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서른두 편의 이야기
김종관 글.사진 / 달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극히도 짧은 제목과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그것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욕망이 분출하는 섹스와 감성의 편린을 담고 있는 사진까지,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장편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등의 작품을 연출했던 김종관 감독이 펴내는 두 번째 산문집인 [그러나 불을 끄지 말 것]에는 글을 읽되 단편영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모두가 말하는 사랑, , 음악, 영화에서 무수히 재료로 사용되지만 이 책에서의 사랑만큼은 일반적인 사랑의 관점과는 많이 다르다.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나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가령 새벽에 이유 없이 눈을 뜨는 것을 싫어한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방이라는 공간에 누워 천장의 어둠을 응시하노라면 죽음이라는 괴물이 자신을 삼키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여친과 헤어지고 난 후 그녀가 실종됐다는 소릴 들었을 때 문득 열대의 밤에 그녀의 얼굴이 마음속에 새겨졌을 때랑 흡사하다. 어둠을 등에 업은 고통이 밀려오면서 피곤한 수면을 취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잊으려고 노력하던 그 남자는 점차 삶이라는 끝나지 않은 여정에 익숙해지면서 조여 왔던 압박감에서 점점 멀어져 감을 절감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사랑에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각각 존재하는데 윤리적 잣대로 제제를 가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때린 사람은 두 다리를 움츠리고 자는 대신 맞은 사람은 오히려 편안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자듯이 고민하는 쪽은 바뀔 수 있다는 것, 먼저 유혹한 사람은 원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동시에 유혹당한 이는 해방되었다는 기묘한 논리 앞에서 남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어쩌면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되게 만든다. 이상하리만치 집중하면서 흥분이 가볍게 이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아직 살아있구나 라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아름답기를 기대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어딘가 모르게 수줍음이었다가 쓸쓸도 했다가 노골적으로 야했다가 하는 서른두 편의 사랑 이야기에서 복잡한 심경이 된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거나 절대 감추고 싶은 은밀한 자기욕망과 고백 앞에서 섬세한 감정과, 촉촉한 느낌이 연출하듯 생생해서 끊임없이 마음이 흔들렸다.

 

사랑 하나면 세상 전부를 차지할 것 같더니 어느 순간 사랑 앞에서 치가 떨리고 싫증도 나는 생로병사 같은 과정들도 인간의 한평생과 다르지 않음을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걸 듣고 있다 보면 가슴 속의 하나씩 안고 있을 상처들은 너덜너덜 하지만 어떻게 마른 땅을 단단히 다져야 할까에 대한 해답이 조금씩 나오는 것도 같은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쿨 하고 싶지만 쿨 하지 못한 남녀 모두에게 조심스레 전하는 멘토이자 배려가 담겨 있는 듯하다. 어쩌면 강렬한 충동 앞에 놓인 두근거림일지도 모르겠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