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스티븐 킹 걸작선 1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미꽃은 빨갛다. 제비꽃은 파랗다. 설탕은 달다. 그리고 캐리 화이트는 우리의 밥이다. - 32p -

 

어렸을 때 겁이 무척이나 많았던 나는 공포영화라면 길거리에 부착된 영화포스터만 봐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심장을 콩닥콩닥 거린 채 일부러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귀신영화도 섬뜩했지만 외국 공포영화에는 나 자신을 숨죽이게 하는 또 다른 원초적인 두려움이 어른거렸다. 그 중의 한 편인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74년작 <캐리>는 외국 공포영화의 대명사로 피를 전신에 뒤집어 쓴 여주인공의 모습에 오금저릴 정도의 강력한 공포의 상징물이었다.

 

어쨌거나 결국 영화는 성인이 된 후 비디오를 빌려 공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귀신이나 유령이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하며 공포와는 별개로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내재되어 있었던 점이 의외였다. 이 후 스티븐 킹의 원작도 읽어보고 싶단 마음도 있었는데 킹의 소설은 알다시피 분권짜리가 일반적이라 초심자용 입문작으로 단권짜리를 문의했더니 마침 이 소설을 추천받았다. 영화의 공포를 원작에서는 어떻게 잘 살려냈을까 라는 궁금증과 함께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익숙함도 감안하며 읽어갔다.

 

캐리 화이트는 광신적이고 가학적인 엄마와 자신을 기형으로 취급해 조롱하고 괴롭히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소위 왕따여고생이다. 그녀의 심적 고통은 체육시간이 끝나고 샤워실에서 몸을 씻는 과정에서 명징화 된다, 이름인 화이트처럼 희고 순수무결한 이미지 대신 손에서 비누를 놓쳐 떨어뜨리는 순간, 이 소녀의 몸에서는 생전 처음 피가 흘러내린다. 갑작스러운 경험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하는 캐리. 그것은 초경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캐리에게 지금까지 그러한 경험적 지식에 대해 제대로 알려준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 비극의 발단이 된다. 청교도적인 청결만을 강요하는 엄마는 딸의 생리적 현상에 대해 입을 닫고 있었으며, 같이 샤워하던 반 여학생들은 피 묻은 손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가련한 그녀에게 일제히 깔깔대며 조롱한다.

 

다음 순간 욕지기와 경멸과 혐오감에 찬 웃음소리가 끽끽대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바뀌면서 아이들이 캐리에게 탐폰과 생리대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눈송이처럼 날아왔으며 "틀어막아, 틀어막아, 틀어막아...."하는 소리는 이제 노래처럼 울려 퍼졌다.  -17p -

 

" 이 악마의 자식 같으니라고. 내가 어째서 이런 저주를 받았을까" 엄마가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 73 p -

 

세상에 대한 무지로 몸과 영혼까지 철저히 무시당하는 그녀는 아이들에게 혐오의 대상이며, 장난감에 불과하다. 서서히 지쳐가는 그녀를 보며 같은 반 여학생인 수지 스넬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남자친구 토미에게 자신 대신 캐리를 학교 무도회 파트너로 대신 데려가 달라고 청하고 토미는 그렇게 함으로서 다소나마 간접사과와 보상을 하고 싶어 하는 여친의 마음을 헤아려 승낙한다. 하지만 불행의 씨앗은 잉태하고 있었다. 샤워실에서 캐리에 대한 집단 괴롭힘을 주도했던 여학생 크리스에게 정학 처분이 내려지고 이에 앙심을 품은 크리스는 남친 빌리를 사주해 캐리를 공개 망신 주려고 음모를 꾸민다.

 

캐리는 이러한 음모가 있을 줄을 꿈에도 모르고 드레스도 직접 만드는 둥 부푼 희망 속에 토미와 참석한 무도회에서 뜻밖에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왕과 여왕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왕관을 쓰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순간 머리 위로 돼지 피가 쏟아진다. 빌리와 크리스의 못된 장난이었던 것. 황당한 상황에 놀라 달아나버린 캐리는 이윽고 격분하여 그동안 억눌렀던 세상에 대한 증오를 토해낸다. 그녀에게 염력이라는 초능력이 있었고 그러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온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무차별 살해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참극은 또 다른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게 된다.

 

이 소설에서 의 이미지는 죄악과 수치, 저주로 상징화된다. 캐리의 초경은 아이들에게는 조롱거리로 엄마에게는 순결을 깨뜨린 죄악으로 간주되어 학대와 멸시로, 마지막에는 생애 처음으로 찾아온 소녀의 행복을 무참히 산산조각 내는 돼지피로 각각 돌아오면서 캐리에게는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몸이 내던져져 삶이 곧 지옥인 일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 속 캐리를 따라가다 보면 왕따란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었으며 억압적이고 왜곡된 청교도적인 전통과 천박하고 타락한 시선이 인간성을 어디까지 극단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게된다. 결국 인과응보의 교훈을 남기며 모두에게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면서 미국 사회의 어둡고 부정적인 상황이 빚어낸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현실에 냉엄한 경고장을 던져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날 속인 거야.속임수가 있었지 속임수 아 더러운 속임수 말야.'

'더러운 수작들을 보라고 내 삶 전체가 하나의 더러운 장난이었단 말야.'

'아 엄마 엄마가 무서워 엄마'

'마 엄마 엄마 '

'엄마 미안해'

- 276, 278, 279p -

 

 

다른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행복을 꿈꾸었던 캐리의 불행은 십대 시절의 철없는 장난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약자를 괴롭히고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게 한다. 평범한 여고생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렇듯 무심코 던진 돌에 무시무시한 분노로 되 뱉어주는 캐리의 상실감을 통해 인간심리의 두려움을 건드리면서 암울하고 처절한 통찰로 묘사해냈으니 십대 소녀가 주인공인 소설 중에서 그 아픔이 단연 으뜸이 아닐까 한다. 과연 스티븐 킹이다.

 

슬픈 공포가 뼈져리게 다가오는 소설 <캐리>. 기다려라 캐리의 저주와 분노가 불벼락으로 떨어져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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