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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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P.9>

 

 

 

황혼기에 접어든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는 올해 예순 다섯 살의 동갑내기 부부이다.

법적으로는 43, 하지만 실제로는 유치원에서 같은 반으로 만나 사랑을 키워 왔기 때문에 사실상 60년을 부부로 지낸 셈이다. 에밀은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를 가르쳤고 정년퇴직 이후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전원생활을 꿈꾸고 싶었다. 때마침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는데 근처에는 똑같은 모양의 집이 한 채 있고 의사가 살고 있다 들었을 뿐인지라 기쁨과 평화가 오래 가리라 믿는다.

 

어느 날 오후 4.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문을 열어줬더니 에밀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그러니까 일흔 정도는 됨직한 뚱뚱한 사내가 서있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게 다반사인 도시의 삭막함과는 달리 거주인구가 백여 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이웃끼리 방문하고 교류하는 일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베르나르댕이라는 이 남자는 처음부터 괴팍했다. 에밀이 아무리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그렇소.” 아니면 아니오.” 단답형이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가 한번 씩 인상을 찌푸리는 정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에밀 부부의 일상은 악몽으로 돌변한다. 이날 이후 매일 오후 4시에 방문해 여전히 단답형의 무미건조하고 무뚝뚝한 대답 말고는 자신의 주도로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일 없이 저녁 6시가 되면 돌아간다. 왜 그러는지? 무슨 의도로 계속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는 것인지 도통 속을 알 수 없어 점차 이 남자의 방문은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인내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어떡하든 이 남자의 방문을 기피할 요량으로 일부러 외출도 나갔다가 집에 없는 척도 해보지만 베르나르댕의 방문은 피할 도리가 없다. 그랬다간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모른데다 불같이 화를 낼 테니까.

 

어디까지가 예의이고 무례는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아무 의미가 없다. 베르나르댕의 침묵은 분통터지게 만드니까. 나라면 이런 상황을 겪으면 십중팔구 불면에 두통, 소화 장애, 불안 초조, 분노 조절 장애 등등 갖가지 증세에 시달려 히스테리컬 해버릴 것 같다. 에밀의 훈련받은 이성 대신 막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본성은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아내의 능청스런 보조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폭발해 버렸을 것이다. 점점 우화 같은 첫 분위기가 블랙 코미디로, 다시 괴담으로 변화무쌍한 단계를 밟는 동안 베르나르댕의 아내가 등장한다.

 

에밀과 베르나르댕의 숨 막히는 심리전은 결국 타인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놓는 대신 관계 맺기를 거부한 것에 대한 응징을 취함으로서 극단적인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베르나르댕의 아내 또한 원인제공자의 입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설득과 타협에 지쳐가는 자아는 침몰하는 배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나는 누구인가로 끝맺는 대화는 간결하면서도 속사포 같은 논리를 쏟아내고 전개는 지속적으로 흥미진진하다. 철학적이지만 결코 진중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구성 때문에 아멜리 노통브작풍의 독특한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다음에도 만나고 싶은 작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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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이야기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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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작가 루이즈 페니여사의 2009<냉혹한 이야기>을 읽었다. 그동안 참 기회가 안 닿는다 싶었는데 이제야 "아르망 가마슈" 경감을 만나게 되는구나. 이번이 시리즈 중 다섯 번째 라고 한다. 그리고 루이즈 페니여사를 ‘cozy 미스터리계의 강자라는 말도 있던데 용어가 생소해서 피니스 아프리카에블로그에서 검색해 봤더니 ‘cozy’는 사전적 정의로 아늑한, 친밀한 이런 뜻이고 선정적이거나 잔인한 묘사가 없고 작은 마을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사건을 다룬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드럽고 온화한, 젠틀한 미스터리라는 말이렷다. 이렇게 모르는 미스터리 용어를 하나 배우고 시작해 본다.

 

캐나다 퀘벡 주 스리 파인즈의 숲속 외딴 오두막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사람이 건너편에 앉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도둑맞은 물건을 찾으러 군대가 오고 있다는 내용인데 사실인지 신화인지 분간할 길 없는 상황에서 이야길 마친 한 사람은 오두막을 떠난다. 그리고 스리 파인즈한가운데 있는 비스트로안에서 노숙자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그 누구도 노숙자의 신원을 모른다. 외모나 복장만으로 신분을 추측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좀 있다. 노숙자치곤 위생상태도 깔끔하고 치과치료 흔적도 있기에 상식을 벗어난 피해자였다. 얼마 만에 사건이 발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장으로 출동한 퀘백 경찰청 살인반 반장 "아르망 가마슈" 경감조차 시신에 대한 단서를 밝혀내지 못해 난감한 가운데 사건이 미궁에 빠질 법도 하다. 누군가의 일격에 의해 피도 최소한 흘린 상태였고 흉기로 의심되는 도구도 비스트로안에 있는 것도 같고 어두웠던 내부에 불이 켜진 것을 목격한 이는 없는지,

 

 

마지막으로 문단속으로 한 이는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숲에다 시체를 유기했으면 들짐승의 밥이 되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텐데 굳이 사람들 이목을 끄는 공개된 장소에 보란 듯이 버려두고 간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수사에 있어서의 최대난항이다. 조용한 마을을 뒤흔든 이 사건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 차례차례 용의자로 조사받게 된다. 그런데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올리비에"가 여러 정황 상 가장 큰 의심을 받는다. “가마슈경감이 부관인 보부아르에게 가르친 교훈, 살인자는 과거 오래 전 사건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며 앞이 아닌 뒤로 물러나 곪은 상처를 찾아내라는 취지에서 보자면 "올리비에" 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으리란 판단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낡은 해들리 저택이 외부에서 온 어느 부부에 의해 스파와 호텔로 리모델링되는 변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해들리 저택비스트로는 영업측면에서 경쟁관계를 벗어나 앙숙으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더욱 곤혹스럽다. 그래서 가마슈경감은 과거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진실과 위선 사이의 거짓말이 분명 또아리를 틀고 있으리라.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범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마을에서 분명 쫓겨나리라... 누군가는 전전긍긍한다. 친절이란 가면을 쉽사리 벗지 못한 채, 속임수로 모두를 속이고 있는 자는 누구일까?

 

 

어찌 보면 오두막에서 발견된 소로<월든>“E.B 화이트<샬롯의 거미줄>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이야기로부터 파생된 '' 자체의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말이 입을 떠나 상대의 귀에 계속적으로 전달되는 동안, 말은 독소가 되어 마음을 병들게 하고 지배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드물 것이다. 사람의 인생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 자체가 제목인 <냉혹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살롯의 거미줄을 이용한 트릭도 신선한 발상이었고, 보물찾기와 신화, 암호풀이 등 현대적 요소보다는 고전의 낭만과 향수를 듬뿍 담은 미스터리의 진수를 멋들어지게 담아냈다.

 

탐욕으로 시작해서 이기심이 가세하고 의심이 의심을 낳는 바람에 마을은 공동체의 단합보다는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로 출렁거렸다. 비록 난파라는 최악의 수는 비껴갔지만 완결되지 못한 상처와 여운을 남긴 의혹만이 남는다. 믿어도 되는 걸까? 진실은 회복된 것일까?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여지를 다음 편의 몫으로 남겨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 다음 편이 최고 걸작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도 이번 작품의 열린 결말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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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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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헤이는 여자라는 성에 뒤흔들렸다. 남자의 내면을 손쉽게 꿰뚫어 보고 약점을 파악해 계속 피해자로 남게 하는 동시에 가해자로 변모하는 여자라는 존재에. 

자신의 아내인 가나미라는 여자는 타고난 날카로운 칼을 지금에 와서는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무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이들에게 주어진 성() 전략이었다. (P. 268.) 

 

다카노 가즈아키는 <제노사이드>에 관한 인터뷰에서 부조리한 현실 문제를 소재로만 그치지 않고 정면으로 파고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자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노라고 밝힌 바 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지적인 면에서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을 수도 있으며, 책을 쓸 때에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고려한다고 말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 소설 <K.N의 비극>은 임신과 중절이라는 사회적으로 민감할 소재로 주제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싸락눈이 불어 닥치는 어두운 밤에 신사입구를 찾아 계단을 오르는 두 소녀가 있다. 신사 안에서는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있었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두 소녀는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눈보라가 심해지기 전에 되돌아가면서 이날의 일을 모두에게 비밀로 하기로 약속한다.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자리에 오른 젊은 무명 자유기고가 나쓰키 슈헤이는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 덕분에 새 아파트를 구입, 이사하면서 아내 가나미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어느 날 가나미는 임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쁜 마음에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지만 슈헤이는 아직 불안정한 수입과 대출상환금이라는 경제적인 문제로 키울 여력이 없으니 차후를 기약하고 중절 수술을 하자고 제안한다. 가나미는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지만 어쩔 수없이 남편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하기로 동의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나미에게 다른 여성의 인격이 나타나고 정신과 의사 이소가이가 그녀의 치유를 위해 나서면서 불안과 두려움은 두 부부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분쿄의료대학병원 정신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소가이는 도다 마이코라는 기혼여성의 상담을 맡았었다. 그녀는 불임이었고 시어머니로부터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모멸과 압박을 받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소가이의 집중관리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뛰어내려 식물인간이 되어버렸었다. 이 일에 충격을 받은 그는 휴직계를 내고 쉬려 했지만 슈헤이의 간절한 요청에 가나미의 정신적 치료를 맡기로 한 것이다 

 

이쯤해서 모성애에 대한 미스터리가 발생한다. 그것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여성 특유의 욕구가 아니던가? 부성애로 한데 묶을 수 없는, 절실한 갈망. 임신은 일종의 강박관념인 것인가? 인류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공신은 여자들이 아이를 계속해서 출산해왔기 때문에 종족번식이라는 숙명의 달성이 가능했다. 하지만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세계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점차 변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공포, 거부감 등은 결혼이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여자는 아이 낳는 기계가 아니라며 반발심리가 등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다보니 출산율은 떨어지고 인구감소 문제에다 섹스라는 행위는 종족번식이라는 본능이 아니 쾌락이라는 유희로 활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준비되지 않은 임신은 인공임신중절로 이어져 유기되어 살 처분 되는 애완동물보다 소리 없이 죽어나가는 태아들이 훨씬 더 많게 된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부모가 원하지도 않은 아이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할 성가신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아이도 있는가 하면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아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슈헤이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아이를 포기한다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비윤리적인 처사로 비난하게도 되고,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할 개인적 부담으로 용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심경이 복잡해진다. 가나미의 경우처럼 중절에 동의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정말 낳고 싶다는 절대적 갈망이 또 다른 자아분열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 모호한 여성의 존재는 빙의 인격인지 진짜 영혼이 빙의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슈헤이의 개인적 판단과 이소가이의 의학적 소견이 충돌하며 정신분석학적 이론이 총 동원된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이다. 그리고 슈헤이를 통해 드러난 숨겨진 과거는 생명이란 어떠한 이유로도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임이기에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슈헤이의 내면의 변화와 결단은 처음부터 예상 가능하다. 그리고 가나미의 또 다른 인격의 정체에 대해서도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설마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예상이 결국으로 마감 짓는다. 그리고 또 예상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 결말에 도달하기 전에 벌여놓았던 판을 잘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갈등은 모호하게, 흐지부지하게 덮어버리는 일에 급급했다. 허탈한 마무리에 그나마 달궈 놓은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급속도로 식어버리는 분위기는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어차피 전형적인 시나리오대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번 정도는 반전을 내놓던지 공포라도 집중 부각시키던지 했으면, 아니면 미스터리에 대한 논리적 해결이라도... 전혀 준비된 것도 없이 손님을 집으로 초대한 꼴이다. 

 

가나미의 불안한 심리상황에 대한 호기심만 부추기고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한 성교육 홍보는 순진하다.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도덕적 불감증에 대한 비판과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준비된 마음가짐까지 교훈에 대한 강박증만이 남고 재미라는 양념을 빠뜨렸으니 싱겁기 그지없구나. 섣부른 기대는 절대 금물, 다카노 가즈아키의 명성에 기대기에는 플롯이 너무 부실하다. 훅 불면 그냥 날아가 버릴 것 같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두에서 인용한 저 문구는 남자라면 격하게 공감할 것이라는 것이다. 여자라는 존재는 남자에게 여신일 때도 있고 미스터리하면서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니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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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서른두 편의 이야기
김종관 글.사진 / 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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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도 짧은 제목과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그것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욕망이 분출하는 섹스와 감성의 편린을 담고 있는 사진까지,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장편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등의 작품을 연출했던 김종관 감독이 펴내는 두 번째 산문집인 [그러나 불을 끄지 말 것]에는 글을 읽되 단편영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모두가 말하는 사랑, , 음악, 영화에서 무수히 재료로 사용되지만 이 책에서의 사랑만큼은 일반적인 사랑의 관점과는 많이 다르다.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나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가령 새벽에 이유 없이 눈을 뜨는 것을 싫어한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방이라는 공간에 누워 천장의 어둠을 응시하노라면 죽음이라는 괴물이 자신을 삼키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여친과 헤어지고 난 후 그녀가 실종됐다는 소릴 들었을 때 문득 열대의 밤에 그녀의 얼굴이 마음속에 새겨졌을 때랑 흡사하다. 어둠을 등에 업은 고통이 밀려오면서 피곤한 수면을 취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잊으려고 노력하던 그 남자는 점차 삶이라는 끝나지 않은 여정에 익숙해지면서 조여 왔던 압박감에서 점점 멀어져 감을 절감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사랑에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각각 존재하는데 윤리적 잣대로 제제를 가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때린 사람은 두 다리를 움츠리고 자는 대신 맞은 사람은 오히려 편안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자듯이 고민하는 쪽은 바뀔 수 있다는 것, 먼저 유혹한 사람은 원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동시에 유혹당한 이는 해방되었다는 기묘한 논리 앞에서 남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어쩌면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되게 만든다. 이상하리만치 집중하면서 흥분이 가볍게 이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아직 살아있구나 라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아름답기를 기대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어딘가 모르게 수줍음이었다가 쓸쓸도 했다가 노골적으로 야했다가 하는 서른두 편의 사랑 이야기에서 복잡한 심경이 된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거나 절대 감추고 싶은 은밀한 자기욕망과 고백 앞에서 섬세한 감정과, 촉촉한 느낌이 연출하듯 생생해서 끊임없이 마음이 흔들렸다.

 

사랑 하나면 세상 전부를 차지할 것 같더니 어느 순간 사랑 앞에서 치가 떨리고 싫증도 나는 생로병사 같은 과정들도 인간의 한평생과 다르지 않음을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걸 듣고 있다 보면 가슴 속의 하나씩 안고 있을 상처들은 너덜너덜 하지만 어떻게 마른 땅을 단단히 다져야 할까에 대한 해답이 조금씩 나오는 것도 같은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쿨 하고 싶지만 쿨 하지 못한 남녀 모두에게 조심스레 전하는 멘토이자 배려가 담겨 있는 듯하다. 어쩌면 강렬한 충동 앞에 놓인 두근거림일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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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손명찬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손글씨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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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손명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는 과거에 어떤 사고를 겪은 듯한데

그 아픔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대신 자신의 재활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

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전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긍정과 공감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들이

눈부시다 못해 진심이 느껴지는 이유는 외롭고 쓸쓸해서 여전히 사랑받고 싶

고 위로받고 싶기 때문인데 특히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따로 있었다.

 

<브레이크가 필요한 날>

브레이크 없이 살다 보면, 골몰한 것, 집착하던 것이 갑자기 피곤해질 때가 있다.

자 있기, 움직이기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기, 남 시키기,

죽고 싶으면 아주 죽고 못 살아하기.피곤함이 풀리고 나면 다 정상으로 돌아온다.

다시 보면 새롭다, 더 찬란하다 <P.47>

 

인생이란 논스톱으로 쉼 없이 달릴 수 없으니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모르는 바가 아니다. 막상 브레이크 걸어놓고 그 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남감해서 서투를 뿐이다. 남 시키기를 못해 혼자 고민하고 끙끙했고 죽고 못 살아

하는 것처럼 진정인 적 없었다. 소심하게 남 눈치나 보고 살았으니 언급한 대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근심 걱정 고민거리가 다소나마 줄일 수 있겠지. 그래 좀 더

과감해보자, 자신 없으면 몰래 짐을 떠 넘겨보고 미친 듯 빠져보자.

 

<포켓 리스트>

오늘 하루,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리고 해두겠습니다.

머니에서 쉽게 꺼낼 수 있는 리스트 말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식은 죽 먹기로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일들,

주머니 속의 행복말입니다. <p.52>

 

맞아, 난 그랬었어. 지금보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사소한 일에도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고, 실제로 입가에 미소 짓게 만드는 일들이

행운처럼 일어났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처럼 불만과 나태에 휘청대지 않고 어떤 목표를 정해(그것이 작심

삼일일지라도) 조금씩 실천해나가는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직, 간접적으로

성과로 나타났었지, 리고 매진했었기에 현재와는 달랐다.

그렇다면 재밌는 일이 없다고 투덜대지 말고 일일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겠다. 단 거창한 목표는 세우지 말고.

 

<손끝>

고깔콘을 끼운 손끝, 봉숭아로 물들인 손끝,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손끝, 케이크크림을 직은 손끝,

고추잠자리에 최면을 거는 손끝, 벨을 누르는 손끝.방향을 가리키는 손끝,

다른 손끝과 만난 손끝.

그 옛날, 마음으로 당신을 찍은 손끝,

하지만 둘만 있게 되었을 대 정작 손끝도 못 댄 손끝. <P.114>

 

글을 그대로 옮기기만 해도 추억이 새록새록 돋고

코끝이 시큰해진다. 내 마음을 읽었던 걸까?

그때는 사랑인줄

몰랐는데 막상 안 보게 되니까 한동안 울적해져서

무기력한 날들을 보낸 옛 기억이 떠오른다.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진즉 손끝으로 쿡쿡 찔러보기나 할 걸,

후회는 막심이라고 윗글은 나를 손끝으로 찌르나보다.

 

<눈부시게 해줄 테다.>

창으로 햇살이 가득 쏟아지던 어느아침.

아내가 옆으로 지나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내 머리를 창가 쪽으로 휙 돌리고는

손가락으로 내 눈을 집어 크게 벌렸어요.

그리고는 윽박지르듯 말했지요.눈부시게 해줄 테다.”

 

읽고 또 읽어도 아직도 설렌다. 이렇게나 멋들어지고

낭만적이며 사랑스런 글이 또 있을까? 눈이 부셔서 책을

읽을 수가 없어 빛에 익숙해질 때 까지 책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한다. 읽을 때마다 느는 건 눈물의

양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거지? 슬퍼서 그런 건 아닐 거야.

 

마음 치유 관계 사랑 인생 오늘

이 모든 것들이 이 책 한권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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