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에이드
조 리스터 존스 감독, 애덤 팰리 출연 / 소니픽쳐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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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에이드
신혼의 달콤함을 지나면 곧 사랑의 호르몬도 줄어 들고 권태기가 온다.
싸우고 지쳐갈때즈음 노래로 싸움을 승화? 시킨 부부 벤과 애나가 있다.
동•서양의 구분없이 부부란 관계는 늘 그렇듯 크고 작은 싸움의 연속이고 건강한 싸움이라면 부부관계에 필수요소인지도 모르겠다.
문제해결형 남자의 머리속은 비교적 문제와 감정의 분리가 가능해서 텔레비전이나 게임으로 전환도 쉽게 되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적게 겪는 편이다.
반면 여자의 머리속은 문제와 감정이 분리가 쉽지 않고 감정이 풀리지 않으면 문제는 확대•재생산되는 상황이 되기 쉽다.
다른 행성에서 온 남과 여는 같은 인간의 모습이나 너무 다른 모습으로 약하디 약한 사랑의 고리에 의지해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갈등은 당연한 결과이고 그 갈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배려하고 또는 포기하고 기대하지 않게 되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싸움의 언어를 밴드를 통해 가사로 부르는 내용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서로 다름을 확인하는 시간.
부부로 살지만 이해와 배려보다 한편 포기와 기권이 많지 않은가? 좀 서글프지만.
사랑은 뭘까?하며 엔딩으로 물 떨어지는 천장을 보여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장처럼 늘 어딘가 고장이나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완성된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여자와 남자는 달라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상실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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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수에 민감한?
30이 40이 50이 언제부터 문턱이었을까?
10살은 20살은 좋아하지 않았나?
나이듦은 어느새 부끄러움이 되었나?
분을 다투며 살아온 커리어 우먼 임약군과 아르바이트를 10년 하며 소소하게 살아 온 자유로운 영혼 황천락이 비켜가며 변하는 이야기이다.
29+1이 좀 영화에 적합한 제목인것 같다.
나의 서른에게는 밍밍하다.
나에게 청춘이 있었나?
엄마의 병 간호, 대학생활 그리고 학원하며 동생 일에 치여 청춘이 갔다.
그때 서른이 되기 전 나는 이 땅을 벗어나려 했었다.
후회는 없지만 가끔 벗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를 떠올리곤 한다.
정신없이 분 초를 다투며 목표?를 향해 가던 임약군은 일 외에는 사랑도 가족도 친구도 그녀에게 뿌리 내리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우연인지 살 던 집을 급히 비우게 되면서 1달간 파리로 떠난 황천락의 집에 캐리어 하나를 끌고 오게 된다.
동갑인 둘. 다른 삶.
우연히 황천락의 일기를 보며 만나게 되는 두 삶의 궤적.
개인의 삶이 없어진 경험이 있다면 더 공감될 수도.
일은 행복하기 위해 다시 말해 잘 놀고 행복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일이 나를 쥐고 흔드는 경험들을 한다.
정작 중요한 시간들을 온통 일로 채우게 되면 사람은 메마르기 마련이다.
서른의 이야기이지만 나이에 국한되지 않는 이야기다.
꿈은 청춘만 꾸는게 아니다.
꿈은 또한 직업도 아니다.
나에게 꿈은 뭘까?
#나의서른에게
#보라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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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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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바깥도 여름이 아니기에 책 속으로 들어가듯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따라가면 어느 추운 곳으로 가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제목과 표지로 유추해본다.
7편의 단편이 꽉 차게 좋았다.
그러면서 들어갔다 나올 때는 눈물로 슬픔을 끌어안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눈동자를 맞추지만 그 이해는 금방 터지기 쉬운 비눗방울의 반짝임과 가벼움일 때가 많다.
‘풍경의 쓸모‘에서 스노볼의 이미지처럼 그 속이 아니라 밖에서 겨울을 바라보는 자. 심지어 내가 있는 곳은 여름이라 그 추위와 그 서늘함은 그저 유리구 속에 내리는 흩날리는 눈의 이미지라는 것이 한편 마음을 아프게 한다.
슬픔과 죽음과 그림자는 삶의 끝에 순서대로 놓이는 것이 아니다. 어쩔 땐 고지라고 생각한 그 꼭대기 목표점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그 순간에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잔인함을 삶은 숨기고 있다.
나와 상관없이 바라본 겨울의 풍경 앞에 서늘하게 차가워지는 슬픔을 목도한다.
‘가리는 손‘에 혐오는 또 다른 작은 틈으로 들어와 한 방울 두 방울. . .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를 만들고 무심한 뒷담화와 웃음으로 직접적이기 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말속에 모습속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바깥은 여름인 게 안도감일까? 서글픔일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은 그것을 정지해 놓을 수도 없고, 되풀이 될 수도 없는 찰나로 우리를 스친다.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을까?
없던 일로 하는 게 용서일까? 잊어 주는게 용서일까? 한 번 봐주는 게 용서일까? ‘노찬성과 에반‘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신께 저를 용서하소서라고 하고 용서의 의미를 묻는 손자 찬성의 말에 기도의 의미를 손자에게 이렇게 푼다.
‘입동‘에서 어린아이를 잃은 부모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한 밤중 도배종이를 들고 있다. 슬픔에 소금을 뿌렸을 세상에 아내는 다른 사람들은 몰라라고 하고 남편도 똑같은 말로 대꾸한다. 아마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 다른 오만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울어라고 꽃매를 때리는 세상이라는 말에 자연스레 세월호가 떠오른다.
그리고 끝 작품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학생을 구하다 저세상으로 간 선생님의 남겨진 아내가 나온다. 누군가의 삶을 구하러 자신의 삶을 버린데 화가 났다가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들었다는 생각에 이르러 보고 싶어 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은 의미 없는 죽음으로 힘들어하다 다시 의미를 찾아내며 얼어버린 시간을 녹이는 시작을 본다.
소설의 이야기가 무겁고 묘사도 무겁다.
하지만 무엇을 잃어버린 그들의 슬픔 앞에 쉽게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음을 작가가 말하고 있다. 제목에서 우리는 여름이라는 곳에서 바라보는 자 일뿐.
언어를 사랑을 아이를 부모를 연인을 영혼을 놓친 그 손을 잡아주고 싶지만 우리의 어설픈 위로는 그들에게 예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깥은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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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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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시장.
단편 8편으로 묶인 책이 쫀쫀하다.
국경시장은 첫 문을 여는 단편 제목이기도 하다.
작가가 그려내는 상상은 디테일하다가도 몽롱하게 안개 가득한 곳에 내리는 달빛 같다.
환상특급을 마주한 듯 이야기에 빨려 든다.
이야기꾼이다.
단편들은 그 하나로 끝나는 세계지만 그 안에 비어 있는 구멍은 독자들이 메꾸게 된다.
‘나무 힘줄 피아노‘와 ‘국경시장‘이 여행 속에서 바뀌어 버린 존재를 본다.
기억을 팔아 다른 추억의 물건을 구매하고 그렇게 달빛 아래 놀다 자신의 욕망에 스스로 사로잡힌 자들의 모습은 섬뜩하면서도 현실 속에서도 보이는 모습이라 두렵기도 했다. 작가는 지금 사는 인생을 깨닫기 위해 더 비틀어진 세계를 보여준다.
여행이 끝나고 거기에 묻혀진 존재가 되지만 그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관념잼‘은 내 존재가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로 보였다. 내가 존재하는 건 육체의 존재인가 영혼의 존재인가 육체도 영혼도 또 다른 기억이라는 시간에서 희미해진다. 이상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사람이 사물 같고 사물이 사람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필멸‘과 ‘쿠문‘은 천재적 재능에 관한 이야기다.내것이 아닌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불멸이라는 곡으로 예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허무하게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보여준다. 쿠문에선 개인의 천재성이 전염 가능한 불치병이라면 사회에 어떤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죽음과 파멸 속에 오버랩 되는 절정의 한 장면이 남는다.
자전적 소설 ‘한 방울의 죄‘는 기억의 재현과 죄의 구원은 글로써 나타낸다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을 본다. 한편 기억은 늘 나를 중심으로 윤색되기 마련이고 우리는 각자의 안경을 쓰고 바라본 우주에 있을 뿐이다.
‘에바와 아그네스‘는 거꾸로 흐르는 시간으로 영화의 필름이 거꾸로 돌아 근원에 이르는 모습을 글로 표현한다. 그런데 그림처럼 그려지는 둘의 궤적은 늘 거리를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우정이 너무 약해서 서로가 없으면 위험한 한 쌍. 그러나 거울이 마주 보며 서로를 비추는듯하지만 실제로 비추는 건 나일뿐.
‘동족‘은 인간의 언어를 알게 된 여왕 코브라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텅 빈 내가 텅 빈 곳으로 가는 은유가 묘하다.


*당신을 천재로 만들어 줄 ‘불치병, 쿠문‘을
만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쿠문에 걸려 ‘세기의 명작‘을 남기고 요절한 천재가 될 것인가, 지금과 같은 평범하고 안일한 일상을 지킬 것인가.

리얼은 무엇인가? 뚜렷하고 낱낱이 드러난 손에 잡히는 분명한 그것이 리얼이라면 우리의 한계가 아닐까?
텅 빈 사막 누런 모래와 푸른 하늘 그리고 뜨거운 태양 3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리얼 사막 속에는 한 줌의 모래에도 오색 찬란한 또 다른 형태와 색을 숨기고 있다.
리얼을 바탕으로 상상과 환상을 넘나드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놓친 그 시각을 본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그 속을 허우적대다 빠져나온 나를 본다.

환상과 현실 사이 욕망과 꿈이 나를 몽롱하게 유혹하다 사라진다.
김성종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싸워야 할 적이 거대해지면 싸워야 할 인간도 거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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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빈센트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삶.
한편 오래도록 행복한 삶.
빈센트는 그의 그림으로 사후에 사람들을 위로했다.
껍질만 그린게 아니라 영혼을 보고 그리고자한 화가였다.
보이지 않는 영혼을 그렸다고 했지만 누구나 그의 그림이 이해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실적이나 비사실적인 그의 작품.
하나의 영혼에 두 존재였던 테오와 빈센트의 우애가 그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빈센트의 고독과 외로움 두려움은 그의 열망과 꿈과 사랑만큼 그를 힘들게 했다.
한쪽은 뜨거움에 다른 쪽엔 차가움에 하나씩 발을 담그고 영혼을 불태웠던 그.
조금은 수줍고 때로는 폭발적이었던 모든 감정을 섬세하게 다 느꼈던 빈센트. . .
영화는 빈센트가 그대로 살아난 듯 하다.
독특하게 수 많은 원화작업으로 만났다.
이야기는 빈센트의 죽음을 쫓아 탐정처럼 떠난
아르망 룰랭으로 그의 미스테리를 파헤친다.
남아있는 그림으로 스토리를 짰는데 제약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결과물은 좋았다.
뜨거웠던 삶을 대하면 뜨거움에 숨이 막히지만 그러한 진한 삶을 느끼기 위한 고통의 깊이가 보여 나는 그의 삶이 멋지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나란히 누운 두 형제 저너머에서 평화롭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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