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소녀˝ / 도나토 카리시

안개 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7년 5월

한 소녀의 실종은 처음엔 우발적인 가출 정도로 사소해 보였다. 돈이 떨어지면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렇게 믿어 버렸다. 간섭과 통제가 심한 교구 공동체에 반발해 가출하는 십대들의 사례는 이 작은 마을에서도 흔한 일이었고 그 어떤 목격자도 없는 상태에서 납치사건으로 둔갑시키기엔 무리다, 그러나 포겔 형사의 야심은 애나 루의 실종이야말로 자신의 경력에 난 흠집을 메우고 광내기 위한 절묘한 찬스였다.

그는 과거 언론을 이용한 사건몰이와 공작에 나섰다가 무참히 들통난 적이 있었다. 이번에 다시 한 번 언론을 통한 조작으로 재기의 발판으로 삼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대중들은 신속한 범인검거에만 관심 있을 뿐, 진실 규명에는 의의를 두지 않는 다는 말이 절로 실감나는 상황들의 연속이 아니었나. 스스로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무고한 시민을 유력한 용의자로 만드는 것도 순식간이다.

포겔의 입장에선 마티니 선생이 범인이란 역할에 적임자이기만 하면 된다. 진짜로 그가 범인이라고 믿고 싶었을 테고 실제 그렇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언론에서도 이 좋은 먹잇감을 그냥 두고 싶지 않을 테니 휩쓸려 가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라 군중심리이기도 하다, 무형의 폭력 앞에서 개인은 철저히 매장될 뻔도 하다가 필요에 따라 영웅으로 재포장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길 만한 괴물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런데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 이미 들어서인지 위화감 없이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었다. 악은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피력은 소신이자 방향성을 드러내는 복선이기도 한데 예상하지 못한 경로에 들어선 것이 충분히 의도적이라는 자신감의 부연 설명이었다. 나쁘지 않다. 선은 악이고, 악은 또 다른 악을 잉태한다는 결말 앞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은 아무데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남겠지만.... 아무쪼록 정의가 살아남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정의가 실현되는 것 따위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용의자를 원할 뿐입니다.

 자신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여서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모든 게 다 괜찮다고,

 언제나 해결책이 있다고 믿어야 하거든요.

 그게 사람 마음입니다."   <214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