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한강 세트 - 전5권
김세영 지음, 허영만 그림 / 가디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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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려 25년의 부활이라니 내가 이 만화를 읽게 될 날이 오리라고 미처 예상할 수 있었을까? 입소문만 무성히 들었다. 80년대 민주화 열풍이 몰아치던 격동의 그 시절, 안기부 기획으로 반공만화가 그려졌어야 했으나 과감히 거부하고 해방 이후부터 19876월 항쟁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허영만, 김세영 작가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당시만 해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시퍼런 서슬 아래에서 인공기가 등장하고 사회주의를 논하고 반미, 반독재를 부르짖는 이 만화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용하다 생각될 정도로 보수의 시각에선 철저히 불순한 사상들로 점철된다.

 

 

일본, 앞잡이, 지주라는 3박자의 그늘아래에서 소작농의 아들 이강토는 누구나 그랬겠지만 입에 풀칠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던 세상이었으나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어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된다. 화가에게 과연 예술과 이념은 별개의 문제인가, 더불어 나가야할 동지의 관계인가. 강토를 무수히 많은 시험과 고민, 갈등에 이르게 했다. 점점 사회주의 운동에 빠져들다 해방 이후 자진 월북까지 했던 그는 급기야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남조선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표에 자신을 내던지기에 이른다.

 

 

그러나 결국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남쪽 대한민국에 정착한 이강토는 죽산 조봉암을 추종하며 선거운동에 따라다니다 죽산의 사형으로 의지가 꺾였다. 이후 결혼해서 아들, 딸을 낳아 평범한 인생을 보냈으면 좋으련만 아들 석주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민주화 운동에 매진하게 되는 등 파란만장한 2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만화는 좌익도 우익도, 어느 쪽에 일방적인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북한식 사회주의의 병폐는 기본적으로 까고 들어가면서도 당장 두 발을 딛고 선 대한민국이 반공과 경제개발이라는 국시에 가려 독재라는 가면에 의하여 목적이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 되었을 때, 이에 맞서 온 몸으로 저항했던 청춘의 피땀눈물이 존재한다. 그럼으로써 지금 현재 우리가 온전히 숨 쉴 수 있게 된 생존의 기틀이 마련되었음을 고단하게 알려주는 보고서인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흐른다. 비록 80년대 만화라서 세련된 그림체가 아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정서적으로 친밀감과 호소력이 컸던 시대의 명작으로 기억되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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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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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가와 병원 내과에서 근무한지 곧 10년이 된다는 의사 루미코는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의외로 평판이 야박하다. 무뚝뚝하고 귀염성이 없으며 환자의 마음에 둔감한 의사로 낙인찍혀 컴플레인이 잦다고 한다. 본인은 천성이 이러니 어쩌랴 싶지만 시한부 환자에게 편안히 가실 수 있다는 식의 말투는 환자와 그 가족에겐 펄쩍 뛸 소리고 당사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억울해 하는 게 계속 기억에 남아 웃겼다. 적어도 제3자의 입장에서는 뒤에서 쑥덕쑥덕 호박씨 까기 딱 좋은 먹잇감.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버려진 청진기를 주워다 사용하게 되는데, 뜻밖에도 그 청진기는 환자의 가슴에 대면 그 사람의 절박한 속마음이 들릴 뿐만 환자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체험까지 제공할 수 있는 기능마저 있는 신비한 물건이었다. 환자들은 처음엔 무슨 최면술 같은 건 줄 알고 신기해 하다가 그 체험을 경험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이 일생에서 가장 후회로 남았던 그 시절을 되돌아봄으로써 만약이란 가정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바뀌게 되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미리 건강검진을 받아 질병을 예방 한다 같은 의료적 기능은 불가능하니 어차피 앞당겨진 죽음은 피할 도리가 없다. 이미 예정된 주사위는 던져졌으니까. 다만 살아있었던 기간만큼이라도 인생의 오점을 깔끔히 지워내고 싶을 뿐이다. 그중에서 유명 여배우의 딸로 태어나 엄마의 미모를 물려받아 자신도 연예계 스타가 되고 싶었으나 정작 부족한 외모에다 엄마가 반대해 꿈을 접어야 했던 딸.

 

 

그래서 엄마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이 강했던 딸이 과거로 돌아가 엄마가 결사반대해야 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된 이야기가 가장 와 닿는다. 겉으로는 화려해보이나 그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알기에 자식에게만은 절대 자신과 같은 길을 따라하지 않게 하려는 그 깊은 속정이 진정한 모정이 아니었나 싶다. 누구나 죽음을 눈앞에 두면 두려움과 동시에 남은 후회와 미련도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게 되는데 정작 비워낸다면 그제서야 마음에 안식과 평온이 찾아왔을 테니 이처럼 가볍고 즐겁지 아니할까.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동행이어서 좋았던 소설이었다.

 

 

다만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 알 수는 없으나 고유의 피해의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의사, 회사원 같은 직업군에 대한 부적절한 해석과 욕망에 충실한 그녀들이 마치 고기불판 갈 듯 하는 갈아타려는 인간관계까지... 과도해서 읽는 내내 모래알 씹는 것처럼 입안이 까끌했다. 누구에겐 연대감 누구에겐 혐오감... 읽는 이의 정체성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다분해서 차라리 주인공이 이와시미즈였다면 어땠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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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거 범죄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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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시에서 최근 3년간 연쇄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데 범인은 그때마다 현장에 나를 잡아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겨 경찰을 무척 곤혹스럽게 만든다. 게다가 지문까지 남겨서 누가 봐도 경찰을 도발해서 대결을 자청하는 듯한 뉘앙스였기에 경찰 고위층의 격노는 불을 보듯 뻔했다. 땅에 떨어진 경찰의 위신과 들 끊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연쇄살인범을 검거해야 했고 특별조사팀이 각 사건마다 꾸려졌지만 전혀 범인 검거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특별조사팀은 결성과 해산만 반복했을 뿐.

 

 

여기에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절름발이 오빠와 국숫집을 하고 있는 아가씨 주후이루가 자신에게 추근거리며 위협하던 건달에 맞서다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고 마는데 그 순간, 평소 그녀를 짝사랑하던 총각 궈이가 주후이루를 지켜주려는 과정에서 살인에 합세하는 바람에 두 남녀는 졸지에 살인 공범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이가 있었으니 전직 법의학자 뤄원이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마땅하나 두 사람을 측은히 여긴 뤄원은 이들을 돕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범행은닉과 조작을 시도하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그 분야의 전문가였기 때문에 경찰수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훤히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이 남자의 작업은 가공할 정도로 치밀하고 완벽했다. 알리바이, 범행시각, 범행도구 조작, 현장훼손, 심리전 등등 혀를 내두르게 하는 천재성에 몰입도는 최강이었던. 그래서 자신을 잘 아는 옛 동료 옌랑 교수가 냄새를 맡고 사건에 개입했을 때 진실을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두뇌게임은 불꽃 터질 수밖에. 개인적으로는 두 청춘이 가여워 이대로 묻혔으면 했는데 어떻게 결말이 날지 예측 가능해서 좀 안쓰럽기도 했다.

 

 

 

솔직히 물증감식학 VS 논리학의 대결은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 이상 전자의 일방적인 승리여야 하는데 집요함으로 그 방어벽을 깨뜨리는 옌랑의 시도가 작위적이다라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어 그 점이 마뜩찮다. 그런 다소의 불만을 감안하더라도 별개의 연쇄살인의 그 동기란 게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한 개인의 빅픽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놀랍다. 어떤 범죄도 목적을 정당화 할 수 없기에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의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동트기 힘든 긴 밤>과 마찬가지로 거대하고 깊었다. 그래서 그냥 순응하고 체념할 수 없어 체제에 저항했던 행동 자체에 지지를 보내지는 못하겠지만 한편으론 위대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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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검증 케이스릴러
이종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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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넘김이 참 순수하고 깨끗한 소주를 마신 것 같다.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기억과 시력을 잃고 병원에 입원중인 이 남자를 경찰은 이수인 경감이라고 부른다. 어서 기억을 되살려야 모방살인을 저지르는 카피캣을 검거하기 위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텐데 본인은 오죽 답답할까, 그나마 희망적인 건 기억과 시력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자신을 진료하고 간호하는 의료진이나 경계근무를 서는 경찰, 여기에 살인용의자를 몰아세워서 자살로 내몰았다는 이유로 감찰대상이 된 한지수 경사까지 목소리와 발소리 등 예민해진 청각으로 사람과 상황을 분별하는 중이다. 그러한 상황들이 충분히 흥미를 끌고 집중을 유도한다.

 

 

이종관 작가가 국내 유일의 범죄수사 전문 잡지의 편집장으로 15년 넘게 근무했다는 독특한 이력에 눈이 가 대체 어떤 몰골인지, 어떤 잡지인지 궁금해서 열심히 검색해보았지만 정보가 전무하다. 일반인들이 아무렇게나 구독할 수 없는 내용과 사진이 실려 있음을 간과한 나의 어리석음도 우습지만 끝내 정체를 노출하지 않은 작가의 신비함마저 매력적이다.

 

 

그리고 카피캣의 진짜 살인동기와 숨은 의도를 밝혀내기 위해서 자처했던 언론 인터뷰 시도와 더불어 제목 자체인 현장검증의 중요성 등 디테일이 살아있었고 다른 국내작가들과 비교하면 용어 구사나 사용하는 기법이 해박해서 남다른 강점이 있는 듯하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들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서 일단 썰은 풀어놓고 뒷수습을 못해 허둥대는 꼴 없이 깔끔하고 청량감 있게 잘 마무리했다고 본다.

 

 

그렇게 적시타를 터뜨린 반전과 스릴에다 입체감 있는 캐릭터는 앞으로 이종관 작가 한 사람에 주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시리즈에 대한 희망마저 엿볼 수 있었다. 마치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 같았던 이수인 경감과 한지수 경사를 파트너로 한 시리즈가 계속되어도 괜찮겠지. 처음으로 만난 케이스릴러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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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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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부터 이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동네책방 이벤트에 참여하여 예약판매 신청하고자 했던 것이다. 순전히 초판한정양장본의 표지가 색다른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너무 오랫동안 감상만 하다 뒤늦게 정신 차려 보니 아뿔사, 이미 마감되었네. 그래서 대출해서 책을 받았더니 분량은 문제없는데 사이즈가 의외로 아담해서 잠깐 놀랐다. 그렇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펼쳐든 이 책엔 총 아홉 개의 글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글 <추방과 멀미>는 작가가 집필 장소 구할 겸 머리 식힐 겸 해서 중국 상하이에 교포가 운영하는 아파트를 숙박예약하고 야심차게 출국했다가 입국 심사를 통과 못해 바로 추방당했던 아찔한 일화였다. 그렇게 준비성이 없던 사람이었던가, 허당 김영하 작가님. 알고 보면 해외여행 하다 보면 간혹 있을 수 있는 착각에서 비롯된 거지만 결과적으로 집에서 집필이 술술 잘 되었다니 훌륭한(?) 인생경험을 한 거였다. 신토불이 신토불이~ 무조건 외국으로 튀지 말자는 교훈이었음. , 그리고 멀미라는 제목에서도 짐작하듯 키미테의 유용성에 관한 짧은 일화도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멀미 안뇨옹~~~~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제목이 기억 안 나는데 작가가 대학재학 중이자 천안문 사태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해체되던 무렵, 국가와 대기업 등에서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국가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오라고 돈 모아 중국 투어를 보내준 이야기다. 불타는 사회주의자 김영하 학생은 그렇게 다른 학생들과 젊은 안기부 요원,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나이든 형사(두 사람은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월북 또는 북한의 납치 등을 대비하기 위한 감시조)를 대동하고 베이징 관광에 나섰다 한다.

 

 

다른 학생들은 안기부 요원과 형사를 따돌리며 멀리했고 김영하 학생은 마치 교장쌤 같이 푸근하고 아버지 연배 같던 노형사가 자신을 사진 찍어 줄 사람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게 안쓰러웠다고. 그래서 사진도 찍어주고 함께 밥도 먹어주고 그랬는데, 여행 중에 만난 불편하고 껄끄러울 뻔 했던 당시의 인연이 나중에는 은혜 갚은 까치 같은 우화가 되어 김영하 학생이 결정적 위기에 처했을 순간, 뜻밖의 동아줄이 되었다는 훈훈하고 감동적인 사연이었다. 어쩌면 오늘날 유명작가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그때 그 순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알쓸신잡> 방송에 출연했던 당시의 감상이 언급된다. 오리배를 혼자 타고 꽃에 심취하던 남자가 뭐라고 썼을까 궁금한가? 직접 읽어보시라. 시즌4가 꼭 방송되었음 좋겠고 정재승 교수님도 다시 출연하셨음 한다. 시즌1 멤버... 이멤버 리멤버!!! 아니다. 황교익 쌤 대신에 김웅 검사님 어떠하오? 그렇게 하나하나 다 읽어 나갔는데 아쉬웠다면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같이 등반 도중 장이 안 좋아 떵이 수시로 마려웠다 같은 향기롭고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첨가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분명히 작가 자신은 그런 스타일의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밝혔어도 어쩔 수 없는 욕구불만. 여행을 통해 느낀 지적사유를 헤아리기엔 내 감성은 너무 메말라서 당장 필요한 건 달짝지근한 한 잔의 카페인이니 어쩌겠는가! 내게 여행의 이유라면 낯선 곳에서의 고립 또는 향수병을 체험해보고 싶어서인데 각자가 떠나려는 여행의 목적지가 다르듯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바도 다르겠다. 그렇지만 평소 해외여행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이 책의 첫 에피소드와 같이 당해버렷. 이런 심뽀 때문인지 5월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 계획이 잡혀있다며 웃음띄던 사무실 여직원이 서방님의 갑작스런 출근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날리게 되자 상사로서 위로는 해주었다만(속으론 악마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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