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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 애매하게 가난한 밀레니얼 세대의 '돈'립생활 이야기
신민주 지음 / 디귿 / 2021년 4월
평점 :
이 책은 방에 대한 얘기가 아닌 기본소득에 대한 얘기다. 방은 기본소득이 실행될 때, 달라진 사회 모습이 나타날 하나의 공간에 불과하다. 얼마나 많은 게 달라질지 가늠도 안 되는데, '돈을 받는 일만 소중하다'는 인식은 특히 사회에 꼭 자리 잡았으면 한다. 돈을 받지 않거나 돈이 안 되는 일이라고 무시당하는 일이 너무 많은 지금 사회니까.
계기
'보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을 실감한 적이 있다. 고시원에 4개월 정도 살아야 했던 적이 있는데, 방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방이 킹사이즈 침대 정도의 크기였나? 그것보다 더 작았나 그랬던 것 같다. 키가 작은데, 침대에 올라서면 천장에 머리가 거의 닿을 듯했다. 4개월 정도만 살면 되는 거라 이 일이 끝난 이후에 절대로 고시원 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점점 살수록 이 정도면 살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본가에 가서 방에 누웠는데 방 크기며 높이가 고시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고 높았다. 이때, 사람이 보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내 시야가 참 좁아졌구나 싶어 충격받았다. 주거 공간은 최소로 보장 받아야 하는 권리고 '의식주'에 왜 주가 들어가는지 알 수 있었다. 기본소득이 실행되면 국민들이 최소한의 주거 공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그것보다 기본소득은 뭔지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집 살 돈 없는 사람들만 남들보다 친절해야 하고, 복잡한 절차들을 지켜야 하며, 집주인의 비위를 맞춰서 온갖 무리한 일을 참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돈 없는 사람들은 돈이 없기에 더 많이 친절해야 했다. (p. 37)
돈이 없다는 게 막 대해도 된다는 뜻이 아닌데... 돈 앞에서 사람 수가 적어지는 현실이 참 씁쓸하고 싫다.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인권도 포기해야 하는 게 지금 현실 같다.
10년 전쯤부터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계급인 이들을 프레카리아트라 불렀다. 그리고 10년 후인 이제는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지고 너무도 명확해져서 이제는 그 표현을 잘 쓰지 않게 됐다. (p. 64)
불안정한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다는 게 놀랍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은 그런 사람이 빗자루로 쓸어도 넘칠 만큼 차고 넘치니까. 단어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성, 소멸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씁쓸한 적이 없었다.
웃음을 만 원 정도의 돈으로 팔고 있다 보면, 나라는 인간의 가치도 만 원 정도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p. 71)
일자리에서 내가 나답지 못하다는 말이 슬프다. 커피를 만들려고 간 건데 웃음도 같이 판다. 짜증 나도 웃고 화가 나도 얼버무리며 고객을 달래야 한다. 나는 최저시급과 내 자아를 바꾼 걸까.
특히 20대 여성 자살률 증가율이 세대 효과만을 분석했을 때, 전쟁에 징집되거나 학살을 경험한 타국의 젊은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p. 88)
20대 여성 자살률 증가율이 높아진 지 몰랐다. 재난은 모두를 치고 지나간다. 불공평하게.
우리에게 익숙한 "누가 자격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기본소득은 언제나 "모두가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p. 101)
어디까지를 모두로 인정해야 할까. 세금을 내는 사람 기준이라고 하면 무직자나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제외된다. 이 땅에 사는 모두라고 하기에는 이 땅에 산다는 걸 판별할 기준이 없어 터무니없다.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건 괜찮을 것 같은데 이건 안될까?
나라살림연구소에서 발행한 보고서를 보고 서울시의 한 해 예산안에서 쓰지 못하고 남는 돈이 매년 3조 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 우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3조면 모든 서울 시민에게 30만 원씩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p. 156)
애먼 보도블록 좀 그만 부셔라.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졌던 여러 가지 일들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임금노동 외에 돈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생기게 된다면 돈을 받는 일만이 소중하다는 믿음을 그만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p. 163)
돈이 노동의 대가기 때문에, 돈이 안 되는 일은 노동이 아닌 것 즉, 노는 일이 되어버리는구나... 대표 적으로 육아는 정서적, 육체적으로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노동인데, 그 누구도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돈이 안 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지급된 기본소득을 모두 읽어도,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돼도, 모아놓은 돈이 없어도 다음 시기에 다시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삶은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즉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죠. (p. 180)
기본소득은 실패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말이 참 따뜻하다. 실패할 자격조차 없는 지금 너무 숨 막힌다.
감상
기본소득과 거주지를 연관 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주거지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이 상상 이상이었다. 기본소득이 그 답이 될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 자기만의 공간이 필수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아픈 게 죄가 되고 더딘 회복이 민폐가 되는 이 사회. 수많은 탈락자를 만들어낸 이 사회의 탈락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질병은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다. 다만 시기가 조금 다를 뿐. 그러니 부디 아픔이 죄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픔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재난지원금이 왜 모두에게 지급되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인터넷에서 재난지원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하면 사용하는 것 자체가 가난을 증명하는 꼴이라는 글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복지제도를 위해 인증은 불가피하지만, 그 과정이 잔인하다. 이런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있는 건 찬성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앞이 막막하다. 이 막막한 여정의 첫걸음을 시작한 작가가 대단하다.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