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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단편소설인데 전부 주인공이 2~30대 직장인들이다. 엿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그들은 잠시 슬픔에 좌절하며 주저앉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그 속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는다. 구조의 모순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동질감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계기
작가님의 소설 #달까지가자 를 읽고 섬세한 감정 표현을 한 문장력에 감동받아서 전작을 읽어 보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같은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연봉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야 할까. 구재가 일을 잘해서? 대체 얼마나 잘하길래? 딱 천삼심만원어치만큼? (27페이지)
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를 볼 때마다 내가 들었던 생각이다. 출발선이 다르고 간신히 같은 선에 섰다 해도 결과가 다르다.
"원래 내가 받았어야 하는 건 포인트가 아니라 돈인데...... 사실 돈이 뭐 별건가요?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인 거잖아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죠."
"어떻게요?"
"포인트를 다시 돈으로 바꾸면 되는 거잖아. "(52페이지)
월급을 포인트로 주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디선가는 행해지고 있을 것 같아서 소름 돋았다.
"코드를 좀 멀리서 보면 어때요?"
케빈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버그는, 그냥 버그죠. 버그가 케빈을 갉아먹는 건 아니니까."(60페이지)
일이 잘 안되면 그 결과물이 나 같다. 근데 웃긴 건 잘된 결과물은 딱히 나 같지는 않다. 그냥 내가 이번에 잘했네! 이러고 넘긴다. 부정적인 감정에 유독 기민하게 반응하는 게 인간 본성일까? 나만 그런다고 하기엔 주변에서 본 여러 사례가 떠올랐다.
역사 입구에 꾀죄죄한 보자기를 둘러쓴 할머니가 종이컵을 들고 구걸하고 있었다. (중략)
나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엔화를 한 움큼 집어 거지 할머니의 종이컵에 쏟아부었다. (중략)
말도 안 돼. 종이컵 안에는 커피가 들어 있었다. 거지가 아니라 그저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할머니였을 뿐이라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98페이지)
참...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사는 게 인생이란 사실이 다시금 와닿았다. 이번 일은 커피가 튀어 내가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보통 커피 같은 건 인생에 없다. 나는 세상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지조차 모르며 살 것이다.
감상
-다소 낮음
효율이 다소 낮은 냉장고. 주인공, 아버지의 마음, 유미가 떠난 이유, 보리와 만난 이유. 냉장고 하나에 이렇게 여러 사람과 동물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님의 이야기 전개력이 참 좋았다.
-새벽의 방문자들
성매매가 일상 건물에 스며들어 있고 그 대표적인 게 오피스텔 성매매다. 작가는 오피스텔 성매매를 하기 위해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남성들의 표정을 '태연하고, 부끄럽고, 주저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레어하는'이라고 표현했고 이 표현에 동의한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지만, 저 글을 읽자마자 구역질 나는 표정이 상상됐다. 부도덕한 행위란 걸 알아 부끄럽고, 주저하지만 애써 태연한척하며 설렘을 감추려는 역겨운 얼굴들. 사회의 악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물의 심리 묘사가 섬세했다. 그들이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이 날 것 그대로 나에게 와닿았다. 여러 가지 부조리한 사회 모습을 보며 내가 나갈 사회를 미리 마주한 것 같아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숨 쉴 틈을 만들어나가는 주인공들처럼 나도 그런 걸 찾으며 살아가지 않겠느냔 생각도 들었다. 아니 내가 꼭 그런 걸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