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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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고즈넉이 저물려고 하는 자주 빛의 하늘에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이 어디로인가 날아가는 중입니다, 고개 들어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한 여자가 나와 있는 표지를 들여다보노라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왠지 담겨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작가가 누마타 마호카루라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이미 출간된 전작들로 극심한 호불호가 엇갈렸던 그녀의 소설들은 광명의 빛줄기 보다는 칠흑 같은 어둠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리도록 독자들을 방임하는 것이 작풍으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두 남녀의 기묘한 동거는 달콤함이 아니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혐오와 경멸로 점철되어 불쾌한 마음에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지독한 악취가 글로 읽혀져 세상이 거부하고 싶게끔 하지요. 8년 전 자신을 철저하게 이용한 후 가차 없이 버린 쿠로사키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여자 토와코는 열다섯 연상의 진지라는 중년남자와 동거 중입니다. 진지는 볼품없고 지저분한 외모에다 어눌한 말투와 매사에 서투르고 미숙한 남자입니다. 여자들이라면 결코 쳐다보지도 않을 형편없는 남자라 토와코는 끔찍이 그를 싫어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기생하다시피 얹혀삽니다.

 

그렇지만 토와코의 경우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의 망상에 갇혀 살던 그녀는 백화점 직원 미즈시마와 불륜에 빠져있어 도적적 해이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점은 친 언니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고도 별다른 반박을 못하는 토와코의 반응을 통해 독자들의 심정을 속 시원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이죠. 정신적 공황에 놓여있던 그녀에게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 옛 사랑 쿠로사키가 5년 전 부터 실종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그녀는 혹시 진지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닐까라는 의혹을 품게되는데요. 현재 그녀가 만나는 미즈시마의 주변에도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자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자신의 사랑을 음해하려는 진지의 음모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나날이 커져 갑니다. 여기서부터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환희에 젖어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듯한 사랑은 길어봐야 2년 반을 못 넘는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녀는 왜 아직도 쿠로사키를 못 잊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후반에 들어서 그 비밀이 드러나면 비로소 그녀가 가진 망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됩니다. 미즈시마는 그녀에게 타클라마칸 사막 이야기를 가끔씩 들려주는데 그 사막 이름에 담긴 드리운 죽음, 무한, 출구가 없는 것이란 의미들은 자생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그녀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네요. 자신이 딛고 있는 이 세상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지 모른 채 모래구덩이에 발이 빠져 휘청거리며 허망하고 기이한 허무감이 몸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녀에게 사랑이야말로 새들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욕망을 실현시켜줄 구원의 손길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랑에 배신당한 그녀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일련의 행동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진지는 어렸을 적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불우한 성장환경으로 아픈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어서인지 토와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집착 수준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그녀로부터 수시로 구박받고도 공세를 멈추지 않지요. 같은 남자가 봐도 숨 막힐 정도의 집착이지만 한편으로는 천성이 악한 남자가 아니기에 연민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또한 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인 튀김우동, 소 이야기 등을 통해 자신이 못 누렸던 애정과 행복을 토와코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은 눈물겨운 순정이 담겨있기에 이런 순애보가 또 있을까 싶어 무작정 미워할 수 없게 하지요.

 

그렇게 왜곡된 사랑으로 힘겨운 전개를 보여주던 이야기가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라며 진지는 토와코에게 진정한 해방구를 제공하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남녀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진리를 도외시한 채 자신의 기준대로 반응하기를 기대하기에, 남녀 간의 사랑은 오해와 사고와 문제로 가득한 것이겠죠. 토와코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느끼는 회한을 보며 우리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여성은 이상으로 사랑을 하고, 남성은 속셈으로 사랑을 한다는 명언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토와코를 만난 쿠로사키와 미즈시마가 그랬다면 목숨 걸고 사랑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진지는 속설을 거부한 남자기에 특별합니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사랑에 빠져 있기도 쉽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이므로. 하지만 한 사람 곁에 머물면서 그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랑을 주면서도 그 누구보다 외롭고 공허했던 두 사람 토와코와 진지. 처음부터 중반 이후까지 두 사람을 저주하던 제가 압도적인 결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랑을 준 사람도 후횐 따위 없었노라고 자신 있어 할 때 받은 사람도 억만금을 주어도 얻지 못할 진정한 행복을 누렸었음을 뒤늦게 알아 차렸기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사랑이 뭐길래 밉지 않나요? 이 순간에도 이 세상의 많은 남녀들이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울고 있습니다. 지금 사랑이 탐탁치가 않다구요? 한 남자의 절대적 순애보를 한번 만난다면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감동과 슬픔에 몸을 떨게 될지도 모릅니다.

 

2012년을 빛낸 최고의 일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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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 모중석 스릴러 클럽 1
제임스 시겔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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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발길을 거의 끊다시피 했지만 한참 도서관에 드나들 때면 책장 속에 꽂힌 많은 책들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끌던 스릴러가 바로 제임스 시겔의 <탈선>이었습니다. 영화 <더티해리>의 감독 돈 시겔의 이름과 자주 헷갈렸던 작가의 이름도 기억에 남지만 짧은 제목에서 감지되는 강렬하고 묵직한 분위기 때문이라도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뒤늦게나마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인연이자 행운이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탈선, 단순히 정의하자면 선로를 이탈한 열차사고를 떠올릴 테고요, 인생에 대입한다면 반복되는 일상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개입하던가 아니면 작심하던지 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일탈되()는 것을 탈선이라고 장황하나마 정의를 내리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번 일탈된 삶을 선로 복구하듯 그리 쉽게 번복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계속 걷다보면 운 좋게 되돌아 올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미아가 되어 영영 파멸을 걷게 될지도 모릅니다. 탈선은 무엇보다 권태기에 소리 소문없이 찾아오는 치명적인 유혹이기에 주인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것은 단지 소설만이 아니라고, 나 자신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찰스 샤인이라는 한 중년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스트 베닝턴 고등학교와 아티카 주 교도소에서 번갈아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찰스는 주 교도소 죄수들에게 작문과제를 내주는데 어느 날 출근을 위해 기차에 탑승했던 한 남자의 억울한 사연이 담겨있는 과제물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시점은 그 남자의 이야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죠. 사건의 발단은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어린 딸을 둔 광고회사 중역인 찰스가 깜빡하고 승차권 없이 통근열차를 타고가다 루신다라는 여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찰스는 이후 루신다와 다시 만나 불륜에 빠지게 되는데 문제는 불륜현장에 강도가 침입해서 그녀를 겁탈하고 찰스를 구타한 후 지갑마저 빼앗아 가 버립니다.

 

어찌 보면 미친개에게 한번 물린 셈치고 잊으려했던 그날의 악몽은 점차 현실 속의 두려움이 되어 일상을 뒤흔들게 되는데요. 라울 바스케즈라는 그 강도는 두 사람의 불륜을 폭로하겠다면서 돈을 대가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찰스 부부에게는 딸 안나의 당뇨치료와 미래를 위한 투자용도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찰스는 비밀유지를 위해 어쩔 수없이 이번 만이라는 심정으로 돈을 아내 몰래 주고 맙니다. 그렇지만 집에까지 찾아와 위협하는 바스케즈에 시달리던 찰스는 그를 손보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데 오히려 피 청부인이 살해당하고야 맙니다. 죽은 시체를 비밀리에 처리해야 했던 찰스는 추가적인 현금 요구에 못 이겨 횡령까지 저질러가며 만든 돈을 바스케즈에게 건네주고 말죠.

 

내가 헛것을 본게 아니었다.

바스케즈는 분명히 메세지를 남겨놀놓고 간 것이었다.

자, 이제 보이지? 여긴 이제 내 구역이야. 네 집, 네 인생, 네 가족.

이젠 다 내 것이 되었다고.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법, 결국 횡령사실이 발각되어 정직당하고 아내에게는 별거 조치를 당합니다. 게다가 바스케즈의 협박 뒤에는 숨겨진 내막이 있음을 알게 된 찰스는 이제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선택과 판단을 되돌리기 위해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통쾌하고 후련한 결말이 독자들을 짜릿한 롤러코스터로 인도하는 것이랍니다.

 

"난 당신이 뭐든 내게 마음 편히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가슴이 저려왔다. 대화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두사람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

 

이 소설은 말이죠. 소재도 뻔하고 예측 가능한 전개입니다. 부부의 권태기, 자식에 대한 간병으로 등허리가 휠 지경인 아버지, 성공의 압박에 시달리는 회사생활,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킬 일탈에는 당연히 대가가 따르면서 거듭되는 추락과 마지막 권토중래, 악은 지옥으로까지 스릴러의 정석에 더없이 충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습니다. 한 번 책을 잡으면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정도로 강한 흡입력에 조금만 더 읽어야지 하게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끊임없는 긴장감과 박진감, 그 속에 알차게 자리 잡은 정교함마저 어우러지며 매력적인 스릴러로 탄생되었군요. 잠시라도 안도할라치면 골목 모퉁이를 돌다 갑자기 도끼가 튀어나와 헛바람 들이키듯 심장박동을 조율하는 가공할 솜씨는 단연 발군입니다. 더구나 내가 찰스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했을까 라며 질문과 해답을 구하면서 깊숙이 감정 이입에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신이 내게 이런 말을 들려줬어요. 안나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안나와 함께 보내는 모든 소중한 순간들이 은행에 저축해 둔 예금액 같다고 말이예요. 계속 그렇게 모아가면, 그렇게 충분히 모아두면 나중에 아이가 자랐을 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좋은 추억들이 풍성해 인생을 부자로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비록 잘못은 저질렀지만 찰스가 그 점을 바로잡기 위한 결단과 분투에 내내 처연해하다가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화해하는 아내 디에나의 선택에서는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점에서 남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끈끈한 울타리를, 인생이라는 갈림길에서 많은 생각과 감동들이 여진처럼 남습니다. 모클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서 탁월한 선정이었으며. 존 카첸바크 + 더글라스 케네디의 조합으로 불릴만한 멋진 작품입니다.

 

  추천도장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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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2
도진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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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추리스릴러라는 장르가 마이너리티한 계급의 한가운데 놓여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일정부분에 있어 국산을 홀대하고 외제명품만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구매 선호도가 장르소설이라고 별 다르지는 않기에 외국 유명작가의 소설만 읽다 이번처럼 국내작가의 소설을 읽게 되면 그 생소함, 편견 등은 쉽사리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병폐들을 장르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실에 대한 공감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도 분명 내포하고 있다고도 보여지구요.

 

네 번째 시리즈로 돌아온(물론 이전 작들은 아직 만나본 일이 없는)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은 단편들의 집합체라는 특성상 모두가 만족스러울 일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가장 맘에 들지 않았던 단편들을 고르라면 시작과 마지막을 각각 담당했던 도진기 작가의 <악마의 증명>과 윤해환 작가의 <협찬은 아무나 받나>를 지목하렵니다. <악마의 증명>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일사부재리 원칙의 맹점을 이용해 무죄판결을 받자 그를 기소하고자 하는 검사의 기지를 다루고 있는데요. 솔직히 반전효과를 노린 것에 비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을뿐더러 우연과 작위의 남발이 아니었나 싶은 게 개연성이 없어 보여 수록작 중 가장 실망스러운 단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협찬은 아무나 받나>의 경우 설록 홈즈와 왓슨을 한국식으로 탈바꿈시킨 시도 자체가 별로였습니다. 그냥 사건해결기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경망스럽고 어수선해서 몰입이 안 되는, 작가에게는 무례한 표현일지는 모르나 시간낭비만 했다는 자책과 함께 대충 얼버무리며 독서를 끝냈습니다. 두 편 모두 올해 최악의 단편소설들이었다는 오점만 남긴 점은 안타까우나 다행인 점은 나머지 수록작은 불명예를 상쇄할만한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은 만족스러울만 합니다.

 

송시우 작가의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끌어들여 인권의 사각지대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도전과 선택으로 풀어낸 점은 이제껏 보기 힘들었던 소재에 대한 접근방식이라 비교적 신선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시급히 개선해야할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의 여지를 남겼다는 시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정명섭 작가의 <시장의 살인>에서도 감지됩니다. 고구려라는 고대사회에서의 독과점적 시장경제체제를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 현대사회의 여전한 병폐로 인식시킴으로서 장르소설의 재미는 시대를 반영하는 또 다른 거울이자 척도로 간주하게 된다는 확신을 남기는 겁니다.

 

이나경 작가의 <오늘의 탐정>은 <협찬은 아무나 받나>에서 실패한 위트가 살아있습니다. 어깨에서 힘을 빼고 던진 변화구가 타자의 삼진을 유도하듯 효과적이면서 즐거운 읽을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합니다. 진중하거나 아님 웃기거나... 생활 밀착형 추리의 재기발랄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또한 전건우 작가의 <은둔자(들)>은 예상 가능한 스토리와 결말임에도 스릴러의 긴장감을 잘 살려냈다고 생각됩니다. 제목에 있는 (들)이라는 단어에서 전해지는 불길한 암시가 서스펜스를 증폭시키면서 고립무원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활극으로 탄생되어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그 외의 수록작들도 비교적 만족스럽거나 무난한 퀼리티를 선보이고 있어 한국형 추리스릴러 소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옥의 티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제 취향에는요. 이렇듯 한국작가에 대한 지지와 애정은 작가와 작품에 따라 천차만별화 될 문제이기에 무조건적인 옹호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점은 한국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헐리웃 영화를 패자로 묘사해 애국적 선동선전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호들갑에 평소 반감을 갖고 있기에 추리 스릴러 소설에 있어서도 칭찬과 비판이 고루 돌아가야 함은 마땅할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니까요. 독자들은 즐겁게 읽을 독서거리를 바랍니다. 외국작가들로 인해 눈높이가 남다른 국내 독자들을 만족시킬 고퀄의 소설을 창작해야하는 것이 국내 작가들에게 주어진 과제요, 업그레이시켜야 할 역량일 겁니다. 그렇지 못하면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일단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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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서지희 옮김 / 살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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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용히 해, 널 죽이려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너에게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 기회를 주는 거야.

질문에 대답만 해. 우리가 왜 널 여기에 가두고 있을까?“

 

이 소설의 표지를 두고 입방아를 찧는 분들이 많지만 원래 살림에서 출간되는 소설들은 원래 표지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갑니다(헤드헌터를 떠 올린다면). 더 이상 언급하면 손만 아프니까요. 대신에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일반소설에서는 손길이 가지 않는 다양한 국적의 소설들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를 독일작가의 작품으로 예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지만 오리지널 덴마크 소설은 사실상 처음입니다.

 

소설은 한 여자가 손끝에 피가 맺힐 때까지 미끄러운 벽을 긁어대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요. 그녀는 지제장애자인 남동생과 여객선을 타고 가다 누군가로부터 납치당해 5년째 어딘지도 모를 폐쇄된 공간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범인들은 음식과 물, 용변기까지 때마다 교체해주며 그녀, 메레테 륑고로를 감금 감시하는데 아무래도 돈이 목적이 아니라 원한에 의한 복수인 것처럼 보입니다. 메레테는 유능하고 매력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중이었기에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정적이거나 이익단체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도 해보지만 사고사로 비쳐진 그녀는 세월의 흐름 속에 세간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며 잊혀지는 존재가 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 때 그녀의 실종에 의문을 품고 행방을 찾기 위한 수사에 돌입한 경찰조직이 등장합니다. 칼 뫼르크 경위와 시리아인 조수 아사드가 그들인데 칼은 범죄현장에 동료들과 출동했다가 범인들에게 습격 받아 동료 중 한 사람은 사망하고 한 사람은 불구가 된 상황에서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외상적 장애가 있는 문제적 형사입니다.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칼은 동료들로부터 왕따 당하는데 때마침 미해결 사건을 전담하는 디파트먼트 Q가 신설되면서 수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렇게 자타에 의해 조수 아사드와 함께 맡게 된 첫 수사가 메레테 실종사건이었으니 그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동료형사들의 계속된 배척, 언론사 기자를 수사명목으로 협박했다는 악의성 보도까지 터지면서 미운 털 박힌 오리새끼로 낙인찍혀 버리는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단서수집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마침내 사건의 배경과 배후인물을 밝혀내는데 성공합니다.

 

사실 범행 동기는 중반부에 이르면 무엇이고 범인들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독자들이 눈치 챌 수 있도록 장치를 고안해 두었으니까요. 대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성격을 분석하는 일이 더 재밌을 거 같네요. 칼 뫼르크 경위는 이제껏 보았던 형사들과 크게 차별화될 정도로 부각되는 면은 없는 것 같지만 아사드는 좀 다릅니다. 국적이 시리아로 나오지만 정황 상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점도 많고 머리가 비상한데다 손재주도 뛰어나고 칼이 놓치기 쉬운 소소한 단서 하나도 흘리지 않고 꼼꼼히 내조하는 매의 눈이기도 해서 두 사람이 파트너로서 상당한 궁합을 자랑합니다. 그 관계의 상호작용이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키며 보여주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사실 이 소설은 독창적이라기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들이 발견되는데요. 납치 감금된 여인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것, 정치적 논리와 인기영합 차원에서 별도 신설된 경찰조직의 밥그릇 신경전, 주인공에게 자신을 안락사 시켜달라는 환자의 요청, 유능한 여성 정치인이 타겟이 된다든지 요소요소가 하반기에 먼저 읽은 북유럽의 모 스릴러 소설을 적잖이 연상시키죠. 두 소설 중 어느 것이 먼저 출간되었냐로 논란에 불을 지피기보다 스릴러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 정도로 종식하는 게 바람직 할 것 같네요.

 

그렇게 익숙한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감압 조정을 이용하여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범인들의 방식이 구출과정과 어우러져 스릴만점, 간장백배에 상당히 일조한 점은 탁월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던 스토리의 강약 전개는 불면의 밤을 달래주기에 최적화된 선택임은 분명합니다. 또한 Q가 지니는 미스테리한 상징성에 잘 어울리는 남자 아사드의 비밀과 아마게르 섬에서 칼 일행을 습격했던 빨간 체크무늬 남자 일당들에 대한 수사지속 여부도 이 시리즈가 진전되면 남겨 놓을 숙제가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더욱 기대되는 후속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북유럽 스럴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던 <자비를 구하지 않는 그녀>는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소설이랍니다.

 

"잘 자. 메레테.“

그는 조용히 말했다.

“부디 지옥의 영원한 불길이 너를 집어삼키기를.”

말을 마친 그는 스피커를 껐고. 이제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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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일구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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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인은 형제와 같습니다. 우리는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이웃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함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시마다 소지)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면 팩스에 금융권 대출 광고물이 쏟아지다시피 해서 들어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겠죠. 대출 받으시라는 홍보전화와 문자를 수시 날려서 바쁜 업무시간을 앗아가고 있을 정도이니 가히 쩐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은 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런 전화가 오면 동료들 중에는 “나는 신용불량자인데 1억 그냥 빌려주느냐”며 농으로 받아치는가하면 “그 회사 직원들도 사람들 전화 상대하면서 스트레스가 오죽 많겠느냐, 불쌍하니 그냥 좋게 말해서 끊어버려라”며 다른 대처방식을 제시하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정상적인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사채를 끌어 빌렸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고금리를 감당 못해 인생마저 저당 잡히는 사채지옥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일은 이제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사채가 낳은 폐해에 덧붙여 야구라는 스포츠를 세트로 묶어 청춘의 꿈과 이상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좌초되고 마는 과정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결국 사채와 야구가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예상과는 달리 야구의 비중이란 것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고 느껴져서 당혹스럽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관점의 차이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야구가 보여줄 수 있는 뜨거운 투혼과 승부욕, 생생한 시합 묘사 등을 기대했지만 신고 선수로 짧은 경력을 남긴 주인공 다케야 료지가 재능의 한계에 부딪쳐 더 이상 성장을 못한 채 퇴출당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별 볼일 없는 야구인생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심드렁하기까지 했습니다. 매년 스토브리그를 후끈하게 달구는 FA선수들의 이적에 수반되는 거액의 계약금에 현혹되다보면 무명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없다시피 하기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가려진 그들의 눈물어린 땀은 외면해 왔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도 솔직히 그들에 비해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에 자존심 상해 일부러 관심 없는 척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선수로서 재능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가진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내었노라 자평하면서 최선의 일구, 최후의 일구를 던진 다케야와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 성공을 내려놓아야 했던 다케치, 두 남자의 우정만큼은 누가 뭐래도 가슴 뭉클한 순간을 남겼습니다. 무명과 유명의 갈림길에서 후회 없는 족적을 남긴다면 다케야의 야구인생도 박수갈채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의 결함에 족쇄가 채워진 두 청년을 보면서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상대적으로 미흡한 미스터리적 결함을 현실과 맞닿은 범죄의 사회적 동기에 초점을 맞춘 방식도 여전히 유효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의 경우 범죄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모두에게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한껏 선보일 기회가 공평하게 배분된, 그러면서 정정당당하게 승부에 임하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1루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는 선수가 진정 프로다"며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 등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고 설명하며 목표를 향해 정진하라고 당부한 양준혁, 전 삼성라이온즈 선수나 ‘일구이무’, 즉 공 하나에 승부를 걸 뿐 다음은 없다는 좌우명으로 살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왜 야구라는 스포츠에 그토록 열광하게 되는지를 새삼 공감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야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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