북받치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요. 시간이 지나 이젠 웬만큼 정리했지만 아직 코끝이 시큰하군요. 마음을 뒤흔들 줄 몰랐거든요 ㅠㅠㅠ

 

 

그렇게 10대 시절의 아픈 성장통을 겪는 동안 우정의 참 의미를 깨닫는 바람에 방황하지 않고 올곧게 나아가는 신지교스케”, 두 친구를 보면서 참 따뜻하고 훈훈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호러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우리가 미처 의식할 새도 없이 지나버린 그 시절에 대한 향수와 추억, 연민과 따뜻한 위로가 담겨있어 슬픔과 애처로움이 상쇄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서 읽었던 단편집보다 진일보한 정서로 예상치 못한 재미를 안겨준 츠지무라 미즈키의 얼굴이 평소보다 정감 있어 보입니다. 비록 미의 기준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이제 그녀의 장편은 또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면서 다음 작품으로 만날 날을 기약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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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1970
유하 원작, 이언 각색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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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감독 중에서는 이름만 믿고 보게 되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분이 유하감독님이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제 자신에게는 그렇습니다. 비록 감독님의 모든 작품들을 본 것은 아니지만 불신화된 결혼관을 기치로 내세운 <결혼은 미친 짓이다>, ‘거리 삼부작이라 불리는 <말죽거리 잔혹사><비열한 거리> 등은 모두 청춘이라는 원시성 속에서도 잘 살아보고픈 포부이자 다짐이 씁쓸하게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주먹이든 상관없이.

 

 

이제 거리 삼부작의 세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강남 1970>으로 감독님은 이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고자 돌아왔습니다. 지방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입장에선 70년대 강남개발이라는 역사에 대해서는 크게 잘 알지 못하지만 당시 강남은 대부분 과수원이자 뽕밭, 논 등으로 되어 있었다는 정도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인구과밀 해소, 북한의 위협 등이 실제 강남개발의 주된 이유의 하나일까요? 책속에서의 설명일 뿐, 또 다른 흑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해 봤었지요. 어쩌면 향수이자 욕망을 실현할 배출구 역할을 한 곳이 강남이었을 듯싶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김종대백용기는 고아이자 친형제처럼 지내는 관계로서 허름한 판잣집에 살며 넝마주이로 하루살이를 하는 청년들입니다. 그렇게 살다 갔을지도 모를 이 청년들은 우연히 조직폭력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면서 양아치에서 건달로 바뀌게 되지요. 물론 양아치나 건달이나 그 비열한 성격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정당대회 습격에 참여한 뒤로 헤어진 이들은 각자의 조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먹을 휘두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욕망의 아이콘화 되기 시작하는데 땅종대돈용기라는 캐릭터는 지향점이자 비극의 서막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지요.

 

각기 다른 조직이라는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다 보면 상층부에는 권력이라는 더 굵은 동아줄이 보입니다. 다시 더 높은 곳으로 타고 올라가 보지만 높으면 높을수록 추락의 위험은 더 커지게 되고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재생불능이라는 바닥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이미 권력에 줄을 대면서 건달은 필요에 따라 토사구팽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소신은 나중에 목줄을 죄게 될 암시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국가의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진행되었던 개발은 누군가의 돈줄을 채워줄 명분인 동시에 놀이터였던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라서 피땀 흘려 일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아 내 땅 마련해 보겠다는 소박한 소망은 가진 자들의 유착이 빚어낸 투기 바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 안에서도 배신과 배신이 얽히고설키면서 금력이 세상의 중심이 된 추악한 결과를 남깁니다. 그러면서 달이 차면 기울 듯 뱉어지는 종대용기의 만용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내내 짐작하게 되는 반면, 없이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강길수의 발버둥만이 못내 안타까웠구요.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은 있어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세상이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히 땅 투기 열풍을 넘어 당시 대한민국이란 일국 전반에 걸친 환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70년대는 모두가 못 살았고 모두가 잘 살아보겠다고 불끈 쥔 장기판입니다. 욕망의 화신이 되어 눈이 멀어버린 청춘들은 장기판의 이 되어 이용당하다 자신이 스러질 줄 모르고 아등바등하다 결국 촛불 앞에 타들어가는 불나방이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휘황찬란한 거리가 자태를 뽐내는 강남, 그 땅의 뒤안길에는 비열하고 슬픈 역사가 있었음을 <강남 1970>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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