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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봄날 지음 / 반비 / 2019년 11월
평점 :
짙은 향수 냄새, 온몸에 휘감은 명품, 굽이 높은 힐과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내가 성매매 여성을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과거에는 성매매가 돈을 쉽게 벌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성매매와 관련된 정보들을 접하고 지금은 성판매자가 돈을 번다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기생하는 것들이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성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런데도 왜 성매매라는 길을 택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성매매하는 여자들 돈 쉽게 벌려고 자기들이 스스로 선택한 거잖아." 라는 말을 듣는다면, 분명히 저게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왜 아닌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게 답답했고 이 답답함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고 화가 나서 남은 장수를 자주 확인했다. 책의 초반 부분을 읽으면서 읽어온 양 보다 읽어야 할 양이 많이 남았을 때, 도대체 이 어둠의 끝은 어디인지 나도 같이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가정폭력과 가난에 시달린 저자가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갔고, 그곳 동생을 통해 소개로 만난 사람의 아이를 임신을 하게 된다. 나는 그 부분을 읽자마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자였다면 임신은 내 앞으로의 일들을 망치게 할 원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인데, 저자는 임신을 확인하고는 너무 기뻤다고 했다. 나는 참 ‘나’를 기준으로 사고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이라 이 부분을 읽고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는 놀랍지도 않게 아이 지울 것을 권유했고 잠적을 하였다. 이 남자와 헤어지게 된 저자가 자신을 자책하며 과거에 강간을 당했던 사실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성범죄와 다른 범죄의 차이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폭행을 당한 사람도, 절도를 당한 사람도 자신이 잘못해서 맞거나 물건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 관련 범죄만 유독 피해자가 죄인이 된다. 피해자임을 ‘입증’하기까지 내가 정말 잘못한 게 없는지 수많은 자기 검열과 주변의 시선을 마주하고, 피해자가 되어서도 자책을 한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성범죄가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짓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상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를 통해 한번 일을 한 업소에서는 거액의 돈을 벌 수 있었고, 이 돈 앞에서 흔들리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노동자, 보호자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받을 수 없는 미성년자 그리고 여성 이렇게 세 사회적 지위의 고충이 모두 교차된 저자의 모습이 힘겨워보였다.
저 중 하나의 무게도 견디기 버거운데 버틴 저다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집중하기도 힘든 미성년자의 시기에 가족까지 책임지라는 명목으로 저자의 어깨에 저자의 몸보다 더 무거운 돌을 올린 이런 상황을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비교하기도 무색하지만 나도 어릴 때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한테 양보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그리고 그게 참 싫었고 처음에는 악착같이 안 뺏기려고 했는데 결국 마음이 불편하고 내가 죄인이 되는 것 같아 양보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물건 하나 뺏기는 것도 싫었는데, 인생을 통째로 빼앗긴 저자의 심정을 감히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조차 있을까 싶었다.
저자가 업소에 들어가게 되고, 여러 업주가 책에 등장하는데 어쩜 이렇게들 하는 행동이 똑같은지 역겨웠다. 처음엔 잘해주는 척 뭐든 해줄 것처럼 말하다가 본인의 상품이 되었다 싶으면 그때부터 드러나는 본성과 수없이 행해지는 가스라이팅이 읽으면서 참 구역질 나왔다.
‘몸 파는 주제에’라는 말 한마디에 참 많은 것을 담아 저자에게 던지는 업주들에게 책을 읽는 내내 묻고 싶었다. ‘몸 파는데 기생하는 주제에 당신은 뭐가 그렇게 잘났고 당당한가요?’ 이런 인간들과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수치스러울 정도로 인간의 밑바닥을 본 기분이라 불쾌했다.
여러 업소를 돌아다니는 저자는 오픈 업소에 가게 되는데, 오픈업소답게 예약이 넘쳐났다는 글을 보고 1990년대임을 고려해도 화가 났고, 지금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성매매의 틀은 도대체 뭐길래 아무리 봐도 어떻게 생각해도 틀리고 잘못됐는데 몇십 년 동안 저렇게 견고한 건지 이 틀을 깰 방법은 있는 건지 무기력해졌다.
업소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마담에게 잘 보여야 했고 저자는 마담을 호스트바에 데려갔는데 그곳에서 남자 성판매자는 술에 취한 마담과 아침 먹기를 짜증을 내는듯한 표정으로 거절한다. 왜 같은 입장인데 한쪽은 피임과 관련된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 하고 무시당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식사 자리와 관련된 의사 표현도 명확히 하고 그게 받아들여지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여기서 조차 젠더의 계급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가장 분노하게 만든 건 여성들에게 붙어있는 수많은 기생충이었다. 업주, 마담을 비롯한 그 거리의 상인, 보살 심지어는 웨이터 차비나 담뱃값조차 성판매자들이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나왔을 때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읽던 책을 멈추었다.
시간 가고, 나이가 들수록 저자는 유리방, 티켓다방과 같은 업소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성매매 장소를 가게 되는데 다양한 형태로 곳곳에 성매매가 침투해있다는 사실이 한 번 더 와닿아서 이걸 고치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읽던 책을 멈추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쉽사리 어쩔 줄 모르겠었다.
성매매의 굴레에서 힘겹게 빠져나온 저자는 성매매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갈 때, 트라우마 때문에 한참을 고생하고 이제는 극복해서 이렇게 책을 썼다. 여기서 성매매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느꼈는데, 세상의 그 어떤 노동도 사람의 시선 자체를 두렵게 만들어 다음 노동에 지장을 주는 경우는 없다.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 사람들에게 역으로 되묻고 싶다. 이 책에서 저자가 겪은 일의 1/10이라도 돈을 받고 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백이면 백 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런 기형적인 노동 형태를 합법화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이것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사회는 돌이키기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성 착취와 성매매가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경계에서 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은 성 착취를 합법화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성매매를 제대로 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타인에게 기생해 이루어지는 노동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한 사회에서 법망이 성매매 여성들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뿌려야만 했던 짙은 향수, 온몸에 휘감아야만 했던 명품, 신어야만 했던 굽이 높은 힐과 발라야만 했던 빨간 립스틱.
책을 다 읽고 내가 쓰고 있던 색안경이 벗겨졌다.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에대한 이미지를 누가 내 머릿속에 심어둔 건지, 그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 이런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재현된 생각을 통해 단어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이 재현은 성구매자들이 만든 견고한 사회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고 이를 깨기 위해 앞으로 많은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 충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함께 상담센터 인터넷 시민 감시단으로 활동하면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카카오톡과 같은 곳에 올라오는 성매매 광고를 신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부터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함께상담센터 인터넷 시민 감시단으로 활동하면서 교육을 받을 때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저렇게 버젓이 성매매 광고가 올라온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숙이 곳곳에 성매매가 침투해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지워도 또 생기고 지워도 또 생긴다는 사실은 나를 무력하게 했다.
사회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를 재현하는 그들 스스로 인식을 바꾸고 자정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성매매는 인권을 사는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짓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하기 위해 밥 제정과 더불어 우리의 행동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거기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저자를 길 하나 건너면 벼랑인 곳으로 밀어 넣은 사람들은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아니 그 길밖에 안 보이도록 고속도로로 뚫어놓은 성구매자들과 그런 성구매자들을 ‘남자답다', '사회 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말로 포장해준 사회에서 추구하는 남성성을 가진 이들이 만들어낸 사회이다.
성 구매자의 처벌을 강화하고,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유럽의 ‘노르딕 모델’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형평성을 운운하며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둘을 동등하게 판단해 처벌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법이 강력하게 제정되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법 제정과 더불어 사회에서 성매매에 대한 인식 또한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인식의 변화를 위해 ‘성매매’라는 단어가 새로운 단어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매춘’, ‘윤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며 성매매를 남성의 생물학적 본능이나 여성의 일탈 문제로 보는 시각이었지만 성을 사고파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성매매’로 단어가 바뀌었다.
하지만 ‘성매매’라는 단어는 성을 사고파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이 인지 가능한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단어이다. 성을 구매하는 행위에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단어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착취’나 ‘성적인격모독행위’라는 단어로 변경되었으면 좋겠다.
"성매매하는 여자들 돈 쉽게 벌려고 자기들이 스스로 선택한 거잖아." 이 질문은 성립자체가 잘못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한 평가를 하는 나 자신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 판단 받고 평가받아야 할 사람들은 성구매자들이다. 나부터 여성들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밀면서 사회가 바뀌길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 씁쓸했다.
성매매에서 성행위는 도구에 불과하고 성구매자들이 진정 사고 싶은 건 인권이다. 성매매는 자본주의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끔찍한 결과물이며 여성의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인권을 사는 하루빨리 근절되어야 할 사회악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 기생충처럼 여러 사람이 붙어있는 꼴과 그 사람은 자신의 전부를 내거는데 여전히 힘든 인생을 사는 일이 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무기력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를 꼭 바꾸고 싶다는 의지도 불타올랐다.
‘내’가 더 나아가 ‘우리’가 함께 한다면 사회는 느리게나마 조금씩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