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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콩 까는 소린 말 타는 서부 가서나 합시다.
그러니까 그 뭐시냐?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참 뻘짓 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도 안 읽고 무작정 작가와의 팬 미팅에 참석해서
멍 때리고 앉았다가 사인 받고 희희낙락 했으니 말이다.
후안무치 했던 것 같아 얼굴이 뒤늦게 달아오른다.
그날 그 자리에서 오고 간 주제들은 주로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오재호, 강충식, 한영기 같은 인간들...
오히려 할아버지, 담임, 누나 같이
장태주의 재능을 진심으로 아껴주면서
결핍된 가족애를 대신 보충해주었던 이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똥간에서 태어났다는 초반부 말이다. 과연 응가하다 낳은 것이냐, 그냥 낳은 장소가 똥간이냐. 전자로 믿고 싶은데 장태주 스스로가 우주에서 가장 박복한 꼬라지라고 간주하며 세상에 대한 지독한 반감을 쏟아낼 때 무엇인가에 발목 잡히기라도 한 것 마냥 진도가 나가지 않아 꽤나 힘들었다. 끊어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처럼 과하다는 정도? 대화체로 넘어가야 그나마 수월하다.
그런데 그 턱을 넘어서면 비로소 술술 풀린다. 의외로 사람들은 오재호에 공감을 표시한다고 했다. 금수저와 흙수저 간의 허물 수 없는 경계.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사는 데 못난 사람은 거지근성만 남아 상황을 개선할 싹수가 안 보인다는 독설. 이런 녀석이 어른이 되면 빽 만 믿고 갑 오브 갑을 자처하겠지 싶다가도 나도 조금이나마 오재호의 논리에 다소 동조하게 되는 까닭은 여전히 미스터리했다는.
강충식의 경우에도 진화하는 일진을 자연스레 정당화 시키려 드는데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겉으로는 온건하게, 그런 식으로 자발적으로 상납하도록 만드는 갖가지 구실들은 돈의 액수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바쳐야 하는 그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게 상당히 무섭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양의 탈을 쓴 채,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장한다. 권력의 합법화와 질서유지와 균형의 측면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드디어 재능의 꽃을 피울 것처럼 보이던 장태주의 폭주와 광기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불공정이라는 악습이자 누군가에겐 편의라는 시스템에 노골적으로 발광하는 모습이 속 시원하다. 그런다고 달라질 세상도 아니요, 어차피 당해낼 도리가 없다면 욕 한 사발 들이키고 수건 던지고 나오는 것도 괜찮다. 다소 뻔해 보이던 이야기도 그런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찰 지게 읽을 수 있었으니, 정말 콩 까는 소린 말 타는 서부 가서나 하라고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