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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미니어처는 물론 나도 좋아한다. 실물과 동일하면서 정교하고 작은 모형을 일컫는 미니어처를 제대로 제작할 줄 아는 장인을 볼 때 마다 그 솜씨가 경이롭기 그지없다. 여기 그런 사람들 또는 그런 것들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미니어처 리스트를 제목으로 달고 나온 소설 한편이 나왔다. 작가 제시 버튼이 여름휴가 중 우연히 네덜란드 국립박물관에서 화려한 미니어처 하우스를 보고 소유자의 인생에 대한 상상을 소설로 쓰겠다는 결심에서 탄생한 이 소설은 처음부터 환상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 예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17세기 말 네덜란드. 당시 네덜란드는 신성로마제국의 간섭을 벗어나 독립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동인도회사, 서인도회사를 각각 설립하여 전쟁을 치루며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까지 진출하는 등 소위 골든 에이지라는 번영기를 누리던 국가였다. 그 중심에 서 있던 1686년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성공한 상인 요하네스 브란트의 대저택 문을 두드린 소녀가 있었다.그 소녀의 이름은 페트로렐라로서 이제 겨우 18세를 맞은 어린 소녀였는데 지금의 기준에서 본다면 더욱 어리다고 보여 질 것이다. 하지만 갓 결혼을 한 어엿한 신부이고 그녀가 찾은 이
집은 바로 남편의 집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남편은 썩 환대하는 것 같지 않은데다 이 집 식구들, 시누이 마린이나 하녀 코르넬리아마저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데 시대상을 돌아보건대 결혼은 여인들에게 현모양처의 길을 통해 남편의 사랑을 얻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통로에 지나지 않았을 터, 그녀가 꿈꾼 달콤한 신혼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곳에서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럽고 위험해 보인다.
그렇게 아슬아슬하면서도 답답하게 이어지던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어느 날 남편 요하네스가 결혼 선물로 준 미니어처 하우스는 실로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가격으로 환산해도 상당한 고가를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미니어처를 보니 뭔가 예사롭지가 않다. 이 미니어처하우스에는 어떤 예언 같은 메시지랄까, 그런 게 새겨져 있는데 어떤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 저택과 식구들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그 느낌마저 으스스함을 드러내고 있기에 불안감은 점차 높아져 간다. 미니어처의 문을 열 때 마다 두려움에 휩싸인 그녀는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세속적인 삶을 꿈꾸었던 그녀와 달리 남편과 주변 인물들의 내면에 또아리를 튼 거짓과 위선, 진실과 비밀들이 미니어처 속에서 미로처럼 움직이는 순간들이 놀랍도록 강렬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캐릭터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 동시에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대단한 몰입감과 속도감을 보여주는데 처음에는 연약했던 한 여인이 시련을 딛고 나름의 자아를 획득해가며 견고해지는 성장소설로 읽어도 좋을 만한 매력적인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