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 스토리콜렉터 15
아르노 슈트로벨 지음, 박계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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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잔인하고 엽기적이다는 감상은 스릴러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뗄려야 뗄수도 없는 필요불가결한 선택이자 취향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사이코 스릴러를 표방하는 독일작가 아르노 슈트로벨 <스트립트>도 이를 간과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 취합하여 대중들의 눈을 붙드는데 처음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뜻 보았을 때엔 돼지가죽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피부였던 그 물건이 여대생 니나에게소포로 배달되면서 자극적인 서두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용의자로 의심되는 몇몇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 범인이 누구냐와 엽기적인 산물에 단순한 촛점이 모아지는 것이기에 범인의 살인 행위에 대한 과정 묘사나 피해여성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겪게되는 피폐한 정신세계와 살아 남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심리묘사, 탈출시도 등 새장과 새장밖에서 벌어지는 진실게임이 더 생생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상당하다.

 

그리고 형사 에르트만마티센이라는 캐릭터 또한 같은 독일작가인 넬레 노이하우스피아보덴슈타인을 연상시키는 면도 적잫은데 단순히 혼성 파트너라는 점 말고도 신경쇠약에 걸린 정서불안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 있어서도 매우 닮아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인간적인 매력도 찾을 수 없거니와 어설픈 투톱 시스템의 부조화, 상사 슈토어만에르트만과의 갈등까지 모든 것이 평면적이고 납작하다는 것이다. 특히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불협화음이 발생하게 된 배경 자체가 과거에 있었던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삼고 있는데 그 같은 설정도 들여다보면 그다지 공감도 안되고 가당치 않다는 생각도 든다. 거의 초보자급 발상이 아닌가 싶기까지 한데 좀 더 뭐랄까? 과감하게 파고들어 제대로 된 파격과 광기, 집착을 정면에서 묘사했어야 했다.

 

단지 범인이 저지른 엽기적인 행위를 다른 누군가가 이를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유효기간이 짧은 충격이 스쳐지나가면 그때부터 지지부진한 흐름이 끝까지 이어나갈 뿐이지. 소설 전반을 완전 장악하는데엔 처절하게 실패했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사건해결 후에도 개운하지가 않고 허전하며 결말에서 보여주는 정의구현 식 마무리는 작가의 치기가 정점에 다다른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냥 경박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기도 한다. 표지로 혹해서 실망으로 끝나버린 이 작품, 왠만해선 독일 스릴러는 대체로 내 정서와 거리가 멀다는 확인만 다진 계기가 되었다. 참을 수 없는 지루함!!! 심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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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매미 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7
하무로 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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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무사로서 당연한 각오일지도 모르지만, 싸움터에서 창칼을 휘두르고 있을 때라면 또 몰라도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일 것 같다. 그러나 슈코쿠에게는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터럭만큼도 없다. (P.26)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합니다. 오십 년 뒤, 백 년 뒤에는 수명이 다하지요.

나는 그 기한이 삼년 뒤로 정해진 것일 뿐.

하면 남은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P.27) 

 

모든 싸움은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된다. 그리고 사람 간의 인연도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가로 나카네 헤이에몬의 휘하로 일하던 단노 쇼자부로는 우연히 성내 집무실에서 우발적인 시비에 휘말려 싸움을 벌여 힐복에 처할 뻔 했다가 조건부 사면을 받고 목숨을부지하게 된다. 대신 무카이야마촌에 유폐 중인 도다 슈코쿠를 은밀히 감시하라는 명을 받고 그를 만난다. 일찍이 군 부교와 요닌을 지내면서 문무를 겸하고 농민들을 가족같이 대해 심복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 바로 도다 슈코쿠였다. 하지만 여인과 밀통하고 시동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실각해 7년 동안 유폐중이었다.

 

그 같은 죄목들은 도다 슈코쿠로서는 억울한 누명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조용히 가족들과 칩거 중이었다. 원래는 즉시 할복하여야 했으나 미우라 가보의 편찬을 수행중이라 집행을 유예받고 있었는데 3년간의 기한을 부여받아 일을 마치는 10년 째 되는 해에 할복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가보의 편찬을 도우라는 명목하에 그를 감시해야하는 단노 쇼자부로는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날은 점점 다가오고....

 

개인적으로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난세를 살아간 과거 속의 인물들의 치열한 삶들은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에 대한 반면교사라는 소중한 교훈이자 간접적 체험의 장이 되기에 언제나 소재를 불문하고 동경과 선망의 장르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일본 역사소설들은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 가장 재미도 있으면서 접할 기회도 많은데 전국시대가 아니더라도 영주와 무사는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은 단골소재들이다.

 

그렇다면 할복은 어떠한가? 무사다운 명예로운 자살이라는 사상이 아직도 현대를 살고있는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과거의 제도이다. 오죽하면 할복을 "복부에는 인간의 영혼과 애정이 깃들어있다. 용사의 배를 갈라 무사도를 지킨다."고 정의하고 있을 정도니 비겁한 삶을 거부한 용기나 무사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방편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도다 슈코쿠의 입장에서는 도망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목숨이 아까워 밤잠을 설쳐야할 정도로 괴롭다. 그렇지만 유한적 삶을 소중히 여겨 의미있게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살아갈 뿐이다. 다만 그도 최후의 순간은 어떠한 심정일지 미리 짐작하지 못하는 것 말고는 가보편찬에 세월을 보내고 있어 3년 후는 기약이 없다.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갈 날이 줄어들며 피말리는 세월 속에서 다가올 죽음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강직한 올곧음 때문에 단노 쇼자부로는 이윽고 도다 쇼코쿠의 인품에 점차 감화된다. 그러면서 이 남자가 감내해야 했던 사건들의 진실엔 그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간적인 면모가 담겨있던지 나 또한 끊임없이 매료되었다가 때로는 안타까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또한 어느 시대를 살더라도 약육강식의 논리는 가진 자의 논리대로 밀어붙여 가지지 못한 자의 눈과 귀를 막고 수탈에 또 수탈을 가할 뿐이기에 기득권의 유지에 혈안이 되어 허울좋고 위선적인 체통은 무엇이 효율이고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지를 외면한다. 그 점에서 전국통일이 이루어진 연후의 영주들이 농민들로부터 연공을 징수하면서 다져놓은 계급구조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경계선에 있다는 것도 도다 슈코쿠의 말 못할 처지를 지켜보는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는 현실에 낙담해서 고개 돌려 농민들의 피폐함을 결코 외면하지 않기에 시간만 허락했다면 갈등을 조정하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공감대 형성에 앞장 섰겠지만 운명의 여신이 그의 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아들 녀석의 친구인 아카기의 억울한 죽음을 항변하려는 아버지로서의 기개와 곁에서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가족들, 특히 아들 이쿠타로의 시선은 애잔하기 그지없어서 마음 속에 이루어질 수없는 미련이 계속 맴돈다. 때때로 세상의 비겁함을 비집어 들어가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불꽃같은 남자 도다 슈코쿠야말로 진정한 호인이자 무사도정신의 아이콘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앞에 다가온 죽음을 앞두고도 여름 한 철에 치열하게 노래하며 그 수명을 다할 저녁매미처럼 가을을 모른 채 하루살이 삶을 살아가는 이 남자를 보며 새삼 산다는 것에 우리 모두는 감사해야 한다. 애달픈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주변의 연들을 이어 살아가는데 힘을 주고 싶다는 그 방식을 기억하자. 진정한 "의"란 무엇인가를 이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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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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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호러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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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그래닛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8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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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릴러를 읽다보면 드는 생각은 책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국가별, 도시별, 지역별 문화적 특성이나 지형적 특성을 간접 체험해 볼수 있다는 장점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 일본은 기본이요, 유럽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독일, 스웨덴같은 유럽의 대표적 스릴러 강국을 위시하여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같은 국가에까지 실로 저변이 다양해서 점점 더 많은 국가의 작품들을 만나고픈 욕구가 강해진다.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중에서 아이슬란드 작가 아날두르 인디리다손의 "저주받은 피"같은 경우는 인구 30만의 작은 섬나라를 배경으로 한 이 같은 장르소설을 만났다는 게 그때는 정말 진기한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만난 스릴러는 스코틀랜드 작가 스튜어트 맥브라이드의 데뷔작인 "콜드 그래닛"이다.

 

스튜어트 맥브라이드는 그동안 알게모르게 관심을 가져왔던 작가 중 한 명인데 그에 대한 기억의 단상이 존재한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본 기사인데 영국작가 알제이 엘로리가 온라인에 익명으로 자신의 작품을 극찬하고 동료작가들의 작품을 혹평했다가 들통나 망신을 당했다는 내용을 기억한다. 그때 혹평했던 동료작가들중에 스튜어트 맥브라이드가 있었는데 그의 작품들은 아주 흔해빠진 경찰소설이라는 평가절하였다. 라이벌 의식을 느껴 질투를 불러일으킬 만큼 맥브라이드의 입지가 모국에서는 탄탄했었기에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겠는가 싶은데 그런 만큼 읽어보지 못한 그의 작품에 호기심이 증폭되었던 계기였던 것 같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마이클 코넬리, 스코틀랜드의 해리 보슈 시리즈로 비유되는 맥브라이드와 로건 맥레이 시리즈는 이 같은 표현들로 인해 언제부터인가 미지의 작가 중 가장 먼저 만나보고 싶은 작가의 최우선에 그가 있었고 그 점은 순전히 마이클 코넬리에 대한 강력한 충성심의 연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만나게 된 "콜드 그래닛"은 제목에서 처음에 약간의 오해랄까 착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작품의 배경을 그래닛이라는 가상의 도시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래닛은 화강암을 의미하고 있고 스코틀랜드의 에버딘이 "화강암의 도시"로도 불리고 있다고 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소설의 배경은 그렇다치고 주인공은 로건 맥레이라는 경사다. 에버딘의 그램피언 경찰서 소속이다. 그는 1년전 열다섯명의 여성을 강간 살해한 앵거슨 로버트슨을 검거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검거와중에 범인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어 생사를 헤맨 끝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후 현장에 복귀한 전력이 있다. 다들 그를 성경 속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라자루스"라는 별명을 붙여 유명인사로 만들지만 그 점을 탐탁치않아 하는 남자이다. 몸도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라 부상 부위에 후유증을 앓고 있는 지라 피해자의 가족에게 배를 맞는 식의 봉변을 가끔씩 당하면 빌빌대기도 해서 불안정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에버딘에는 아이들이 연쇄살인되는 엽기적인 사태가 벌어지면서 세상이 떠들석해진다. 그것만이 아니라 무릎이 도려진 시체까지 발견되면서 정말 사건은 한없이 터져나가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은 한 둘이 아니다. 아동 살인사건이 한 건 일어나서 탐문수사로 수사망을 좁혀 유력한 인물을 검거하고 나면 이제 마무리되려나 싶다가도 또 다른 사건이 연이어 터진다. 범인이라고 단정했던 인물들은 알고 보면 헛다리 짚은 걸로 결말이 나서 로건 맥레이만이 아닌 모두를 허탈하게 만드는 일이 연속되기에 잡았다가 풀어주고 또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잡고 풀어주는 일이 반복되다보면 정말 믿을 사람하나없이 모두가 용의자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무고한 것으로 해명된 사람들에게도 갖가지 사연들이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 모든 것은 어른들의 추악한 이기심에 비롯된 점이라는 걸 알기에 어디 항변도 저항도 못하고 속수무책 희생당하기만 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은 회색빛으로 젖어있는 에버딘의 우중충한 날씨만큼이나 우울하다.

 

이 같은 천인공노할 사건들이 벌어지는 혼돈을 악용하여 기생하는 일단의 무리들 또한 존재하니 정의수호는 허울좋은 입버릇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발생한 아동 성범죄자에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법정에 대한 분노와 함께 억울한 희생자를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공명심에 들떠 진실을 호도하는 악질적인 변호사 또한 가해와 피해의 경계점에서 얼어붙은 양심이 쓰레기더미 속에 내팽겨쳐 진다는 현실때문에 정말 치를 떨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수사정보를 찌라시 언론에 흘려 수사에 막대한 혼선을 빚고있는 악어와 악어새의 공존은 외부의 적을 처단하기 전 내부의 적으로부터의 차단 또한 얼마나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인지 알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익을 취하려는 불순세력 앞에서 정의와 진실은 혼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카리스마대신 소심한 성격에 실수도 잦고 상관인 인치 경위에게 휘둘리기도 하는 로건 맥레이 경사는 영웅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어 상당한 친근감을 느끼게하는 인물이다. 까칠까칠한 상사 안치와 부하직원인 여경 왓슨까지 모두가 비범한 재능보다는 지극히 깊고 진술한 통찰력으로 끈기를 가진 추진력으로 끝에 도달하기에 이들의 모습에서 정말 우직한 스릴러를 제대로 만난 것 같다. 진중하면서도 우직한 이러한 스타일에서 마이클 코넬리에 빗대는 건 아닐까싶다. 데뷔작으로서는 더없이 훌륭한 완성도를 보인 로건 맥레이 시리즈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면서 미스터리한 여운을 남긴 이번 작품의 결말까지 스튜어트 맥브라이라는 작가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하반기에 출간예정인 시리즈의 2탄을 통해 더욱 성숙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시리즈의 장수를 빌어본다.

스코틀랜드 스릴러의 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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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문 - 달이 숨는 시간,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7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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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 연인이자 파트너이며 또한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스승이기도 했던 남자 맥스와 함께 최후의 한탕을 위해 라스베가스의 호텔 카지노로 잡입했다가 불의에 의해 맥스는 사망하고 캐시 블랙은 공모죄와 더불어 그를 죽게했다는 과실치상죄로 5년간의 수감생활을 하고 가석방된다. 10개월 동안 자동차영업소에서 딜러로 근무하며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혈관을 뜨겁게 관통하는 본능적 본능 "범법자의 주스"라는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지 못해 지금이 아니면 마지막 기회라는 일념으로 다시 한탕을 준비한다.

 

그것도 6년전에 아픔을 겪어야했던 비운의 장소인 라스베가스 클레오파트라 호텔에서 목표물인 50만달러를 몰래 탈취해야 하는 것. 그 곳에 대한 잊고싶은 기억때문에 처음엔 망설였던 캐시 블랙은 결국 현금탈취에 성공하지만 돈을 도둑맞은 남자는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다. 그러자 호텔 카지노 부사장 그리말디는 냉혈한 사립탐정 잭 카치를 불러들여 그녀를 쫓아 돈을 되찾으려 하는데 그녀가 50만 정도달러로 알고 훔친 돈은 실제 그 이상의 거금이자 마피아가 개입되어 있는 검은 돈이라는 실체가 드러나면서 돈을 갖고 튀는 여자와 그녀를 쫓는 남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실시간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해답을 모르는 질문은 절대로 증인한테 던지지 않는 소송 변호사처럼 전문 도둑들 역시 훔친 결과를 모르는 것은 절대 무턱대고 훔치지 않는다.

법적인 결과는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종류의 결과가 걱정인 것이다. - 261 P - 

 

정말 기대도 않고 있다가 뜬금없이 기습출간된 이 소설 "보이드 문"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들자면 제목 자체인 "보이드 문(VOID MOON)""동시성"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달이 한 별자리에서 다른 별자리로 옮겨갈 때, 어떤 별자리에도 속하지 않는 때를 일컫는 단어 "보이드 문"은 점성학적 용어로 6년 전 맥스가 죽었던 시간대이면서 6년 후 캐시 블랙이 돈을 훔치는데엔 성공하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에 의해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갇혔있었던 시간대로 다시 맞물렸던 우연의 연속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캐시 블랙은 이것을 그 장소가 액운을 가지고 있는 징크스 정도로 여겨왔지만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다."는 점성학의 기본전제대로 단순히 움직이는 별들의 힘은 불행이 약속된 운명인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힘같은 현상처럼 보인다. 살면서 드러나는 반복적 패턴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다시 "동시성"으로 귀결된다. "겉으로는 별개로 보이지만 서로 관련된 일들이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다.""동시성"이라는 과거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잭 카치와 이것을 역이용하려는 캐시 블랙.

 

"사막이 바다가 되는 곳" 그리고 "타히티"

 

한치의 오차도 용납않는 정밀하고 디테일한 두 사람의 대결은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전자공학적 스릴 속에서 숨막히는 서스펜스를 보여주는데 정말이지 한시라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속도감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 동안 자신으로 인해 희생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감수해야했던 죄책감을 극복하고 사막이 바다가 되는 라스베가스 대신 연인 맥스와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하고 싶었던 마음 속의 낙원 "타히티"를 염원했던 캐시 블랙의 정신력이 "잭 오브 스페이드"로 불리던 저승자사 잭 카치의 광기를 잠재웠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점을 두가지를 얘길한다면 일반적인 선악 설정의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우선 들 수 있을 것 같다. 사립탐정과 절도범이 등장한다면 전자가 선, 후자가 악, 이런 설정이 당연할 듯 싶은데 마이클 코넬리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짚어 반대로 설정하여 탐정도 탐정 나름이라는 식의, 탐정이 악의 편에 서는 최초의 경험을 선사한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이러한 구도는 본 적이 없다고 확신하기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확실히 신선한 발상이다.

 

또한 실제 등장하지는 않은 과거의 인물인 라스베가스의 마피아 지부장인 조이 마크스를 언급한 대목도 해리 보슈 5편 "트렁크뮤직"을 살짝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조이 마크스어찌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스스로가 의문 그 자체였지만 타 작품 속 사건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기억을 가끔씩 되살려주는 마이클 코넬리의 시도는 언제나 개인적으로 환영하는 방식이다. 그만큼 마이클 코넬리에 대한 애정이 깊다보니 사소한 티끌조차도 놓치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픈 팬심은 식지 않으며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재능이 독보적인 것은 당연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의 작품을 읽는다는 건 예정된 축복이나 다를 바 없지.

 

이번에도 과연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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