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라는 장르가 그렇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일정한 형식과 통합된 언어의 울림 ·리듬 ·하모니 등의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 등 회화적 요소 등에 의해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문학적 형태라 일컬어질 때 여기에는 상상력이 가미될 때도 있다. 그래서 소설과는 친숙하되 시는 낯설어하고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상당히 많은 듯하다. 난해하다고 여긴다고 봐야겠지.

 

 

그런 대중들의 선입견을 일정부분 안고 읽은 <사과에 대한 고집>은 올해 84세의 다니카와 슌타로라는 일본시인의 시46편과 산문8편을 모아 엮은 책인데 처음 읽을 때는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다시 차근차근 읽다보면 삶과 죽음에 관해서 시인이 보여주는 재치와 유머가 묘한 공감과 웃음을 자아낸다.

 

 

머리가 막 나오기 시작했을 때 아기가 묻는다

아버지, 생명보험은 얼마짜리 들었어?”

나는 황급히 대답한다 '사망 시 삼천만 엔인데'

그랬더니 아기가 말한다

역시 태어나지 말아야겠다

 

 

아기가 점잔을 빼며 나를 올려다보고

세계의 인구증가율은?”

 

 

나는 작은 소리로 위협한다

안 나오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 <탄생>

 

 

세상에 둘도 없는 축복이랄 수 있는 생명의 잉태와 부모가 된다는 기쁨을 밀당의 방식으로 아주 재미지게 표현하고 있어서 이 책에 실린 시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냥 머리로 분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읽고 받아들여도 즐겁게 때론 짠하게 와 닿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될 것이다. 화려한 수식도 없는데다 문장부호가 생략되어 있기에 형식보다 자유분방함이 일상에 배어있지 않나 싶은 것이 작가이다.

 

 

실제로도 국민시인이라는 영예스러운 호칭에도 불편하다 생각한다고 하니 그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시와 좀 더 친숙해 질 계기를 이 책에서 찾으면 어떨까? 작가의 말대로 깊이를 먼저 찾지 말고 얇게, 가볍게 시작하는 시와의 데이트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 춤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나와 춤을>에는 1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장편보다 단편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 짧은 호흡동안 느끼는 찰나의 순간들이 편하다. 구질구질하지 않게 치고 빠지기가.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단편은 역시 <충고><협력>이라는 세트겠다. 개와 고양이를 얘기할 때 흔히 개는 충의 상징으로 치켜세우는데 반해 고양이는 요물, 천덕꾸러기, 불길함으로 표현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접한다. 한밤중에 골목 어디선가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밤잠을 설칠 때 발정기 때문이란 이유를 알아도 여간 신경이 곤두서는 게 아니다. 요샌 조용하지만.

 

 

그래서 외계종족에 의해 삐리리 광선을 맞고 나서 글을 쓸 수 있게 된 개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엽편 <충고><협력>은 이미 어떤 결말을 보여줄지 예상은 가능하다. 그런데도 개가 평소 주인이 자신에게 잘해준 점에 대하여 감사하는 서두는 몇 번을 읽어도 키득키득 웃게 된다. 아울러 어렸을 때 키웠던 강아지가 얘들처럼 글을 쓸 수 있었다면 무슨 내용을 담았을지 상상도 같이 해보는데 기억에는 그리 잘 놀아주지는 못했으니 고독함을 절절히 써 내려가지 않았을까 라는 정도의 예상은 가능하다. 암튼 미안하구나. ◯◯!

 

 

개는 그렇다 치고 고양이는 앞서 말한 대로 여전히 환영 못 받고 귀찮고 성가신 존재라는 편견인지 오해인지... <이유>에서도 일단 찬밥 신세이다. 산책 중이던 고양이 두 마리가 낮잠 자는 나의 머리를 밟고 지나가다 양쪽 귓구멍 속에 차례차례 빠진다는 이야기 말이다. 왜 하필 빠진 녀석들이 고양이였을까? 내 귀에 캔디도, 내 귀에 도청장치도 아닌 이 녀석들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제목 그대로 이상하고 우스꽝스런 어떤 현실의 이유로 사용되는 설정이라니. 아놔, 재치라고 해야 하나, 미리 결말을 정해두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치고 나가기였을 것 같은 황당무계함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확실히 좋은 탄력이다. 주저 없이.

 

 

그 밖에 <소녀계 만다라><나와 춤>을 같은 단편들도 유머러스하거나 그리움, 회한 등의 정서가 각각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흘러나간다. 이 모든 단편들을 모두 애정 한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밤의 피크닉>이나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이후, 그래도 가장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온다 리쿠의 작품세계가 아닐까 싶다. 특히 마지막 단편은 해설을 읽지 않음 결코 발견조차 못할 마블 히어로물의 쿠키영상 같은 무슨 암호문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빌스 스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5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형사들의 가장 끔찍한 악몽에서 나온 살인마.

그 형사의 사고 회로가 어떻게 생겨먹었느냐에 따라 악몽일 수도 있고

평생 고대하던 꿈일 수도 있어.

악몽이라고 하는 이유는 범인에게 동기가 없기 때문이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동기가 없지

 

 

<스노우 맨>을 읽었을 때부터, 아니 <레오파드>였을까요? 호주에서의 살인사건 못지않게 리 홀레의 과거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았던 또 하나의 사건에 내내 신경이 쓰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시급히 끄는 일도 중요했지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라는 궁금증에 오슬로 3부작의 완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드브레스트>, <네메시스>를 거치는 동안 많은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해도 오로지 왕자님만이 중요했을 뿐. 이제 드디어 3부작의 종점을 만나러 갈 차례입니다.

 

 

이번만큼은 오슬로의 불볕더위가 배경이군요. 늘 눈과 추위에 익숙해 있었는데 말이죠. 첫 번째 살인사건. 어느 아파트의 아래층 천장에 갑자기 물이 새기 시작하자 그 집 부부가 위층에 가봤더니 한 여성이 손가락이 잘린 채 죽어있는 겁니다. 게다가 눈꺼풀 속에는 붉은 색의 별 모양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네요. 그리고 며칠 후 발생한 실종사건, 뒤늦게 발견된 실종자의 시체에도 잘린 손가락에 똑같은 다이아몬드가 끼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범인이 남겨둔 메시지임에 분명했고 심상치 않다 싶어 뮐레르경정은 해리 홀레톰 볼레르의 합동수사를 명합니다. 둘 사이는 분명 껄끄러운 사이였지만 궁여지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해리는 파트너였던 여형사 엘렌의 죽음에 따른 후유증을 극복 못해 심각한 악몽과 알콜중독으로 폐인으로 지내던 중이었습니다. 거기다 라켈과의 원만치 못한 관계는 더욱 고통의 심연으로 내몰던 참입니다. 분명 결단 내려야할 순간입니다. 이대로 해고당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현장에 복귀할 것인가. 다행히도 정신 차린 해리는 앙숙인 과 손잡고 연쇄살인마 검거를 위한 수사에 착수해요. 그리고 연쇄살인 사건현장에서 해리는 범인이 별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상징하는 악마의 별에서 살인패턴을 예측해내는데... 과연 그 예측이 맞아떨어질까요?

 

 

분명 피살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암호화된 메시지에서 범인의 동기를 밝혀내는 일이 가장 우선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단 암호를 푸는 원리를 유추하기 위한 무의식과 직관의 쓰임새는 성공적이었다고 판단됩니다만 결과적으로 정해진 루트를 충실히 답습하는 그 과정에서의 허점을 노린 그 무엇인가가 들어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다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마무리 하려했던 성급함에서 비롯한 복선들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았기에 잘못된 결과를 낳을 뻔 했지만 현명한 해리의 촉이 그 한계를 가뿐히 넘는 과정들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왕자님가면 벗기기에 끝내 성공함으로서 이야기의 두 축은 효율적으로 배치, 전개되었고 해리를 짓눌렀던 악몽들이 속 시원히 해결되어 덩달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듭니다. 동화 속처럼 왕자와 거지라는 계급의 희생자였던 해리의 명예회복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려했던 삐뚤어진 가치관을 바로잡음으로서 완성되었네요. 그렇게 해서 어둠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꿋꿋이 버텨낸 해리의 정의실현이 통쾌함을 안겨주는 오슬로 3부작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청멍충한 - 기묘한 이야기에 담아낸 인간 본성의 아이러니
한승재 지음 / 열린책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엄청 멍충한>

    

한승재라는 이름의 작가는 처음 들어본다. 알고 보니 정식으로 작가 등단과정을 밟지 않고 자비로 길거리에서 직접 책을 내다 팔던 중에 열린책들의 눈에 띄었는지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길거리 캐스팅이나 신고 선수 정도로 보면 될 거 같은데 솔직히 이채롭기도 하고 재능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나 자신이 동경할만한 데뷔 스토리이다. 가당치도 않은 망상이지만. 내게는.

 

 

그런데 낯선 작가라 선뜻 정주기 힘들다고 봤을 때 책표지가 첫인상을 좌우하는데 이상했다. 무 그림이야? 배추포기 쌓아놨나? ? 아니다. 비둘기 떼들이다. 아하, 단편들 중에 비둘기파티가 있어서 그걸 표현했나. 가까이서 보기보다 멀찍이 보면 그제야 독특하구나.
, 그리고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을 꼽자면 주저 없이 지옥의 시스템을 언급하련다. 지옥을 건축한 헤르메스라는 자가 있다. 지옥의 한가운데 맹수의 평야라는 곳이 있어서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그 갈대 사이사이에 맹수들이 숨어 있다 사람들의 발목을 깨문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지옥이지. 이 양반들아.

 

 

당연히 생전에 죄지은 너희들은 이런 고통 받는 것은 타당하다는 게 헤르메스의 지론이겠지만 맹수들로 잠시도 편히 쉴 수 없는 사람들은 맹수에게 당하지 않고 사냥하는 방법을 강구해달라고 한다. 친절한 헤르메스는 러닝머신 같은 높이 있는 기계를 고안해 사람들의 걸음을 동력원 삼아 바퀴가 믹서기같이 맹수들을 주스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사람들은 일제히 기계에 올라타 환호했고 대신에 맹수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나갔다.  

 

 

이제 여기를 천국이라 착각하는 사람들마저 생긴다. 그런 만큼 행복한 웃음이 넘쳤을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뛰는 것까지는 좋은데 원래 러닝머신이라는 기계는 전원을 정지시키지 전까지는 계속 달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헤르메스는 결코 천사표가 아니었으니 처음부터 이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지. 그래서 엄청 멍충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근시안적 사고에서 못 벗어나는 이 우매함이란, 정말!!! 짧지만 생각거리를 남기는 단편이고 다소 억지스런 대입이지만 조삼모사가 연상된다.

 

 

다른 단편들도 거의 비슷한 느낌들이다. 작가가 허풍 때리며 능청스러울 때, 그것의 외피가 그렇게 견고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럴싸하다며 받아주도록 글을 써내려갔다. 그 점에서 고민 않고 기묘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 마냥 읽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예사롭지는 않다. 상대성이론이나 진화론 같은 과학적 지식과 환경문제까지 아우르는 주제 접근방식은 신선한 편이니까. 게다가 분량은 많지 않은 대신 처녀작임을 감안하면 다소 매끄럽지 않은 문체는 감안해 주어야 할 것이며, 약속시간이 남아있다면 잠시 짬을 내 읽기에 좋지 않을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초 사고
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순간의 결정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문구가 생각나는 <0초 사고>. 늘 조급한데 결정은 그때마다 늦어서 우물쭈물하다보면 일이 적시에 진행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인생에서 중요한타이밍을 놓쳐 낭패 본 사례가 부지기수라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그래서 이 책 제목에서 해답을 얻고 싶었다. 도대체 빠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망설이는 시간 0, 고민하는 시간 0. 놀라운 속도로 의사를 결정하고, 전광석화 같이 행동으로 옮기는 결말을 바로 0초 사고라고 정의하고 있다. 0초 사고를 실행하기 위한 첫 단계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나 감각을 말로 바꿔보기를 권장하는데 모호하면서 금세 잊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말로 바꿔보고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말 것. 다음 단계는 메모해보는 것이다. 그 판단은 사실 쉽지 않다. 이런 말까지 써보아야 하냐며 자체검열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금방 익숙해지면서 아무래도 불가능할거야. 건의해 보나마나야 라는 불안한 감정이 샘솟는 단계도 잠시, 마음에 걸렸던 부분을 넘어서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점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그 메모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는 정말 유용한 팁이다. 메모할 때는 A4용지를 가로에 두고 왼쪽 위에 제목을, 1페이지에 4~6행만(각 행 20~30), 1페이지를 1분 안에 쓴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위해 친찬과 노고치하, 조언을 안배해 쓰고 잘 안 돼도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메모를 계속 쓰다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가 사라진다고 하니 메모 맹신론을 넘어 정리를 체계화해서 능력을 최고조로 극대화 시키는데 이만큼 효율적인 실천방법은 드물겠단 생각이 든다. 또한 노트나 일기, 워드면 안 되는 상세한 이유와 메모 쓰기에 적합한 펜으로 <직액식 수성 볼펜>을 추천할 정도로 메모를 위한 모든 정보가 망라되어 있어 차분하게 읽어가면서 실천한다면 어느 새 나도 모르게 감정을 쏟아내는 대신에 시간낭비를 줄일 0초 사고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이 한국의 LG그룹에서 경영혁신 프로젝트팀에서 근무했다는 저자의 이력에 덧붙여 누구나 초고속 사고개조가 가능하다는 호언장담이 결코 허술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