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킬러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36
제프 린제이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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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유리창 앞에 매달리듯 서 있는 남자들, 황홀경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이 믿기지 않는 요지경 앞에서 천하의 살인마도 완전 무장해제 당하는 곳.

그들은 모처로 납치를 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었다.

요람에 누워 꼼지락대는 핏덩이들을 보며 인간이라면

응당 느낄 감정에 심장이 뛰는 남자.

그는 덱스터 모건이다.

 

어둠의 승객을 가이드 삼아 세상의 극악무도한 살인마들을 살인해온

살인기계로 살아왔던 그도 새로운 생명의 탄생 앞에서 사악한 본능을 흘려보내야 할 순간이

닥쳐오자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딸의 이름은 릴리 앤”. 그도 드디어 딸 바보가 되어버렸다.

어둠 속의 덱스터를 과거에 묻고 살인마로 살아가기를 거부한 채,

딸이 있는 밝고 아름다운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세상은 난폭한 피와 대혼란이라는 뒤틀린 길을 눈앞에 펼쳐놓고

검은 유혹의 손길을 내밀며 어서 오라고 속삭인다.

실종된 소녀의 방에서 피분수가 난무하자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상상한다. 납치냐 가출이냐...

혈흔 분석가인 덱스터 모건 경사와 여동생 데보라는

이것이 카니발(식인)이라는 경악할 범죄임을 밝혀낸다.

식인을 위해 치과에서 뱀파이어처럼 송곳니로 개조한 진료기록을 찾아낸

두 사람이 찾아간 악의 본거지.

 

여기서 덱스터 모건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모종의 밀약 같은 관계를 발견하는데

스톡홀름 신드롬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그 내면의 심리 속에는 살아온 시간이 그랬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가슴 한 곳을 저릿하게 하는 슬픈 소리가 있었다.

자존감이란 것은 왜 이다지도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도구로 바쳐야만 했을까?

 

그러자 식인 뱀파이어 무리들은 계획적이었고 잔악했다.

살인이 멈추지 않고 희생양이 늘어날수록 탐욕도 늘고 신의 뜻도

점점 더 거스르게 되지만 이 모든 것은 늘 자기만의 고독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겐 좋은 먹잇감이 될 사연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부적응이 적극 부채질해왔기 때문에 벌어진 모순이다.

 

 

그러는 순간마다 어둠을 직면하게 된 덱스터는 살인이라는 본능 앞에서

흔들리고 또 고민했다.

아빠라는 대명제 앞에서 빛과 어둠의 양 갈래 길에서 전진도, 후진도 없는

자가당착의 상황은 왜 달콤한 킬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보여준다.

달라져야만 한다는 책임과 의무감 앞에서 과감히 실력 발휘를 못한

덱스터 모건이 끔찍할 정도로 수줍어보였다.

 

 

이런 남자를 두고 그 어느 누가 희대의 살인마라고 진정

몸서리치겠는가? 하지만 결정적 위기를 예상치 못한

돌파구로 해결한 점은 쓸쓸하지만 애틋한 부성애로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자신과 인간을 분리해왔던 덱스터가 생경한 경험을 통해 점차 피가 통하는

착한 살인마로 변신하는 과정들은 낯설면서도 멋진 아이러니로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이자 생생한 감정이입으로 지금보다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될 남자,

덱스터 모건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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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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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이라고? 천만에. 복수는 사고하는 인간의 반사작용이야.

행동과 일관성의 복잡한 혼합물로,

지금까지 인간 외의 다른 종은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복수의 실행은 그 자체로 너무 효과적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가장 복수심이 넘치는 사람만이 살아남았지.

복수 아니면 죽음. 눈에는 눈,

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서 불타거나 최소한 교수대에 매달린다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지.

데뷔작 <박쥐>는 분량이 적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수월하게 진도가 나갔는데 <네메시스>는 제법 두툼하다. 전작인 <레드 브레스트>와 후속작 <데빌스 스타>로 이어지는 <오슬로 3부작>에는 엘렌 옐텐 사건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해리의 신경을 쓰이게 하면서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는 중이다. 그 건을 수사하기에 앞서 선결과제가 해리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소설의 시작부터가 재치 있다. 우연히 사건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더니 사실은 오슬로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을 해리가 비디오로 감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깜빡 속 았다 싶다가도 그 비디오에는 복선이 교묘하게 들어있어 후반부에 이르러 진실을 알고 나면 분명히 페이지를 앞으로 다시 넘기게 된다. 무심히 읽었다가는 실마리를 놓칠 수도 있으리라.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강도는 철두철미한 준비로 현금인출기의 돈을 꺼내 시간 내에 배낭에 담으라고 은행 여직원을 위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단지 주어진 시간에서 6초가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은 은행 여직원을 총으로 살해하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시가 급하게 현장을 떠났어야 할 강도가 그깟 6초 때문에 불필요한 살인을 저지르다니... 보란 듯이 저지른 살인은 마치 본보기를 삼기 위한 즉결처형 같다. 분명한 목격자는 없다. 다만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던 해리와 동료 베아테 렌은 강도와 은행 여직원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는 점에 주목한다. 강도가 그녀에게 무슨 말인가를 속삭인 것 같기도 한데.... 아는 사이였을까?

그런데 은행 강도사건을 수사하던 해리는 6개월 동안을 알고 지낸 전 여친 안나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현장을 다녀갔던 용의자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다. 아직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니 양손에 뜨거운 감자를 쥔 것 마냥 공식적으로는 은행 강도사건을 수사하고 몰래 몰래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안나 살인사건을 병행하여 수사한다. 한 사건 해결에도 벅차건만 동시에 두 사건을 수사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해리는 결단을 내린다. 누군가의 조력을 받고 또 누군가와는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거래를 시작한다. 그 와중에 쫓겨 다니기도 하고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헛다리 짚기도 하면서 상대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의도로 정밀하게 안배된ㅡ 복수의 덫에 빠진다.

그러면서 인간이 복수를 하는 진짜 이유가 사랑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사랑이 소통을 못하면 복수를 낳고 그 복수마저 실천하지 못한 이는 눈물을 머금고 용서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면 어떤 이는 뒤늦게 자신만의 해결방식으로 속죄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베아테 렌이 한 선택은 최선이 아닌 차선이었기에 복수라는 동기를 가지고 단죄가 어느 선에서 가능한지를 고민하게 한 대목이다. 안타깝지만 총을 내려놓을 수밖에

.

또한 복합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을 끝장내기 위한 단서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재미를 증폭시키는데 시리즈 중 추리적 능력이 가장 극대화되지 않았나 싶다. 육체를 학대하는 해리의 악취미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도 하지만 보편적 물증에서 트릭을 찾아내는 솜씨는 경탄스럽다. 특히 편의점에서 용의자가 시도했던 그 트릭은 해리의 입으로 설명되기도 전에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나를 머쓱하게 했다.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는데 그런 꼼수가 가능할 줄이야. 얼핏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일이 지금까지 무수한 추리소설들에서 과연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이채로웠다고 본다. 모방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그렇게 장애물은 모두 제거되었다. 시리즈의 처음부터 전작까지 내내 호기심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던 구미호 사냥이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고 하니 어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조급해진다. 그 과정에 도달하기 위해 깔딱 고개에서 순간순간 숨이 차다가도 극적으로 다시 힘을 내어 넘어가도록 만드는 그 강약조절이 이번에도 신통했다. 더구나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홍콩, 콩고 등 각 대륙을 넘나들었던 해리가 다음에는 북미대륙에도 갈 일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덧붙이자면 20세기에 한국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노르웨이의 스타가 A-HA였다면 한 세기가 바뀌어 21세기에는 요 네스뵈가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대중적 스타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별다른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노르웨이와 한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그가 가끔씩 경이로워 보인다. 미국 중심으로 치우친 외국 대중문화 선호도의 틀을 깨는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이자 첨병 역할을 수행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고집스런 존재감이 해리 홀레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해리 홀레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배우가 과연 잘 어울릴까 라는 생각도 요즘 자주 해 본다. 방금 떠오른 적임자는 휴 로리, 폴 베타니, 아베 히로시 세 사람이다. 192cm의 장신에 여윈 몸매라면 대체로 얼굴은 가급적말상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이런 상상 조차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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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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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기존의 관습과 가장 거리를 두고 있는 가장 큰 차별점은 미시시피 주의 인종비율에 있다. 원래 미시시피라고 하면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시작되는 유년기의 추억이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 <미시시피 버닝>으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게 되어 있으나, 미국의 51개 주 중 흑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주답게 부유한 백인과 억압받고 착취 받는 흑인이라는 갑을 관계를 뒤집은 역전현상이 꽤나 인상적이다.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숫적으로 열세다보니까 뒷감당할 자신 없으면 깜둥이라고 입을 놀리지 말아야한다. 이제까지 이런 동거관계는 없었다.

 

 

소설의 배경은 미국 미시시피 주의 작은 마을 샤봇이다. 평생 마을을 떠난 일 없는 백인 토박이 래리 오트에게는 모두가 쉬쉬 하지만 뒷담화 꺼리가 될 만한 치명적 비밀이자 약점이 있다. 20여 년 전 고등학생이었을 때 래리와 데이트 하러 나갔던 동급생 신디 워커가 실종되어버린 것. 혼자 돌아온 래리를 모든 사람들이 의심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었다. 알리바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부잣집 여대생 티나 러더포드가 실종되는데 또 다시 의심을 받는 래리는 자살시도같이 보이는 총상을 당한다. 누가 봐도 신디 실종사건과 티나 러더포드 사건은 동일한 선상에서 동일한 용의자로 지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면서 온갖 냉대와 멸시, 거의 투명인간이나 괴물 같은 존재로 취급받았던 고통의 세월들이 계속 힘들다.

 

 

래리에겐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사일러스 존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 경찰이 된다. 사일러스는 흑인이다. 현재는 그나마 개선되었을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 백인과 흑인이 친구가 되어 어울린다는 것은 금기였다. 마초였던 래리의 아버지, 누구에게도 의지 않고 억척같이 아들을 키웠던 사일러스의 엄마, 짧았던 우정은 그렇게 종결되고 각자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만나지를 못했는데 2건의 실종사건은 피해자들이 결국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제 늦기 전에 사건의 종지부를 찍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진 관계의 회복이 시급했다. 그렇게 인종 간 문제해결, 우정, 용서와 화해의 여정이 수묵화처럼 마음속으로 잔잔히 스며들어오는 동안 래리는 정말 어눌하지만 오해 때문에 받은 상처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마음가짐에서 분노와 일탈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진실이 좀 더 일찍 고백을 하였더라면 무거운 짐을 덜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혜택을 제때 누리지 못했던 래리가 너무 불쌍했다. 한 번 덧씌워진 오명은 오물이 되어 평생 씻기지 않는 악취가 되어 괴롭히겠지.

 

 

이제는 미스터리계열과 순수문학의 장르융합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워졌다. 두 사람의 심리를 번갈아 보여주는 동안 독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인내하고 용서할 수 있겠는가가 될 것이다. 대신 미스터리는 상당히 취약하다. 서스펜스라고 할 만한 꼭지점도 없이 거의 심증에 의해 단숨에 매듭을 풀어버렸다. 이 순간만을 위해 그 많은 세월을 침묵으로 일관했던가, 라는 불편한 의구심이 질타로 연결되어 버린다. ​​

 

그래서 느슨함과 안일함이 장르적 쾌감을 원천봉쇄 했단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블평은 여기까지이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드라마적 요소에 모든 정서적 공감이 물처럼 흐르며 관통한다.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졌던 한 남자가 마침내 구원을 받아 광명을 찾는다는 결말에 늦은 시간 책을 다 읽고 나면 잠자리에 누워 비로소 단꿈 꾸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것으로 보상받으라. 뭉클한 감동과 여운을 만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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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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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덥고 낯설고 머나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뭔가 잘못됐다로 시작하는 장면은 아는 이 없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 발을 들인 작가의 긴장이 느껴지는 듯하다. , 이거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닐까 라는 후회가 살짝 엿보일 정도이니. 어쨌든 이 시리즈의 탄생에 앞서 과도기를 먼저 접한 경우를 돌이켜 보더라도 항상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사건은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었기에 반드시 통과의례의 하나로 사건일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은 점 충분히 이해한다. 대부분이 네스뵈에 본격적으로 열광한 시점이 <스노우맨>의 대중적 성공에 기인하고 있지 않은가? <박쥐>부터 읽게 되었다면 그렇게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국내독자들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유명인사가 된 해리 홀레의 과거가 뒤늦게 궁금해졌을 뿐이니까    

      

해리 홀레가 여기까지 날아오게 된 이유는 노르웨이의 잉게르 홀테르라는 아가씨가 교살된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하여 파견된 것인데 명목상 사유는 그렇지만 왠지 골칫거리가 내쫓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그는 한 팀이 된 앤드류 켄싱턴과의 만남에서 술을 거절하기에 이때만큼은 밝고 건전한 서른두 살 청년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역시나다. 노르웨이에서 범죄 용의자를 동료와 함께 차로 추적하던 해리는 불행한 사고로 동료를 잃는다. 분명 과실이 있었지만 이슈가 될 것을 두려워한 상부의 입김인지 오히려 면책으로 유야무야 되었고 괴로웠던 해리가 술에 빠지게 된 사연은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생각보다 길었다는 걸 알았. 나중에는 더욱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겠지만. 덧붙여 애정전선 조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무엇 하나 순탄치 않게 전개되리란 걸 너무나 잘 알게 될 것이고. 그는 사랑에도 서툰 남자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의 단어는 바로 애버리진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흑인을 일컫는 단어로 이 나라의 과거사에서 오욕으로 점철된 인종적 역사라고 한다. 예전에 기시 유스케의 <크림슨의 미궁>에서 처음으로 애버리진를 알게 되었는데 그 때도 잔인한 숙명 같은 걸 피하지 못했다는 게 기억나서 이래저래 처연하고 슬프다. 우성과 열성으로 분류되는 야만적 박해 앞에서 과연 가해자와 피해자는 어떤 기준으로 정의되는 지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사이코패스의 범죄로 치부할 것이냐, 아니면 그 이상을 넘어 특정한 의도가 있느냐는 동기 자체가 이방인의 시선에서 그려지기에 해리는 언제나 불완전한 왕따이자 청자로 소개되고 있다

 

박쥐가 상징하는 죽음뿐만 아니라 왈라, 무라, 버버가 등장하는 구전설화는 무수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고 더 나아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 정치, 문화, 관광을 아우르는 가이드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비밀을 풀기 위한 단계별 열쇠의 역할을 충실히, 그리고 차근차근 수행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물론 약간의 인내심을 요구하기는 한다. 해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주도하고 있지는 않으니 답답해 보일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거칠고 덜 다듬어진 해리의 모습은 나름 풋풋하기는 하지만. 

 

또한 앤드류가 한 말처럼 인간의 마음속에 난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무턱대고 믿고 따라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의도와 동기를 암시하는 복선들이 곳곳에 깔려있어 환한 길을 의심하며 따라갔더니 끝내 복받쳐오는 감정에 눈물이 차오르던 해리를 보면서 코 끝이 찡하다. 원하지 않던 전개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였던 것이다. 아마도 옳다고 믿는 바를 관철하려했던 연쇄살인마의 선택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만 부추긴 것과 동일한 이치일 것이다. 옳고 그름은 무엇으로 정의 내려야할지. 그런 오판을 하도록 만든 정의라는 이름에게 벌주는 복수가 과연 망상일지 일생일대의 사명일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결국에는 복수를 통해 벌을 주고자 하던 살인마와의 대결과 추격은 단죄의 박력과 쾌감을 잘 살려냈다고 본다. 일반적인 마무리가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그림에서 흥분되어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들었는데 살인범이 가진 가장 큰 감정은 좌절감이라고 했다. 해리도 출발부터 삐걱거리더니 좌절하고 마는데 끝없이 추락하고 싶은 기분을 감각을 깨우는 체험을 통해 천사가 되고자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라는 희망이 있었으니. 그리하여 미완의 캐릭터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처음을 지켜보는 것도 당연한 즐거움이 된다.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사랑한다는 이들은 선택이 아니라 기쁨 두 배가 될 첫 경험을 곁눈질 하다 부디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충성! 해리 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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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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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게 마냥 즐거울 수가 없다. 전업 작가든 독자의 리뷰 등 필자와 관계없이 누구나 지겨울 때가 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본인 스스로도 어떤 글이든 일 년 이상 계속 쓰면 질린다고 해놓고선 4년여에 걸쳐 특정 글을 연재해왔다는 것은 글쓰기가 즐거워야만 가능할 현상이겠다. 그런 차원에서 <에스콰이어>, <뉴요커>, <라이프>, <피플>, <뉴욕>, <롤링스톤>, <뉴욕타임스> 같은 잡지와 신문을 왕창 받아 맘에 드는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하여 일본어로 번역하였다는 그 작업이 거저먹기였다니 대놓고 노골적인 그 표현 방식이 솔직해서 좋다

 

 

거창한 포부 같은 건 없어도 80년대를 살아온 세대에게 추억을 상기하라고 앨범을 하나 보여줄 뿐이다. 맞다 그땐 그랬지 라는 회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다행히도 꿈 많은 10대 시절을 보냈던 덕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되 그것으로 족하다. 세대가 다르면 무작정 지루한 독서가 되었을 테니. 다행히 하루키는 추억이 망각되기 전에 차 한 잔 나누며 낭만을, 감성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하니 아니 좋을까그 시절 남학생들에겐 피비 케이츠, 브룩 쉴즈, 소피 마르소, 왕조현 브로마이드나 책받침 등이 필수아이템이었을 때 당대의 인기스타가 지금엔 어떤 위상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돌아보면 세월은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는 당연한 생각도 새삼 든다.

 

 

그러면서 <모비딕>이나 <위대한 개츠비>같은 책들을 제치고 누적판매부수에서 금자탑을 이룩했다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야기에서는 어떤 박해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고전으로 남은 그 저력하며, 남자가 늙을 때 나타나는 신체의 변화를 통계수치로 변환하여 어떡하면 쾌남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간단하지만 명쾌한 해답은 때론 상식이지만 또한 실천적 해법이라 귀 기울이게 된다예전 다른 에세이에서 헌욕 시스템을 창안한 것과 마찬가지로 성()에 관한한 은밀하고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는 하루키도 남자임을 상기시켜 주기에 그런 글들이 항상 재미나다.

 

 

 그리고 80년대 독신남 인기 순위에 있는 톰 크루즈와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스티븐 킹에 대한 언급은 특정작가를 향한 개인적 애정만큼이나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 기세가 새삼 경이롭다. 인기판도의 당시와 현재 사이에 등락이 없는 현존 스타를 이 책에서 찾아보면 사실상 두 사람밖에 없다. 그러므로 매력적인 독신남의 정의는 촌철살인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그 말이 유머러스해서 한참을 웃었던 것 같다. 게다가 책에서 소개하는 <쿠조><크리스틴>이라는 소설과 영화도 은근 보고 싶긴 하고

 

 

그 밖에 마이클 잭슨이나 브레이크 댄스, 실베스타 스탤론, 아놀도 슈왈츠네거 같이 익숙한 문화적 현상도 소개되고 있지만 무엇인지 전혀 감 안 잡히는 문화현상들은 한국에서 수용 가능했던 80년대 세계 대중문화의 경계가 어디쯤이었을지 가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뉴에이지 레이블인 <윈드햄 힐>의 등장은 반갑기 그지 없다. 그 장르의 매니아도 아니면서 나에겐 따뜻한 봄날같이 나른하고 황홀하며, 고풍스런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만 일본 디즈니랜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간단한 소망 정도로만 별다른 느낌은 없는 듯하다. 유일하게 관심이 안 가는 파트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에세이는 단순히 잡담거리로 치부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되돌아갈 길 없는 인생의 황금기를 잠시 타임 슬립하고 돌아온 착각 속에 흠뻑 빠져 행복한 포만감을 체험하였으면 된다. 그래, 글쓴이의 즐거움이 읽는 이의 즐거움으로 부메랑 되어 돌아오는 감성 팔이라고 불러도 될까? 이것은 결코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제대로 된 추억여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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