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혁명가 그리고 요리사
바버라 킹솔버 지음, 권경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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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혁명가 그리고 요리사는 멕시코 혁명 이념을 벽화로 구현한 디에고 리베라(화가),

그의 아내 프리다 칼로(화가), 공산주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혁명가). 이 실존인물 세 사람의

이야기에다 바버라 킹솔버가 허구의 인물인 해리슨 세퍼드의 이야기를 한데 넣어 7년간의 세월을 쏟아 부은 완성한 작품이 <화가, 혁명가 그리고 요리사>이다.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레닌이 죽고 난 후, 모든 권력은 스탈린에게 집중 이양된다.

 

 하지만 이에 맞서 불편한 관계로 마찰을 빚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이자 제3인터내셔널 코민테른 선언문을 작성했다는 레온 트로츠키였다. 결정적으로 양립할 수 없었던 두 사이. 결국 레온 트로츠키는 1927년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고 계속되는 스탈린의 위협에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도움으로 1936년 멕시코로 숨어들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기묘한 만남일지도 모르겠다. 러시아 혁명과 멕시코 혁명이라는 공통된 접점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세 사람의 만남은 예술과 혁명의 이름으로 세간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한다.여기에다 또 한 사람이 추가되었으니 해리슨 셰퍼드라는 남자였다. 미국인과 멕시코인을 각각부모로 둔 이 남자는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요리와 작가로서의 재능이 있었고

 

세 사람의 곁에서 일상을 기록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그리고 가까이서. 그래서 허구와 상상의 변주 속에서 탄생한 드라마는 극적이며 굉장히 사실적 이까지 하다. 분별이 힘들 정도로.그들의 인생은 겉으로도 드러난 역사적 진실의 틀을 벗어나서 다른 각도에 접근할 변형된 시각을 제공하는데 흔히 대중들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모르는 틈새를 부정하며 미스터리로 치부되는 우유부단함을 가지고 있음을 작가는 냉정히 지적한다. 어쩌면 사막폭풍 아래 묻혀버린 유물을 발굴하는 자세로 우리가 놓쳐버린 특정한 단면들을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바버라 킹솔버가 미국에서는 예술과 정치가 불편한 관계에 놓임으로서 자기비판을 혐오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단정하는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애국적 보수주의로 똘똘 뭉친 미국의 단단한 벽돌을 형성하게 된 계기를 찾아보고자 한데서 출발하는데 그 정신은 소설 속 청문회에서의 세펴드가 한 답변에 잘 나와 있다.예술작품의 목적은 정신을 고양시키고 한 사람을 기억시키기도, 잊게도 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정작 노래는 없으니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다짐했다. 미국이라는 배를 건조하기 위해 뭔가 주고 싶었던 것이 정착한 이유이다.” 그리하여 킹솔버의 세계는 장대하고 비범하다. 흥미진진한 역사의 뒷이야기가 진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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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의 바다 위에서
이창래 지음, 나동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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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담들에 둘러싸인 각 지역 사람들은 지역 실정에 맞게 살아가는데

우선 차터 사람들은 건강에 좋은 음식만 선택해 먹고 자녀들을 과외 시킨다.

B-모어 사람들은 전형적인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는데

특별한 호사를 누리지는 못해도 적당히 먹고 사는데 지장 없으니

차터 사람들의 지시를 받아

일하고 상납도 하면서 주어진 몫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자치주는 사실상 가진 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있는

황폐화된 지역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자치주를 포함해서

사실상으로 공통된 이슈가 없을 것 같은 세 지역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원인불명에 변변한

치료제도 마련되지 않은 C-질환이라는 질병이다.

그나마 계급사회의 빛과 그늘에 따라 의료혜택을 박을 수 있는

차터 사람들은 형편이 낫지만 B-모어 사람들은 최소한의 치료기회만

부여되며 자치주 사람들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라

모든 것은 하늘의 운에 맡겨야만 한다.

 

디스토피아로 설명되는 가상의 세계, B-모어에서 수족관 잠수부로

일하는 17살 중국계 소녀 판. 어느 날 남자 친구 레그가 사라지자

그를 찾아 나선다. 아무도 레그의 실종에 관심이 없어 대신 찾기로

한 것인데 지금까지 살던 세계를 벗어나 아직까지 가 보지 못한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판의 행보는 변화 없던 세계관에 파문을 일으키고...

 

구역의 정문은 외부로부터의 침입불가이면서 예정된 패턴대로

정해진 일상을 담보하는 수호자이자 관문이었을 것이다.

제 판의 여행은 절대 이루어질리 만무한 소망을 외부로 실어 나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는

실로 기이하고 환성적인 여정들로 빼곡한데 밖으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몰랐을 진실들, 학교에서 배웠던 교과서들은 순응과 질서만

가르쳤을 뿐,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어려움을 겪고 헤쳐

나가는지 철저하게 눈과 입을 가렸었다.

 

점차 틀에서 눈을 뜨는 판.우리 각자는 개인의지를 가진 채

결정하고 의견도 내놓을 권리가 분명 있다.

습관화된 범례를 길잡이로 선호했을 뿐이다.

급의 불평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권태감과 텅 빈 공허감이 남게 된다.

비록 가상이지만 현실이 반영된 소설 속 사회의 모습들은

암울하고 어두웠기에 판이 여행하며

전파하는 희망이란 씨앗은 등불처럼 환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자신들을 서로 묶고

서로 달라붙어 있었지만 틀을 깨고 나서면서

사랑이라는 응원을 점차 배우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처음에는 낯설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글귀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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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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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잎이 생리적 연령에 도달하여 식물에서 이탈하는 현상이라고 하겠지요. 이는 쇠락과 죽음을 암시하며 모두 덧없음의 이미지요, 지나간 날의 달콤함을 떠오르게 하지 않기에 지나간 여름의 향내라는 표현도 찾아보니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표지를 들여다보면 붉은 낙엽이 썩어 쌓인 토양에 언뜻 붉은 피가 저택의 창가와 문 밖으로 흘러내린 것도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작가 토머스 H. 쿡의 작품세계관은 낙관론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었음을 미리 고지하면서 삶은 우리가 원하는 행복한 결말로 진행되지도 않을 것임을 동시에 결론 내리고 있기도 합니다.

 

 

에릭 무어라는 이 남자는 이미 인생의 한파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동차 사고로 죽고 여동생은 병에 걸려 고통스런 죽음을 겪었으며, 형 워렌은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자기 주도적인 인생을 설계해 본 적 없는 낙오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가족의 부양을 자신의 진로에 걸림돌로 생각하고 독불장군으로 군림하여 숨통을 막으셨던 분이십니다.  유일하게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커왔던 에릭은 이 모든 불행이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의심할 뿐입니다.  결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아니 조금도 닮고 싶지 않았던 에릭에게도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아들 키이스를 대하는 방식이 겉으로는 자상한 아버지처럼 비쳐지지만 아버지의 권위에 맞서지 않고 회피하고 순응하는 어린 시절로 인하여 마음 속 진정 우러나는 이해와 진심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에 의심을 조금씩 키워가던 에릭에게 두번 째 한파가 닥칩니다. 키이스가 이웃집 소녀를 돌봐주고 돌아온 후 그 애가 실종됩니다. 이제 모든 정황은 키이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진실을 둘러싼 세상의 편견에 맞서면서도 혹시라는 내면의 의심이 또다시 꿈틀거리는 걸 막지 못하게 됩니다. 불신은 아버지를, 형을, 아내를, 아들을 하나씩 집어삼켰다가 내뱉는 되새김질을 하는 와중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균열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번 시작된 미세한 균열은 마냥 튼튼해보였던 그 축을 소리소문없이 붕괴시켜서 시간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앞서 다른 분들도 언급하셨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포커스는 누가 범인이냐 같은 추리적 과정에 기인한  합의적 도출은 아닙니다. 오히려 심리적 갈등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의 리듬에 시선을 고정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족의 불행을 이미 겪은 세대원은 다시 한 번 시행착오를 되출하고야 마는 우를 범한 것이죠.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아집을 못 버린 에릭의 끊임없는 의심의 증폭이 모두를 이차적인 불행으로 이끈 것입니다. 어머니를 죽게 한 것은 아버지가 아닐까? 여동생 제니는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면? 아내는 딴 남자랑 놀아나고 있는 건가? 키이스가 정말 범인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두가 세상이라는 깨진 병 조각을 벗어나 편온하고 따스한 벽난로가 되고 싶은 마지막 보루의 절망을 지켜보며 우리 모두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호를 달게 합니다. 더 불편하고 경멸스러운 사람들과 어쩔 수없이 기만과 위선으로 똘돌 뭉쳐 자학적인 동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은 에일리언이 부식성이 강한 액체를 토해내어 우주정거장의 한 층, 한 층을 차례대로 부식시키며 더 낮은 바닥수준으로 향한다는 소설 속 표현처럼 마음 속의 의심과 오해는 가차없이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스런 결말을 낳게하는지 그 폐해를 낱낱이 그려낸다는 점에서 살인마의 칼날보다 무섭고 뒤틀린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깊이 파고들어 고통의 산물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모든 아픔을 뒤로 한 채 가족은 화해하고 밝고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게 한다는 허무맹랑한 선택 대신 이럴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라는 듯한 마지막 선택때문에 고통과 슬픔이 극한까지 도달했던 것 같습니다.  

 

 

이로써 우리 모두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보다도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열렬히 아끼고 사랑하라는 명제를 얻게됩니다. 방심하면 그 틈새를 불신이 파고들어 쓰나미처럼 한 순간에 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준엄한 경고도요....  그래서 소설 속 인물심리 흐름을 조용히 따라가면서 에릭에게 비난을 가할 자격이 없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똑 같은 존재입니다. 그것을 작가는 주인공이랑 우리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죽음을 대하는 취약한 긍정의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제 <채덤 스쿨 어페어>가 금년 중에 출간되겠지요. 추리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토머스 H. 쿡의 명성을 다시 확인해 볼 좋은 기회가 어서 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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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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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거 뭐더라, 참 좋아하는 TV 광고가 있었는데

군대 간 동생에게 군것질거리 보내니까 내무반에서 나눠먹고

혹시 몰라서 친구들 사진까지 동봉한다는 누나의 편지다.

동생이 고맙다고 전화하니 고맙긴, 잘해라고 하는

그 누나의 목소리가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내 동생을 위하여.’ 정이 물씬 풍기는 그 광고에서

세상 누나들은 어릴 때 엄마 대신 업어주기도 하고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 같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많이 해봤다.

 

그래서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평소 적잖았다.

동생은 귀찮기만 할 것 같으니 누나면 족하다 싶었는데

때마침 남동생 없는 마스다 미리”, 누나 없는 ”,

실제 경험담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이 만화와의 만남이

어떨지 궁금했다. 간접 공감할 것인가, 생뚱맞을 것인가.

가벼이 읽어나갈 수 있어 좋긴 한데

흐흠 이 누나 괴상망측, 과대망상이 심하다.

우선, 읽지도 않을 책은 왜 그리 사들이기만 하는지?

(그러고 보니 여자들이 그런 경향이 다분한 것 같은데

? 읽지 않는 거지? 읽고 나서 다른 책을 사지...)

 

그리고 혼잣말을 항상 들리게 한다.

또한, 퇴근해서는 동생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훈남 이야기만 주궁장창 한다.

때론 시크한 척.그러니 시집 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눈만 63빌딩 높이.

더구나 남동생에게는 넌 여자를 몰라 하면서

4차원적인 연애개론을 강론하질 않나

아울러 여자에게 넌 빵점짜리 라며 캐 무시 한다든지,

게다가 마술편에선 대단한 자존감에다 속물근성까지.

그런데 여자에게는 간식 배가 있다고도 하네.

그건 웬만한 여자들에게는 공통사항 아닌가?

울 동료여직원도 몇 분 간격으로 이거 먹고 싶다.

저녁에 저거 먹을까?종일 먹는 타령을 하는데

실제 그리 먹지도 못할 거면서

왜 그러는지, 상상만 하는 이유가

이해할 수가 없구나.

 

부모님 입장에서는 누나니까

동생을 곁에서 잘 돌봐 주리라 기대하시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실 날이 오려나.

(그런 척 생색내는 지하루 .)

이야기를 언제나 들어줘야 하는 동생 준페이가

설마, 세상 여자들 모두 저렇지는 않겠지

부르르 떠는 장면에서 지대로 공감작렬!!

 

남동생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은

놀랄 정도로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누나가 있다면 실제 저럴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하니까.

다만 여기서 그려지는 상황들에서 추측할 수 있는 면면은

단순히 누나가 아니라 사람들이라면 응당 있을 것 같은

개인적 성향을 무리하게 적용시킨 점도 있고

여자들의 공통분모도 분명 보인다.

 

그런 점을 차지하고라도 누나라는 존재는 말이지.

책의 뒤표지에 나오는 효능 남성편 1,2번은

이미 여자들에게서 느끼고

있는 터라 의미 없지만 결정적으로 3번은 호소력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누나가 있었으면 하는 초반의 소망은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와장창~~~~

어차피 지금에 와서 친누나가 생길 리도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은 웃기고 재미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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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의 계절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바버라 킹솔버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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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킹솔버의 <본능의 계절>은 미국 납부 애팔래치아 산맥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세 여성이 농경공동체 속에서 개별적인 공존과

삶의 자존감을 일깨우며 스스로의 운명을 축복하는 소설이다.

포식자들의 주인공 디아나는 세상에서 벗어나 깊은 산속에서

삼림감시원이자 야생동물연구가로 지내고 있다.

 

그녀는 인간 때문에 몰살당한 코요테의 흔적을

끈질기게 추적하던 중이었는데

은밀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감시망 앞에 한 젊은 남자가 포착된다.

분명 몰래 그녀 뒤를 밟아 뒤따라 왔다 생각했겠지만 몸을 숨기는데

능하고 감각에 능통한 그녀의 이목을 피할 수 없었기에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에디 본도

 

에디는 그녀 뒤를 따라오면서 계속 관심을 표하지만

그녀의 관심은 코요테가 남긴 배설물에서 특화된 종족의 표시를

발견하는 일 등에 더 신경이 집중되어 자신의 양을 지키기

위해 코요테를 쫓는다는 이 남자가 처음엔 거슬렸지만

곧 젊은 남자의 매력에 이끌린다.

그 남자에게서 자신의 결혼생활의 실패를 떠올렸으며

코요테와 인간 남자라는 두 포식자에게서 동시에

야성을 느끼게 된 셈이다.

 

그동안 혼자만의 삶에 익숙해있던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욕망에 눈뜬다.

나방의 사랑20대 여성 루시가 산골마을 영농후계자인

남편 콜과의 생활에서 출발하여 남편과의 사별 이후 겪는

이야기이다.남편이 죽고 없으니 시누이들과의 마찰이 괴롭다.

시누이들은 매우 깐깐하게 간섭과 스트레스를 루시에게

주고 있는데 농장을 루시가 팔아버리고 멀리 떠나버릴까 싶어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다.

 

이 고충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조카와 낯선 남자에게

조언과 도움을 얻는다. 바로 대화 속에 답이 있었으니.

빚더미에 빠진 농장의 미래를 바로 잡기 위하여 투쟁하는 루시는

과거 곤충학자 였던 전력 때문인지 나방이 종족 간에 말하는 방식,

나방이 교미하고 번식하는 방식을 통해서 그녀의 인생 전체와

공존이라는 법을 배우게 된다.

 

옛날 밤나무는 가넷이란 남자와 내리라는 여자 사이의 대립과

반목에 관한 애증의 고찰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나무의 병충해를

없애기 위한 살충제 사용을 둘러싼 충돌이었으니 신경전은 지속되고

그러는 사이에 묘한 교감도 형성되기에 이른다.

결국 서로를 통해 한풀이와 상처의 치유를 계기를 발견한 것도 같다.

 

이렇듯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들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

세 여성의 삶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농업과 목축이라는 순수를 벗어나 파괴적 개발을 벌일 때,

덩달아 억눌리며

살아왔던 속박된 운명을 박차고 일어나 자연의 본능에 순응하고

내면의 야생성을 깨우치는 여정들을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생로병사를 반복하며

생산과 재생산을 유유히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생명력의 끈질김은 경이롭기만 하다.

대 자연의 품에서 주체적인 삶을 즐기는 세 여성 디아나, 루시, 가넷

눈부시다. 덕분에 덩달아 나도 즐길 수 있었다. 지극히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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