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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멍충한 - 기묘한 이야기에 담아낸 인간 본성의 아이러니
한승재 지음 / 열린책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엄청 멍충한>
한승재라는 이름의 작가는 처음 들어본다. 알고 보니 정식으로 작가 등단과정을 밟지 않고 자비로 길거리에서 직접 책을 내다 팔던 중에 열린책들의 눈에 띄었는지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길거리 캐스팅이나 신고 선수 정도로 보면 될 거 같은데 솔직히 이채롭기도 하고 재능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나 자신이 동경할만한 데뷔 스토리이다. 가당치도 않은 망상이지만. 내게는.
그런데 낯선 작가라 선뜻 정주기 힘들다고 봤을 때 책표지가 첫인상을 좌우하는데 이상했다. 무 그림이야? 배추포기 쌓아놨나? 어? 아니다. 비둘기 떼들이다. 아하, 단편들 중에 “비둘기파티”가 있어서 그걸 표현했나. 가까이서 보기보다 멀찍이 보면 그제야 독특하구나.
음, 그리고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을 꼽자면 주저 없이 “지옥의 시스템”을 언급하련다. 지옥을 건축한 헤르메스라는 자가 있다. 지옥의 한가운데 ‘맹수의 평야’라는 곳이 있어서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그 갈대 사이사이에 맹수들이 숨어 있다 사람들의 발목을 깨문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지옥이지. 이 양반들아.
당연히 생전에 죄지은 너희들은 이런 고통 받는 것은 타당하다는 게 헤르메스의 지론이겠지만 맹수들로 잠시도 편히 쉴 수 없는 사람들은 맹수에게 당하지 않고 사냥하는 방법을 강구해달라고 한다. 친절한 헤르메스는 러닝머신 같은 높이 있는 기계를 고안해 사람들의 걸음을 동력원 삼아 바퀴가 믹서기같이 맹수들을 주스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사람들은 일제히 기계에 올라타 환호했고 대신에 맹수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나갔다.
이제 여기를 천국이라 착각하는 사람들마저 생긴다. 그런 만큼 행복한 웃음이 넘쳤을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뛰는 것까지는 좋은데 원래 러닝머신이라는 기계는 전원을 정지시키지 전까지는 계속 달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헤르메스는 결코 천사표가 아니었으니 처음부터 이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지. 그래서 엄청 멍충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근시안적 사고에서 못 벗어나는 이 우매함이란, 정말!!! 짧지만 생각거리를 남기는 단편이고 다소 억지스런 대입이지만 ‘조삼모사’가 연상된다.
다른 단편들도 거의 비슷한 느낌들이다. 작가가 허풍 때리며 능청스러울 때, 그것의 외피가 그렇게 견고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럴싸하다며 받아주도록 글을 써내려갔다. 그 점에서 고민 않고 기묘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 마냥 읽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예사롭지는 않다. 상대성이론이나 진화론 같은 과학적 지식과 환경문제까지 아우르는 주제 접근방식은 신선한 편이니까. 게다가 분량은 많지 않은 대신 처녀작임을 감안하면 다소 매끄럽지 않은 문체는 감안해 주어야 할 것이며, 약속시간이 남아있다면 잠시 짬을 내 읽기에 좋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