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1 - 송지나 장편소설 신의 1
송지나 지음 / 비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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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그분이 떠나시는 날, 내손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그 웃음을 지키기 위해 내가 살아야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원작소설을 일부러 찾아본 적이 있는지? 암만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나의 경우에는 확실히 없다는 것. 두 번씩이나 동일한 작품을 형태를 달리하여 비교할 정도로 너그러움이 없기에 대개 한 번의 감상이면 족하다. 드라마 "신의"만 해도 그렇다. 이미 종결된 이 드라마에 방영초기 잠깐 관심을 둔 적은 있으나 무협 판타지에 타임 슬립을 소재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배경에서 어딘지 모르게 황당무계하면서 빈 그릇 같은 공허함이 느껴져 즉시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종영 이후 케이블에서 방영할 때 가끔씩 무료한 시간을 때울 겸 시청한 적은 있지만 꾸준하지 않았고 사실상 스토리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연을 끝내었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않게 원작소설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신의는 송지나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이다. 송 작가 대본의 드라마 중에서는 "여명의 눈동자"를 예전에 미친 듯이 좋아한 적은 있지만 그녀의 드라마 원작소설은 처음인데 이거 예상했던 것 보다 흥미를 당길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어 읽는 즐거움이 상당한 소설이다. 그냥 기대 없이 읽은 소설이 기대 이상이었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때는 서기 1351년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의 볼모로 잡혀있다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책봉되어 왕비인 노국공주와 함께 최영이 이끄는 우달치의 호위를 받으며 고려로 돌아오던 중에 자객들의 계속된 습격을 받는다. 아무래도 고려와 원나라 사이를 이간질시키기 위한 암살시도인 것 같고 표적은 원의 공주인 노국공주인 듯하다. 악전고투 끝에 자객들의 암습에서 왕과 왕비의 목숨을 지켜내긴 하지만 왕비는 외상을 입고 만다. 최영은 공민왕으로부터 천혈로 가서 왕비를 치료할 하늘의 의원을 모시고 돌아오라는 어명을 받고 2012년 서울에서 의학 세미나 중인 성형외과 의사 유은수를 만난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시도 끝에 그녀를 강제로 납치하여 과거의 고려로 데려오면서 시공을 초월한 역사 거꾸로 보기가 시작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뜬금포처럼 시청했던 드라마의 영상들이 파편처럼 뇌리에 각인되면서 그때 그 장면들이 담고 있던 배경과 상황 설명들을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림이 아니라 섬세한 감정라인들이다. 눈으로만 확인했던 인물들의 동선에 가려 미처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들의 내면적 고뇌와 심리묘사는 왜 드라마보다 원작소설인지 수긍하게 되는지 알게된다.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시각화는 가능하나 머리와 감성을 충실히 재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안다.

 

 

그래서 소설은 덤덤하게 읽히다가도 한번 씩 마음을 울컥하게 뒤흔드는 대목들이 나오는데 최영, 유은수, 공민왕, 왕비, 기철까지 모두 다섯 명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의 시점과 심리가 교차로 전개된다. 그들의 속사정... 원의 내정간섭에 보국안민을 펼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왕들은 자주 교체되면서 신하와 백성들의 신망을 잃은 지 오래인지라 충절의 대명사인 최영에게도 왕에 대한 충성심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유은수는 얼떨결에 과거로 떨어져 역사라는 태풍의 한가운데 놓이면서 좌충우돌하지만 기죽지 않고 입담 쩌는, 당찬 현대여성이자 현대의술을 시전하며 의선으로 불리는 사람, 공민왕은 힘없는 나라의 새로운 군주로서 아직 자신의 소신을 펼치지 못해 자학하고 있는 나약한 사람, 공민왕을 연모하여 스스로 그의 여인이 되고자 자청한 원나라 위왕의 딸 노국공주, 내공을 익힌 절세고수이자 고려를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왕을 무릎 꿇려 조종하는 것에 더 관심 많은 야심가 기철까지, 이들이 펼쳐가는 판타지의 출발이 이제 시작되려 한다. 일단 시작의 느낌이 좋다.

 

 

작가가 일부러 드라마를 그대로 베끼듯 똑같이 집필하진 않을 것 같고 분명 드라마에서 시스템상 한계에 부딪쳐 미흡했던 부분들을 소설을 통해 마음껏 보완내지 그 이상의 완성도를 만들어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완전비교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은 사실상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 이제 2권으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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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의 고백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맥신 패트로 지음, 원은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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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 사람을 꼽자면 아무래도 제임스 패터슨을 빼놓고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베스트셀러 리스트 1위에 총 19편을 올려놓았고, 연간 수입이 5천만불 이상이라고 하니 정보로만 인지하고 있는 명성 그 이상의 슈퍼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겠다. 그런 제임스 패터슨의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와 더불어 또 다른 인기 시리즈인 <우먼스 머더 클럽 시리즈>를 통해 귀동냥으로만 접했던 패터슨의 명성을 확인해볼 기회가 드디어 생겼다.

 

 

형사 린지, 검시관 클레어, 기자 신디, 검사 유키 네 여성 주인공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의 여덟 번째 시리즈인 "8인의 고백"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팀플레이로, 때론 개별의 사건들을 따로 국밥식으로 나눠 수사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아침 출근길 통학버스가 갑자기 폭발하고 테러로 간주되어 용의자를 찾아야 하는 의문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곧 이어 거리의 성자로 불리던 한 노숙자가 처참하게 유린당해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고, 상류층 인사들이 연달아 변사로 발견되는 등, 끊임없는 사건들로 넘쳐나는데 이 사건들은 경찰의 업무과중과 중요도면에서 우선 해결순위가 정해진다.

 

 

린지클레어는 상류층 인사들의 연쇄죽음을 담당하게 되고 특종을 노리던 기자 디는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노숙자 사건을 검사 유키는 존속살해 사건을 맡아 각자의 임무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이런 식으로 “8인의 고백은 제목에 등장하는 다수의 숫자처럼 여러 사건들이 다발처럼 터지는 과정과 이것을 풀어나가는 수순에서는 나름 미스터리하면서도 거의 4페이지 이내의 빠른 챕터 전환과 간결한 문체로 술술 잘 읽혀진다는 특성이 있는데 이 점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간결함이라는 점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여성의 감수성과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장점에 있어서도 더욱 두드러지며 여성독자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여성독자들이 더 좋아할만한 스타일이 아닌가 싶은 게 군데군데 양념처럼 끼어드는 로맨스는 하드보일드 아닌 소프트한 추리물로 완충시키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도 중요하지만 일도 잊어선 안 되는 법, 이 숙녀분들은 자주 마음이 흔들린다. 주위에 매력적인 남자 동료나 주변인물들이 등장하기에 그러는 것도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필살기처럼 남용하는 것 같아 산만해지면서 몰입에 받을 정도이니 정신건강을 생각해서 적당히들 하셨으면 좋겠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에 눈 멀지 말고.

 

 

결국에는 로맨스를 뒤로 물리더라도 사건의 해결과 집중을 통해 추리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초반에 발생한 통학버스의 폭발은 시작부터 스케일과 긴장감 조성면에서 탁월하게 시선 집중하는데 성공하나 이후 사건들을 해결하는 단계들이 그냥 뒤지고 다니다 단서 포착, 범인 발견, 사건해결로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범인의 정체는 허술하고 범행 동기는 더욱 개연성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보니 정신학적 분석에서 사이코패스로만 범행을 분석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크다.

 

 

분명 네 여성 주인공들은 캐릭터별로 개성이 강하고 좀 더 큰 물에서 놀 수 있는 재목들인 것 같은데 제임스 패터슨이 다작을 하는데 것 때문인지, 공저라는 시스템의 한계인지 급히 찍어낸 수제품으로 인식된다. 더군다나 초기작들도 단점의 반복들이 타인의 서평들에서 자주 지적되곤 하는데 뭐든지 과하면 부족함만 못할 듯 하다. 소재면에서도 참신성도 발견하기 힘들고 반전이라고 하기에도 미흡하지만 매끄럽게 전개되는 필력만큼은 구성의 결핍을 커버할만한 솜씨임은 인정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래서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은 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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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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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 라디오 시리즈를 꺼내 들었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라고 역시 앙앙에 수록 연재되었던 50편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것이 시리즈의 1탄이라고 하는데 왜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았는지 내심 궁금해진다. 그러한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같은 이전 제목과는 달리 이번 것은 채소나 동물이 의인화 되어있지 않다. 그냥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그런 그런 이번 에세이도 여전히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런 익살과 해학이 있어 즐거운 독서가 가능했다. 우선 <리스토란테의 밤>을 들여다보자. “어느 특별한 밤에, 어느 특별한 여성과 아오야마의 어느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래봐야 결국 아내와 결혼기념일을 축하한 것뿐이다. 뭐야아아, 시시하게, 시시하지 않나? 성격 급한 나는 이 문구의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뭐야아아, 이 아저씨 어떤 여성을 만나 밀회를 즐긴 거야?” 라며 혼자서 엉뚱한 오해를 해버렸다.

 

 

근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된다고, 결혼기념일에 아내랑 외식했단 결말에 초반부터 파안대소하였다. 그런 비도덕적인 시나리오가 버젓이 나올 리도 없지만 결국은 일부일처제에 대한 귀여운 푸념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기혼남들의 감춰진 응큼한 속마음을 짧은 문구 속에 숨겨진 반전과 경쾌한 해피라이프를 잘 압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란 남자는 이런 사람이다. <리스토란테의 밤>의 그 뒷이야기는 기억에 남지 않는데 오직 서두만 기억에 남을 뿐.

 

 

<불에 태우기>는 또 어떤가? 소설가라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이상한(쓸데없는) 일에 연연하는 인종이라고 자가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왜 또, 뭐 이런같은 반응을 부르는 일에 신경을 쓰여 미치려고 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인용하는 일화가 70년대에 여성해방 운동을 부르짖던 페미니스트들이 그 주장의 일환으로 브래지어를 태운 일을 언급한다. 남자여서 그 물건이 속박하는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알 길 없어 불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냥 가던 길을 가지 않고 엉뚱한 발상을 그대로 전파해버린다. 새 것이었는지, 아님 착용하던 것인지에서 시작하여 다른 여성용품들은 왜 태우지 않고 브래지어만 희생양이 되었느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쓸데없는 잡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해 버린다면 하루키의 라디오 시리즈를 읽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다.

 

 

그런 외전 격인 상상들은 소설가로서 집필을 하는데 있어 원동력이랄까 소재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고 그 점은 일상의 정해진 루트대로 반복적인 경험과 할당된 목표에 대한 기능적 걱정에만 고착화 되어있는 나 같은 현대인들에게는 상상력의 부재나 고갈을 창의적인 발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자극의 계기로 삼을 만하다. 눈앞에 보이는 그 현상 이외의 사실에 대한 고찰과 확대 재생산이 전혀 없는 나를 일깨울만한 신선한 아이디어화 하고 싶다. 그래서 브래지어에 대한 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이 아닌 진지하게 읽었던 것 같다. 한가해도 내 두뇌는 이미 굳어간다. 소설가들은 그래서 사고가 유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먹어본 적은 없지만 가키피란 일본식 과자가 있나 보다. 톡 쏘는 매운 맛의 감씨 모양과자와 통통하고 고소한 땅콩이 섞여있는 과자. 잘 배분하여 조화롭게 먹어야하는데 무슨 맛일까? 한 번 먹어보고 싶은데... 이 과자의 구성을 결혼생활에 비유하는 그 센스란... 위엄돋네. 감시가 들이대는역할로 공격적으로 치고 들어오면 땅콩은 받아주는역할을 맡아 그저 고개만 끄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받아칠 줄도 알아야 하는, 그야말로 핑퐁 같은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듣고 보니 결혼생활의 조화도 얘기하고 있는 거다. 땅콩을 좋아하는 아내에 투덜대면 가키피에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에 양자는 서로 협력하며 살아야한다는 것. 슬기로운 결혼생활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배려이면서도 일부일처제에 대한 탄식을 잊지 않는 하루키식 해피 라이프는 언제나 솔직해서 좋고 공감백배라서 좋다. 이번에도 하루키의 에세이는 머릴 싸매고 분석 안 해도 되니 더 좋은데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그의 소설과는 여전히 담을 쌓고 싶다. 하지만 그의 유쾌한 에세이라면 언제든지 읽어주마. 대환영일세. 그리고 나도 바쁜 아침에 귀찮은데 전날 저녁에 면도하고 잘까? 나름 괜찮지 않을려나. 물론 다음 날 오후 늦게면 코 밑이 거뭇거뭇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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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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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반열에 아직 올려놓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트렌드가 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짠’ 하고 나왔다. 그의 소설은 내겐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이랄까, 어쩐지 굉장히 딱딱하고 난해할 것 같아 이해불가 정도 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어 몇 번 기웃거리기만 해 보았지 정작 제대로 도전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의 에세이들은 읽을만하다. "손이 가요 손이 가"라는 과자 CM송처럼 나올 때마다 관심이 간다. 세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접하며 그의 에세이는 읽기에 참 부담 없이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든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일본 잡지 “앙앙”에 연재되었던, 맛깔스러우면서 힘을 뺀 듯한 글과, 유치한 것 같지만 정작 유치하지 않은 담백한 삽화까지 한 몸이 되어있다. 어딘가 뻔뻔스럽고 야하기도 하면서 중년아저씨의 유유자적한 낭만이 깃들어 있어 좋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려는 것도 같지만 기본정신은 “중년 아저씨”니까 거기에 공감하며 낄낄 대며 웃을 수 있다는 건 나 또한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세월의 반증일까?

 

 

그런데 내가 보았을 때 그의 이 에세이는 결코 “감동적이지 않다.” 그냥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정신없는 나에게 잠시 장시간 운전을 멈추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서 용변도 보고 커피 한 잔 하며 출출하면 군것질도 챙기면서 여기에 들른 사람들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라는 식과 마찬가지니까. 그러한 행위들이 어떤 특정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니까 그런 여유가 참 좋은 거다.

 

 

무라키미 하루키는 에세이를 쓰다보면 ‘꼭’ 쓰게 되는 토픽으로 고양이와 음악, 채소를 지정한다. 이번에도 채소가 제목 속에 포함되어 있어 그의 유별난 채소사랑을 확인할 수도 있거니와 채식과 육식의 이율배반적인 제목의 배합은 누구도 생각하기 쉽지 않은 유쾌한 상상이 만들어낸 창조물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쉽게 외면하기 쉬운 대목에서도 미묘한 공기와 색감, 질량을 불어넣어 그만의 신선한 수다로 재탄생되기에 언제나 즐거운 만남이다.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얼핏 들으면 솔깃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뭐야, 이 아저씨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냐.“며 푸념할 때 이 아저씨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누구도 채택해주지 않는다며 덩달아 푸념하는데 그마저도 귀엽고 푸근하다.

 

 

이것도 요전에 한가할 때 문득 생각한 건데 남아도는 성욕 같은 것도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성욕 역시 하나의 훌륭한 에너지니까 이걸 그냥 쓸모없이 버리는 것은 아깝다. 예를 들어 건강한 남자 고등학생이 ‘헌욕 수첩’을 만들어 ‘헌욕 센터’에 찾아간다. 그리고 “요즘 성욕이 남아돌아서 헌욕 하고 싶은데요.”라고 한다. 예쁜 간호사 누나는 “예, 고맙습니다. 얼른 도와 드릴게요.”하고 성욕이 그 자리에서 전력화되도록(시스템은 잘 모르겠지만)한다. 마지막으로 그 와트 수만큼 ‘헌욕 수첩’에 포인트를 가산한다. 아주 괜찮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이것으로 하절기 전력난도 무난히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도 기꺼이 협력할...... 수 있으려나. (본문 중에서)

 

 

아! 정말 빵 터진다. 이렇게 길게 인용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토씨하나 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뒤집어 지게 한다. 이 대목을 읽을 때는 마침 혼자여서 주위의 눈치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이 한참을 박장대소 하며 뒹굴었다. 지금도 볼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지극히 일본적인 발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참 신선하지 않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면서도 실제로 이런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혈기왕성한 청춘들의 불타는 욕구불만도 해소하면서 전력난 해소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될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앞서 언급한, 길거리의 바이크 머신을 활용한 발전 자원봉사보다는 이 시스템에 동참하고자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대열이 더 끊이지 않을 것 같고 에너지 효율도 엄청나게 고효율이 될 것 같은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하신지? 청소년들의 봉사활동 점수에도 반영을... 그러면서 “나도 기꺼이 협력할...... 수 있으려나.” 로 능청에 방점을 찍고 있는 하루키의 재치에 일상의 무게가 한순간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래 이런 식이다. 그의 에세이는 심각하게 고민하며 읽을 필요가 없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읽고 나면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말도 맞을 거다. 그렇지만 평소 진지하고 치열한 작품들에 머리를 달구다가도 무라카미 하루키식 수다에 의미를 떠나 계산을 하지 않아도 좋을 때가 많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뭔가 끔찍한 경우를 당했다면 끔찍한 일 정도여서 다행이다며, 비참한 일은 아니어 살았다”는 이 책 속 우디 앨런의 주장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들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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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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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걷고 있는 이 숲 말이에요. 메아리는 조금씩 작아지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요.

지금까지도 그의 일부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죠. 살인은 항상 그런 메아리를 남겨요.”

 

삽을 든 아버지가 보인다. 열여덟 살이었던 폴 코플랜드가 당시 기억하는 아버지는 울고 계셨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여름캠프에 참가한 많은 아이들 중 네 아이가 사라졌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 기억이전에 말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캠프장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거액의 위로금을 받아냈고 사건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차 세상에서 잊혀지는 듯 했다.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서는...

 

카운티 검사보 폴 코플랜드는 여성 성폭행 피해자 사건에 대한 단서를 찾던 중 여동생이 포함된 네 명의 아이들이 실종된 20년 전 사건과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무려 2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나서 그에게 찾아온 나비 한 마리는 당시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들 중 한 명은 성인이 되어 여태 살아있었다는 것, 이 아이의 존재에 대해 누군가는 부인하고 진실을 은폐하려한다는 것, 그리고 여동생의 생사여부까지.

 

그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정체모를 불안과 의문이 점차 증폭되는 가운데r 그날 밤에 있었던 사건의 진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난다. 모두가 감추려고만 했던 그 날의 진실에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여동생의 죽음에 얽힌 진실과 사건에 연루된 다른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은 각자의 비밀로 감춰둔 채, 세월이라는 풍화 속에 씻겨 내려가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여동생의 죽음이후 부모님의 죽음까지 겪으면서 가족의 해체를 받아들였던 코플랜드의 입장에서는 우연히 찾아온 단서 앞에서 그냥 수수방관할 수는 없었다. 코플랜드의 미스터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깊어질수록 사건의 진실도 덩달아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숨어들어가 길을 잃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질 않는다.

 

인간이 가진 어두운 본성이 여기에 있다. 아이들 실종사건의 이면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다가도 한순간 뒤 돌아서서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이 책임져야 할 응분의 몫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알고 있는 진실이 100%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라며 내기를 걸어오는 것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들은 언제나 우연한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으며, 나중에 후폭풍이 되어 돌아온다. 인생에서 경로 이탈 없이 올곧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이번에도 적중했다. 시행착오의 반복 속에서 항상 후회를 반복하는 내겐 이러한 모습들은 낯설지가 않아 바늘이 온 몸을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은 고통과 연민으로 지켜보게 한다. 스릴러라는 장르는 그래서 특별하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오락적 체험도 짜릿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 있고 특별한 트릭과 반전도 즐겁다. 그리고 이야기의 즐거움 못지않게 추악한 인간성과 그것에 대한 반발과 대안으로 제시하는 인간성의 회복까지 상반된 양자를 충돌시키면서 사회적 공감이라는 또 다른 메시지까지 도출해낸다.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코벤이 곳곳에 숨겨놓은 덫을 무사히 피해서 수수께기를 풀어내는 과정을 차근차근 거쳐야만 하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20년 전 사건과도 정서적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코플랜드가 검사보로서 담당하고 있는 샤미크 존슨 사건도 진실을 둘러싼 공방전이 무척 흥미진진하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겠다는 피고 측 아버지의 행동은 용서받기 힘든 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20년 전 사건에 대한 코플랜드 부모님들의 진실을 알고 나면,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아버지의 속사정을 알고 나면, 용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수단이며 때론 수용하게 되리라는 교훈도 얻는다. 그리고 감동 한 웅큼까지도 덤으로 말이다.

 

또한 불행과 행복이 교차되는 마지막 장은 처연함과 위안이라는 조화를 이루면서 숲에서 있었던 사건의 근본적 배경이 지나치게 전통적이었다는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훈훈한 마무리 라는 점에서 맘에 든다.  물론 그 것을 예상하기는 했다만. 인생은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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