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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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는 여덟 살 소년입니다.

부모님은 늘 언성을 높여가며 싸워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이라 매번 전쟁입니다. 두 분을 어떡하던지 화해시켜 드리고 싶지만 어린 테오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때론 고등학생인 마틸다누나에게 의논해보지만 관심 밖이라는 차디찬 반응만 돌아올 뿐이죠. 이제 테오에게 하나의 바람이 생겼어요. 바로 필승불패의 전략가 나폴레옹을 만나는 것이랍니다. 가족의 화목이야말로 지상과제이자 기필코 승리해야할 전투가 되면서 나폴레옹이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테오가 바라보는 어른들은 늘 전투에서 패배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무던히도 많이 싸우지만 실제로 늘 지고 있어서 어쩌다 이긴다는 게 드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승리를 원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몫이란 거죠. 그러면서 자신만만해하는 허풍쟁이들. 그런데 나폴레옹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는데... 절망합니다. 왜냐하면 죽었다니까요.

그래도 그를 만나려면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른들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요. 하지만 어른들뿐만 아니라 누나까지 모두가 어린 소년의 질문에 처음엔 건성으로 흘려들으니까 아이는 더욱 혼란스럽게 되지요.

 

 

처음부터 집중해서 성심껏 대답하는 척이라도 했다면 테오가 죽음에 대한 고민을 덜 심각 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결국엔 무심하면서도 불명확한 대답들만 마지못해 내놓는데 미래에 어떤 삶을 살건 지 미리 준비해라.”, “나쁜 욕하면 지옥에 가는 거야.”, “십계명이 뭔지 궁금하면 성경책을 읽어봐.”, “네가 내 손자라는 건 말도 안 돼.”, “사람은 죽으면 다시 환생하기 때문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따위의.

 

 

더 이상 이런 어른들한테 답을 구해봤자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하게 된 테오는 죽음을 준비하죠. 죽을 날짜와 장소와 방법까지...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테오가 던지는 질문들이 대단히 거창한 것이 아니라 천진난만하면서도 솔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상천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른들이 들려줄 인생의 해답은 고루하고 뻔할 뻔자가 될 처지지요. 그래서 죽음만큼은 무겁지만 테오의 시각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내내 반짝반짝하며 힘차게 전진합니다. 어른들이었다면 필시 분위기가 달라졌을 테지요. 하지만 죽음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무엇인가 보이지 않은 희망이랄까, 빛이 저 너머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이제 나폴레옹을 죽어 만남으로서 가족의 화목을 되찾겠단 여덟 살 아이의 소망은 애틋하면서 눈부신 성장기가 되어 진정한 승리를 잃어버린 어른들의 경직된 마음에 깊고 아름다운 울림을 전합니다. 그렇게 고통 속의 여정이 마지막에 와서 감동적인 우화로 막을 내릴 때 "테오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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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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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게 되어도

그딴 건 어차피 단순한 허물일 뿐이야. 안은 텅텅 비었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녀석은 그런 거에 매달리지 말고

 속이 꽉 찬 아이랑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은데.” <303쪽 중에서>

 

 

<테두리 없는 거울>은 두 번째로 만나는 츠지무라 미즈키의 단편입니다.

 ‘나오키상수상작인 <열쇠 없는 꿈을 꾸다>에서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를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했었는데 이번에 나온 이 단편집은 장르성격이 노스탤직 호러라고 하기에 군말 없이 선택하게 되었어요. 사실 노스탤직이란 의미가 옛것에 대한 향수라고 했을 때, 다섯 편의 단편들은 누구나 어렸을 적 들어봤음직한 괴담들이 줄지어 나오는데요, 분명 공포를 맛보리라 하고 들어왔는데 페이지가 줄어들면서 어랏하는 순간 전혀 다른 정서로 다가옵니다. 슬프고 애처로운 느낌들이 뒷맛으로 남는 것 같아요.

 

 

가령 계단의 하나코에서 아이카와선생이 과학실에 들어갔을 때 지사코양은 그대로 복도에 서 있다든지, “아빠, 시체가 있어요.”에서 집안에서 시체가 줄줄이 발견되는데도 의외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아버지와 마치 자원봉사 온 것 같은 남친을 보며 이 사람들 비현실적으로 용감한 게 아닌가 싶었죠. 게다가 시체매장 현장에서 여주와 남친은 화기애애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식의... 그런 쿨한 분위기엔 어떤 복선을 암시하고 있었던 거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무언가 있다고 운을 띄우는 전개에 빠져들면 참 묘하단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대박이었던 단편들은 따로 있습니다. 네 번째 단편인 테두리 없는 거울과 마지막 단편인 “8월의 천재지변입니다. “테두리 없는 거울은 일종의 연애주술 같은 것으로 간주해야 할 듯한데, 심야에 촛불을 켜두고 거울을 등지면 미래의 남편감이 비쳐진다는 식의, 좀 많이 들어본 단골괴담이라서 친숙하더라구요. 10대 시절에 이런 괴담을 들을 때면 실제로 이런 또래 여자아이들이 있기는 하는 걸까? 있다 치면 정해진 애정운을 믿으려드는 걔네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물론 재미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 시도가 무모해보였던 겁니다.

 

 

그래서 여학생인 가나코가 남학생 도야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거울 점에 일희일비하다가 그 끝이 어디를 향할 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었던 반전!!! “아비코 다케마루의 모 작품의 그 반전을 연상케 하는, 그러면서도 씁쓸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평범할 뻔 했던 이야기를 교묘하게 잘 뒤집어 놓은 솜씨가 인상적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단편은 왕따 소년과 그 소년을 감싸다 어느 새 같이 왕따로 내몰린 또 다른 소년에게 나타난 구세주같이 등장한 친구 유짱이야기입니다. “유짱은 친구가 없다며 놀림 받던 신지가 욱하는 마음에 가상의 친구로 만들어냈던 아이죠. 실제로 그런 친구가 있다고 우겨보지만 결국 거짓말로 들통 난 후에 더욱 심하게 괴롭힘을 당할 때 혜성같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신지교스케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는데 원래는 없었을 존재였기 때문에 어디서 온 누구인지? 그 정체가 수상쩍습니다.

 

 

중간에 오두막이던가, 셋이 같이 놀러 갔다가 유짱이 바닥에 떨어진 그 무엇을 바라보던 장면에서 혹시나 했었는데... 으음 결론은 의외로 현실적인 끝맺음이었어요. 그지만 유짱의 정체와 운명이랄까 하는 대목은 끝내 감정이 북받치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요. 시간이 지나 이젠 웬만큼 정리했지만 아직 코끝이 시큰하군요. 마음을 뒤흔들 줄 몰랐거든요 ㅠㅠㅠ

 

 

그렇게 10대 시절의 아픈 성장통을 겪는 동안 우정의 참 의미를 깨닫는 바람에 방황하지 않고 올곧게 나아가는 신지교스케”, 두 친구를 보면서 참 따뜻하고 훈훈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호러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우리가 미처 의식할 새도 없이 지나버린 그 시절에 대한 향수와 추억, 연민과 따뜻한 위로가 담겨있어 슬픔과 애처로움이 상쇄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서 읽었던 단편집보다 진일보한 정서로 예상치 못한 재미를 안겨준 츠지무라 미즈키의 얼굴이 평소보다 정감 있어 보입니다. 비록 미의 기준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이제 그녀의 장편은 또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면서 다음 작품으로 만날 날을 기약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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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1970
유하 원작, 이언 각색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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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감독 중에서는 이름만 믿고 보게 되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분이 유하감독님이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제 자신에게는 그렇습니다. 비록 감독님의 모든 작품들을 본 것은 아니지만 불신화된 결혼관을 기치로 내세운 <결혼은 미친 짓이다>, ‘거리 삼부작이라 불리는 <말죽거리 잔혹사><비열한 거리> 등은 모두 청춘이라는 원시성 속에서도 잘 살아보고픈 포부이자 다짐이 씁쓸하게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주먹이든 상관없이.

 

 

이제 거리 삼부작의 세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강남 1970>으로 감독님은 이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고자 돌아왔습니다. 지방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입장에선 70년대 강남개발이라는 역사에 대해서는 크게 잘 알지 못하지만 당시 강남은 대부분 과수원이자 뽕밭, 논 등으로 되어 있었다는 정도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인구과밀 해소, 북한의 위협 등이 실제 강남개발의 주된 이유의 하나일까요? 책속에서의 설명일 뿐, 또 다른 흑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해 봤었지요. 어쩌면 향수이자 욕망을 실현할 배출구 역할을 한 곳이 강남이었을 듯싶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김종대백용기는 고아이자 친형제처럼 지내는 관계로서 허름한 판잣집에 살며 넝마주이로 하루살이를 하는 청년들입니다. 그렇게 살다 갔을지도 모를 이 청년들은 우연히 조직폭력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면서 양아치에서 건달로 바뀌게 되지요. 물론 양아치나 건달이나 그 비열한 성격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정당대회 습격에 참여한 뒤로 헤어진 이들은 각자의 조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먹을 휘두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욕망의 아이콘화 되기 시작하는데 땅종대돈용기라는 캐릭터는 지향점이자 비극의 서막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지요.

 

각기 다른 조직이라는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다 보면 상층부에는 권력이라는 더 굵은 동아줄이 보입니다. 다시 더 높은 곳으로 타고 올라가 보지만 높으면 높을수록 추락의 위험은 더 커지게 되고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재생불능이라는 바닥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이미 권력에 줄을 대면서 건달은 필요에 따라 토사구팽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소신은 나중에 목줄을 죄게 될 암시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국가의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진행되었던 개발은 누군가의 돈줄을 채워줄 명분인 동시에 놀이터였던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라서 피땀 흘려 일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아 내 땅 마련해 보겠다는 소박한 소망은 가진 자들의 유착이 빚어낸 투기 바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 안에서도 배신과 배신이 얽히고설키면서 금력이 세상의 중심이 된 추악한 결과를 남깁니다. 그러면서 달이 차면 기울 듯 뱉어지는 종대용기의 만용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내내 짐작하게 되는 반면, 없이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강길수의 발버둥만이 못내 안타까웠구요.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은 있어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세상이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히 땅 투기 열풍을 넘어 당시 대한민국이란 일국 전반에 걸친 환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70년대는 모두가 못 살았고 모두가 잘 살아보겠다고 불끈 쥔 장기판입니다. 욕망의 화신이 되어 눈이 멀어버린 청춘들은 장기판의 이 되어 이용당하다 자신이 스러질 줄 모르고 아등바등하다 결국 촛불 앞에 타들어가는 불나방이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휘황찬란한 거리가 자태를 뽐내는 강남, 그 땅의 뒤안길에는 비열하고 슬픈 역사가 있었음을 <강남 1970>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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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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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을 읽고 당시에 훅 갔던 순간이 강렬했던 탓인지 미나토 가나에의 제2전성기를 열게 한 새로운 대표작 이라는 입소문은 내심 그만큼 대단하단거야? 라는 호기심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주인공으로 세 여자가 있네요. 먼저 리카는 영어 학원 강사였는데 학원이 부도나서 급여도 못 받고 실직당해 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외할머니다 암 판정을 받아 수술비가 시급한데 의지할 가족도, 별다른 도움도 구할 데 없어 발만 동동 굴려야 할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필요한 여자!!!

 

사쓰키는 사랑의 기로에 서서 한사람만을 선택해야 하고 진실이란 두 단어에 대해 속 시원히 규명하고 싶어 합니다. 또 다른 여자 미유키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지만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불행과 맞닥뜨려서 깊고 질은 수렁에 빠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좌절 끝에 극단적인 시도를 하기엔 어떤 희망의 씨앗을 남겨 둘 필요가 생겼죠. 그렇다면 문제는 과거입니다.

 

 

이렇게 리카”, “사쓰키”, “미유키세 여인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이름이 한자로 , , 을 의미하는 한자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 수 있었어요. 그 상징 또는 기호에서 진작 눈치 챘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세여인 중에서는 리카의 사연이 젤 돋보입니다. 특정 일자마다 꽃다발을 보내주는 “k”라는 사람의 정체와 그 이유가 궁금했던 탓입니다. 키다리 아저씨가 될 것인지. 그 때문에 리카는 할머니의 수술비를 원조 받으려 했었고 충분히 그럴 마음이 드는 까닭도 이해할 수 있죠. 그래도 각 캐릭터들에 대한 감정이입이나 여성작가 특유의 문체에 대한 공감은 같은 여성이라면 더 깊지 않았을 까 합니다. 이럴 땐 여성이고 싶다는.

 

 

그런데 읽는 동안 내내 관심을 동하게 하는 요물이 또 있더라구요. 바로 매향당에서 파는 긴쓰바라고 해서 자꾸 핫바생각나게도 하는데 팥이 들어간 화과자입니다. 사진으로 검색해보니까 정말 군침 돌게 만드는 자태던데 이래서 소설 속에서 틈만 나면 사가던 인기메뉴였지 않을까 합니다. 한 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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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 제56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요코제키 다이 지음, 이수미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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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초등학교 동창생인 마키코, 게스케, 나오토, 준이치가 만나게 되기까지는 23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마키코는 연락이 끊겨버린 게스케준이치의 무정함을 탓했고 나오토는 조용히 그녀에 대한 짝사랑을 키워나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렵사리 네 사람이 재회하게 된 계기는 마키코당신 아들이 도둑질을 했어!’ 이 말을 남긴 전화 한 통화를 받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아들 마사키의 절도를 묵인하는 조건으로 협박하는 나오토의 형 히데유키의 마수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마키코를 돕고자 전 남편 게스케가 협상에 나섰다가 히데유키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사건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데요. 현장을 다녀갔기 때문에 용의자로 몰릴지도 모를 마키코게스케”, 피해자의 동생이지만 난폭한 형을 증오하였던 나오토”, 형사가 되어 친구들을 의심해야 하는 준이치”...

 

 

알리바이는 없고 동기는 있는 사람이 이 중에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아무래도 믿을 수 없었던 네 사람을 다시 한 번 경악케 한 건 범행도구였던 총기가 23년 전 자신들이 몰래 타임캡슐 속에 묻어두었던 총기와 동일하다고 판명 났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총의 지문 같은 강선은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그 원리가 참 신기하다 생각되면서 한편으로는 추억을 묻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면 타임캡슐은 여기서는 더 이상 낭만적일 수 없다 싶습니다. 문제는 준이치가 은행 강도를 뒤쫓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현장에서 범인과 대치했던 그날에 있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과연 있었나?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정황과 심증만으로 23년 전 현장을 퍼즐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는 듯.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진실은 규명되기를 원합니다. 현장보존의 치가 이미 끝나버린 사건을 다시 추리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으니까 나라 형사의 소거법은 일견 논리적으로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의 부인처럼 물증 없이 그게 진실이기만을 믿어보려 하겠지요. 작위적인 느낌을 말끔히 지우기가 힘드니까요.

 

 

과연 후반부를 반전이라고 불러야할지 망설이면서도 묻어버리고 싶었던 아픔이 되살아 날 때 그들의 어린 시절은 사랑과 우정, 추억만으로도 행복했는데, ? 지금은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결과를 낳게 되었을까 라는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남아요. 요즘같이 나이 한 살 더 먹어가면서 소중한 인연을 나누었던 그때 그 사람들이 더 그립고, 재회가 간절할 때는 책 속에서 한사람을 떠나보낼 때 누구는 입술을 깨물고, 누군가는 바로 오열하던 그 장면이 자꾸 자꾸 생각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터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강했던 재회를 읽고 나면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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