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색 연구 셜록 홈즈 전집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박상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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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추리소설을 읽지 않던 시절에도 내겐 언제나 명탐정은 셜록 홈즈였고, 추리소설의 효시였다. 성인이 되어 이 계열의 소설을 읽고 있지만 정작 셜록 홈즈 시리즈를 정식으로 접할 계기가 없었으니 이후에 읽은 것들은 외전 격에 해당된다 문예춘추사에서 완역본으로 이 시리즈가 출간되고 보니 이번에야말로 전체까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단 몇 권이라도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이다.

 

 

일단 첫인상이 중요한 법, 표지가 맘에 든다. 홈즈와 왓슨을 실루엣화한 표지에 셜록 홈즈의 영문 제목이 화려한 붉은 색으로 강렬한 포인트를 잡고 있어 단연 눈에 확 들어온다. 주석도 이만하면 무난한 편이라 적은 분량과 더불어 시간에 쫓기는 일 없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시리즈의 첫 출발에서는 왓슨이 홈즈와 본격적으로 동거하게 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육군 군의관 출신의 왓슨은 제2차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다가 왼쪽 어깨뼈에 총상을 입는다

 

 

부상병이라 영국으로 송환되어 휴가를 명받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저렴한 집을 구하다가 옛 동료로부터 존 베이커가에 하숙집을 소개받는다. 단 하숙비 분담 차원에서 동거인이 필요했는데 셜록 홈즈라는 기이한 남자이다. 해부학과 화학에 능통하지만 문학지식 제로, 철학지식 조금, 천문학 지식 제로, 정치학 약간, 식물학도 부분적 해박(마약류 등) 등등 왓슨이 분류한 지식 범위표를 보면 이 남자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

 

 

놀랍기도 하거니와 무지하기도 한 홈즈의 자기변호는 명쾌하다. 필요한 지식만 취사선택하여 머리 속에 저장해둔다는 것, 어쩌면 실사구시의 원칙에 다소 벗어난 것 같기도 하고 충실한 면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특별한 사건들이 마그마구 일어나야 두뇌에 기름칠하며 대활약을 펼칠 무대가 마련된다며 사건추리를 살아가는 소명으로 삼기에 런던경찰국의 그렉슨 형사로부터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아마 날아가는 기분이었겠지.

 

 

제목인 진홍색 연구는 인생을 실 뭉치에 비유하고 살인은 그 실 뭉치에 섞인 진홍색 실이므로 풀고 분리하여 그 부분만 세상에 드러내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문제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추리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추론의 과학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심증이 아닌 증거를 기반삼아 논리를 이끌어내고 반복 숙련된 데이터가 항상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할 때면 번개처럼 뛰쳐나오는 그 순발력에 감탄했다.

 

 

 

대신 관찰과 추리의 차이점을 예시로 들며 눈으로 보고 그치고 마는 일차원적 반응을 뛰어넘어 필요충분조건을 반드시 성립시킨다 그리고 또 다른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사건의 동기를 설명하는 대목에 있는데 명탐정의 입을 통해 듣기 보다는 액자구조 같은 형식으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전반적인 경위를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집중 않으면 다른 단편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장면 전환이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까닭이기도 하거니와 동기 그 자체에 얽힌 진실을 듣고 나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왜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악을 징벌하는 또 다른 얼굴의 악. 동정할 수 없게 만드는 미련이 남으니 인간이 인간답게 배려 받지 못해 생기는 증오는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끝까지 추적하여 죄를 묻고 마는 그 집념과 끈기는 무엇보다 간담을 서늘케 했고 그 우직함에 감동받는다. 이번 사연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홈즈의 추리를 빛바래게 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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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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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처음에는 이산으로 보였었다. 흐흠 그럼 정조 이산에 관한 이야기인가? 아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분명히 이신이다. 내가 잘못 본 것이었어, 라며 제목의 의미를 책을 통해 확인하니 한글로는 뜻을 알 수 없고 대신 한자로 표기했을 때만 속뜻이 분명해지는데.여기서 이신은 청나라 황제의 칙사, 조선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황제의 오른팔이다. 황제의 나라가 명에서 청으로 바뀐 제후국 조선에서 이신은 아버지가 폐주 광해의 내금위장이었고 아버지는 반정의 무리에 맞서다 죽음을 맞이하였다. 역도의 자식이 지금은 조선을 감시하는 칙사라니 운명의 장난도 이만하면 지나치다고 해야겠다.

 

또한 이신의 과거를 제대로 아는 이가 조정에는 없다. 이 당혹스런 결과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 못하고 구시대의 유산에만 답습하기에 급급한 임금과 조정신료의 우매함에서 비롯된 것일테다그랬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광해는 중원의 맹주가 교체되리란 예감에 여진과 명을 오가는 실리외교를 펼쳤고 국방강화에 힘써 장차 닥칠 화를 미리 방비하고자 했으니 임진년에 있었던 전란을 몸소 겪은 바 있던 광해의 행보는 선견지명이라는 혜안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이 같은 급진적 변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광해의 패륜을 빌미삼아 반정을 일으켰고 새로이 정권을 잡은 인조와 서인세력은 새로운 강자에 맞설 힘도 없이 후금을 오랑캐라 무시하는 간 큰 짓을 벌이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결국 터진 병자호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위정자들은 임진년 전란의 추태를 반복하더니 척화파의 주장대로 삼전도에서 백기 투항하는 치욕을 맛보게 된다.도무지 위정자란 집단은 학습능력이란 게 애시 당초 없나 보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며 지들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다가 명나라에 대한 사대만이 명분의 우선순위가 되어 실리추구에 대한 기본적 상식과 개념, 더 나아가 죄의식이 없기에 백성을 버리고 전란에 피신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그까짓 허울 좋은 대의명분이 무엇이라고, 그까짓 자존심이 무엇일진대, 힘도 기르지 못한 채, 얻어터지면서 백성들만 사지의 고통으로 내몬단 말인가? 이신은 고통 받은 피해자 중 한사람이었다.

 

무려 50만이나 되는 수많은 백성들이 청나라로 끌려갔고 포로였던 이신은 중도에 아내와 이별하게 된다이신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우여곡절 끝에 청 황제의 신임을 얻어 권력을 손에 넣었다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죄를 저질러 징계 차원에서 조선의 칙사로 파견된 것인데 황제의 눈에 들기까지의 과정은 조선의 위정자들의 시각에선 명에 대한 배신이자 오랑캐의 수족에 불과한 불충한 행위겠지만 이신은 어떡하든 살아남을 필요가 있었다.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야만 했고 징벌형인 칙사역은 오히려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피해자에게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된, 아이러니였다.조선인이 청 황제의 칙사가 되어 돌아오자 조선의 조정은 전전긍긍하며 각자의 속셈에 주판알을 튕기기에 여념이 없다.

 

행여 청 황제가 자신을 입조할까 불안에 떠는 임금, 이신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자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 임금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역도의 무리들, 이신의 권세에 빌붙어 아첨하려는 자들... 세상은 이신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지만 뒤에서는 시커먼 속내를 품고 있는 버러지만도 못한 위정자들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신은 분노로 복수의 칼을 간다. 칙사라는 신분을 활용하여.아내는 살아있으면 아마도 환향녀 소리를 들으며 멸시와 천대를 받을 것이다. 흔히 화냥년이리고도 하는 호칭은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갖은 고초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데들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한다.

 

나라가 힘이 없어 적국에 끌려가 씨받이가 되는 등 여성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상황을 겪어야만 했던 이들이 오히려 모국에서 상처를 치유할 위로와 배려를 받기는커녕, 오랑캐에게 더럽혀졌다는 이유에 이혼과 자살, 심지어 타살까지 당하는 야만적 위협에 많은 희생을 낳았다. 이쯤하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 파렴치한 위선에 치가 떨릴 지경이다. 언제나 힘없는 백성들만 고통을 겪지만 위정자들은 인면수심의 집단들이라 소리 없는 울음은 소매를 적시고 망자의 한은 구천을 떠돌 뿐이다. 이신이 느끼는 분노는 백성들을 대변하며 그가 꿈꾸는 복수는 한 맺힌 칼끝이 되어 목젖을 직접 겨누게 될 때 응축된 울분을 해소시키려 하여 통쾌할 뻔했다.

 

대리만족이란 이런 것이다. 비록 복수의 칼날이 피를 보는 대신 이생의 지옥을 사무치도록 겪게끔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결말이 아쉽기는 하나 숨소리가 들릴 지척까지 칼날을 들이댄 것만으로도 인정해야만 하겠다. 더 과감했다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목이 떨어져도 세상은 변하지 않음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같은 참담함이 마지막이 아니라 수백 년 후 다시 겪게 되리란 걸, 2의 환향녀는 현재에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걸, 그 같은 데자뷰는 작년에 출간된 한승원 작가의 <겨울잠, 봄꿈>에서 겪었었는데 그렇다면 올해는 바로 이 소설 <이신>에서 폭풍 같은 흡입력을 통해 느껴보기를 바란다. 무엇을 깨닫고 반성해야하는지를, 그 칼끝이 어디를 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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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꿈꿀 권리
한동일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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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꿈에서 시작한다. 꿈 없이 가능한 일은 없다.

먼저 꿈을 가져라.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

 

 

요즘 젊은이들은 그 나이대의 자신과 비교했을 때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히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왜 꿈꿀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느냐는 한탄을 덧붙여서 꿈을 찾고 목표를 세워야한다고 역설하는데 곰곰이 되짚어 보니 내게는 꿈이 있었던가 라는 자문에 금세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 하긴 꿈의 설계가 먼저 성립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훌륭한 설계도만 가지고 완성된 건축물을 볼 수 없듯이 물음을 통해 답을 구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 있어야만 가능하겠다. 그러기에 앞서 지레 겁을 먹고 실패에 좌절하고 결국은 자포자기하는 부끄러움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작은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 책을 만난다

 

 

한동일씨는 바티칸의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이다. 최초의 한국인이자 두 번째 아시아인이며,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로타 로마나의 930번째 변호사라고 한다. 최초가 어쩌고하는 부분에서 엄지손가락을 잠시 치켜세울 수 있겠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로타 로마나라는 곳은 여전히 생소하기에 낯설음에서 책의 여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그 곳은 어떤 곳인가? 교황이 상소를 받기 위해 로마에 설치한 상설 법원으로 전 세계 천주교회의 민형사상 소송을 맡아 처리한다고 하는데 각국의 대법원에 진행되는 소송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는 과정은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한 것일까?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법연수원에서 기본적으로 판례나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을 라틴어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어공부도 만만치 않은데 세계적으로 공용되지 않는 언어, 즉 사어에 가까운 라틴어를 오직 로타 로마나에서만 교회언어의 수호차원에서 사용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어려운 배움인가! 라틴어가 그만큼 배우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간혹 들어봤는데 영어삼매경에 빠진 우리들에게 정말 난해하고 생소한 언어영역임에는 틀림없다.

 

 

저자도 오히려 영어공부가 쉽다고까지 하지 않던가 말이다. 게다가 수적으로 드물었던 동양인, 더군다나 한국인이란 사실은 현지 적응하는 데 있어서 꽤나 힘들었을 테고 인종적 편견 극복은 결과적으로 힘들었을 게다. 일화로 드는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긴 경기 결과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던 경우는 공부도, 한국인으로서의 삶도, 그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았음을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그런데 저자는 성공의 비결이 자신의 영특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에게 좌절을 딛고 일어설 용기를 전달하려 하는데 자신의 실패담에서 타산지석을 삼으라 한다.

 

 

여기에는 꿈의 실현을 위해 불철주야 틈나는 대로 학업에 쏟아 부은 열정이라는 땀이 있는데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처럼 오기와 노력이 똘똘 뭉친 단 하나의 결정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특별한 학업성취기는 없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하나의 미션을 클리어하고 나면 다음 스테이지로 도전하는 벽돌 깨기 식 성공담이다. 대신 그의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정환경 속에서 삐뚤어지지 않도록 올바르게 커나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 힘써주신 부모님과의 일화는 언제 읽어도 찡하다

 

 

특히 경제적으로 가족의 부양에 지렛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버지지만 아들에게 밤하늘의 별을 통해 가슴을 펴고 원대한 꿈을 가지도록 가르침을 전하는 대목은 일상의 고단함을 올곧은 자신감으로 바꿔놓는다. 물론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훗날 아들은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어 위험과 실패를 무릅쓰고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선박의 키를 움켜지고 자신이 원하는 항구로 방향을 맞출 줄 아는 진정한 마도로스가 된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는 건 망망대해에서 최소한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나침반 같은 역할을 기대할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부하지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아직도 믿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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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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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는 동기야말로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에서 가장 중요해서 동기 없는 범죄는 없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숨겨진 의식, 깊은 곳에 있다는 그 의식이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그려질지가 못내 궁금했다. 우선 프롤로그1에서는 묻지 마 살인으로 충격을 던진 후 50년 후로 시간대가 훅 하고 넘어가서 주인공 소타의 유년시절로 전환된다. 이제 상이한 시대별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엮이게 될지를 차근차근 지켜보기로 한다

 

그리하여 매년 칠석 무렵 온가족이 연례행사처럼 나팔꽃 시장을 둘러보던 일이며 우연히 만난 소녀와의 풋풋한 사랑이 뜬금없이 이별을 고하는 이야기 등이 여러 갈래의 줄기처럼 뻗어 나간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유망한 수영선수였던 리노는 사촌의 자살, 할아버지의 타살 등과 겪는데 개별적 상황에 맞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행여나 놓칠세라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어야만 했다. 마침내 그 많은 줄기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뿌리에 마침내 도달하게 되면서 책 제목에 이미 동기를 암시하는 힌트가 들어있음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수긍이 간다. 때문에 에도시대에 존재했던 나팔꽃이 지금에는 왜 없을까란 의문을 소재로 채택한 의도는 한동안 읽어본 작품마다 위화감이 들게 했던 작가의 전작들의 경우와는 달리 역사와 과학에서 무리 없이 차용하여 매끄럽게 소화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추리적 기법으로의 활용에 있어서 모범적인 답안을 보였다고 보이고 그것으로써 소재고갈에 시달릴 것만 같은 이 장르에 재생이라는 호흡기를 다시 붙였다고 생각한다그리고 특히 인상적인 것은 세상에 남겨진 빚이라는 유산.” 이 표현이 참 맘에 든다. 원자력관련 전공을 밟은 소타가 졸업 후 진로문제에 고심하다 사건이 해결되고 난 뒤 이것을 누군가는 짊어져야할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의연한 자세가 돋보인다. 2

 

011년 동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과거의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결부 지으려 하는 이유도 마침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소타의 전공인 원자력공학과 살인사건의 배후와 진실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에 주목해서 읽어나갔지만 나중에는 그 결과를 두고 굳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게 된다굳이 따지고 들어가면 맹점이 될지도 모르나 중요한 점은 과거와 현재에서 빚이라는 유산이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이 자연히 소멸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감당해내야만 한다는 현실감각이란 것이다.

 

어찌 소설 속 현실로만 치부하고 말 것인가. 타산지석은 이럴 때 써야하는 법이다. 따라서 모두를 슬픔으로 고통 받게 한 근래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싫든 좋든 정신 바짝 차리고 눈을 부릅뜨고 의연하면서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그렇기 때문에 동기나 소재의 차용도 만족스럽지만 현 세태를 시의적절 하게 반영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시도는 분명 합격점을 줄만 하다. 결국에는 트릭과 반전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자. 대신 이번 작품은 비록 불같은 강속구는 아니지만 핀 포인트 같은 제구력으로 타자를 아웃시킬 줄 아는 그의 비범함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멋지게 입증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남자에게 첫사랑이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감정, 처음 느꼈던 그 설렘, 행복을 나누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 첫사랑을 떠올린다고 하지만 소타가 느끼는 첫사랑의 두근거림에 나도 감정이입 되어 집중하며 읽었기에 그에게 첫사랑과 성인이 되어 만난 새로운 사랑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지 결말 없는 상상을 해본다. 그건 두 사람 모두 잡는다면 만족스럽겠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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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슈라라봉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3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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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르는 작가, 새로운 작가는 항상 미지의 세계이자, 독서의 권태기에 가끔씩 빠져드는 나에게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정보도 없이 읽은 이 책 <대한 슈라라봉>은 그런 의미에서 모르고 먹으면 보약이 되듯이 아무 선입견 없이 책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체험인지 알려주는 좋은 선례로 남을 것 같다. 평소 읽는 미스터리물 대신 코믹 청춘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위대한 슈라라봉>은 그 시절을 살았던 남자들이라면 결말에 도달할 때 까지 포복절도하며 공감하다 흐뭇하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어 좋다. 그냥 그립기만 한 그때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 호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 이와바시리에는 이상하고 신비한 두 가문이 존재하는데 히노데 가와 나쓰메 가라고 한다. 두 가문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철저한 앙숙이었다. 무려 천년이 넘도록 서로를 견제하고 멸문시키려고 눈이 벌개 지도록 대립해온 두 집안의 남자아이들이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반이 된다. 히노데 료스케는 특별한 힘을 전수받으라는 종가의 소환에 순응하고자 이 고등학교로 전학 오는데 독자들도, 당사자도 정체모를 힘의 수련을 시작하느라 좀 불만도 가지고 있다.

 

 

본가의 연줄로 학교를 뒷문으로 들어갈 정도로 좀 한심하기도 한 녀석은 맞춤교복이 빨간 곤약 색인지라 놀랄 노자로 안절부절못하다 체념과 적응으로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중이다. 히노데 가의 후계자 히노데 단주로와 나쓰메가의 장남 나쓰메 히로미와 함께 원치 않는 적과의 동침 중인데 히로미가 잘생겨서 여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점도 부러운 일이고 단주로의 누나가 백마를 타고 다니는 일도 은근 신경 쓰이게 만든다.

 

 

처음엔 뾰루퉁한 사이로 지내다가 중에 공공의 위협으로부터 공동대응을 하는 세 남학생의 좌충우돌 분투기는 유머러스하게, 때론 그 나이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진지하고 성숙한 면모까지 모든 과정이 마치 무림고수들의 필살기 시전의 형식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세 사람이 가진 각각의 능력은 나도 있었으면 좋겠네 라는 희망의 반영이기도 하고 그 힘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는 마인드를 미처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한 조바심과 반발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기도 하다

 

 

그런 심리 묘사도 음미하는 맛이 일품이어서 경쾌하다. 게다가 파파파팟에 슈라라라라봉으로 표현되는 의성어는 그 힘의 정체와 시전방식이 내내 궁금하도록 함으로서 흥미라는 끈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전개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한다. 뭘까? 그 소리는? 어떻게 한 거지? 그 소리의 의미는 가공할 위력에 가려진 의지와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을 마음속에서 봉쇄하지 못한 채 오묘하고 건강한 수련을 통해 배출해낸 에네르기 파워임을 인정한다. 웃겨서 탈이지만

 

 

어찌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힘은 결정적일 때 모두를 움직이고 대동단결하여 소중한 사람을 구했다는 그 결실 때문에 사랑스러워서 그것을 표현한 상상력에 내내 감탄스러우면서 설레 인다. 무엇보다 특별한 힘을 가졌음에도 악용하지 않고 부단히 인내하며 보통사람들과 공생하고자 하는 그 노력이 가상했다는 점이 흐뭇하다. 그들은 또 다른 차원의 엑스맨 이었다. 가공할 힘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읽다보면 싱글거리며 읽어나갈 책이 되겠다. 반전은 보너스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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