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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90%를 위한 비즈니스 -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새로운 발상
폴 폴락 & 맬 워윅 지음, 이경식 옮김, 김정태 감수 / 더퀘스트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독서계기

  "유엔이나 비영리 단체가 할 일 아냐? 기업이 나설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책 목차를 보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소름 끼치게 똑같았다.

 사회적 기업의 좋은 취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사업 수익이 어떤 식으로 나는지, 난다고 해도 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어떻게 버티는지 궁금해서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책을 찾던 중 목차에 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독서iNG

많은 기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는 조금 더 값이 싼 소재를 사용한다던가 품질을 낮춘다든가 하는 식으로 기존의 제품과 서비스를 '살짝 수정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중산층의 대체 고객이 아니라 그들 그 자체로 '고객'이다. 기존의 것을 대충 변경하는 것 따위가 통할 리 없다. 처음부터 그들의 상황에 맞는 사어 설정을 공들여 다시 짜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대 사회의 서비스는 점점 개인 맞춤형으로 변해간다.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별 맞춤 광고를 제안하고 샌드위치도 빵부터 다양한 속 재료를 골라 먹을 수 있는 가게가 인기 있다. 

 그런데 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개인별 맞춤 서비스까지는 무리더라도 최소한 그 나라 사정에 맞는 사업 모델을 가져가는 것이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또한 '제로 베이스 설계'를 제안하며 모든 것을 0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조약한 제품들에 둘러싸인 소비자들에게 '믿을 만한' 브랜드는 그 제품을 선택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브랜드를 통해 검증된 믿을 만한 제품을 사고 싶은 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마음일 텐데 왜 나는 그들이 무조건 싼 제품이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좁은 내 시야가 드러나서 창피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들도 처음에는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싼 제품을 샀겠지만 반복되는 실망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일 것이고 지구촌의 그 누구보다 믿을 만한 제품을 사고 싶은 욕구가 강할 것이다.

 돈이 없다고 욕구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수입이 적다는 사실보다도 수입이 불규칙적이고,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

 이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 역시 보통의 사업을 할 때와 마찬가지고 철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한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한 번에 많은 돈을 벌 방법 보다는 적을지라도 꾸준한 수입이 보장되는 안정성을 더 추구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액 대출로 융통된 돈 가운데 무려 90퍼센트가 소비로 지출됐다.

 너무 당연한 현실 아닌가.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씁쓸하긴 하지만 당장 먹고살 돈이 없는데 창업과 같이 무지갯빛 미래가 보일 리 만무하다.

 내가 농부라면 당장 오늘 한 끼도 못 먹었는데 (심지어는 가족들까지) 그 돈을 선뜻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할까? 나는 아닐 것 같다. 

 근데 옆 사람의 성공사례를 본다면 생각이 좀 달라질 것 같긴하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사용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체험단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마케팅 사례일 듯

 또한 그 나라에 필요한 사업을 시작할 때 그 사람들을 고용하면서 교육해 월급을 담보로 대출을 받게 하는 건 어떨까? 도움이 떠나도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우선 안락의자에서 일어나라. 책상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서 걷거나 뛰거나 버스를 타거나 또는 비행기를 타라. 당신이 비지니스를 펼칠 지역으로 가라.

 처음 이 문장을 읽고 떠올린 것이 보육원에 있는 나이대가 애매한 청소년, 성매매 탈출 여성, 가정 폭력으로 인해 쉼터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내가 생각한 방향이 최소한 이 책에서 제시한 방향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위와 같은 사례의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너무 화가 나서 뭐라도 하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당신은 아마도 이 두 제품의(싸지만 수명이 짧은 제품 vs 비싸지만 수명이 긴 제품) 내구성 차이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며 거기에 따른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 써야 하는 제품을 사야 한다면 나는 비싸더라도 수명이 길고 좋은 제품을 살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일단 6개월짜리 제품을 산 뒤 그걸로 돈을 벌어 10년짜리 제품을 산다. 너무 당연한 생각인데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무엇인지 모를 나만의 틀에 계속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어 답답했다.

 

 참가자들은 브레인 스토밍, 커뮤니티주도 조사 활동 등을 통해 확인했던 사실과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1등은 '비디오 상영 사업'이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영화'였을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사업은 '현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고 참 와닿았다.

 

 

감상

 책을 읽으면서 한 메모가 뒤에 나오는 저자의 생각과 비슷해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사업은 '현장'에서 시작해 '현장'에서 끝난다." 너무나 간단하고 당연한 이 문장을 여러 사람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저자는 3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을 썼다. 대부분의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그저 동정과 수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또한 역시 그랬으며 처음에는 그들에게 돈을 받고 무언가를 파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의문과 성공할 수 있겠냐는 의심으로 이 책을 읽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그들은 한없이 거대한 블루오션이며 아직 기업가들이 자신의 세상에 갇혀 적당한 사업모델을 찾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을 읽으면서 예시로 나온 코코넛 껍질에 관해 관심이 생겼고 여기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또한 시작할 때만 해도 내 주변의 문제 상황만 떠올렸던 내가 어느새 다른 나라의 코코넛 껍질을 고려해 보고 있다는 사실이 사고가 확장된 것 같아 뿌듯했다. 나를 둘러싼 틀에 아주 미세한 금이 간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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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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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읽게된 계기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지금까지 갔던) 여행은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안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더 안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 중에 기분이 좋은 특정 시간대를 빼면 그렇게 기쁘지도 않았고, 매번 여행을 다녀오면 몸살이 나기 일쑤였다. 비행기표에 숙박비에 돈을 실컷 들여서 갔는데 딱히 얻었다고 할만한 건 없고, 정신적·육체적 피로만 얻어왔으니 여행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에서 항상 이 책을 봤지만, 딱히 읽고 싶진 않았다. 굳이 여행의 이유를 찾아야 할 필요가 나에겐 없었고 안 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과제를 하려고 목록에 있는 책들을 검색하고 미리 보기를 읽어보는데 글이 술술 읽혔다.

비행기 티켓 구매, 사형수, 현금 결제는 단어만 놓고 보면 전혀 연결이 안 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단어들이 물 흐르듯 잘 연결되면서도 한참 다른 얘기를 하는 듯 하다가 다시 처음 비행기 티켓 구매로 돌아오는 내용이 신기했다. 왜 김영하가 유명한 작가인지 조금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독서iNG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중국 여행을 비자 없이 떠나 공항에서 추방당한 작가는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일화 를 읽고 대만으로 여행 갔던 일이 생각났다. 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나라 유심으로 갈아 끼우려고 공항에 있는 유심 판매대에서 유심을 사왔다.

 그런데 내가 유심을 넣는 자리에 유심 껍데기를 넣어버렸다. 비행기에서 잠이 덜 깬 채로 내려서 한 실수라기에는 그 대가가 가혹했다.

 여행 기간 내내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 내 휴대폰은 시계에 불과했고, 친구들과 떨어지면 연락이 되지 않으니까 항상 같이 다녀야 했으며, 길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행 기간 내내 그다지 좋지 못한 기분으로 다녔다.

 하지만 작가는 나와 다르게 추방당했다는 객관적인 불쾌한 상황에도 자신의 목적을 또렷이 하였다. 목적인 글쓰기만 가능하다면 장소가 어디든 뭐가 중요하냐는 마음가짐으로 집에서 책을 집필했다.

 이때 나 역시 마음을 조금 고쳐먹고 유심을 잘못 넣은 현실을 뜻밖의 사실로 받아들였으면, 여행을 온 목적이 친구들과 즐겁게 놀기 위해서인데 휴대폰이 좀 없으면 어때! 라고 생각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까 싶다.

 

 모든 여행자가 그러듯이, 우리 역시 눈앞에 나타난 현실에 맞춰 고정관념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드문, 현지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한 달 정도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다.

 휩쓸리듯 관광지만 보고 지나가는 동안은 고정관념과 현실이 부딪힐 일이 적다. 하지만 현지에 어우러지다 보면 무수히 많은 고정관념이 부딪히고 수정될 것이다. 나는 막연히 그런 것을 기대한 것 같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언제나 여행은 그런것이었다.

 이렇듯 작가는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지만 대신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기억을 떠올리며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여행뿐 아니라 현실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해 실망스럽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때 그 실패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그런 것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 인생에서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지금 내 인생도 나중에 돌아봤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 수 있는 그런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나에게 집은 안식처라기보다는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는 곳이고 그 때문에 항상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처음에는 집을 보편적인 안락한 장소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이상한가 싶었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려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이유를 찾았다.

 여행지에서 지하철을 타고 친구들이랑 같이 이동 중이었다. 혼자 떨어져서 20분 정도를 앉아서 가는데 창밖을 보니 문득 눈물이 났다. 당시 나는 원하는 입시 결과를 얻지 못해 좌절한 상태였고 혼자 멍하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니 지금 내가 여기 앉아서 뭐 하고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온 순간조차도 과거를 놓지를 못하니 뭐가 될 리가 없었다.

 여행지가 새로운 문화, 새로운 환경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붐비는 곳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역시 여행은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는 여행에서 우리가 낯선 이에게 품는 신뢰, 그것의 기묘함에 대해 썼다.

 나도 그런 신뢰를 느껴보고 싶긴 한데, 또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겠냐는 의문도 든다. 낯선 여행지에 가고 그곳에 오래 있다 보면 처음에 세웠던 날이 점점 무뎌질 것으로 기대하고 이 과정에서 한층 더 깊은 신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

 

 여행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가면을 쓰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그러면서 부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고향에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여행지에서 쓰는 가면이 조금 낯설 뿐이다.

 이런 부분에서도 여행은 참 인생과 비슷한 것 같다. 어딘가에서는 완전한 현지인처럼 보이길 원하고, 또 다른 어딘가에서는 완전한 여행자처럼 보이길 원하는 이중적인 작가의 모습을 보고 유럽을 여행하는 나, 동남아를 여행하는 나를 상상해봤는데 이중적인 내 모습이 수치스러웠다. 나를 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꾸미려는 순간 그 부조화는 내가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그 화살도 내가 제일 먼저 맞는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자아실현을 여행에서 이루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현실과 닮은 여행 속에서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다. 내 자아가 불만족스럽다면 그건 현실에서 해결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중략) 현지인들이 겪는 자잘하고 어지러운 일상을 잠깐 맛볼 수는 있지만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원하던 여행의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느끼고 싶은 건 낯선 일상이었고 그래서 늘 정제된 환상을 경험했던 내 여행이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낯선 일상도 정제된 환상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역시 여행자들은 현지인들이 겪는 자잘하고 어지러운 일상을 잠깐 맛보길 원하지 오래 지 속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하였고 이 말에 크게 공감하였다.

 여행은 끝까지 정제된 환상일 수밖에 없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감상

 책을 읽어나가면서 가장 큰 수확은 내가 여행을 안 좋아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찾은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현실을 잊으려고 여행을 떠난다고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현실을 향해가는 것일 뿐이었다. 결국, 사람은 똑같고 장소만 바뀌는 것일 뿐이다.

 내가 그동안 여행이 힘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다른 형태의 여행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 생겼다.

 현실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서 마음가짐도 다르게 먹고, 관광지보다는 현지인의 생활에 좀 더 녹아들 수 있는 곳을 여행지로 골라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여행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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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봄날 지음 / 반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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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향수 냄새, 온몸에 휘감은 명품, 굽이 높은 힐과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내가 성매매 여성을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과거에는 성매매가 돈을 쉽게 벌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성매매와 관련된 정보들을 접하고 지금은 성판매자가 돈을 번다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기생하는 것들이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성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런데도 왜 성매매라는 길을 택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성매매하는 여자들 돈 쉽게 벌려고 자기들이 스스로 선택한 거잖아." 라는 말을 듣는다면, 분명히 저게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왜 아닌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게 답답했고 이 답답함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고 화가 나서 남은 장수를 자주 확인했다. 책의 초반 부분을 읽으면서 읽어온 양 보다 읽어야 할 양이 많이 남았을 때, 도대체 이 어둠의 끝은 어디인지 나도 같이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가정폭력과 가난에 시달린 저자가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갔고, 그곳 동생을 통해 소개로 만난 사람의 아이를 임신을 하게 된다. 나는 그 부분을 읽자마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자였다면 임신은 내 앞으로의 일들을 망치게 할 원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인데, 저자는 임신을 확인하고는 너무 기뻤다고 했다. 나는 참 ‘나’를 기준으로 사고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이라 이 부분을 읽고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는 놀랍지도 않게 아이 지울 것을 권유했고 잠적을 하였다. 이 남자와 헤어지게 된 저자가 자신을 자책하며 과거에 강간을 당했던 사실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성범죄와 다른 범죄의 차이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폭행을 당한 사람도, 절도를 당한 사람도 자신이 잘못해서 맞거나 물건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 관련 범죄만 유독 피해자가 죄인이 된다. 피해자임을 ‘입증’하기까지 내가 정말 잘못한 게 없는지 수많은 자기 검열과 주변의 시선을 마주하고, 피해자가 되어서도 자책을 한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성범죄가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짓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상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를 통해 한번 일을 한 업소에서는 거액의 돈을 벌 수 있었고, 이 돈 앞에서 흔들리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노동자, 보호자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받을 수 없는 미성년자 그리고 여성 이렇게 세 사회적 지위의 고충이 모두 교차된 저자의 모습이 힘겨워보였다. 

 저 중 하나의 무게도 견디기 버거운데 버틴 저다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집중하기도 힘든 미성년자의 시기에 가족까지 책임지라는 명목으로 저자의 어깨에 저자의 몸보다 더 무거운 돌을 올린 이런 상황을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비교하기도 무색하지만 나도 어릴 때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한테 양보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그리고 그게 참 싫었고 처음에는 악착같이 안 뺏기려고 했는데 결국 마음이 불편하고 내가 죄인이 되는 것 같아 양보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물건 하나 뺏기는 것도 싫었는데, 인생을 통째로 빼앗긴 저자의 심정을 감히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조차 있을까 싶었다.

 

 저자가 업소에 들어가게 되고, 여러 업주가 책에 등장하는데 어쩜 이렇게들 하는 행동이 똑같은지 역겨웠다. 처음엔 잘해주는 척 뭐든 해줄 것처럼 말하다가 본인의 상품이 되었다 싶으면 그때부터 드러나는 본성과 수없이 행해지는 가스라이팅이 읽으면서 참 구역질 나왔다. 

 ‘몸 파는 주제에’라는 말 한마디에 참 많은 것을 담아 저자에게 던지는 업주들에게 책을 읽는 내내 묻고 싶었다. ‘몸 파는데 기생하는 주제에 당신은 뭐가 그렇게 잘났고 당당한가요?’ 이런 인간들과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수치스러울 정도로 인간의 밑바닥을 본 기분이라 불쾌했다. 

 여러 업소를 돌아다니는 저자는 오픈 업소에 가게 되는데, 오픈업소답게 예약이 넘쳐났다는 글을 보고 1990년대임을 고려해도 화가 났고, 지금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성매매의 틀은 도대체 뭐길래 아무리 봐도 어떻게 생각해도 틀리고 잘못됐는데 몇십 년 동안 저렇게 견고한 건지 이 틀을 깰 방법은 있는 건지 무기력해졌다.

 

 업소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마담에게 잘 보여야 했고 저자는 마담을 호스트바에 데려갔는데 그곳에서 남자 성판매자는 술에 취한 마담과 아침 먹기를 짜증을 내는듯한 표정으로 거절한다. 왜 같은 입장인데 한쪽은 피임과 관련된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 하고 무시당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식사 자리와 관련된 의사 표현도 명확히 하고 그게 받아들여지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여기서 조차 젠더의 계급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가장 분노하게 만든 건 여성들에게 붙어있는 수많은 기생충이었다. 업주, 마담을 비롯한 그 거리의 상인, 보살 심지어는 웨이터 차비나 담뱃값조차 성판매자들이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나왔을 때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읽던 책을 멈추었다. 

 시간 가고, 나이가 들수록 저자는 유리방, 티켓다방과 같은 업소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성매매 장소를 가게 되는데 다양한 형태로 곳곳에 성매매가 침투해있다는 사실이 한 번 더 와닿아서 이걸 고치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읽던 책을 멈추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쉽사리 어쩔 줄 모르겠었다.

 

 성매매의 굴레에서 힘겹게 빠져나온 저자는 성매매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갈 때, 트라우마 때문에 한참을 고생하고 이제는 극복해서 이렇게 책을 썼다. 여기서 성매매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느꼈는데, 세상의 그 어떤 노동도 사람의 시선 자체를 두렵게 만들어 다음 노동에 지장을 주는 경우는 없다.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 사람들에게 역으로 되묻고 싶다. 이 책에서 저자가 겪은 일의 1/10이라도 돈을 받고 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백이면 백 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런 기형적인 노동 형태를 합법화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이것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사회는 돌이키기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성 착취와 성매매가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경계에서 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은 성 착취를 합법화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성매매를 제대로 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타인에게 기생해 이루어지는 노동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한 사회에서 법망이 성매매 여성들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뿌려야만 했던 짙은 향수, 온몸에 휘감아야만 했던 명품, 신어야만 했던 굽이 높은 힐과 발라야만 했던 빨간 립스틱. 

 

 책을 다 읽고 내가 쓰고 있던 색안경이 벗겨졌다.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에대한 이미지를 누가 내 머릿속에 심어둔 건지, 그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 이런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재현된 생각을 통해 단어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이 재현은 성구매자들이 만든 견고한 사회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고 이를 깨기 위해 앞으로 많은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 충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함께 상담센터 인터넷 시민 감시단으로 활동하면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카카오톡과 같은 곳에 올라오는 성매매 광고를 신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부터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함께상담센터 인터넷 시민 감시단으로 활동하면서 교육을 받을 때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저렇게 버젓이 성매매 광고가 올라온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숙이 곳곳에 성매매가 침투해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지워도 또 생기고 지워도 또 생긴다는 사실은 나를 무력하게 했다. 

 사회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를 재현하는 그들 스스로 인식을 바꾸고 자정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성매매는 인권을 사는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짓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하기 위해 밥 제정과 더불어 우리의 행동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거기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저자를 길 하나 건너면 벼랑인 곳으로 밀어 넣은 사람들은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아니 그 길밖에 안 보이도록 고속도로로 뚫어놓은 성구매자들과 그런 성구매자들을 ‘남자답다', '사회 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말로 포장해준 사회에서 추구하는 남성성을 가진 이들이 만들어낸 사회이다. 

 성 구매자의 처벌을 강화하고,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유럽의 ‘노르딕 모델’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형평성을 운운하며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둘을 동등하게 판단해 처벌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법이 강력하게 제정되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법 제정과 더불어 사회에서 성매매에 대한 인식 또한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인식의 변화를 위해 ‘성매매’라는 단어가 새로운 단어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매춘’, ‘윤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며 성매매를 남성의 생물학적 본능이나 여성의 일탈 문제로 보는 시각이었지만 성을 사고파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성매매’로 단어가 바뀌었다. 

 하지만 ‘성매매’라는 단어는 성을 사고파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이 인지 가능한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단어이다. 성을 구매하는 행위에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단어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착취’나 ‘성적인격모독행위’라는 단어로 변경되었으면 좋겠다.

 

"성매매하는 여자들 돈 쉽게 벌려고 자기들이 스스로 선택한 거잖아." 이 질문은 성립자체가 잘못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한 평가를 하는 나 자신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 판단 받고 평가받아야 할 사람들은 성구매자들이다. 나부터 여성들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밀면서 사회가 바뀌길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 씁쓸했다.

 성매매에서 성행위는 도구에 불과하고 성구매자들이 진정 사고 싶은 건 인권이다. 성매매는 자본주의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끔찍한 결과물이며 여성의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인권을 사는 하루빨리 근절되어야 할 사회악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 기생충처럼 여러 사람이 붙어있는 꼴과 그 사람은 자신의 전부를 내거는데 여전히 힘든 인생을 사는 일이 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무기력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를 꼭 바꾸고 싶다는 의지도 불타올랐다.

 

‘내’가 더 나아가 ‘우리’가 함께 한다면 사회는 느리게나마 조금씩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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