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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계속 단편집에 필을 받아 주구장창 단편투어에 매진 중이다. 장편에서 느낄 수 없는 쇼트 스토리에서만 감지되는 오묘한 맛이 일품이라 단편집의 매력에 흠뻑빠져들게 된다. 이번에 읽은 단편집은 최근 일본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신성 소네 케이스케의 공포 단편집 <코>다. 많은 분들의 추천이 있었기에 신간 공세속에서도 마침내 그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일본소설 특유의 불길한 기운이 뭉게뭉게 묻어나 있지만 깜짝 놀래키기 위한 심령적, 초자연적인 공포가 아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인간사의 추악함을 들이대어 무자비함과 강박증을 끌어내는 원색적인 공포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구성이다. 이 책은 앞서 읽었던 츠츠이 야스다카의 단편집과는 달리 단 세편의 에피소드만 실려 있을 뿐이지만 모두가 대단한 필력과 날카로운 서스펜스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제14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단편상 수상작 <코>는 코가 높은 텐구와 코가 낮은 돼지라는 두 종으로 나뉘어진 인간 계급사회를 통해 핍박당하는 인간과 그들을 사냥하는 인간을 보여줌으로서 인간내면에 스며든 비뚤어진 편견과 아집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과거 아내와 딸을 잃은 의사와 자신의 냄새에 강박증을 보이는 형사의 만남이 서술트릭으로 이어지는 결말이었는데 이해하기가 다소 버거운 복잡한 구성이라 세 편중 가장 난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수난>에서는 한 취객이 도시의 빌딩 사이에 수갑으로 억류되어 생사의 기로에 놓인 절망적인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다들 그의 위태로운 처지에는 무관심하고, 어쩌다 만나게 된 사람들도 경찰에 알려 구조요청을 돕기는커녕 자신의 세계에 갇혀 대화가 안 통하는 작자들 뿐, 염세주의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는 노신사, 일진에게 갈굼을 당하는 왕따,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여 그를 영적인 수행자로 오인하는 여신도 등 세상은 더 이상 이해와 소통 대신 분열된 자아만이 존재할 뿐이다. 믿지 못할, 의지가 안 되는 고집불통의 장벽들!
그래도 첫 번째 이야기인 <폭락>이 여기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반응을 얻어내지 않을까 싶다.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장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자신과 그의 가족, 친구들을 이해관계에 따라 소유하고 있는 주식을 매매하듯 맺고 끊는다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개인의 주가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아니라 기업들의 상장 주식처럼 거래되어 계급이 결정되는 이 획기적인 제도는 사람들의 비열한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성공이란 달콤한 열매를 획득하고자 배신을 밥 먹듯이 하며,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신의를 저버린 주인공이 걷게 되는 성장과 몰락, 그리고 인과응보를 맞이한 비참한 최후까지 무엇하나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흡입력을 자랑한다. 기괴하다 못해 정말 소름끼치는 단편호러의 걸작인 것 같다. 그것 참 굉장히 끝내주는 한 방을 제대로 먹여준다니까!
결국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부정적인 본성들이 메말라가는 현대사회의 썩어버린 병폐를 도려내 듯 비판하고 있으며, 귀신이나 유령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 그자체가 공포이며, 이보다 잔혹한 존재는 없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비록 그 점이 진부하다 못해 식상한 주제라고 할지라도 이보다 더 효과적이며 입체적인 공포효과로 생생히 전달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일독할 만 한 가치가 있는 단편집인 것이다. 아무 기대 없이 읽는다 해도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에 자리 잡은 리얼하면서 서늘한 공포에 뒷목을 잡게 되는 공포를 원한다면 요거란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