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수사대 시아이애이 - 서빙고, 화마에 휩싸이다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국내 장르소설계가 외국 장르소설에 맞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 무엇인가하고 말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대중적 기호에 부합하고 싶다면 소재에 관한 상상력의 부재라는 장막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본다. 최첨단 과학수사를 동반한 그들만의 스케일 앞에서 국내시장은 무기력하기만 하니 다른 대안이 제시되어야함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상상력의 확대를 위해 팩션이라는 형식은 우리만의 강점이자 차별화된 요소가 분명 될 수 있을 터. 손선영 작가는 현대가 아닌 조선 세종시대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고 그 점에서 재미를 찾는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일단 책제목 ‘示芽理埃吏(시아이애이)’가 특이하지 않은가? 이것은 코카롤라를 구가구가로 표기하는 것 같은 이치로 미국 CIA를 절묘하게 표기함은 물론이요, 일종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세종 5년(1423) 8월 15일, 중국 명나라의 황제는 정변으로 교체되고 새로이 등극한 황제는 세자 책봉 칙서를 들고 조선에 대규모 칙사단을 파견하기로 되어 있다. 칙사단이 조선에 도착하기 3일전 뜻밖의 사건이 발생한다. 소주방 나인 미연이 연회에 사용할 얼음을 구하러 서빙고로 향한다. 갑자기 서빙고 안에서 화염에 휩싸인 사람이 뛰쳐나오는데, 아, 어찌 얼음으로 가득 찬 서빙고 안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은 해괴한 소문으로 도성 안에 좌악 퍼지고 세종의 귀에 까지 소식이 들어간다. 사건을 어떻게든 수습해야만 한다. 명의 칙사단이 도착하기 전에. 그래서 세종은 은밀한 수사를 위해 박연과 장영실만을 따로 불러 비밀리에 해결할 것을 명하는데... 만약 칙사단이 올 때까지 해결 못한다면 조선은 국내, 외적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서 국가의 명운이 흔들릴 수도 있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상사태 발생!!!

 

 

그런데 팩션은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계를 가릴 것 없이 메마른 대중문화를 활성화 시키는 원천이자 영감을 낳는 아이디어이다. 상상력의 고갈을 해갈해 줄 중요한 수단이 된 팩션을 역사고증처럼 표현한다면 자칫 고루하고 따분한 이야기 밖에 될지도 모를 위험을 피하고자 이 소설은 세종과 박연과 장영실이라는 역사상 실존인물들에게 입체적인 개성을 불어넣어 흥미만점의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세 사람을 군신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형님 아우하는 관계로 설정했음도 재밌지만 악공과 과학자로 조선의 문물을 번성하게 한 박연과 장영실이 본연의 임무를 벗어던지고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비밀특별수사대원이라니 정말 기발한 발상이지 않은가. 특정한 시대로 들어가 미스터리로서 뿐만 아니라 신흥왕조로서 조선이 자주와 사대 사이에서 겪어야만 하는 외교적 행보 앞에서 역사는 허구와 함께 시대의 아픔과 교훈을 동시에 전해주기 때문에 별도의 의의가 있지 않나 싶다. 장영실이 부산 동래 출신에다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널리 등용했던 세종의 정책 덕에 천민에서 중인의 신분에까지 올랐다고 하는 사실까지 역사적 고증에 철저한 점도 높이 인정할 만하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심한 사투리에 말까지 더듬는 장영실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은 허와 실을 절묘하게 섞었다고 보여 진다.

 

 

<세종특별수사대 시아이애이>는 어쨌거나 기본성격은 추리/미스터리물이다. 하나의 단서를 통해 수수께끼를 풀고 나면 다음 문제가 연이어 대기하고 있어 긴장감과 흡입력은 꾸준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그러면서 개국 초반이 지나면서 부와 양극화와 신분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가진 자들의 독점과 수탈 같은 횡포 속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의 피폐한 삶은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결국 명나라에 정면 도전할 수 없었던 조선이 그들에게 바치는 조공품들은 고스란히 백성들이 피땀 흘려 채워놓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산물들이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무능하고 탐욕스런 위정자들 때문에 착취 받는 민초들의 삶은 고단한 것이니 세종의 고민은 당시에도 깊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고자 했던 세종의 마음 씀씀이와 고뇌가 지금에라도 조금이나마 반영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명탐정들
정명섭.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의 말대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종종 폭력으로, 극단적인 겨웅에는 살인이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다. 지금에야 CSI 같은 과학수수사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그러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던 과거에는 어떤 방법으로 수사를 했는지가 관건이자 의문점일 것이다. 조선시대에 실제 발생했던 살인사건을 실록과 역사서를 근거로 시대의 명탐정들이 해결한 스토리를 그리고 있는 <조선의 명탐정들>은 역사의 재조명이자 범죄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감춰진 당대의 천태만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고찰해주는 또 다른 사회이다.

 

우리들이 사극을 통해 드러나는 수사는 용의자를 다짜고짜 형틀에 묶어 주리를 트는 고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믈론 그것이 중요한 수단이자 도구이기도 하다. 용의자의 입을 열게 만드는 강력하고도 원초적인 방법이지만 강압에 못이겨 허위자백을 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지문채취니 DNA같은 방식은 없더라고 최소한 정황과 심증, 가설과 유추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오히려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대적 수사방식대신 사람의 오류를 감안하더라도 머리를 쓸 줄 아는 과거의 수사방식에서 어차피 사람과 사함 사이에 발생한 분쟁은 사람의 순수한 지혜가 필요하단 것이다.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 기록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당시의 사건실화들은 배경에서부터 사회적 문제, 권력 앞에 굴하지 않는 소신도 결국 성역을 파헤치지 못한 한계까지 기지에 감탄을, 때론 좌절과 안타까움까지 다양한 감정과 반응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당시의 왕들은 사선해결을 독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사건의 정황을 보고로만 듣고 범인을 알아낸다든지 하는 비상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민심을 헤아릴 줄 아는 군주의 영민함이 돋보인다. 대표적인 인물이 세종이지만 희대의 폭군 연산군도 해당된다 하니악은 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 능력을 좋은 곳에 쓸 줄 모르고 폭정에만 전력을 다했으니 후대의 평가는 실로 박할 수밖에 없다.

 

절대 권력이라는 비호 속에서 초법적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며 악행을 감추고 처벌을 면하려했던 살인자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이휘와 박처륜 같은 명탐정도 있었고 조선의 대표적인 명탐정 정약용은 같은 경우는 이제 소설과 영화 등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명탐정들과 서양의 명탐정들을 유형별로, 사례별로 비교 설명함으로서 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읽을거리를 들려준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목은 해리 보슈에 대한 언급인데 외모를 설명하면서 그가 콧수염이 있다고 하는 부분이다. 보슈의 열렬한 팬이지만 그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된 셈인데 여태 몰랐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정보였다.  

 

그리고 지금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조선시대에는 별의 별 사건들이 발생했건 것 같다. 조선최고의 요부이자 스캔들의 대명사 어우동의 어머니 살인사건에서는 남존여비가 만연했던조선시대에도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런 그녀가 긍정적인 방면으로 유명세를 떨친 것이 아닌 한낱 악녀로만 평가받을 수밖에 없었던 결과에서 피는 못 속인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시댁에서 소박 받고 돌아온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을 통해 독립적인 객체로 크지 못하고 남성 중심의 종속물로서 끝내 희생당하고 말았던 당시 시대적 아픔과 계급구조적인 문제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사채업자의 악랄한 횡포는 금권주의가 만연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대의 소용돌인 셈이다. 모든 악에 대하여 일체의 구림도 없이 말끔히 해소되었더라면 읽는 내내 통쾌하고 후련했을텐데 악인은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식의 후일담은 그래서 씁쓸했다. 무전유죄! 무전유죄! 여하튼 진범들을 잡아낸 명탐정의 노고는 칭찬하면서 당시의 시대상이 절실하게 반영된 사건들을 해결하는 그 시대만의 수사 방식은 현대의 수사와는 차별화된 개성 있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바로 <조선의 명탐정들>에 의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착역 살인사건 - 제3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2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읽은 책은 니시무라 교타로의 트래블 미스터리 <종착역 살인사건이다>이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이미 500권 이상을 발표한 왕성한 창작열에다 누적판매부수가 무려 2억 부라고 하니 입이 떡 하니 벌어진다. 이런 작가를 여태 몰랐다는 점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그의 작품이 출간된 적 없는 걸로 아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내심 알고 싶을 정도까지였다. 니시무라 교타로의 어떤 작품은 얼핏 들어봐선 얼마 전 국내 모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이 표절시비가 불거진 사례가 언뜻 연상되면서 줄거리가 흡사한 것 같기도 한데 혹시 오리지날이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이 아닌지 고갤 갸웃거리게도 된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트래블 미스터리로 부리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담하고 있는 철도에 관해서이겠다. 본래 일본이란 나라는 철도노선이 거미줄처럼 노선이 구축되어 있는 등 그 기반이 확실히 자리 잡은 철도강국임을 주지하지 않아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간센 같은 고속철이 아니라도 유즈루호 같은 노선도 미스터리 소설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도쿄와 북방을 연결하는 노선이 소설에 더 자주 다루어진다는 건 특정지역이 더 선호되는 것 같다. 남방이나 서쪽은 거의 못 본 것 같으니 말이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고향과 동창생에서 비롯된 살인사건. 아오모리 현립 F고등학교 출신으로 학교 신문 편집장이었던 미야모토 다카시는 신문 편집 부원이었던 여섯 명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 도쿄에서 출발해 고향인 아오모리로 2박3일 일정의 귀향여행을 제안한다. 이미 졸업당시 7년 후에 여행하는 것으로 계획은 짜여 있었고 각기 다른 사연을 담아 유즈루 7호 티켓을 동봉해 보낸다. 오랜만의 귀향이라 모두 설렜을 법하다. 우정과 추억이 함께 하는 낭만스런 여행이 될 것처럼 보인다. 드디어 약속당일 다카시를 포함해서 일곱 친구는 모였지만 한 친구 녀석만 어쩐 일인지 연락도 없이 우에노역에 나타나지 않는다. 할 수없이 일곱 명은 예정대로 유즈루7호에 탑승해 출발하는데...  

 

 

한편 경시청 수사1과 가메이 경사는 역시 아오모리에서 상경한 고교동창생을 만나 행방이 묘연한 여 제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소문을 한다. 그러다가 우에노역에서 친구의 귀향길에 배웅을 한 후 돌아오는 중에 화장실에서 한 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죽은 남자는 다카시의 친구로서 여행에 불참했던 친구였는데 이것이 신호탄이라도 되 듯 다카시 일행은 다른 장소와 방식으로 차례차례 살해되기 시작한다. 

 

 

자살로 교묘히 위장되었던 연쇄살인도 포함되자 일곱 명의 동창생을 노린 범인은 누구인가 와 함께 살인 동기는 무엇인지에 집중해보지만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도쓰가와 경부와 가메이 경사는 완벽한 범죄로 벽을 쌓고 있는 단단한 사건의 틈새를 열어야만 했다. 어차피 범인은 내부에 있는 걸로 해석되니 어떤 의미에서는 밀실살인이나 마찬가지이다. 살해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남은 사람 중에 범인이 있을 확률은 점차 높아지게 마련이라 마치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것처럼 완전한 확률게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가진 살의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겉으로는 친구라는 관계로 인면수심을 가장하고 있지만 설마 그런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싶지만 의심이라는 증폭은 서로가 상대의 등에 언제든지 비수를 꽂을 수 있는 비정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다양한 가설이 성립되니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다는 일이 조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사실을, 부지불식 중에 발생할 수도 있다는 준엄한 경고 메시지를 읽은 기분마저 들었다. 

 

 

유즈루7호에 탑승한 다카시 일행 중 살해된 어느 누구는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불가사의한 면도 있었는데 알고 보면 간단한 자문이면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도 있었던 사안을 어렵게 꼬아 만든 건 비현실적이지만 그것조차도 이 미스터리를 충분히 즐기기 위한 변칙플레이로 이해해준다면 한 번 정도는 너그러이 눈감아 줄 수 있는 트릭도 괜찮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 이후 만나는 맛깔 나는 시간차 트릭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는 회귀본능이 있다고들 한다.

 

 

직업 때문에 떠나있지만 고향은 언제나 가고 싶고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푸근하게 감싸줄 것만 같은 마음의 안식처가 아니겠는가? 그 모든 기대와 희망이 고향에서 정리되지 못한 원한이 불씨가 되어 핏빛 복수극이 된 이 비극을 감상하면서 이제 죽어서 이 한 몸 고향땅에 묻히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각박해진 세상사 앞에서 한낱 무용지물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작품으로 각인될 것만 같다. 영원한 여행을 떠나버린 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
제이콥 톰스키 지음, 이현주 옮김 / 중앙M&B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사실 살면서 호텔에 숙박할 기회가 얼마나 될까? 손에 꼽을 정도라서 집을 놔두고 출장 등을 이유로 다른 곳에서 숙박을 한다면 모텔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비용이 저렴하니까. 그래서 10년차 호텔리어이자 저자인 제이콥 톰스키가 자전적 경험담을 토대로 써내려간 <나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를, 친숙하진 않지만 한번쯤 관심 기울여 볼만한 호텔이라는 특정장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읽어보는 일도 괜찮을 법하다. 호텔은 겉보기에 별로 특별한 일들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곳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집결한 또 하나의 사회공동체이다.   

 

 

적나라한 고발에서 때론 낯 뜨겁기도 하고 솔직하기도 하면서 고객의 입장에서 모르고 지나쳤던 유용한 팁도 제시해준다. 호텔 직원들도 서비스업에 종사하지만 그들도 어차피 감정의 기복이 살아있어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저질러지는 각종 상술들, 자칭 VIP 고객이라 불리는 손님들의 추태, 불건전한 행각 등은 고객의 이름으로 욕망을 배출시키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대접받기를 원하는 이중적 심리를 날카롭게 꼬집는 모습에서 특정한 직종에서 살아남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저자 제이콥 톰스키는 앞서 언급했듯이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호텔의 10년 차 베테랑 호텔리어이다. 대학 졸업 후 직업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 대리주차 요원이 된 것을 계기로 호텔이라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된다. 그는 탁월한 서비스 능력으로 승승장구해서 뉴욕 맨해튼의 특급 호텔까지 진출하게 되지만 그와 호텔업계는 사실상 궁합이 맞질 않았나 보다. 호텔에서 벌어지는 각종 추잡스러운 일들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두고 나와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를 발칙하게 고발하는 책을 썼고 이것이 히트를 쳤던 셈이다. 

 

 

발칙하지만 괘씸하지 않은 이 책은 고발과 애증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세상은 요구하는 만큼 수용해줘야 한다는 물물교환의 법칙이 통용되어야만 하고 사람과 사람은 결국 정과 약간의 배려만 더해진다면 더 이상 눈을 부릅뜨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가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갑질 따윈 하지 말라고 말이다. 서비스업을 무시하지 말자는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는 “호텔손님에게 알려주면 안 되지만 알려주기로 결심한 몇가지 팁”은 주목할 만하다. 기억해두었다가 실전에 써먹으면 유용하면서 그 유머스러함에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걸리게 된다. 

 

 

“신용카드가 승인이 안 난다고요? 그럴 리 없어요. 다시 해 보세요”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구겨진 지폐도. 고장 난 자판기도 아니니 즉시 은행에 카드신고를 할 것. 처음부터 예비카드를 복수 지참했어야 하지 않을까? 지당한 말씀이다. “당신을 위한 직원을 찾으라.”는 어떨까? 모든 호텔직원이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차별을 불러오려면 팁이 가진 막대사탕을 활용하자. 당연히 뇌물이 아니라 그에게 좀 더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원한다는 인식을 전환시켜주는 지혜이다. 인색하지 말고 즉시즉시 건네주면서 맘에 들었다면 직원의 이름이나 인상착의를 기억 내지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소환해낼 수 있는 요령이 중요하다. 인맥은 비즈니스에만 해당되지 않으니 과감히 쌓아두는 것이 이 세계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될 테니까 허둥대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대비하자는 말이다. 결국 돈과 인맥이라는 이름의 친분은 세상만사 형통되는 만국공용어란 사실을 잊지는 말자는 결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스에서 스릴러 신간이 나온다고 했을 때, 그것도 대박작이라는 풍문이 조금씩 들려왔을 때, 아직 펄스에서 출간된 작품을 아직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누구의 작품일지 내심 궁금했었다. 그런데 영국 작가 모 헤이더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럼 2012년 에드거상의 영예를 안겨다 준 (Gone)”이 나오는 건가? 했다. “(Gone)”이 제목에 들어간 다른 작품에 만족한 적 있어 그런 줄 알았고 그런 소문도 좀 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출간된 작품은 난징의 악마(The Devil Of Nanking)였는데 (Gone)”이 잭 캐프리 시리즈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걸 감안하면 2편도 국내출간 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건너뛸 일은 없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난징의 악마가 스탠드얼론이라고 해서 격이 떨어지거나 유명세에 뒤쳐질 우려는 전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또한 진정한 화제작이었고 왜 지금까지 한국에 선을 보이지 않았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에드거상을 수상하며 기쁨의 표정을 짓고 있는 모 헤이더의 모습이 묘한 매력도 풍기는 것도 같은데 실제 그녀의 이력은 실로 다양하면서도 특이하다. 교육행정가에서부터 도쿄에서의 호스티스 생활까지 도무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직업군을 두루두루 거쳤는데 역시 눈에 뜨이는 점은 호스티스 경력일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의 여주인공이 같은 영국 여성에다 도쿄로 건너와 호스티스로 일을 하고 있으니 자신의 경험담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영국 출신의 20대 여성 그레이는 우연히 1937년 중국 난징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부터 그것의 진실규명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그녀를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낸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 취급을 해버린다. 그녀는 난징대학살의 진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솔직히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벽안의 여성이 그 문제를 조사하고 밝혀낸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상자 수도 정확한 집계 없이 들쭉날쭉하고 날조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과 서슬어린 협박 앞에서 당당하게 그 시절의 일들을 공표하라고 하는 것은 감히 목숨을 내걸라고 떠미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레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동경대의 중국인 교수 스충밍을 예고 없이 찾아와 1937중국 난징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잔학한 행위를 촬영한 16미리 필름이 보고 싶다고 매달린다. 스충밍 교수는 필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거절하지만 끈덕지게 달라붙는 그녀의 집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든 교수는 필름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어떤 대가를 요구한다. 체재비를 벌기 위해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의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게 된 그레이에게 손님 중에서 야쿠자 조직인 후유키파 수장 후유키에 접근해 그가 복용하는 어떤 약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했던 것.

 

 

 

그레이가 후유키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을 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전개되던 그레이의 1인칭 시점에서 스충밍 교수의 19371인칭 시점으로 넘어가면서 화자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두렵고 소름끼치는 그날의 비극과 야만, 그리고 폭발하는 광기 속에서 무지몽매한 국가와 개인의 범죄행위를 지켜보면서 아직 과거는 종결되지 않고 무덤 속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칠뿐이라는 점도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한다. 누가 그 나라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느냐며 말이다.

 

 

 

 

그런 생각을 안고 1937년 중국 난징을 회상해본다. 당시 젊었던 스충밍 교수는 미신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아내가 곧 아이를 출산할 순간에 임박해 있었다. 그 와중에 국민당 장개석 총통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믿음으로 일본군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은 수호할 것이라고 오판했다다가 무기력하게 패퇴하는 국민당의 군대 대신 새로이 입성하게 된 일본군에게 다시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설마 일본군이 중국국민들을 함부로 대할까? 아닐 것이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할 것이라 믿었지만 결국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다. 

 

 

 

 

일본군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악귀들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민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과 고문 등 잔학한 살육을 저지른다. 한 번 발동 걸린 이들은 피 맛에 들려 무차별적인 살인을 마치 게임을 하듯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탱크로 머리를 뭉개고 목을 베고 강간 후 살인하면서 도시는 완전히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시체는 거대한 산을 이루고 흘러넘치는 피는 온 세상을 오직 붉은 색 하나로만 물들인다. 

 

 

 

 

다시 현재의 도쿄. 그레이는 후유키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실로 위험천만한 접근을 계속 시도한다. 후유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곁을 지키는 일본인 여 간호사의 살기도 점점 위험수위를 높여간다. 남자같이 억센 체격의 간호사는 실제 휴우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을 차례차례 제거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살인마였다. 이제 그레이의 의도를 간파한 간호사를 위시한 후유키 일파의 본격적인 추적과 그레이의 사생결단 도주가 목조건물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숨바꼭질하게 되면서 스릴감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턱 밑까지 무시무시한 살의를 내비치면서 잠시도 숨을 멈출 수 없이 연속된 서스펜스의 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물리적 경계가 마침내 진실이라는 실체에 도달하게 되면 정말 속이 뒤집히는 순간이 온다.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당시 난징의 악마 또는 난징의 염라대왕이라고 불리던 자가 누구인지, 당시 소문으로 떠돌던 그 문제적 물건은 단순한 야만과 광기를 넘어서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상에 의해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끔찍한 산물이었다.

 

 

 

그 소름끼치는 사태는 망각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마치 전통을 계승하는 거룩한 행위나 되는 것처럼 저질러왔던 그 만행은 실로 역겨워 토가 나올 지경이다. 도저히 떨쳐내지 못 할 슬픔과 한을 평생을 업보처럼 지고 왔을 스충밍 교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으려 했고 처절한 오욕을 견뎌내야만 했던 그의 믿지 못할 사연들은 이 작품이 전 세계 독자들의 찬사 속에서도 정작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만큼은 금서가 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유를 제시하기 때문에 참혹함에 수도 없이 몸서리치게 된다.

 

 

 

현재의 일본인 후손들은 과거 자신의 선대들이 저지른 이 같은 만행을 역사왜곡과 은폐라는 눈가림에 속고 있고 양심에 가책을 물어볼 어떠한 기회도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우경화를 통해 다시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총리는 중국과의 센가쿠 열도 분쟁과 관련해서 일본의 힘을 보여주겠노라고 자신 있게 다짐하고 있는데 대표적 우익 인사 중 한 명이었던 할아버지 같은 범죄자의 피가 흐르는 것을 어떻게 막아보고자 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살고 싶었던 한줄기 소망을 무참히 총칼로 짓밟았던 그들에게 반성 없는 우호와 선린은 한낱 영혼 없는 메아리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렇기에 난징은 우리의 역사가 아니지만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었던 우리들이라면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은 단순히 장르소설 독자에 한정짓지 말고 더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특별히 기억에 남을 작품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된다. 그래서 난징의 악마를 기습 출간한 펄스의 혜안에 깊이 감탄하면서 후속작 아파치는 물론이요 모 헤이더의 나머지 작품들도 신속히 공개하여 이 목타는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암튼 최고다 난징의 악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