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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파국 - 나는 환경책을 읽었다
최성각 지음 / 동녘 / 2021년 3월
평점 :
환경문제와 관련된 누군가의 주관적인 생각을 책 한 권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인간의 생각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매체를 통해 가공되면 어느 정도 다듬어지기 마련인데, 그런데도 저자의 강력한 주관을 책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지구와 다른 생물에게 우리는 가해자이며 방관자다.
요컨대 저항도 못 하는 지금 북녘의 동포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김씨 왕조 체제'를 붕괴시키고 북의 붕괴를 재촉하기 위해 그들이 설사 굶어 죽더라도 쌀을 주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 곧 손자들 세대를 살리는 길이라는 이야기였다. (p. 30)
히로시마 원자폭탄 얘기를 들을 때는 몰랐는데, 북한 얘기가 나오니까 생각이 달라진다. 두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기부했을 때 지배층의 배를 불려준다는 사실은 동의한다. 그렇다고 아무 죄 없는 국민들이 굶어 죽는 건 너무 잔인하다. 생각할수록 어렵다. 생필품으로 기부를 하는 게 그나마 답일듯하다. 그마저도 팔아버린다면 노답이겠지만.
멀쩡하게 자족적으로 지구에 큰 해를 끼치지 않고 잘살고 있는 나라들을 '개발이 안 된 미개한 나라', '개발도상국', '선진국'으로 제멋대로 구분한 뒤에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개발된 선진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서구의 발전 신화가 어떤 치명적인 허구를 안고 있는지 이 작은 책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은 많지 않다. (p. 48)
개도국이란 단어가 갑자기 낯설다. 개발 대상의 기준은 무엇이고 어느 정도가 되면 그만 개발해도 되는 걸까. 아니 이미 시작한 개발을 멈출 수 있긴 할까. 부에서 빈으로 가기 어렵다는 말을 격하게 공감한다. <경제성장이 안된다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어보고 싶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개도국 입장에서 본다면 경제 성장을 이룬 대부분의 국가는 환경 측면에서 개발이 필요한 개도국일 것이다.
그레타는 1인 시위를 통해서 어른들이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의 허락도 없이 지구 자원(화석연료)을 앞당겨 사용하고, 여기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오래도록 살아갈 수 없도록 지구 기후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책임을 묻는 일부터 했다. (p. 54)
그레타 툰베리 너무 멋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지만, 자신의 일상까지 바꿔가면서 옮기는 건 더더욱 어려운데 그걸 해냈다. 용기를 정말 본받고 싶고 그가 쓴 책이 궁금해서 꼭 읽어봐야겠다.
나는 그저 다른 생명체를 취해야만 존속이 가능한 생명의 생래적 속성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고기든 풀이든, 그것을 취할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일 뿐이다. (p. 95~96)
육식도 혼란스럽고 채식마저도 혼란스럽지만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순 없어서 그냥 있는 대로 먹고살자고 포기했는데, 이렇게 생각해야겠다. 스스로 영양분을 못 만드는 종이기에 다른 생명체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건 필연적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출 수 있도록 해야겠다. 유기농 채소, 동물 복지 계란을 사는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야겠다.
사람들은 개구리가 사라지고 박쥐가 사라지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학자들도 달려들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간에게 꿀을 제공하거나 작물의 가루받이를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p. 124)
벌이 사라진다는 다큐멘터리는 본 적이 있는데 개구리, 박쥐가 사라진다는 건 이 책에서 처음 봤다. 인간은 이토록 이기적인 존재구나.
만약 문학이라는 세계를 몰랐더라면 내가 느끼고, 알고 있다고 믿는 세계가 얼마나 빈약하고 우스꽝스럽고 한심스러웠을까? (p. 155)
문학을 통해 사고가 확장된다는 말 공감한다.
그는 온갖 편법으로 예산을 증액함으로써 그 돈의 용처가 화급한 부문들은 깡그리 외면했으며, 애당초 제대로 준비되지 않는 서류조차 끝없이 조작했고, 공사와 설계가 같이 진행되는 기상천외의 어불성설을 감행하고 있으며, 자연을 대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양식이 담긴 모든 법률들을 헌 신발짝처럼 깡그리 묵살하고 위반했다. (p. 189)
막장인 줄 알고는 있었는데 이 정도로 자기 멋대로인지는 몰랐다. 왜 그렇게 강을 꼭 개판 내야 했을까. 이 정도면 그 광기의 원인이 궁금해질 지경이다.
독일인들은 아마존의 인디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밑에서 발전된 무기로 무장한 그들이 선사시대의 동기에 자극받은 것처럼 동유럽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욕망과 파국 226, 니얼 퍼거슨 <증오의 세기> 840쪽 인용)
미친 거 아닌가?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아마존 원주민들이 나치 군부가 행한 패륜적 비교 대상에 왜 올라야 하는가? 니얼 퍼거슨(인용한 책의 작가)의 백인 우월주의가 역겹다.
이 책은 우르카리아 출신 기자 알렉시예비치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발생 이후 자그마치 10년에 걸쳐 1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생생한 증언집이다. (p. 229)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다. 10년의 시간, 그 시계가 이미 우리나라에도 작동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반이라 별 탈 없지만, 곧 저 책에 쓰인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일어난 것처럼. 재난은 국경을 피해가지 않는다.
이제는 '과학 만능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는 인간종의 맹렬한 노력들이 인간 스스로에게나 이 행성의 다른 생명공동체들에 얼마나 심대한 해악을 끼쳤는가. (p. 256)
문제 해결할 때,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에 익숙한 나는 한 번도 내가 과학만능주의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중세시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사상이 지금은 낯선 것처럼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과학만능주의도 어느 세대에서는 낯설게 느껴질까?
감상
-1부: 기후 행동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기후 변화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비교적 천천히 진행되는 편이다. 지구 온도가 올라가 빙하가 녹는 모습,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을 주변에서 볼 일이 거의 없고 늘어난 자연재해는 기후 변화가 원인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몇십 년 전부터 계속 얘기되어오던 것들이라 심각한 건지 잘 와닿지도 않는다. 이게 문제다. 심각한 문제가 안 심각하게 보이는 게 문젠데,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2부: 사라지는 것들의 끝없는 목록
수많은 것들이 사라지는데, 대부분에는 관심이 없고 인간의 이익과 직결되는 벌에만 관심 있다는 부분이 제일 충격이었다. 인간이 동물을 막 대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정리된 글로 읽으니 더 불편했다. 나는 이 책을 덮고 며칠 뒤 또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먹겠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3부: 조종은 언제 울려야 하는가
결국 피해는 인간이 입는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시간의 차이 날 확률은 있겠지만 누구나 다칠 수 있고 언제나 다칠 수 있다. 이런 경각심 없는 상태가 지속한다면 머지않아 인류는 조종을 울릴 것이다.
-5부: 꿈꾸는 것 자체가 여전히 희망이다
그 어느 장보다 가혹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무래도 인간들의 이야기라 더 와닿고 공감됐다. 이 장의 소제목이 왜 '꿈꾸는 것 자체가 여전히 희망이다'일까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는데, 작가는 '이게 현실이야. 그래도 꿈꿀래? 근데 꿈꾸면 뭔가 조금은 달라질걸'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고기 먹는 횟수 줄이기다. 환경 관련 책을 읽으며 소고기는 되도록 먹지 않고 고기 먹는 횟수도 예전보다 줄었지만, 이제 일주일에 한 번만 고기를 먹도록 해야겠다.
환경문제가 피부로 와닿게 직관적으로 보이면 참 좋겠는데 그렇지않아서 슬프다. 녹는 빙하는 눈에 안 보이고 늘어나는 자연재해는 다른 원인을 핑계로 환경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일 건데 더 많은 사람이 현실을 알고 조금씩 바뀌면 파국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읽고 싶은 책이 참 많아졌다.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