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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
제임스 시겔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지금은 발길을 거의 끊다시피 했지만 한참 도서관에 드나들 때면 책장 속에 꽂힌 많은 책들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끌던 스릴러가 바로 제임스 시겔의 <탈선>이었습니다. 영화 <더티해리>의 감독 돈 시겔의 이름과 자주 헷갈렸던 작가의 이름도 기억에 남지만 짧은 제목에서 감지되는 강렬하고 묵직한 분위기 때문이라도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뒤늦게나마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인연이자 행운이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탈선, 단순히 정의하자면 선로를 이탈한 열차사고를 떠올릴 테고요, 인생에 대입한다면 반복되는 일상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개입하던가 아니면 작심하던지 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일탈되(하)는 것을 탈선이라고 장황하나마 정의를 내리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번 일탈된 삶을 선로 복구하듯 그리 쉽게 번복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계속 걷다보면 운 좋게 되돌아 올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미아가 되어 영영 파멸을 걷게 될지도 모릅니다. 탈선은 무엇보다 권태기에 소리 소문없이 찾아오는 치명적인 유혹이기에 주인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것은 단지 소설만이 아니라고, 나 자신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찰스 샤인이라는 한 중년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스트 베닝턴 고등학교와 아티카 주 교도소에서 번갈아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찰스는 주 교도소 죄수들에게 작문과제를 내주는데 어느 날 출근을 위해 기차에 탑승했던 한 남자의 억울한 사연이 담겨있는 과제물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시점은 그 남자의 이야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죠. 사건의 발단은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어린 딸을 둔 광고회사 중역인 찰스가 깜빡하고 승차권 없이 통근열차를 타고가다 루신다라는 여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찰스는 이후 루신다와 다시 만나 불륜에 빠지게 되는데 문제는 불륜현장에 강도가 침입해서 그녀를 겁탈하고 찰스를 구타한 후 지갑마저 빼앗아 가 버립니다.
어찌 보면 미친개에게 한번 물린 셈치고 잊으려했던 그날의 악몽은 점차 현실 속의 두려움이 되어 일상을 뒤흔들게 되는데요. 라울 바스케즈라는 그 강도는 두 사람의 불륜을 폭로하겠다면서 돈을 대가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찰스 부부에게는 딸 안나의 당뇨치료와 미래를 위한 투자용도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찰스는 비밀유지를 위해 어쩔 수없이 이번 만이라는 심정으로 돈을 아내 몰래 주고 맙니다. 그렇지만 집에까지 찾아와 위협하는 바스케즈에 시달리던 찰스는 그를 손보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데 오히려 피 청부인이 살해당하고야 맙니다. 죽은 시체를 비밀리에 처리해야 했던 찰스는 추가적인 현금 요구에 못 이겨 횡령까지 저질러가며 만든 돈을 바스케즈에게 건네주고 말죠.
내가 헛것을 본게 아니었다.
바스케즈는 분명히 메세지를 남겨놀놓고 간 것이었다.
자, 이제 보이지? 여긴 이제 내 구역이야. 네 집, 네 인생, 네 가족.
이젠 다 내 것이 되었다고.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법, 결국 횡령사실이 발각되어 정직당하고 아내에게는 별거 조치를 당합니다. 게다가 바스케즈의 협박 뒤에는 숨겨진 내막이 있음을 알게 된 찰스는 이제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선택과 판단을 되돌리기 위해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통쾌하고 후련한 결말이 독자들을 짜릿한 롤러코스터로 인도하는 것이랍니다.
"난 당신이 뭐든 내게 마음 편히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가슴이 저려왔다. 대화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두사람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
이 소설은 말이죠. 소재도 뻔하고 예측 가능한 전개입니다. 부부의 권태기, 자식에 대한 간병으로 등허리가 휠 지경인 아버지, 성공의 압박에 시달리는 회사생활,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킬 일탈에는 당연히 대가가 따르면서 거듭되는 추락과 마지막 권토중래, 악은 지옥으로까지 스릴러의 정석에 더없이 충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습니다. 한 번 책을 잡으면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정도로 강한 흡입력에 조금만 더 읽어야지 하게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끊임없는 긴장감과 박진감, 그 속에 알차게 자리 잡은 정교함마저 어우러지며 매력적인 스릴러로 탄생되었군요. 잠시라도 안도할라치면 골목 모퉁이를 돌다 갑자기 도끼가 튀어나와 헛바람 들이키듯 심장박동을 조율하는 가공할 솜씨는 단연 발군입니다. 더구나 내가 찰스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했을까 라며 질문과 해답을 구하면서 깊숙이 감정 이입에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신이 내게 이런 말을 들려줬어요. 안나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안나와 함께 보내는 모든 소중한 순간들이 은행에 저축해 둔 예금액 같다고 말이예요. 계속 그렇게 모아가면, 그렇게 충분히 모아두면 나중에 아이가 자랐을 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좋은 추억들이 풍성해 인생을 부자로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비록 잘못은 저질렀지만 찰스가 그 점을 바로잡기 위한 결단과 분투에 내내 처연해하다가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화해하는 아내 디에나의 선택에서는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점에서 남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끈끈한 울타리를, 인생이라는 갈림길에서 많은 생각과 감동들이 여진처럼 남습니다. 모클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서 탁월한 선정이었으며. 존 카첸바크 + 더글라스 케네디의 조합으로 불릴만한 멋진 작품입니다.
추천도장 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