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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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니고 있다.

 

욕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는 순간 채워질 때까지 멈추지 못하고, 놓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경험하고,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지고, 


그런 다음에는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진다는 저자의 문장이 말이 되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저는 왜 이 책을 대충 읽고 책리뷰를 남기지 못하고


2주를 꼬박 들고 다니면서 이제서야 지각 리뷰를 남기는 것일까요.....^^;


(오늘까지도 스타벅스에 들고 와서 드디어 완독했다는.....)


그럴 수 없음에도 사람마다 완벽하게, 내 맘에 들게 마무리하고 싶은 욕망은 기저에 깔려 있고


저는 캐럴라인 냅 생애 마지막 에세이 <욕구들> 을 읽고 난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이 책을 붙잡고 쉽게 놓지 못하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인상깊게 읽은 몇 군데 문장을 인용해서 나의 경험과 생각을 보태어


풀어내다 보면 왠만한 분량이 나오기는 할테죠.


나름 오랜 시간 북리뷰를 쓰면서 터득하게 된 기술이라면 기술이 될 수 있으니!


하지만 저의 지혜의 샘을 넓혀준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은 저만의 욕심.


 변변치 않은 책리뷰이지만 제 글에 공감해주는 이웃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있기도 하고


정성들여 쓴 글로 인한 주체자로서의 자유와 만족감을 향한 욕구는 아니었을까.





현대 문명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의 내면, 그들의 말과 행위에 대해서


연구하고 고찰해가는 작가들의 강력 추천을 받았다는 띠지의 홍보 문구가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킨 


캐럴라인 냅의 생애 마지막 에세이 <욕구들> 입니다.


Appetites : Why Women Want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려온 저자는 


<욕구들> 안에 거식증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절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원고를 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폐암 진단을 받게 되고 2002년 42세의 나이에 일찍 삶을 마감하게 되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식욕, 성욕, 인정욕, 만족감에 대한 캐럴라인 냅의 섬세하고 예리한 성찰이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쌓여온 경험들과 가족과의 관계, 주변의 일상들과 잘 버무려진 글이었어요.


전체적으로 단순명료한 글이 아니어서 눈으로만 읽어가다가는 다시 뒤로 돌아가는 일도 몇 차례 있었지만


담담하면서도 차분하게 들려주는 듯한 문체 덕분인지 긴 문장도 몰입하면서 읽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삶에서 '충족하는 일'이란 참으로 까다로운 것이 된 이유를 캐럴라인 냅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시각 중심적이고 상업적으로 탐욕적이며 재빠른 해결책과 즉각적 만족을 지향하는 우리 문화가 

 

거의 모든 길목, 거의 모든 전선에서 충족에 대한 바람을 부채질하는 동시에

 

정의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정해둔 기준이나 타자의 총합이 갈망하는 것이 마치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모두 한 곳을 향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라 믿고 내달리지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한 번만 귀 기울여 보았으면 해요.


이 사회가 나를 향해 부추기는 것이 무엇인지, 내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피곤하다 할지라도


깨어 있음으로 인해 나의 중심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캐럴라인 냅이 고통스러워 했던 것처럼 아마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허함과 불안감, 외로움, 고립감, 자기혐오, 슬픔 속에 허우적댈지도 모를 일입니다.






쇼핑, 다이어트, 성적인 문제 등 여성이 씨름하고 있는 욕구 문제들은 


지금도 어디에서나 도처에 깔려 있지만 개개인의 말과 행위에서 드러나는 그 민감한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입 받아온 이 사회의 관념상 여성의 욕구는 처음부터 제한되었고 축소되어 있고


여성의 갈망은 억제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어 왔으니까요.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만, 범위까지만 허락해야 한다는 관념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생기게 되는 것.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서 사회가 만든 틀 속에 갇혀서 검열 당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더불어 타자를 불편해 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이기도 하구요.


저자는 이 책 안에 자신이 현재 고통스러워하는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자신의 인생 여정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참으로 용기가 필요한 지점인 거 같아요.






저자가 거식증을 겪게 된 그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들과의 관계, 특히 엄마와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자에게는 가족에게서 조건없는 사랑을 받아온 풍요로움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외로움이 더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듯 해요.


갓난 아기 시절에 쌍둥이 언니와 달리 건강하지 못할 거라는 유모의 어이없는 판단으로 


언니보다 묽은 분유를 먹어야 했던 경험을 털어놓을 때


어쩌면 자신의 허함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포만이라는 개념을 박탈당한 생애 초기 저자의 경험이 슬픈 경험은 아니었을지 마음도 쓰이구요.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하는 시기이지만 그 때의 감정이 성인이 된 냅에게 남아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에 가족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이 세상 전부일텐데


캐럴라인 냅에게도 역시 인정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욕구의 핵심 대상이었을 거예요.


생애 초기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현재의 나를 형성했는지 들여다보는 계기를 심어주었습니다.


누구나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갈망하고 허기를 느꼈던 지점을 발견하게 될테니까요.


가장 공감이 되었고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이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당연스레 사랑이 충만할 거라고 신화처럼 굳게 믿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개개인에게 사랑보다는 상처와 아픔, 슬픔을 제공하는 근원지가 된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자처럼 상처가 남은 내밀한 속을 다 드러내어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마치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어서 두려울 수도 있는데


캐럴라인 냅의 용기 덕분에 저도 그동안 깊숙히 담아두기만 했었던 


가족에게서 받은 모든 사랑과 더불어 상처가 되는 부분까지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읽은 <욕구들> 에는 한 사람이 정말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개인에게 진정으로 충족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내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들여다 보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저자가 경험했던 가족과의 관계맺기와 허함과 갈망에 대한 감각들, 


자신이 허약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굶기를 통해 오히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고


거식증이라는 불안감을 오히려 긍정할 수 있게 해주었던 굶기 강박이 주는 혜택이라는 지점은


캐럴라인 냅만의 삶에 대한 통찰이 더해져서 평범하지 않게, 새롭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가장 주체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음식 거부라고 믿었던


저자의 처절한 고민들을 들은 독자라면 누구나 다독여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요.


일상적으로 음식이란 것이 여자들을 초조하게 만든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저자는 자신에게 가혹한 음식 거부를 통해 일종의 소리 없는 항거를 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에서 자유를 느꼈음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먹는 것에 대해서 자기혐오가 내면화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에게도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발견하게 해줄 만한 책이 될 것입니다.





"자기 몸과 싸우는 대신 자기 몸을 존재의 집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다 보면


자기 존재에 관한 개념을 포용하기 시작할 거예요."






캐럴라인 냅이 들려주는 말들 중에서 하나 고르자면 이 정도입니다.


이런 말들이 수두룩하게 들어 있는 에세이라는 것.^^


무언가 끝도 없이 갈망하는 삶이 이어지겠지만


그렇게 해서 소멸한다 해도, 영원히 채울 수 없다 해도 놓을 수 없는 것은 


저자도 그랬던 것처럼 희망이겠죠.


그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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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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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과 좋아하는 소설가들의 작품에만 관심을 뒀을 뿐,

 

북하우스에서 나온 소설은 처음일 듯 싶습니다.

 

게다가 생소한 이름, 메가 마줌다르.

 

인도 서벵골주 콜카타에서 태어난 인도계 미국인으로 작년에 이 소설이 출간되고

 

흡입력 있는 소설이 나타났다며 문학계에서 주목했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저도 이 소설 처음 펼치고는 100페이지를 훌쩍 읽어낼 정도로

 

흥미진진한 "페이지 터너 소설" 이더라구요.

 

오늘 아침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북하우스TV 채널에 있는 

 

<콜카타의 세 사람> 북트레일러를 봤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기점으로 '콜카타' 지역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세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선택했고 이런 결과로 흘러가게 되었구나 한 눈에 들어왔어요.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건 언제나 조용했던 사람들 아닌가요?"

 

자신이 바라본 세상만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자신의 생각이 100% 사실이고 진실일 거라고 착각하고

 

폭력이 될 수도 있는 말과 자의식 만으로 여론을 조장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자기 식으로 규정하는 한,

 

부조리한 사회는 계속될 것이라는 씁쓸한 생각을 심어주기도 했던 소설이었습니다.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소시민들 조차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를 외면해 버리는 결과를 보면서

 

한편 절망적이었고 제게는 디스토피아 소설처럼 읽혀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자녀가 살아갈 세상으로 향할 것이고,

 

어쩌면 자신의 자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거라는 경고로

 

독자들에게 읽혀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모순 덩어리일텐데 하물며 인간이 만든 이 사회 공동체는 또 얼마나 비합리적일까요.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권력자들이 조종하는 대로 휩쓸려가는 어리석은 대중들과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집단과 애국심만 강조할 뿐, 

 

개인의 존엄성은 없는 인도 사회와 문화의 현실을 더 밀접하게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원제는 A Burning.

 

콜카타 빈민가 바로 옆에 있는 콜라바간 기차역에서 112명이 사망한 기차 테러 사건을 중심으로

 

20대 초반의 가난하고 젊은 여성 지반, 지반의 학창시절 체육 선생, 지반이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줬던 트랜스 여성 러블리,

 

세 사람의 인생이 교차하며 언젠가부터 제어 불가능한 운명 속에 놓이게 됩니다.

 

영어권 지역에서 출간할 당시 기차 방화 사건을 제목으로 달은 듯 싶은데,

 

북하우스에서 번역한 <콜카타의 세 사람> 이라는 제목이 더 상징적으로 다가오고 적절하게 잘 지은 것 같아요.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거의 처음 아니면 몇 년 만인 듯 싶고,

 

인도의 사회 현실과 국민성이 소설 곳곳에 디테일하게 반영되어 있어서 

 

낯선 것에서 오는 흥미와 호기심만으로도 읽어나가기에 지루하지 않을 소설이었어요.

 


우리 조국에 대해 아무 존중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 소에 대해서도 아무 존경심 없이 고기와 가죽을,

 

온갖 종류의 역겨운 것들을 얻으려 공격한다.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결코 없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건 자기 자신, 우리, 이 사회, 나아가 개개인의 행복한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대중을 하나로 묶을 애국심 뿐이었습니다.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국민 정서가 애국심이 부족함을 한탄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이 나라는 부정 부패한 정부와 경찰들에게 저항을 할 때 

 

오히려 테러리스트 라는 낙인을 찍으며 권력자들의 선동에 의해 우매한 대중들은 움직일 뿐입니다. 

 

물론 책임은 권력자들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대중들에게도 지어져야 할 일.

 

주인공 지반이 결국은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작은

 

어쩌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이 문장 하나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국가에 대한 충성심 부재' 라는 프레임에 끼워 넣고 보자면 인도에서는 이것이 큰 죄가 되는 것.

 

"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죽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본다면,

 

정부 역시 테러리스트 라는 뜻 아닌가요?"

 

여기에 지반의 수많은 페이스북 친구들중 한 명과 기차테러사건에 대해 짧은 대화를 주고 받은 것을 가지고

 

테러사건과 관련있는 자라고 규정하고 테러리스트라고 낙인 찍으며

 

법원과 검찰, 경찰, 대중들 모두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정황적인 증거만으로 희생양을 삼습니다. 

 

사건을 조작, 설계해 나갔던 실체는 새롭게 정권을 잡게 된 국민복지당이지만

 

결국은 지반의 체육 선생도, 지반이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줬던 히즈라 여성 러블리까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두 지반에게 등을 돌리며 부조리한 사회의 흐름에 

 

어떠한 비판의식도, 저항도 없이 동조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정당의 일원이 되어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 진실과 다르게 지반에 대해 증언하는 체육 선생도,

 

지반의 변호를 맡았던 국선 변호인도, 진실을 알리겠다고 인터뷰했던 기자도,

 

심지어 지반의 진심을 알고 고마움을 느꼈던 러블리도 

 

나중에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이기적으로 돌아서는 걸 보면서

 

 정의도 없고, 인간성도 없는 이 사회에 과연 희망은 있을까 싶었습니다.

 

인도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사는 세상의 현실인 듯 씁쓸하게 다가온 소설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깨어있는 시민으로서의 소명의식을 더 견지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트랜스 여성인 히즈라 일가나 인도에서 무슬림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가난뿐만 아니라 사회적 멸시와 차별을 온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소외된 이들의 버거운 현실을 보고

 

최소한 인도의 독자들은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예요.

 

힘과 돈의 논리가 인간을 조종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한 부조리함을 걷어내기란 역부족인 걸까요.....

 

P. 309

 

체육선생.....

 

그는 무엇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며 진실을 위조해 왔던가?

 

무엇을 위해 자비를 비는 남자, 소고기 먹는 자의 유령을 잠자기 직전 떠안게 되었는가?

 

혼자 있을 때면 머릿속에서 흐느껴 우는 유령,

 

운동장에서 여학생들이 나오길 기다릴 때면 자신에게 애절하는 유령을.

 

 

 

 

 

 

<콜카타의 세 사람> 속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체육선생과 러블리, 국선 변호사, 기자의 선택에 

 

정의롭지 못하고 비도덕적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지만,

 

정작 우리가 저들의 신발을 신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그 순간 나 자신을 위한 선택보다, 대의적이고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결과를 알지도 못한 채, 운명에 휩쓸려 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래서.....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콜카타의 세 사람> 은 이 사회를 그저 보여줄 따름입니다.

 

각성하는 것은 읽어내는 독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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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성공 - 한국은 왜 불평등한 복지국가가 되었을까?
윤홍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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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 사회에 대해서 기득권의 입장을 대변하며


실제와 다르게 불안감을 조장하는 매체가 적지 않지요....;;


팩트 보도를 소명으로 해야 할 사람들에게 균형감을 기대하기가 참 어려워진 세상에서


뉴스의 소비자로서 개개인이 의도적으로 한 가지 화두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자 노력이 더 필요해졌어요.


화두가 되는 사회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판단하는 일이 녹록지 않아서


관심 가는 주제가 생길 경우 이런 사회비평서를 찾아서 보려고 하거든요.


그런 와중에 만나게 된 것이 윤홍식 교수의 <이상한 성공> 입니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지만, 위정자들에 대한 기대감은 내려가고 있다 보니


이 나라의 사회복지가 궁금해 지더라구요.


<이상한 성공> 은 세계적인 사회복지국가, 핀란드의 이야기로부터 서문이 시작됩니다.


독자들 만큼이나 사회복지를 연구하는 저자 역시 그 비결이 궁금했던 것일테죠.


현재의 대한민국이 보기에 핀란드의 사회복지에 대한 현주소가 어쩌면 허상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앞으로 대한민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저자가 제안한 것처럼 움직인다면


변화를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사회복지 국가의 지난 역사와 정책들을 통계와 사실로 확인하면서

  

그 가능성을 믿고 한국에 적용해 보려는 노력은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옮겨지게 되더라구요.


대통령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대한민국의 사회복지는


그 어느 나라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숙제가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조금은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데요.


그래도 시작은 해봐야겠죠.


혁신적인 사회복지 국가를 위해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복지국가를 추구하겠다는 공통의 의지, 하나의 공감대.


이 책을 통해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4개의 신분으로 나누어진 한국의 복지체제" 라는 이 그림을 보면서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얘기하는 사회비평서의 경우


공감이 안 되다 보니 내용이 들어오지도 않고 접하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피하는 독자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집단과 달리 차별이나 불평등한 구조에 내몰리는 개인은 너무나 나약하기 때문에


나의 가족과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알고 비판할 수 있도록 <이상한 성공> 과 같은 이런 사회비평서는 많이 읽혀지면 좋겠어요.


팩트에 근거해서 현재를 정확히 분석하고 미래에 대해 냉철하게 예측하며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믿고 볼 만한 책인지는 물론 따져봐야 할 문제겠지요.


"명견만리" 강연자로도 이미 공적인 증명을 받으신 윤홍식 교수님의 책이기도 하고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3부작 출간을 통해 


한국 사회를 경제-정치-복지 라는 큰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혜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니


사회복지에 대한 저자의 연구 실적들을 볼 때 믿고 볼만한 책일 것입니다.^^


소득불평등, 온실가스 배출량, 사회지출에 관한 통계 자료들을 더 유심히 보게 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해 심각함을 인식하고 있고 


신자유주의 시장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여 심각한 소득불평등의 나라가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무엇보다도 사회복지에 대한 지출에 대해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보니


변화를 추구하기가 참 어려운 실정입니다.


물론 사회지출이 높다고 해서 사회복지 국가가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점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이런 아쉬운 사실을 접했을 때 더 좋은 사회가 되도록 움직여야 하는데


정작 그런 권한을 갖고 있는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원하다 보니 개혁적인 흐름으로 나아가기가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현실 인식부터 시작해서 집단지성의 힘으로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의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복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벌, 지역, 빈부에 따라 대변하는 정당을 구별할 것이 아니라


각 계층과 집단을 다양하게 대표하는 정치제도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35년 간의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었지만


그 이후로도 미군정의 지배 하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자주적인 결정을 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짚어주면서


사회복지와의 연관성을 구석구석 짚어주고 날카롭게 분석해주고 있어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고 신뢰하면서 읽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수십 년의 권위주의 정권을 겪은 한국인들은


국가를 신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회복지에 대해서 공감대를 갖고


공동체를 위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기가 참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당시 위정자나 기득권의 이익만을 위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사실은 은폐, 호도해온 역사들이


지금까지도 드러나고 있고 진실을 마주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코로나 시국을 겪으면서 국민재난지원금 하나 가지고도 갑론을박이 상당했을 정도로


사회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상이한 인식을 접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국가의 곳간이 비워지는 것만 걱정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정작 그 곳간은 누구를 위해서 평소에 채워 뒀던 건지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유래없는 시국을 겪는 지금이 어쩌면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적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곳간을 더 채워서 평범한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가 발달한 나라로 갈 수 있도록 "증세" 라는 화두도 논의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대선 후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 시기에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후보들이 건강하게 이런 화두에 대해서 토론하면 좋겠는데


정작 선전, 선동만 일삼고 있으니 중요한 시간만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에 참 안타깝기도 합니다.


한국인들이 국가의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보다 민간보험에 돈을 더 많이 쓰고 있다는 통계로


상식적이지 않은 결정을 하고 있는 현실을 짚어주는 부분도 공감이 많이 되더라구요.


통계상 돈을 내고도 더 많이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국가보험이지만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다 보니


나와 내 가족만 책임지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마음으로


돈을 내는 만큼 보장 받겠다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거든요.

1948년 한반도 남단에 단독정부가 수립된 후부터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정치, 경제, 복지의 관점에서 짚어주는 시대의 흐름이 개인적으로


현대사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에 관한 책인줄로만 알았는데


 당시 정치와 경제도 접할 수 있는 지적 확장성도 갖고 있는 사회비평서였어요.


40여년에 가까운 권위주의체제에서 산업화와 개발을 위해 노동자들의 양보와 희생까지 더해졌지만


정작 그 사이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다른 복지국가에 비해 


노동자의 힘은 한없이 약해졌고 기득권들의 부와 권력만 살찌우는 현실이 참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현재 10위를 달리는 경제대국이 되었다지만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위해 희생했던 이들의 노고는 


온데간데 없고 여전히 그들은 국가를 향해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구요.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사회가 되었다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불평등과 격차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대한민국의 현실.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단기간의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성공이 지금은 덫이 되어서


한국사회를 옭아매고 있는 듯 합니다.


<공정하다는 착각> 에서도 심도있게 짚고 있는 성공주의에 대한 덫이


 이 책에서도 겹쳐서 읽히기도 했습니다.


올바르게 분배하자는 논리를 반공주의로 덮어 씌워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던 과거의 오류들,


실패하면 끝나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자신의 적성과 재능은 안중에도 없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한 줄로만 서는 청년들의 비애,


소비와 투기만 부추기는 국가, 


민주화는 과연 누구를 위해 성취하려 했는지에 대한 물음들도 의미있게 다가왔던 내용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성장보다는 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을 논의해야 할 때.


부와 지위가 세습되는 불평등한 사회라는 것부터 냉철하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의 변화를 바란다면 먼저 정치에 관심을 갖고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다 하고 있지만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를 받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면,


약한 개개인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각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들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지금의 정치제도를 잘 알고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주도하는 더 좋은 사회로 설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꿔 봅니다.



이 책 속에서 가장 울림이 있던 구절을 공유하면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단순히 사회적 위험에 보편적으로 대응하는 국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재벌 대기업 중심의 성장 체제에 의존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 하는 경제에 기초한 복지국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최첨단 자동화 설비에 의존해 생산성을 높이는 성장체제에 의존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숙련이 자동화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복지국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수출에만 성장을 의존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수출과 내수가 균형 잡힌 경제에 기초하는 복지국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탄소를 배출하면서 지구 생태를 위협하는 경제에 의존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지키는 경제에 기초한 복지국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차별에 눈감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인종, 종교, 성적 지향, 학벌, 국적 등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존엄한 개인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복지국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끊임없이 더 좋은 사회를 위해 변화하는 복지국가입니다.




당장 이룰 수는 없겠지만 멈출 수도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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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플랜 - 위기의 한반도 외교, 바이든의 해법은 무엇인가?
이승원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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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안이나 현상에 대하여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휩쓸리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사는 방법 중 한가지는 분명 되더라구요.


근거없는 비난이 아닌 논리적 비판도 똑바로 할 수 있도록 

 

정치적인 이슈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놓지 않으려구요.

 

앞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키가 되는 것이 바로


새롭게 출범할 바이든 정부의 외교적 전략과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하는 새로운 미국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한반도 외교 전반에 걸쳐 새로운 환경이 형성되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내놓은 <바이든 플랜> 을 만났습니다.


정치외교 분야에서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승원 저자는


이라크 전쟁, 북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사드배치문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국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교 안보와 국제 외교 안보 이슈를 다뤄왔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TV채널을 통해 외교 시사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예리하고 명료한 분석을 내놓기도 하죠.


<바이든 플랜> 안에는 정치외교 영역에서 현장감각을 키우며 쌓아온 기자적 전문성과


시사 평론가로서 내놓은 바이든, 한반도, 동북아 정세에 대한 예측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부 회의, 더 라이브  프로그램을 너튜브로 꼬박꼬박 챙겨보곤 했었는데

앞으로 트럼프 정부가 잃어버렸던 미국의 가치를 조 바이든은 어떤 방식으로 회복할 것인지

바이든 정부의 향방에 주목하게 됩니다.

 

트럼프 정부가 모든 협상의 목적을 미국의 이익에 두고 '정치적 쇼'를 보여줬다면,

바이든 정부는 세계 속에서 미국의 역할과 동맹의 가치를 내세울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동맹국들을 철저히 압박할 것이고

한국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거예요.

현대 정치 역사에 있어서 급변하는 정세의 시작이었던 2001년 9.11 테러 이후

2002년 악의 축과 북핵 위기, 2003년 부시정부의 이라크 공습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현재까지 순차적으로 짚어옵니다.

미국정부, 파트너로서의 한국정부, 미국과 중국의 관계 분석, 그리고 북한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미래 국제 외교의 정세를 예측, 전망해가는 흐름을 취하고 있어요.

 미국 정부의 움직임과 한국 정부의 외교적 역량에 따라 시시때때로

 한반도의 정세는 온탕과 냉탕을 오고 갔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플랜> 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한반도와 관련하여 오바마 정부 8년의 역사였어요.

이는 현재 미국의 대통령인 조 바이든이 부통령으로서 한반도 외교에 관여한 시간들이 있었고

지난 시간 그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바이든 정부가 취하게 될

 한반도 전략의 방향들을 예측하는데 중요한 자료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략적 인내' 라는 북핵 정책을 취했던 오바마 정부 8년은

결과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닌 북한 핵과 미사일 기술 발전의 시간만 벌어준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어요.

​조지 부시 2기 정부때 아시아 담당 보좌관이었던 빅터 차 교수는

"북한이 미국과 공식적 대화를 진행할 때만큼은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결정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기대했던 북한의 체제붕괴 가속화는 커녕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상 오히려 내부 결속을 가져오는 힘으로 작동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오바마 정부만의 결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

 

미국과 한국은 동맹관계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는

한국 정부의 북핵 문제에 대한 기조와 함께 간다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죠.

현재 문재인 정부의 북한 포용 정책이었더라면 오바마 정부와 어떤 기조를 가져갔을까....

이미 지나온 시간이지만 되돌려볼 수 있다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오바마 정부 당시 한국 파트너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북한 포용이 아닌 억압과 제재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동맹의 가치를 중요시했던 오바마 정부로서는 미국 혼자서 북한을 포용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죠.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과 대화하고자 노력하고 미국을 계속 설득해 나갔더라면

북한의 핵무기 기술이 지금처럼 더 발전하는 것은 막았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오바마 정부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이제는 북핵 문제와 북미관계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게 될 테지만

오바마 3기 정부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바이든 정부가 부통령 시절처럼

똑같이 전략적 인내 정책을 취할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일입니다.

요즘 뉴스를 들어 보면 바이든 당선인 인수위원회에서 과거 오바마 정부때

기용했던 인사들을 재기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긴 하더라구요.

하지만 바이든 정부 나름 변화된 기조와 정책을 펼칠 수도 있을거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죠.

한반도 외교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바로 파트너.


과거에는 북한을 억압하고 제재했던 한국 정부였다면

이제는 북한 포용 정책을 취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동맹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니까요.

​외교 문제는 국가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명분과 실리로 다투는 일이다 보니

새롭게 형성되는 동맹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시기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회의적인 태도보다는 냉소적인 자세가 더 협상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


이것이 협상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예요.


최악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협상의 원리들과


더 나쁜 실패보다 덜 나쁜 실패를 도모하다 보면


간혹 기적처럼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었던 지난 역사들도 소개합니다.


과거 클린턴 대통령, 조지 부시, 오바마 정부까지 미국의 선택들을 통해


 바이든 정부의 결정을 예측, 전망해보는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세계 정치 외교의 중요한 순간들을 자세히 짚어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정치 외교 분야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결정적인 순간들에 대한 저자의 기록들을


좀 더 능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과거 오바마 정부가 결정한 일들마다 어떤 속내가 있었는지

 

뉴스만으로는 읽을 수 없었던 내용들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가 일본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일위안부 합의를 종용했다거나 일본의 집단 자위권을 환영하던 태도들을 이제서야 알 수 있었어요. ㅠ


친절하고 신선한 이미지를 벗은 오바마 정도가 바이든이라고 묘사하고 있듯이


오바마가 한국을 신사처럼 대하지만 실상은 미국의 놀이터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바이든도 한국을 상대로 겉으로는 동맹의 가치를 강조하겠지만 그 속내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할거라


선의에 의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 자명해 보입니다.


힘의 논리상 정치적인 결정들이 국민들의 일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걱정도 되구요.


한반도를 중국 견제용으로 활용하고 때로는 압박하는 일도 분명히 일어날테지요.


변화에 잘 적응하고 대처하는 한국의 외교 능력이 또 다시 중요한 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때마다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하고 있어요.


전세계적으로 미중 패권전쟁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은 시종일관 대중 강경책을 취해왔었음을 그의 말과 행동들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시진핑을 비난하며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적인 대중 기조인 것이죠.


 힘의 논리에 의해 작용하는 국제 질서에서 안타깝게도 한반도 외교의 당사자로서 나설 수 없는


대한민국의 어렵고도 씁쓸한 위치를 직시해야만 했습니다.


북한도 한국이 아닌 미국을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고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긴장의 분위기가 여전한 북한과 중국은


'적의 적은 친구' 라는 관계설정으로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관계를 끈끈히 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대표단을 파견하며

 

북한과의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있었고


북미간 전향적인 대화의 과정을 통해 북미 정상간 회담도 가졌지만


'하노이 노딜' 협상이라는 결과로 인해 다시 북미간 관계는 냉랭해진 상태이죠.


미국 내부에서 트럼프의 스캔들, 볼턴이라는 협상의 방해자, 북한의 경직된 태도들이


냉랭한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는데요.


오바마 시대로의 회귀라고 한다면 북미 관계는 단절이라는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 문제에 대해 바이든 정부가 또 새롭게 전략적 인내라는 기조를 유지할지,


틀에서 벗어난 변화를 만들어낼지 저 역시도 참 궁금해서 지켜보려구요.


​ 

2013년 3월 오바마 2기 행정부와 임기를 함께 시작한 시진핑 주석의 등장도


현재 세계적인 패권 경쟁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는듯 합니다.


미국을 초조하고 분노케 하는 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고


2016년 사드사태는 미중, 한중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했으니까요.


미국이 수십년간 구축해온 세계적 질서와 규범을 중국이 전복시키고


나아가 중국 중심의 새로운 길과 질서를 만들려는 야심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패권 경쟁은 더 날카롭게 전개되는 양상입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중국의 지도자들은 역사적으로 서구 국가들에 의해 침략을 당해왔고


지난 굴욕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은 방어력은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죠.


미국이 수호하는 인권, 자유, 행복추구의 가치에 대해 도전하면서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주권과 영토를 보호하며


국가를 통일하겠다는 그 목표만을 향해 패권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우위를 점하는 국가가 있으면 그 뒤를 쫓는 국가간의 갈등은 늘 존재하기 마련임을


지난 역사의 흐름이 보여줘 왔어요.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서겠다는 '중국몽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 을 실현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미국과의 경쟁관계에 결코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어서


앞으로 미중간의 갈등은 더 첨예해질 것입니다.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없도록 대한민국의 외교 능력이 더없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파시즘과 독재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승리는 자유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 조 바이든 -


"중국을 공산당이 이끄는, 부강하고 민주 문명적이며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건설하겠다."


- 시진핑 -



저자가 말하는 ​협상의 기본자세는....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한반도 정세에 관한 지나온 역사를 통해 앞으로 변화된 환경 속에서


한반도 외교의 당사자로서 바이든 정부를 잘 설득해서


북미관계를 조율하고 안보를 지키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민감하고 창의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뉴스도 이렇게 국가마다 갖는 속사정, 국가간의 관계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천지차이더라구요.


<바이든 플랜> 을 통해 국제 정세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시야를 넓힐 수 있어서 유익한 독서였어요.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보는 통찰력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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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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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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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없지만 성경 속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늘 궁금했던 것.


하느님이 자신의 모습으로 아담을 먼저 만들고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존재함이 시작된 이후로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된 존재라는 느낌을

 

 지금도 깨끗하게 지울 수 없는 걸 보면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건강하게 분노하고 차별과 혐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


계속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라영 사회학자의 독서에세이가 문예출판사에서도 나온 것일테죠.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남자들의 짝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서

 

 저평가 받았던 여성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별이나 인종이라는 차별과 배제로 인해 ​주류에서 밀려나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미국의 작가 21명의 작품들과 생애를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에서 만났어요!

 

 

저자의 서문까지 합치면 모두 22개의 글, 21명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독서에세이라는 타이틀로 만났는데

사회학자 이라영의 사회비평까지 더해지다 보니 가볍게 읽고 넘겨지진 않더라구요.

곱씹고 필사하며 오랜 시간 붙잡고 읽었습니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쓴 21명의

 

미국 시인과 소설가들 개개인의 삶의 여정으로 끝나지 않아요.


아니, 이것은 이라영 사회학자가 하고 싶은 말을

 

뒷받침해 주는 좋은 소스로 작용한 것처럼 보이구요.


대한민국 사회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들을 작품과 곁들여 


사회비평을 내놓은 것이 이 책을 쓴 진짜 이유 같았어요.


인문학적, 철학적 질문과 생각들도 곳곳에 드러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만족스러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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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제목처럼 여성 작가들이 주인공이겠다 싶었는데


2명의 남성 작가가 19명의 여성 작가들과 함께 라인업에 들어가 있더라구요.


이 부분은 성별 상관없이 월트 휘트먼비엣 타인 응우옌


저자의 분노와 소통하는 작가와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루었다는 설명이 있어 수긍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모든 책들이 그렇듯이 완벽하게 저자와 독자가 서로 동의하는 책은 사실 좋다고 볼 수도 없겠죠.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잖아요.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를 읽다 보면

시종일관 사회적 현실에 대해서 저자가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사회비평서이다 보니

독자마다 다른 포인트에서 불편한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고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거예요.


여기서 짚어두고 싶은 것은.... 불편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

 

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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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한 지점을 저자가 짚어주면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너무 좋은 거죠.


이런 이유로 저는 책을 읽는 것이기도 하구요.

얼마든지 책을 읽으면서 저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생각이 담긴 구절을 만나게 되면


비판적인 사고를 발휘하면서 수용하거나 숙고할 마음의 자세도 되어 있습니다.^^


그런 부분으로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것이 루이즈 글릭 편.

박원순 사망 후 권력형 애도에 대한 부분은 저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구요.


과로사를 당하는 택배기사분들을 향해 저자는 '작은 개인들' 이라고 칭했고

그들의 목소리가 나올 창구가 특별히 없었던 것과 비교해서

조희연 교육감의 '친구 애도'가 일간지에 실린 것을 짚어주었거든요.

영향력 있는 인물이 사망했지만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인식되는 상황하에서

부고 소식을 일간지에 싣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권력행위라고 보는 시각이라는 것이죠.


적극적으로 그에 대한 상실감을 드러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고 물어보는 거 같았어요.


슬픔을 드러내는 데에도 평등하지 못함에 대한 분노가 읽혀지는 지점은 저역시 다르지 않았구요.


어떤 죽음은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알리고 어떤 죽음은 전혀 알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애도를 방해받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듣게 되면 참 말문이 막히는 일이죠.


 소시민들의 죽음과 비교할 때 죽음이란 것도 이렇게 평등할 수가 없는 것인가 싶어

 특별히 몰입하며 읽은 부분이기는 했습니다.


여기서 나아가 루이즈 글릭의 시 <애도> 를 읽으면서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


그동안 전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


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실내에 모인 가수들이 예행 연습을 하듯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당신은 공정하고 친절했으며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


-​루이즈 글릭, <애도>-



개인적으로 '애도한다는 것' 은 뭘까 이따금씩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롤랑 바르트와 김진영의 애도일기를 기웃거리기도 하구요.


루이즈 글릭의 <애도> 와 함께 풀어가는 저자의 글에서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고 하는 거 같았죠.



"애도는 모든 것을 뒷전으로 한 채 죽음을 숭앙하는 것이 아니다.

맹목적인 애도는 오히려 죽음을 삶과 분리시켜 신비화한다."



"무조건 죽은 자를 칭송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예의인가" 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한가"..... 후자는 분명 아닌거 같구요 아직까지 한국 사회를 보면 ㅠㅠ


저자가 루이즈 글릭의 시 <애도>를 인용하면서


"상실의 정체를 정확히 알려는 태도" 라고 애도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죽음 그 자체를 미화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읽혀지기도 해요.


너무나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래도 저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든,


타의에 의한 죽음이든, 자연사이든 사람의 죽음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애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자를 통해 순환할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서


사회학자의 민감하고도 날카로운 시각이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애도에 대한 정의를 나타내는 구절에도 있듯이 상실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노력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겠죠.

 

 

 

 

 

미국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은 입이 있어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미국 작가들이 활동한 도시가

이렇게 미국 지도로 보여지니까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소설을 너무 좋아해서 소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들> 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미국문학은 미국의 지역색을 나타내는 작가가 두드러진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작가들이 그 지역의 특징과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인종과 성별에 관한 문제의식과 결합해서


작품을 통해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여정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어요.

 

 

 

 

메사추세츠에 에밀리 디킨슨, 실비아 플라스.


에밀리 디킨슨은 영미시 강좌를 들을 때 겉핥기로 접했었고


실비아 플라스는 민음사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를 통해

 

처음 접하고 인상깊게 남아 있었는데


또 다른 시각으로 접할 수 있어 좋았어요.


마음산책에서 나온 <벨 자> 라는 작품 한번 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 제목 적어두었습니다.^^


펜실베니아의 베트남계 미국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이라는 이름도

 

 한 두번쯤 들어봤을 뿐이었는데


토니 모리슨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이고


베트남전쟁에 대해서 미국이나 한국작가의 시각이 아닌,


당사자 베트남의 정서로 소설을 남겼다고 하니 <동조자> 라는 작품도 궁금하더라구요.

 

 

 

 

오하이오의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를 진작부터 읽고 싶어서


문학동네 10주년 특별판으로 사뒀는데 아직입니다....


노예제도가 사라지기 전 19세기, 감옥에 가거나 죽었거나 사라진 남자들이 있는


'여자들의 집' 에서 벌어진 이야기.


읽고 쓰는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흑인 노예들이지만 말하기의 힘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는지


설교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작중인물의 능력을 보면서


억압된 환경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인간의 생존력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블루스, 재즈와 같은 음악들이 흑인의 영혼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아픈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알리고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토니 모리슨은 똑같이 흑인 여성들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소중한 딸들이라는 것을


<빌러비드>라는 문학에 보여주고 있고, 또 애도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는


이라영 저자의 생각에 저도 따를 의향 100% 입니다.


특별히 <빌러비드> 는 내일 밤 10시에 줌온라인으로 블로그 이웃님이 주최하는


혼자독서 모임에 어떤 책으로 참여해볼까 했었는데 이 책으로 결정했어요.^^


한시간반 혼자서 독서하고 30분쯤 책 이야기 나누는 시간에

 

<빌러비드> 로 이번에는 꼭 완독할랍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앨라배마의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루이지애나의 케이트 쇼팽,


플로리다의 조라 닐 허스턴에 관한 글이 재밌었어요.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라는 타이틀로 더 유명한 젤다 세이어 역시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재즈 시대 '노는 여자'라는 이미지,


남편을 고생시킨 여자라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시각으로 인해

 

 삶이 참 힘들었던 신여성이었어요.


젤다 세이어가 돋보이는 지점은 당시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사회의 전통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욕망을 드러내며 인생을 즐기는 신여성 '플래퍼' 였다는 거죠.


당시 플래퍼에 대한 인식이 열려 있지 않다보니 억압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남편인 스콧조차도 젤다가 책을 낼 때 젤다의 소설을 3류라고 했다고도 하네요.


<위대한 개츠비> 제가 좋아하는 3대 소설중 하나이고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응원좀 해주지.....이런 모습은 좀 별루다 .....^^;


역시 다른 입장의 관점도 들어봐야 하나봐요.


당시 사람들은 젤다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가십거리로만 사용했는데


젤다에 대한 평소가 스콧에 가려져서 분명히 왜곡된 경향은 있네요.


각자의 시각에서 보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이니까요.


루이지애나 케이트 쇼팽은 예전에 줌온라인강좌로


<각성> 이라는 작품과 그녀의 생애를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이런 소설을 쓴 작가인데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점점 이렇게 케이트 쇼팽과 각성 이라는 소설을 다루는 책들이 나오고 있네요.


이디스 워튼을 먼저 알고 있었는데 케이트 쇼팽이 언니였네요.^^


<각성> 이라는 소설도 이번에 제대로 완독해보고 싶은 소설이예요.


자아의식이 뚜렷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여성을 구속하는 보수적이고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남자들의 지배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고통이 따르긴 해도


각성이 일어난 여성이 스스로 정한 삶이기에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성> 의 주인공 에드나의 삶의 여정, 하루 빨리 만나보고 싶어지네요.


케이트 쇼팽은 여성의 인권뿐만 아니라 인종문제에도 관심이 있어서


<데지레의 아기> 라는 단편을 소개해줬는데 이 작품도 읽고 싶어져요.^^


케이트 쇼팽의 재발견입니다!


플로리다의 조라 닐 허스턴도 재발견한 작가예요.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의 주인공 재니는 3번의 결혼을 하고 3명의 남편을 통해


자아인식을 하며 성장하는 인물입니다.


소설 속 대사를 보면 왜 책 제목이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인지 알 수 있어요!!!


"여자들과 아이들, 닭과 암소들에게는 대신 생각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해.


그럼, 분명히 그것들은 스스로 생각할 줄을 몰라."



법과 문화적 판결은 죽고 죽인 사람의 성별과 색깔에 따라

 

달라지는 당시 모습을 반영하고 있어요.


차별적 사회구조가 견고했던 시대에 내 운명의 주인으로 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거 같아요.


아무리 자의식이 강한 재니였을지라도 혼자서는 온전히 나로 살아가기 어려웠을텐데


결정적인 순간에 조라 닐 허스턴과 함께 가부장제의 폭력에 맞서서


아름다운 연대를 그려낸다고 하니 더더욱 직접 읽고 싶어집니다.

조라 닐 허스턴 말고도 ​재발견한 작가들이 아직 더 있어요....ㅋㅋ

 

 

 

​와이오밍의 애니 프루는 가장 첫 번째로 소개된 작가였는데요.


서부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의 배경이면서 동시에 멋진 풍경을 보여줬던 영화 중에


<브로크백 마운틴> 의 원작 소설가라는 것도 새롭게 알았어요.


와이오밍이라는 거칠고 남성적인, 문명과는 거리가 먼 이 지역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비주류이며 떠도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당시 암울하고 모순적인 시대를 그려냈던 애니 프루.


문학동네에도 <시핑 뉴스> 가 이미 있었더라구요. ㅋ


나는 몰랐네.....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아의 옥타비아 버틀러.


간간히 추천받았던 작가였지만 저에게 이렇다할 인상을 남기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흥미가 생겼습니다.


SF소설은 사실 큰 관심은 없어서 김초엽 작가의 소설책도 집에 있지만

 

보는둥 마는둥이었거든요...ㅋ


근데 옥타비아 버틀러의 1979년작 <킨> 이라는 소설 소개를 보고 완전 읽고 싶어졌어요!


현대 미국의 흑인 여성이 노예제도가 있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면서 벌어지는 타임슬립을 다룬 소설.


그리고 주로 시간여행자는 남성이었는데 버틀러의 <킨> 에서는 흑인여성의 시각으로


소설을 끌고 간다는 것도 소외된 약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죠.


옥타비아 버틀러의 상상력에 기대를 해봅니다.


소설제목이 왜 <킨> 인가 했더니 Kindred에서 온 친족이라는 의미더라구요.


이거 읽고 나서 좋았으면 김초엽 작가의 소설로 아마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될듯 ㅎㅎㅎ

 

 

 

언급하지 않은 작가들은 너무 생소해서 한번 더 읽어서 더 친숙해져야겠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작가나 작품보다


이라영 사회학자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많이 드러내는 편들도 간간히 있었습니다.


레슬리 마몬 실코라는 작가는 생소했지만


 그 속에 남겨진 저자의 인문학적인 메시지들이 너무 좋아서 필사해둔 문장이 있어요.


P.304​

"인간다움이나 인간적이라는 말의 활용방식에 썩 동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인간은 머리가 좋아 세상을 지배하고 살 뿐,


인간적인 것이 더 올바른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인간이기에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직시하는 게 오히려 낫다.


그래야 인간다움을 넘어 기본적인 생명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만하기보다 무자비한 최상위 포식자로서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대하는지 자각해야 한다."

 

 

 

기회의 땅이라는 수식어와 동시에 차별과 혐오가

 

팽배한 사회라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는 나라, 미국.

너무나 다양한 인종과 종교적 신념이 다른 이들이 섞여 있다 보니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 때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는 건 어찌 보면 또 당연한 일인 것도 같습니다.

나라는 다르지만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이다 보니

권력과 부의 가치만을 추종하거나 전통에 가려져 

 

인권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또 존재하기도 하구요.

작가들마다 뿌리를 둔 그 지역의 사회문제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주제를 짚어주고 있어서 이라영 독서에세이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인간의 한계를 똑바로 인식하고 겸허한 자세로 

생명과 자연을 포용하자는 평소의 모토를 한번 더 새기게 됩니다!!


이라영 작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에피소드들로 시작해서 작가와 작품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서 글의 흐름도 좋게 다가왔어요.


흑인, 여성, 성소수자, 이민자.....


사회의 오랜 전통과 억압으로부터 견디어 내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편성을 띄고 세대에 걸쳐 전해지다 보면 결국은 고전이 되겠죠.


남성 작가들에 가려져서 온전히 읽혀지지 않았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이제는 더 폭넓게 읽혀지면 좋겠습니다, 이라영 저자의 바램처럼^^

차별과 혐오로 동의할 수 없는 이 세계에 ​제대로 분노하기 위한 글쓰기.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차별과 혐오의 시대를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내는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연대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희망을 품자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여 이야기를 전하러 가는 그 '북우먼'들처럼


나도 꾸준히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그렇게 성실하게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 믿는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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