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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포 킬러 - 본격 야구 미스터리
미즈하라 슈사쿠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4월이다. 누군가는 잔인한 달이라고도 하지만 내게는 설레임과 흥분으로 충만한 기쁨의 달이다. 그것은 내가 열렬한 야구광이라는 이유때문이고, 4월은 프로야구가 개막하는 출발점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관중 700만이 목표로 설정되고 연초 승부조작 파동으로 한 바탕 홍역을 치르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이 때에 야구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 나왔다. 일본 미스터리 작가의 등용문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우연의 일치인지 홍보효과를 노린 마케팅 전략인지 알 수 없으나 타이밍이 절요하다. 바로 프로야구 승부조작 스캔들을 모티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팀 팬들에겐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을 되살려내는 이 소설은 야구와 추리의 만남을 통해 야구가 보여 줄 수 있는 다양한 이면을 끄집어내며 즐거움과 씁쓸함이 만감처럼 교차된다.
일본 내 최고의 인기구단 오리올스 소속의 좌완 투수 사와무라는 시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초면의 남자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뜬금없이 폭행당한다. 차마 경찰에 신고도 못한 상태에서 선배투수의 150승 달성 기념파티에서도 다시 그 남자와 그의 패거리와 마주치면서 또 다시 당해버린다. 도무지 정체도 알 수 없고 이유로 모른 채 폭행당해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투서가 날아들면서 억울한 누명에 빠지게 된다. 사와무라는 의혹의 눈초릴 좀처럼 걷지 않는 세상에다 직접 결백을 증명하고자 홀로 배후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과연 선수생명과 결백을 걸고 벌이는 사투의 결말과 숨겨진 진실은?
이 소설 제목에서 말하는 “사우스포”는 좌완 투수를 일컫는 말이고 우완 투수보다 더 상대적인 희소가치를 인정받는 야구계에서 하루아침에 승부조작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여론의 뭇매 속에서 팀 내 위상도 위협받게 되었으니 이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닌거다. 더군다나 일본 최고의 인기구단 소속이다 보니 구단고위층과 관계자는 스캔들로 인한 구단 이미지 악화차단에 우선하다보니, 장작 선수의 진심을 들어주는 것에 는 무척이나 인색하다. 진퇴양난의 위기에 옷 벗을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리는 비정한 프로의 세계가 그만큼 실감나게 그려진다.
자신에게 승부조작의 누명을 씌운다고 해서 누군가가 금전적인 이득도 취할 리 없거니와 어떤 대가를 노리고 이런 짓을 벌였을지 알 도리 없는 의혹 속에 도달한 진실에는 이기심과 질투 시기가 낳은 어떤 “악의”가 조종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정통 추리의 결말을 원했던 독자들에게는 많이 실망스레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동기에 대해서는 야구팬들조차 깊이 공감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아니, 야구팬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작가도 인정했듯이 트릭은 커녕 살인조차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부터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을 답습할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추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논리와 물증 대신 심증과 정황증거에 의존한 사건해결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어디까지나 이 소설은 야구가 주재료이고 추리는 주재료를 요리하기 위한 보조역할에 지나지 않음을 감안하여 읽어야 흥미를 붙들 수 있다. 그러니까 추리보다 야구에서 즐길 수 있는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단 것이다, 그 중 한 가지는 사와무라의 소속구단인 오리올스가 실제 인기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쉽게 연상하게 한다는 점이다. 오리올스 구단의 모기업이 신문사이며, 거대한 재력을 등에 업고 자체 유망주 육성보단 거액을 들인 FA영입, 잦은 트레이드, 성적 지상주의에 발목잡혀 우승이 아니면 감독 자리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운영방침과 횡포 등을 풍자하고 있어 실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는 이 소설을 무척이나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라커룸에서 벌어지는 뒷이야기, 투수교체 타이밍, 볼 배합, 타자의 수 싸움, 2군 강등 등 실제 야구시즌 중 발생하는 일들이 해박한 야구지식과 생생한 현장감으로 인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만큼 흥미롭게 전개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후반부에 사와무라가 선수생명을 걸고 등판한 블레이저스와의 시합이다. 결과에 따라 마지막 등판이 될지도 모를 이 중요한 시합에서 사와무라는 부상과 거대한 중압감을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1구 1구 혼신의 힘을 다한 일생 최고의 투구를 하는데 끊임없는 위기상황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긴박감 속에서 한 남자의 자존심과 명예를 건 분투의 땀방울이 진정 뜨겁다 못해 울컥해진다. 야구팬이라면 박수를 보낼 명장면으로 기억될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래, <사우스포 킬러>는 2004년 제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답게 충분히 대중적인 야구소설이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누명을 벗고자하는 과정들이 정직한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듯 시종 호쾌하면서도 쓸쓸한 것에서 야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흥미가 다소 반감될 수 있겠지만 야구를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행복한 선물이겠다. 더러운 세상 속에서도 700만 팬들을 위한 야구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