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처음부터 이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동네책방 이벤트에 참여하여 예약판매 신청하고자 했던 것이다. 순전히 초판한정양장본의 표지가 색다른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너무 오랫동안 감상만 하다 뒤늦게 정신 차려 보니 아뿔사, 이미 마감되었네. 그래서 대출해서 책을 받았더니 분량은 문제없는데 사이즈가 의외로 아담해서 잠깐 놀랐다. 그렇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펼쳐든 이 책엔 총 아홉 개의 글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글 <추방과 멀미>는 작가가 집필 장소 구할 겸 머리 식힐 겸 해서 중국 상하이에 교포가 운영하는 아파트를 숙박예약하고 야심차게 출국했다가 입국 심사를 통과 못해 바로 추방당했던 아찔한 일화였다. 그렇게 준비성이 없던 사람이었던가, 허당 김영하 작가님. 알고 보면 해외여행 하다 보면 간혹 있을 수 있는 착각에서 비롯된 거지만 결과적으로 집에서 집필이 술술 잘 되었다니 훌륭한(?) 인생경험을 한 거였다. 신토불이 신토불이~ 무조건 외국으로 튀지 말자는 교훈이었음. , 그리고 멀미라는 제목에서도 짐작하듯 키미테의 유용성에 관한 짧은 일화도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멀미 안뇨옹~~~~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제목이 기억 안 나는데 작가가 대학재학 중이자 천안문 사태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해체되던 무렵, 국가와 대기업 등에서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국가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오라고 돈 모아 중국 투어를 보내준 이야기다. 불타는 사회주의자 김영하 학생은 그렇게 다른 학생들과 젊은 안기부 요원,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나이든 형사(두 사람은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월북 또는 북한의 납치 등을 대비하기 위한 감시조)를 대동하고 베이징 관광에 나섰다 한다.

 

 

다른 학생들은 안기부 요원과 형사를 따돌리며 멀리했고 김영하 학생은 마치 교장쌤 같이 푸근하고 아버지 연배 같던 노형사가 자신을 사진 찍어 줄 사람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게 안쓰러웠다고. 그래서 사진도 찍어주고 함께 밥도 먹어주고 그랬는데, 여행 중에 만난 불편하고 껄끄러울 뻔 했던 당시의 인연이 나중에는 은혜 갚은 까치 같은 우화가 되어 김영하 학생이 결정적 위기에 처했을 순간, 뜻밖의 동아줄이 되었다는 훈훈하고 감동적인 사연이었다. 어쩌면 오늘날 유명작가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그때 그 순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알쓸신잡> 방송에 출연했던 당시의 감상이 언급된다. 오리배를 혼자 타고 꽃에 심취하던 남자가 뭐라고 썼을까 궁금한가? 직접 읽어보시라. 시즌4가 꼭 방송되었음 좋겠고 정재승 교수님도 다시 출연하셨음 한다. 시즌1 멤버... 이멤버 리멤버!!! 아니다. 황교익 쌤 대신에 김웅 검사님 어떠하오? 그렇게 하나하나 다 읽어 나갔는데 아쉬웠다면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같이 등반 도중 장이 안 좋아 떵이 수시로 마려웠다 같은 향기롭고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첨가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분명히 작가 자신은 그런 스타일의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밝혔어도 어쩔 수 없는 욕구불만. 여행을 통해 느낀 지적사유를 헤아리기엔 내 감성은 너무 메말라서 당장 필요한 건 달짝지근한 한 잔의 카페인이니 어쩌겠는가! 내게 여행의 이유라면 낯선 곳에서의 고립 또는 향수병을 체험해보고 싶어서인데 각자가 떠나려는 여행의 목적지가 다르듯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바도 다르겠다. 그렇지만 평소 해외여행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이 책의 첫 에피소드와 같이 당해버렷. 이런 심뽀 때문인지 5월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 계획이 잡혀있다며 웃음띄던 사무실 여직원이 서방님의 갑작스런 출근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날리게 되자 상사로서 위로는 해주었다만(속으론 악마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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