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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 ㅣ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두산-롯데의 2012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4차전이 사직구장에 열리던 그 날, 금요일 저녁 회사워크숍 관계로 서울 출장 왔다가 마치고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준비성 없이 내려가는 티켓을 미리 예매 안 했던지라 당근 앉아서 갈 자리는 없었고 꼼짝없이 입석이라도 발매 기기에서 조회할 수밖에 없었는데 겨우 한 장을 다행스럽게 건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데다 야구는 롯데가 뒤지고 있어 이래저래 심란한 상태였고 일단 인근 서점으로 읽을 책을 구입하러 갔었죠. 서점은 규모가 작아서인지 있는 책들은 있고 없는 책들은 없는 수준, 레이다망에 포착하여 복잡한 머리속을 비워줄 가벼운 책으로 골랐던 것이 바로 <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입니다.
처음으로 열차입석으로 타서 연결통로에서 뻣뻣한 다리를 어루만져 가며 이 소설에 기대했던 점은 머리 아픈 추리보다는 빵빵 터지는 폭소극! 결과적으로 소리내어 웃을 일은 결코 없었다는 겁니다. 맘속으로 풋 하고 웃어 넘겨버릴 수준인데 일본식 유머는 접할 때마다 참 어정쩡한 것 같습니다. 웃길 때는 사정없이 방바닥을 구르게도 하지만 아닐 때는 썰렁함에 멍 때릴 적도 많은데 적당히 간보는 수준의 유머가 아니었나 싶네요. 차라리 유머라면 <명탐정의 규칙>이나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같은 소설들이 두 마리 토끼 잡는데 제격인데 말이죠. 너무 웃을거리에 목매었나 봅니다. 풋풋함은 있지만요.
일본 해안에 자리 잡은 지방 중소도시인 이카가와 시의 자칭 홈즈와 왓슨, 우카이와 류헤이 콤비가 해결하는 다섯 가지 단편들이 차례차례 선보이고 있는데 매형과 처남의 관계도 알고 보니 누나랑 이혼한 사이라고 하니 그다지 끈적끈적한 유대관계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첫 번째 단편 [후지에다 저택의 완전한 밀실]에서는 눈 내리는 저택의 지하실을 밀실로 만들어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인의 계획을 단순한 착안점에서 출발해서 쉽게 해결하는 콤비의 추리가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처음 읽는 저 같은 독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거대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는 애시 당초 기대도 말라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은데 기왕이면 범인의 트릭을 정면 돌파하여 깨뜨리는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범인이 나름 고심 끝에 고안하여 보다 자신만만했었는데.. 그 성의가 가상해서라도 한순간에 허무개그로 만들면 안되지요 ㅡ.ㅡ 저 같은 독자의 입장도 생각했었더라면....
첫 번째가 몸 풀기 수준이었다면 두 번째 단편부터는 나름 신경 쓴 흔적은 엿보입니다. [시속 40킬로미터의 밀실]은 달리는 차 안에서 일어난 밀실살인을 해결해내는 내용인데 계획되지 않은 우발적 살인이 기막힌 타이밍에 맞춰 발생되었다는 점이 작위적이어서 역시 찜찜하기도 한데 처분을 훈훈하게, 다소 익살스럽게 매듭지은 점만은 그래도 점수를 더 줄만 합니다. 세 번째 단편 [일곱 개의 맥주상자]는 도난당한 맥주상자들이 이용한 트릭을 통해 일상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날지도 모를 범죄 사각지대의 사소한 위험을 경고한다고 생각되는데 발상 자체가 엉뚱하다는 정도입니다. 네 번째 단편 [참새 숲 의 이상한 밤]은 가장 추리소설 적이기도 하지만 가장 흥미 없는 단편이기도 했습니다. 달콤한 러브러브를 꿈꾼 류헤이가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뭐 팔자 소관이겠죠~~~~
대미를 장식하는 [보석도둑과 엄마의 슬픔]은 총 다섯 편의 단편 중 가장 백미였습니다. 기상천외한 반전은 그야말로 <식스센스>급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런 설정이라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웃기는 게 묘한 앙상블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트릭!! 나머지 단편들에서 미진했던 감상을 한 방에 만회하는군요. 진짜 이상야릇한 유머였습니다.계속 이 정도로 써내려간다면 종종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을 듯 싶은데도 불구하고 편차가 상당하겠구나 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표지 일러스트는 올 초에 읽었던 가이도 다케루의 <울트라 황금지구의>를 연상시키는 재밌는 착상이기는 한데 전체적으로는 내용이 그렇게 신선하게 와 닿지 않고 억지스럽다는 점은 좀 그렇습니다. 가볍게 읽어야 할 추리소설에 제가 너무나도 많은 걸 기대하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시점에 맞춰 때마침 TV에선 기시 유스케의 단편집을 원작으로 한 <자물쇠가 잠긴 방>의 에피소드 1화가 방영되고 있군요. 오노 사토시와 토다 에리카도 오랜만이라 무척 반가운데다 밀실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요건 재밌을려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