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전이의 살인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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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의 남녀가 모인 작은 패스트푸드점 치킨 하우스에 한 가지 메뉴만 판다고 했을 때 갑자기 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왜 그 메뉴만 팔고 이상한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해하다가 각양각색의 남녀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는 분명 적지 않는 트러블이 빚어질 것도 같았다. 역시 일본 추리소설이니 주인공격인 일본인 토마 에리오, 그는 헤어진 여자 친구를 찾아 이곳 미국까지 날아왔다. 가게를 지키고 있는 흑인 종업원 바비, 너 그렇게 어린 녀석이었더냐? 미모의 여성 재클린은 배우 지망생으로, 그밖에 프랑스와 일본인 남녀 커플인 알랭과 아야코, 마초적인 남자 랜디, 아랍계 유학생 하니 까지 정말 인종, 성별, 국적별로 다양하게 구색을 맞춘 등장인물들이라고 하겠다.

 

 

지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다가 갑작스럽게 지진이 발생하여 정신 차려 보니 수상한 장소에 빠져 있었는데 사람 사이의 인격을 교체하는 미국 정부의 비밀시설이었던 것이다. 소위 매스커레이드현상으로 불리는 이 기묘한 소동 속에서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인격이 막 서로 전이된다. 누가 누구인지 초반에는 열심히 집중해서 차례차례 따라가면 되지 않겠느냐며 머릴 굴린 탓에 몸과 인격의 분리는 이해했다만 역시나 살인이 일어나게 된 동기와 범인, 즉 그 인격이 누구냐는 것에서는 친절한 해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책에서 언급된 범인의 인격을 전이시켜 범죄현장을 제압한다는 발상은 어디선가 최근에 연구 중인 프로젝트로 들은 적 있어 상당히 참신하다.. 또한 실제로 인격이 전이되었다면 몸을 저당 잡힌 당사자는 자신의 범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입증할 방법이 없어 최악의 경우 사형집행 당하는 꼴을 겪을 수 있겠다 싶다. 아니면 영화 페이스오프처럼 성형대신 인격전이를 통해 교묘하게 용의자 선상에서 빠져나가는 나쁜 놈도 존재 가능하겠다.

 

 

결국 추리소설로 시작해서 로맨스물로 끝맺음하는 전개와 결말도 인상적이거니와 내내 머리 속을 지배했던 생각은 추리보단 남의 몸에 내 인격이 들어간다면 어떨까? 라는 즐거움이었다. 가령 미녀의 몸에 들어가 흐뭇하게 스스로를 훔쳐보는 동안 몸을 내준 미녀의 분통을 상상하니 어찌나 웃기던지, 고약한 음란마귀가 씌었음에 분명하다. 책 속에는 그런 응큼함과 남색이라는 엽기적인 시도 또한 존재한다. 그래서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일곱 번 죽은 남자>처럼 추리와는 별개로 유쾌함이 잘 녹아있는 아이디어가 괜찮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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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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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Grandmother Sends Her Regards and Apologises”

의역 없이 직역으로 지어진 제목을 보면서 오베라는 남성 화자에서 할머니-엄마-손녀로 이어지는 여성 화자들로 잽싸게 변신한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참 인상적이구나 싶다. 시작부터가 참으로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게 우선은 요 녀석 엘사 때문이다. 좋게 말하자면 똑 부러졌다고 덕담이라도 건네야 인지상정이겠지만 그 점이 지나쳤을 때는 제발 다른 아이들처럼 조신하게 지내면 안 되겠느냐며 사정하고 싶을 정도로 무지하게 튀고 거칠고 사나우며 뒷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막말을 일삼는 아이다.

 

 

동물원에서 사자 한 마리가 뛰쳐나올 줄 알았다. 이러니 이들한테 왕따 당하며 날이면 날마다 추적자와 도망자의 관계로 런닝 걸이 되는 거다. 일곱 살 밖에 안 된 꼬맹이가 이처럼 욕 잘하는 것은 다 엄마 피, 아니 일흔 일곱 살 잡수신 할머니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음에 틀림없다. 피는 못 속인다고 어쩜 그렇게 둘이 판박이인지. 할머니는 연세를 무색케 할 만큼 동네를 휘젓고 다니시는데 처음에 할머니와 손녀 사이가 엄청 불편해 보였는데 결국 두 사람 사이의 정은 끈끈하다 못해 부모님과 딸 이상을 넘어서는 특별한 우정이다.

 

 

엘사는 늘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겐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한다고. 우리에겐 무척 별난 할머니가 엘사에게는 둘도 없는 완벽한 지원군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반항과 말썽으로 시끌벅적하게 살던 소녀 엘사에게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주던 축이 일시에 무너져 내린 듯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할머니 없는 세상은 무의미하다며 더욱 반항이 심해져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가신 할머니의 마지막 안부편지가 있었다. 단순히 생전의 추억을 되살리는 의미를 넘어서서 이웃 사람들 모두의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를 통한 따뜻한 교감을 이끌어내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내내 펼쳐진다. 분명 시작은 어마 무시한 짜증으로 출발하였지만 작가가 오베 라는 남자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그 메시지와 스타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도 엘사야, 넌 좀 심하구나. <제시 램의 선택>의 제시, <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딸내미, 그리고 이 소녀까지 요즘 줄지어 야생마 같은 소녀들이 날뛰고 있어서 별로 사랑스럽지 않다는 점이 유감스럽다. , 세리든 너도 빼놓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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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온 스노우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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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애정 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지만 세상만사 치열하다보니 이 책을 읽을 타이밍을 놓쳤었다. 알다시피 그간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경우 만만치 않은 두께의 압박으로 흉기수준이라는 세간의 평도 무시할 게 못되었던 것도 사실인지라 이번처럼 2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에 어떤 이야기를 압축해 두었을까 내심 궁금했다. 여기 이 남자. 히트맨으로 먹고사는 올라브는 보스로부터 바람이 난 아내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물론 아내의 살인범으로 남편이 유력한 용의자 선상에 오르는 일 없도록 적당히 알아서.

 

 

보스의 아내는 무척 매력적이었는데 평소처럼 주변에서 그녀를 관찰하다가 상대남에게서 구타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장면에서 다음 단계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통속적인 설정으로 나아가는 단계이니까. 이런 남자는 흔히 어렸을 적에 가정환경이 온전치 못했던 케이스가 다반사인데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에 대한 응징은 지금에 와서도 불의를 참고 넘어가지 못하게 시동을 걸어버린다. 남자를 살해하고 곧바로 백마 탄 왕자님이 된 올라브와 그에게서 사랑을 느낀 것 같은 여자.

 

 

하지만 여기에 작은 반전이 있다. 살해당한 남자와 보스의 관계는 오히려 올라브를 위험으로 몰아넣게 되니 여기서 죽지 않고 살아 그녀를 지키겠다는 반격의 의지는 멋진 액션 시퀀스로 전환된다. 반격이 반전이 아니지만. 어떤 결말로 끝맺게 될지 큰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보스의 아내와의 애정도피만이 전부였다면 나 역시 진부하다고 그랬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야 가서 마음이 바뀌어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일단 로맨스물에 가깝긴 하지만 먼저 보여준 패의 이면에 숨어 있던 다른 감성이 날 울렸기 때문이겠다.

 

 

통속과 감성이 결합되어 눈물은 안 나오지만 코끝이 시큰해지는 이 기분을 무엇으로 설명해야할까?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마, 보스의 아내, 그리고 또 다른 여자까지 그녀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갈 독립적인 객체가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고 체념하고 마는 수동적 객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녀들과의 관계에서 끝내 발을 빼지 못한 채, 그대로 개미지옥에 빠져드는 모습 하나하나가 아프게 다가왔던 거다.

 

 

때문에 혹자들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는 식의 혹평을 가하기도 하는데 봄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오늘 같은 밤이면 이 이야기는 내겐 센티멘털하게 다가온다. 습작이 아니라 정수였던 셈. 그리고 듣자하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다고도 하더라, 마지막 장면을 영상으로 상상하면 그만한 적임자도 없을 듯싶어 벌써부터 진한 우수를 예약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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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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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동료들끼리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딸을 낳았는데 이쁘면 됐어. 넌 공부할 필요 없어. 그냥 이쁘게 자라기만 하면 돼.” 반대로 못생겼으면 연애 따위는 꿈도 꾸지 말고 그냥 공부만 해.”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간 배경이 무엇인지는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외모가 한 여성의 진로랄까, 경쟁력의 지표인양 설명되던 성격의 주제였던 것이다. 누구나 외모 콤플렉스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평범한 외모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정말 못생겼다는 극단적인 설정이라면 그때부터는 당사자는 심각해질 수밖에.

 

 

여기 이 소녀 레베카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인정하고 들어간다. 단순히 못 생긴 게 아닌, 진짜로 못생겼다고 말이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자신의 외모는 인간이란 종에 대한 하나의 모욕이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모욕이라고까지 말할까, “사내아이기만 했어도!”, “어쩌면 저렇게 못생겼을 수가, 내 딸이 아니고 네 딸이기에 망정이지.” 레베카의 외모를 둘러싼 주변의 박대는 줄을 잇는다.

 

 

심지어 유전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보는 레베카. 분명 아버지는 미남인데... 딸은 아버지를 닮게 마련이지. 그러고 보니 <화과자의 안>의 여주 안짱도 아버진 문제없었지 않나.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딸이 이렇다보니 엄마조차도 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공허하다 못해 불행한 출산으로 받아들이니 참 뭐라 말할 수조차 어려울 정도로 소녀가 행여 상처받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서두에 언급했던 일화처럼 외모라는 핸디캡에서 자유롭지 못한 레베카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려 했던지 고모가 피아노를 쳐야할 이쁜 손이라며 그때부터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한다. 고모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레베카에게 살 길은 오직 피아노뿐이니 죽자 사자 파고들라고 했을 때 못생긴 딸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다 죽은 엄마는 자신의 딸이 이런 천부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을 진즉 인정해주었더라면 서로 마음의 짐을 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신은 때때로 공평하기도 한 동시에 잔인하기까지 한 것처럼 보인다.

 

 

못생긴 여자아이도 물론 꿈꿀 수 있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나는 일은 매번 밑도 끝도 없는 추락이다. 그래서 그녀는 꿈꾸는 법도 머지않아 잊게 될 것이다.”라는 책 속의 말처럼 레베카는 노후에도 꿋꿋하게 잘 버텨내며 또 다른 행복을 성취했을지는 정말 모른다. 아마 현실에선 코미디 프로에서 여전히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가 웃음의 소재가 되는가 하면 나 자신조차 신입 여직원을 채용할 때 외모에 더 배점을 주었던 기억도 추가로 난다.

 

 

결국 이 이야기는 그런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교훈이나 비판을 주려하는 의도 대신 어떻게든 자신만의 재능으로, 자신만의 소신으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해나간다는 행군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불평한들 세상은 완전히 바뀌지 않으니 다른 살 길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였던가 보다. 그런 취지의 책들이 요즘 들어 부쩍 보이는 까닭도 판타지보단 현실이 더 가깝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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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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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까지 구차하게 결혼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나 싶었다. 그들도 누구처럼 달달한 사랑에 빠져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 적도 있었겠지만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러하지 않나? 마치 껌을 씹는 행위에 비견할 수 있을 텐데 처음에는 맛나지만 점점 단물이 빠지고 나면 결정을 내려야한다. 계속 의미 없어도 습관처럼 씹던지, 껌 종이에 사서 버리든지 같은 것 말이다. 전작에서 딸내미가 납치된 사건을 겪은 뒤론,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단 자체가 신기할 따름인데 여기 파킨슨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조에게 새로운 사건에 개입할 차례가 돌아왔다.

 

 

딸내미의 친구 시에나가 피를 흘리며 줄리안의 집을 찾아왔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행방을 찾아 나선 조는 시에나를 발견한다. 그렇지만 시에나에겐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평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그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리게 된 것.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시에나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조. 여전히 파킨슨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호받기는커녕,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에 시달려서 루이츠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더 큰 곤경에 처했을 테지.

 

 

시에나와의 대화에서 조의 나이가 마혼 아홉이었단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면서 그릇된 사랑 에 빠져 이성을 망각해버린 이 소녀, 아니 이런 부류의 소녀들... 그 어리석음을 비집고 들어가 꼭두각시로 조종하려드는 뭇 어른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 더 클까? 이 어른들은 알고 보니 그 또래였을 때 이성에게 모멸을 당한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어른이 된 뒤로는 전지자가 된 착각으로 뒤늦게나마 보상받으려던 못된 심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점만으로 이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만 있나?

 

 

모든 의미에서 아이는 자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조의 말처럼 일단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쁨대신 가시방석이 될 수 있음을 찰리와 시에나의 경우를 보더러도 능히 짐작 가능하다. 해리 보슈의 딸 정도만 되어도 내가 아버지라면 애정을 갖고 키울 수 있겠지만 이런 여자아이들은 차원이 다르다. <블러드 온 스노우>에서 주인공이 했던 말을 떠올려보라. 이성관에 대해.

 

 

결국 도서관에서 저질스런 욕들을 주고받던 소녀들에게서 눈살을 찌푸렸던 불쾌한 기억(나의 기억이다.)처럼 마치 순백의 순수함의 결정체인 것 마냥 포장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때가 묻을 대로 묻어버린 그들이 어른들의 세계에 손가락질 할 만큼 동정표를 얻을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한사코 아니라고 매몰차게 답하겠다.

 

 

니들이 어른이 되어봐. 세상이 바뀌어져 있는지. 그렇게 잘난 니들은 도대체 어른이 되어 한 게 뭐냐? 게다가 이제 조도 조만간 결정을 빨리 내렸으면 좋겠다. 후딱 이혼해서 아내와 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애니와 살림을 차리거나 독신으로 살면서 범죄세계에 맘 놓고 발을 들였으면 한다. 범죄소설인데도 지나치게 가정생활에 할애한 지면이 많아 답답할 때가 자주 있다. 구질구질하게 연연 말고 쿨 하게 신변정리를 합시다. 더 이상 관계회복은 물 건너 같수. 사람과의 관계는 쌍방소통인데 아내와 딸내미도 싹수가 노란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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