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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천국 주식회사”라는 제목만 들어서는 바로 감이 안 잡히게 되어있습니다. 뭐 기독교서적인가 싶죠.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교든 종교가 개입하면 무조건 질색인데 말입니다. 따분 또 따분. 그런데 일단 작가의 경력이 화려해서 눈길을 끄네요.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30인]에 두 차례나 올랐다고 하니 이 작가 뭔가 대단해보입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큰 기대 없이 읽어나갔는데 오 마이 갓! 진지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로 무장되어 있어요. 제목 그대로 죽어서 착한 사람들만 간다는 그 천국이 주식회사로 운영되고 있으며 사장님은 하느님, 직원은 천사들이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때마침 “미생” 열풍이 불어서 그런지 <“미생”을 능가... 해야 할 이유 같은 건 없는 오피스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로 소개되어 있는 저 문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생”을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상당부분 의식하게 되요. 이 “천국 주식회사”의 임직원 구성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으며 거기도 계약직, 정규직이 있으며 일중독에 호시탐탐 출세를 노리는 야망천사들이 있습니다. 주식회사니까 “원 인터내셔널”의 철강팀, 영업1팀, 2팀 하는 식으로 여기도 과업별 조직과 부서로 당연 구성되어 있구요.
문제는 사장님이신 하느님입니다. 인간세계의 관리라는 본연의 업무는 안중에 없고 인간들의 대중문화와 스포츠에 빠져서 무사태평, 방만 경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주인공인 천사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천국 주식회사의 기적부 산하 종합 웰빙과 직원들로 인간들을 위해 작은 기적들을 생산해 소원성취도 해주면서 잡다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느라 늘 고군분투하는데요, 여자천사 “일라이자”가 기도 수취부에서 기적부로 발령 온 뒤로 하느님이 끝도 없이 쌓여만 가는 인간들의 기도문을 외면한 채 놀고먹자 홧김에 하느님에게 똑바로 일하라고 쏘아붙이죠. 그녀의 쓴 소리에 과연 날라리 하느님이 정신 차렸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눈을 뜨게 해줘서 고맙다 해놓고서는 사업을 접고 은퇴해서 레스토랑을 차릴 결심을 해요
이제 지구는 골치 아프기만 하니까 멸망시키기로 합니다. 지구 종말 선포 30일 전,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이를 결사반대하면서 하느님과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한 조건부 내기를 걸어요. 그것은 서로 짝사랑하지만 고백을 못해서 서로를 엮게 해달라는 소원만을 빌고 있던 어느 소심한 남녀의 데이트를 성사시킨다는 내기였습니다. 앞서 천국 주식회사의 일상도 무척 잼나지만 여기서부터 본격 로맨스 코미디로 넘어가면서 더욱 흥미진진, 유쾌하게 펼쳐집니다.
사실상 인간의 심리를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이나 능력은 천사들에게 없습니다. “빈스”와 “로라”라는 인간 세계의 두 남녀는 상대가 먼저 데이트 신청 해주기만을 바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을 뿐이라 더 이상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떡하든지 서로 만날 기회를 인위적으로 조성해주면 결과가 나오리라 봤기 때문에 천사들은 눈물겨운 조작에 들어갑니다. 어떤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성해줘도 인간들의 심리는 언제나 예측에서 벗어나는 걸 보면 사랑이란 감정은 당사자들의 자유의지가 아니면 그 어떤 기적도 필요 없다는 거죠.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빈스”와 “로라”는 데이트를 하지 않으니 속은 타들어가지만 결말은 결국 예상 했던대로 흘러갑니다.
그걸 알면서도 알콩 달콩 러브라인 구축을 시도하는 갖가지 방법들이 무척 유머러스합니다. 그렇게 낄낄대며 웃다보니 어떤 기시감 같은 걸 문득 느끼게 되네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때 뭔가 신나고 행복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단 생각을 내내 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어느 날 부터 일정한 타이밍으로 대단치는 않지만 그런 일들이 실제 일어나면서 그때그때 즐거워할 때 마다 이거 혹시 내 마음을 신이 읽고 불쌍히 여겨 들어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매일 보았지만 아무런 인연이 없던 어느 누구랑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자꾸 엮이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친해지게 되는 결과까지 낳으니까 더 그런 의구심이 들었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감정이 들기까지의 과정은 추억으로 선물 받은 것은 아닐까 라구요. 책이랑 너무 유사한 상황전개였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이 책은 가볍게 즐기며 읽다가도 특정한 기억과 감정선을 톡하고 건드리기 때문에 웃음 뒤에 감춰진 뭉클한 감동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난 순간 그냥 한없이 행복했나 봅니다. 무지 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