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속 세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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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와 오늘 밤도 잠이 안 와 

그 소리가 들리니까

밤의 밑바닥 졸졸 소리 나뭇가지 스치는 바람

그리고 그 소리가 들려와

 

잠이 안 와 난 잠이 안 와

오늘 밤도 그 소리가 들려

흙 금침에 묻혀 있던 아득한 메아리

그리고 그 소리가 내 방 창문을  흔드니까 

 - P.94 -

 

온다 리쿠 여사의 소설은 아직까지 완전한 믿음을 주지 못한다. 좀 더 깊이 발을 들여 놓기에는 의혹이 금줄을 치고 진입을 망설이게 한다. <밤의 피크닉>, 이 한 편만 딱 읽었을 때엔 청춘의 아릿한 감동들을 뭉클하게 그려내서 진짜 인정하고 싶다가도 이후의 다른 작품들의 후기 감상평에서 인지되는 이질적인 세계관에 미리 외면하게 된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내내 고심 끝에 리쿠 월드에 다시 한 번 동참할 기회를 내게 부여하였다.

 

리쿠 여사의 이번 작품집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특정 장르의 경계를 넘어 판타지, SF, 호러 등 다양한 레시피로 미스터리를 변주하고 있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장편소설도 동시 출간되었지만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한 내겐 옴니버스집이 중간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대체하였다.

 

나무 지킴이 사내는 쓰카자키 다몬이 자주 산책하는 천변의 가로수 위에서 해골같은 남자가 떠 있는 기이한 목격담을 불길한 징조로 그려내고 있는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불러온 미증유의 불황으로 상징화된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자괴감으로 일부러 보여주는 것 같은 게 읽고 나면 뭔가 이상하다. 아, 느낌이 정말 이상한데...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글루미 선데이'를 능가하는 죽음을 부르는 노래 이야기이다. 참말 내가 오싹했던 것은 미스터리에 민속호러를 결합하여 원통하게 죽은 자의 저주 같은 초자연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잠이 안 와 지금도 난 잠이 안 와 그리고 오늘 밤도 그 소리가 들려때마침 이 목소리를 읽은 시점이 한 밤중에, 그것도 무시무시한 바람까지 덩달아 부는 상황이라 쭈뼛한 머리털에 심장마저 쫄깃해져 버렸다. 확 하고 덮쳐오는 이야기의 흐름이 도발적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호러적이라는....

 

사구 피크닉은 은은한 달빛이 비쳐드는 사구를 배경으로 시각과 공간의 착시현상을 통한 트릭을 추리적 관점에서 지적유희를 펼쳐 보이고 있는데 정작 인상적인 점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부 마쓰모토 세이초의 기념관에 압도되어 털어놓는 푸념이다. 리쿠 여사가 실제 방문하고서 마흔 두 살의 나이부터 세이초가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집필했다는 점에 진저리치며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는데 왕성한 창작능력은 작가들 사이에서 경외감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간주된다는 사실로 인해 글로 먹고 사는 그들만의 경쟁심리에 참으로 놀라우면서도 감명받았다.

 

좀 더 확연하게 파헤치기엔 아직 리쿠 여사의 작품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역량이 부족한 듯 하다. 이 정도로 각 단편들에 대한 대략적인 감상평을 마무리한다. 다 읽고 난 소감은 <불연속의 세계>에서 실린 이야기들이 전반적으로 섬뜩하면서도 나직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지 바둥바둥 살아야겠다는 그들의 욕망과 본능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저릿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시간의 흐름에서도 변치 않은 상상력의 향연으로 더 의미있게, 더 또렷하게 다가오는 온다 리쿠 월드를 부분이나마 경험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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