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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평점 :
1) 악마의 증명:
예전에 처음 읽었을 때랑 지금 다시 읽었을 때랑 느낌이 달랐다. 몇 년 전 모 인기 드라마의 표절 논란에 화들짝 놀라며 신기했던 기억이 새삼 나는데 과연 법대생이 아니었다면 박철이 이런 구상을 할 수 있었을까, 법의 맹점을 이용해 뛰는 놈이 될 뻔 했다가 법을 더 잘 아는 나는 자가 내리는 법의 심판은 저자가 가장 잘 구사할 수 있는 특기였다.
2) 정글의 꿈 :
한여름의 꿈이던가. 요양병원에서 마지막 남은 한 줌 인생을 보내고 있는 광수 노인이 같은 병실의 태봉 노인에게 털어 놓은 신비한 체험. 조각은 광수 노인의 젊은 시절 꿈이자 취미였던 것인데 다시 시작했더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자신은 타잔이 되어 터질 것 같은 허벅지로 제인을 공략하고 밀림의 왕자로 모험을 즐기는 즐거운 나날들이 반복되면서 활력과 웃음을 되찾게 되는데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걸까 싶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런 배후 작업이 있었다니 개인적으로는 도입에 찬성한다. 합법과 위법의 경계가 어디쯤일지 애매하긴 해도 마지막엔 행복할 수 있다면.
3) 선택:
첫 단편에 등장했던 호연정이 검사직을 사퇴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숨진 딸과 손녀는 자살이라며 보험사에서 경찰 수사 결과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일이 있어 이 소송 건을 맡게 된다. 아무리 봐도 자살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힘들고 심증만이 자살일리 없다고 가리키는데... 결말은 해피 했고 그렇게 유도하기 위한 추리는 그럴싸...
4) 외딴집에서:
함부로 탐정놀이 하다 보면 요렇게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 메시지. 자칭 탐정이라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연쇄살인마를 쫓는다며 미행하다 공격 받아 정신을 잃는데 눈을 떠보니 그곳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고, 나중엔 더욱 놀라운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일본 호러 소설을 연상케 하는 기시감이 있긴 하지만 구질구질하게 요설을 늘어놓지 않아서 깔끔했다.
5) 구석의 노인:
안락의자 탐정은 과학적 추리를 지향하는 현대 추리물을 모독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에 썩 좋아하지 않는다. 링컨 라임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따라서 옥선 노인이 술술 털어놓은 가설은 말 그대로 소설일 뿐. 어디에도 그렇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
6) 시간의 뫼비우스:
민경이 기차 여행을 하던 중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자에게서 자신이 같은 인생을 수십 번째 살고 있다는 고백에 점차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현실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면 이 남자가 낮술 걸치고 주사를 늘어놓거나 과대망상증 환자라 생각하고 상대도 않을 텐데. 그리고 이 남자가 얽히게 되는 악연의 시작이란 것도 하필 그 타임에, 고작 그런 이유로?
7) 킬러퀸의 킬러:
다 읽고 나서 어떻게 그런 추리를 보통사람이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원이 추리소설 작가라면 그런 상상도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다만 남편의 죽음과 피터 최의 연관성은 역시 장광설에 가깝지 않나. 증거를 내놓으시지.
8) 죽음이 갈라놓을 때:
슬래셔 + 오컬트적인. 도진기 작가는 이런 장르에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상황 파악 안 되게 저돌적으로 몰아붙이는 이런 이야기가 한이 서려 있어 내내 오싹했다. 다른 단편들 사이에 섞어 놓으니까 정신 바짝 들게 한 만큼 시원시원하다. <외딴집>과 더불어 가장 맘에 들었던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