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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잘 다루지 못하는 새 노를 손에 들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나는 작은 보트를 젓기 시작하고 있었다.
곁눈질하다가는 금방 밸런스를 잃고 말 것이다.
보트는 어느 틈엔지 온화한 만을 빠져나가
망망한 큰 바다의 일렁임 속에서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p.215>
너무나 청량한 녹음이 우거진 책 표지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늦여름의 무더위가 잠시 가시는 것 같은 느낌을 먼저 받는다. 그리고 선과 선이 이어지는 미완성의 건축물의 형태, 그 곳에서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달콤한 낮잠을 청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 소설은 편안하고 단아하게 내게 다가왔다가 스르르 물러가고 있었다. 주인공인 ‘나’ 또한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청년인 ‘나’는 건축학과를 졸업했지만 딱히 전공을 살려 건설회사에 취직한다든지 같은 일반적인 진로를 설계하고 있지 않은 대신 존경에 존경해마지 않는 ‘무라이’ 선생의 그림자를 뒤 따라 가고 싶다는 소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열정을 선생님이 알아주셨다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 순간이련가, 실제로도 그랬다. 대학 재학 중 어쩌다 선생님의 눈에 들어 ‘무라이 건축사무소’에 입사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으니까.
아무나 그런 기회를 부여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감격은 더 컸다. 채용이 결정된 결정적 이유는 ‘국립현대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설은 여름 별장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먼저 일어나시고 나는 서고에서 지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거처럼 여기는 여름휴가를 보내러 온 곳이 아니기에 어디까지나 ‘국립현대도서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모든 일정이 돌아가는 중이었고 그에 맞춰 입찰에 들어가 낙찰되었을 경우에 대비하는 방안, 설계, 의견 교환 등 과업 진행은 또 하나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선생님의 조카 ‘마리코’와의 생활에서 건축의 영원성, 더 나아가 사람을 위한 인본주의적 건축을 지향하면서 딱딱한 콘크리트 위에 소박함과 편안함, 단아함을 모두 심고 싶었던 꿈을 실현해 나가는 마음의 자세를 배운다. 이 소중한 시간들을, 꿈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계속 해나가고 싶은 청춘의 땀방울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담담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비록 건축이란 시스템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그냥 내맡기면 되었다. 졸졸졸~~ 그런 소리를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