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랜드맨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그랜드”와
“맨션”이라는
단어와 결합하면 럭셔리 아파트화 되지만
실상은
4층짜리
공동주택일 뿐.
입주민도
들어온 지 30년도
더 되는
고령자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분양받아 나갈 능력이 안 되거나
얼마
남지 않는 노후를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나가려 않고 눌러앉으려 한다.
여기서는
60대면 청춘이다. 80대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저렴한 임대료만 내고 살던 1관
도로 건너편에는
10층짜리
현대식 2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여기서
민원의 소지가 발생하는데 바로 일조권 침해다.
제대로
굴러가는 대표자회의나 반상회 같은 거라도 있다면
입주민들이
궐기하고 나서겠지만 여기는 이웃끼리 살갑게 교류
하는
편이 아니라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대체로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한
사람만 빼고.
닭장
속의 닭들 마냥 문을 걸어 잠그기만 하고
이웃이
나한테 피해만 안주면 개의치 않겠다는 사람들이다.
단체행동에
들어가는 일이 없어서 2관은
순조롭게 올라간다.
그동안
이 볼품없는 맨션에 현대 사회의 병폐가 고스란히 농축된다.
층간소음,
살인,
절도,
스토킹,
사체유기…
공공의
선을 잃어버린 지독한 개인주의가
범죄를
양산하고 이것은 다시 무관심했던 자신에게도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
아뿔싸
진즉에 도움을 청할 걸,
진즉에
잘할 걸,
같은
후회막심이 생긴다.
소설이나
뉴스가 아니라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질 때가 많다.
일곱
편의 에피소드들은 연작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각
에피소드별로 호실별로 입주민이 화자로 등장하다가
다음
편에서는 다른 입주민으로 화자로 변경된다.
그러면서
이전 에피소드의 각 화자들은 담장을 넘어가듯
주변인으로
재등장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연결고리로 구축되는 것이다.
결국
순서대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복선이
숨어있고
서술트릭의 대가답게 각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움찔하게
만드는 소소한 반전들이 놀랍다.
그래서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꼼꼼히 읽기를 권장한다.
또한
특별히 눈길을 끄는 요인은 단순히 사회 고발적 성격을
뛰어넘어
미스터리 팬들을 잔잔히 매료시킬 밀실과 시점을 이용한 트릭,
그밖에
다양한 재간 등으로 이 소설이 장르소설임을 상기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각개 격파했을 때는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각
호실이 하나 둘 모여 공동주택을 구성하듯이 이야기의 힘과 기술은
전부를
위한 하나였음을 뒤늦게라도 간파할 수만 있다면
진정한
재미를 깨닫는 즐거움을 얻게 될 것 같다.
성패는
거기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