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순수한 언어를 지향하고 그것을 그 미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말도 우리는 같은 방향에서 이해한다. 역시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말은 사물을 이미 알려진 속성으로 한계 짓는다. 게으른 정신의 안이한 경험은 그것이 아무리 두텁게 쌓인다 하더라도 말과의 관계에서 사물의 한계를 넓히기보다는 그한계에 더께를 입힐 뿐이다. 출구 없는 시간처럼 요지부동한 것이 되고, 마침내 제도가 되기에 이르는 이 더께는 당연히 주체의 말과 타자의 말을 가른다. 인정된, 따라서 더이상의 반성이필요 없는 주체의 말로 제도가 현실을 은폐하고 가둘 때, 사물의 현실이 지닌 다른 가능성의 조각난 얼굴이자 알레고리인 타자의 말이 억압될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시가 지향하는 바의 순수언어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억압된 말이 아니라, 현실속에서 또하나의 현실에 닿기 위해 어떤 길도 가로막지 않은 언어이다. 사실, 말이 사물을 유연하면서도 명확하고 깨끗하게 지시하는 일에서 실패한다는 것을 전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