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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저어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1. 바다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사는 어류.
2. 대상국의 한 시민으로 살며 명령을 받을 때만 활동하는 공작원.
여기서는 2번을 의미한다지만 일본어에도 중국어에도, 우리 말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다. 면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현지 생활을 하며 나중에 고위 공직에 올라간 다음부터 적국의 스파이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침저어’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현직 국회의원 가운데 중국의 ‘침저어’가 있다는 첩보가 입수된다. 암호명 맥베스라고 불리는 ‘침저어’로 지칭되는 용의자는 일본의 차기 수상 후보 ‘아쿠타가와 겐타로’가 지목된다. 경시청 외사2과의 형사들은 그를 검거하기 위한 수사에 들어가지만 정보와 증거의 불충분으로 난항에 빠지게 되고 수사관 ‘후와’는 고교 동창생이자 ‘아쿠타가와’의 비서인 ‘이토 마리’로부터 ‘아쿠타가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내린 결론은 ‘침저어’가 아니라는 것. 증거도 확보했다.
하지만 관련 정보원과 ‘이토 마리’가 잇달아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서 ‘후와’는 적국에게 정보를 넘긴 스파이로 몰려 의심을 받게 된다. 수사에서 배제된 ‘후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단독수사에 돌입하지만....‘침저어’를 나타내는 암호명 ‘맥베스’는 ‘세익스피어’ 희곡의 주인공이자 넓은 맥락에선 인간의 본질, 즉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강함과 약함 등 ‘모순’으로 결정되는 인간세계의 내면이자 가치관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맥베스’ 절대적 판단은 섣부른 오해이자 편견임을 잘 암시한 ‘방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외사 2과 소속 수사관들은 일본, 중국, 미국 간에 얽힌 이해관계에 따라 수사의 향방이 갈리는 첩보전의 한 가운데 놓여 있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동료 간에 정보의 취합 선택을 둘러 싼 경쟁과 파벌이라는 양상을 동시에 겪는다.독단과 공조로 구분 짓는, 이 힘겨루기는 권력암투라는 또 다른 장벽을 만나게 되면서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심해야 할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는 기술은 이들에게는 없다. 의롭지만 외롭고, 질투하며 어두운 욕망을 발현했던 ‘맥베스’가 그랬던 것처럼 철저하게 이중적인데다 모순 그 자체를 지향하게 된다. 그 와중에 신의는 땅에 떨어지거나 맹목적 믿음이 가진 어리석음,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나약함 등이 있을 뿐이다.
일단 믿되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가공된 정보만큼 무서운 건 없다. 동료를 감싸 줄 의리 같은 건 없지만 파벌싸움이라는 시궁창에 발을 담글 생각 대신 온전히 수사에 필요한 일에만 적극 가담하겠다는 후와의 결심과 함께 그의 생각처럼 국가 간의 애들 스파이게임 같은 짓에 사활을 건다는 일이 얼마나 코미디같이 유치하고 허망한 것일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면서 천박하고 경솔한 선택을 하는 건 이념을 올바르게 공유할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고미’ 일파에 대한 선입견도 결국엔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받아들이겠다는 고집에 귀를 닫은 것이 문제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미워했던 남자지만 내 갈 길만 가련다는 자신의 방식 대신 사람들을 인망으로 불러들이는 시원시원함은 다르다.마지막까지 가신들처럼 충성을 다하는 ‘고미’의 부하직원들은 그제 서야 막연한 맹신으로 비쳐지지 않았다. 이것이 제대로 된 인간관계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많이 뭉클했다. 국가 간의 외교도 그러하다. 타국에 대한 이해나 배려 없이 자국의 이익에만 치중해서 무엇이라도 빼내고 이용하려는 이기심이 불행의 전조에 해당된다.
‘후와’가 ‘고미’를 보는 관점이 뒤늦게 일부 달라졌던 것처럼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시각에서 그려지는, 소리 없는 전쟁을 읽는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넋 놓는 동안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국력배양에 힘써야 한다는 경각심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을 편들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차지하고서라도 승자도, 패자도 없는 첩보전의 비정함을 드라마틱하게 다룬 흡입력 있는 스토리야말로 정말 인정해야겠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밀도 있는 전개와 구성은 실로 놀랍기만 했으니. 이번이 2번째로 만난 ‘소네 케이스케’의 이름은 분명히 각인시켜야 할 것만 같다.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