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 선 시스터 문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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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평온해서 별로 할 이야기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도 묘하게 아프다. 그 무위함, 어리석음, 평범함이 시간을 넘어 마음속 밑바닥에서 무디게 저려온다. - 21p -

 

리쿠 여사의 <불연속 세계>를 읽은 지 얼마되지 않아 요렇게 다시 다른 책으로 재회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워낙 변덕스러운 취향 탓에 이 책 저 책을 수시로 갈아타느라 재회는 한참 후로 기약했지. 그런데 있을 건 있고 없을 것 없는 이 곳 도서관 책장에 빼꼼히 얼굴 내밀고 있길래 냉큼 집어들었고... 원래대로라면 나쓰오 여사의 <그로데스크>나 미미 여사의 <퍼펙트 블루>를 빌리려고 갔던 건데 표지도 없이 핑크빛 자태를 과감하게 보여주는데 맘을 빼앗겼다. 리쿠 여사의 다른 소설들보다 더 좋더라는 세간의 호평도 문득 기억나서 내게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이 소설은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슬림한 분량에다 복잡 기묘한 이야기들도 담고 있지않다. “그 애와 나”, “파란 꽃”, “젊은이의 양지”, 이렇게 총 3가지 에피소드로 일상적이며 담백하게 그려지고 있을 뿐인데도 이 소설에는 따뜻함과 묘한 중독성이 어우러져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인 아야네, 마모루, 하지메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대학에 다녔던 동갑내기 친구로 졸업 후 사회진출을 해서 각자의 길을 따르고 있는데 과거 대학시절의 추억들이 주요 모티브!

 

첫 번째 에피소드인 그 애와 나에서 아야네는 책 읽기를 즐겨해서 독서 동아리에 들었다. 헌 책방에서 팔던 균일가 문고분도 좋아했고 베스트셀러 작가나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읽기위해 창피를 무릅쓰고 성인잡지도 자주 구입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잠깐 직장생활을 하다 작가가 된다. 아야네가 어떤 계기로 작가가 되었는지 경위를 설명하지만 그 계기란 것도 사소한 것에서 출발해 결정적인 순간은 명확하지 않다. 그럼 대체 언제였을까. 그 순간은. 자의식 과잉에 컴플렉스 덩어리였고 무위함 속에 소설가가 싶다는 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런 바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아야네의 관점에서 본다면 뒤늦은 자각 끝에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는 열망은 대학시절 막연한 동경과 시샘이 시발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재미가 없으면 싫다.

소설은 읽을 때 재미가 있어야 한다. 책 속에 빠져들어 자기가 책장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싫다. 휘둘리고 싶다. 압도적인 테크닉과 강렬한 세계관에. 영악한 악녀가 아니라 진정한 팜므파탈을 만나고 싶은 것이리라. -27p-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있다가도 어느 시점에서 열이 식어버리는 자신을 혐오하는 아야네의 모습에서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화들짝 놀라면서 점점 동화될 정도로 공감되는 점들이 많았다. 소설을 읽는 자세와 소설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말이다. 그래서 총 3편의 에피소드 중 가장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나머지 에피소드 2,3에서도 음악과 영화를 사랑했던 마모루와 하지메의 회고담이 풋풋하고 아련하게 서술되고 있어 따뜻하고 뭉클한 느낌이 밀려온다.

 

이 소설처럼 워낙 평온했던 것 같았던 대학시절이 불현듯 그리운 것은 실상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격정적인 모호함과 어설프게 아름다운 향수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 그 느낌을 콕 집어 포착해낸 온다 리쿠 여사의 재간에는 감탄 또 감탄하게 되고. 읽으면서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던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요시다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와 더불어 대학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는 짠하게 느껴질 만한 소설이다. 좋다. 무엇보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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