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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평점 :
well-being 은 그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well-dying 은 왜 들리지조차 않을까?
우리 주변에 장애인이 없는 게 아니라
타인의 차별섞인 시선이 두려워 밖으로 나오지 않고 꽁꽁 숨는 것처럼,
좋은 죽음, 잘 된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연장이며,
삶을 잘 완성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궁금해 하며 펼쳐보았습니다.
인간의 죽음을 객관적이고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
시종일관 동의하며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를 펼치고 마침내 완독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앞으로 바로잡아야 할 제도에 대한
저자의 주장과 분석들을 꼼꼼히 필사하면서 읽었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각각 존엄하다고 배웠으면서
실상은 곳곳에 차별이 존재하고 있고
인간이 만든 제도가 과연 인간에게 이롭게 작용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삶은 이렇듯 부조리함 투성이지만,
인간의 탁월함과 고결함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우리는 또한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법과 규범들이 인간의 이익에 부합하고 있는지를 따져보고자
문제의식을 갖고 개선하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돌리기가 참 녹록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내부자의 고발과 좋은 세상을 위한 제언이
끊임없이 나오고 그것을 독자들이 읽어 곳곳에 퍼지게 한다면
또 모르죠..... 희망을 놓고 싶진 않습니다!
"황폐한 죽음의 문화를 고발하면서
삶만큼 죽음도 존중되는 세상을 제안하는 책" 이라고 설명하는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의 저자 박중철은
가정의학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호스피스 의사입니다.
의사생활을 하다가 겪었던 어떤 결정적인 일로 인해
의사라는 직업과 현대 의학기술, 의료계의 모든 민낯들을 다시 보기에 이릅니다.
미덕과 관행을 바탕으로 하는 그 옛날의 마을 공동체가 아니라
이제는 법과 규범이 지배하는 이 개별화된 한국 사회에서
죽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당사자의 의사는 존중받지 못한 채
초라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
이 사회의 불친절한 죽음의 문화를 고발하고 있어요.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던져진 채로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이지만,
모두에게 죽음이 놓여져 있다고 해서
그저 단순한 요식행위로 끝맺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새삼 갖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죽으면 다 끝이지 뭐' 체념하는 일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할 권리' 가 누구에게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인간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진지한 고민도 없었을 뿐더러
인간이 점점 도구로 전락해 가는 사회이다 보니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일이 너무나 당연해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나는 지금 이 둔감함에 얼마나 젖어들어 있는지
경각심을 심어 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물론 경각심을 갖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죠.
좋은 죽음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을 위해서
죽음 교육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와
법 제도의 변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임종실 설치의 필요성, 연명의료의 민낯,
안락사 논쟁의 신호탄이었던 김득구 선수 사건,
병원 임종을 일반화시킨 보라매병원 사건,
인공 영양과 같은 수명 연장의 의미, 마약성 진통제 처방,
현대 의학기술의 집착적 모순,
원칙만 고수하려는 한국 의료계의 도그마와 자기기만,
연명의료결정법, 호스피스 완화의료.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시스템이 인간의 존엄함에 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들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요목조목 접할 수 있었습니다.
놀라웠고, 어이가 없었고, 과연 변할 수 있을까 거대한 관행 앞에 무력감도 생깁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각자의 좋은 죽음을 위해서
모두가 한 마음으로 사회적인 공감대를 갖고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진지한 관심을 갖고 실질적인 대안을 조직화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성공적인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잠시 관성대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을 멈추고
되돌아보는 시간부터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타인과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 시나리오를 좇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죽음의 순간에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나의 죽음의 주인이 될 것인지.
주택임종보다 병원임종의 수치가 높은 것은
이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말해 줍니다.
분명히 대다수의 바램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도시화로 인해 마을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기 어려워지면서
죽음의 순간에 어떠한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사회적 약자들도 너무나 많아지고 있죠.
하지만 이 책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한정되지 않는 게 문제라는 점입니다.
이 사회 전체가 모두의 죽음에 대해서 너무나 불친절하다는 거예요.
개개인의 죽음에 대해서 이 사회가 친절하지 못하다는 것이
저에게는 '비인간적인 태도' 라고 들렸습니다.
저자는 최전선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의사들까지도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필요성을 상당부분 느끼고 있으면서도
한국 의학계의 인식은 환자에게 끝까지 의학 기술을 펼치는 것이
최선이라는 기술주의 도그마에 빠져 있다는 것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 존중이라는 명분에 숨어서 치료를 놓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그것을 마치 의사로서의 실패라고 생각하는
의료진들의 집착과 자기기만, 위선적인 행위들을 꼬집고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 가족들의 인식이 더 뼈아프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연명의료는 당연히 환자를 위한 최선이 되어야 하고
자기결정권에 의해 행해져야 하는 것인데
생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명분, 가족의 사랑이라는 가면에 숨어서
죄책감을 피하려는 자기만족과 자기위로를 위한 변명이라는 것이었어요.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의료진들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비뚤어진 소명의식과 집단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일부 의료진들과 다르게
소신 발언,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의료진들도 분명 있습니다.
가족들이 환자를 향해 애도할 시간조차
넉넉히 주어지지 않는 이 불친절한 죽음의 문화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져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볼 수 있는 임종실의 설치를 아무리 제안해도
돈이 되는 장례식장만 여전히 확충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종실과 장례식장, 과연 무엇이 인간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죽음은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절대주의, 생명지상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물음에 의구심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는 와중에는 그래도 오래 사는 것이 나은 것 아닌가'
'생명을 연장하게 도와주는 일이 이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하지만 당신이 죽음 앞에 놓인 당사자라면..... ?
연명의료의 끝에 그 환자의 몸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좋은 죽음을 원하고
좋은 죽음이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고통 없이죽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의료계에 몸 담고 있는 내부자로서 의료진들의 위험하고도 안일한 인식이 어떠한지,
현대 의학기술이 인간의 이익에 부합하고 있는지,
이 사회는 인간의 죽음을 삶만큼이나 존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폭넓은 저자의 문제의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통계 자료와 앞으로 어떤 개선방안들이 필요한지,
무엇보다도 법과 제도로 단순히 봉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담론으로 만들어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과정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어요.
마주하기 불편하고 씁쓸한 현실 앞에서도
오히려 더더욱 냉철하고 분석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이고 진지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느꼈습니다.
결국 이 사회를 둘러싼 모든 공동체를 구성하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나의 물건을 타인에게 아무 생각없이 맡기는 사람이 있을까요?
왜 자신의 죽음인데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결정에 맡겨 버리나요?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나 자신에게 있음을 모두가 인식한다면
현재 이 사회의 죽음에 대한 문화에 대해 다같이
심도있게 관찰하고 숙고해봐야 합니다.
'소멸하는 주체'는 결국 나 홀로이고 고통 또한 오롯이 나의 몫이니까요.
인간에게 있어서 불안의 근원인 고통스러운 죽음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인간적인 연민을 놓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 현대 의학기술이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간의 존엄함을 짓밟는 것이
또한 기술주의라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존과 실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였습니다.
인간에게 생존은 실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것.
생존이라는 말은 그 뒤에 '본능'이 자주 따라 붙는 것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저절로 일어나는 본성이지만
실존이라는 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맞서야 하고 도전해야 하는 것.
죽음의 공포에 휘둘리지 않고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주체적으로
삶을 완성하고자 마지막 실존에 맞섰던
어느 의사의 이야기를 우리는 <숨결이 바람 될 때> 라는 책에서도 만났었구요.
살아가면서 실존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묻고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서야
비로소 실존을 인지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도전은 그래서 실존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지도.
도전을 멈추지 않으면 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게 되는 것이니까요.
(마음 한 켠이 웅장해 집니다 ㅠㅠ)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은 실존보다 생존에 더 몰입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한국의 보건의료 수준은 높지만
평화로운 임종을 위한 체계는 너무나 미흡한 게 현실입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 수도 생각보다 적더라구요.
2010년 기준이지만 OECD 40개국 중 '죽음의 질 지수' 가 32위,
2015년에는 80개국 중에서 18위에 한국이 자리합니다.
연명의료는 필요하다 vs. 연명의료는 의미없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서시겠어요?
저자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연명치료는 본질적으로 환자를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늦추는 것일 뿐이고
현대 의학기술을 만든 것도 인간,
그것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도 인간이라는 관점.
저자의 시선으로 본 현대 의학기술에는 인간성과 연민은 없다고 말합니다.
병원 임종의 가장 큰 문제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 역시
죽음이 인간적인 마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의학적 사건으로 처리된다는 것이니까요.
죽음의 반대 방향으로 환자를 잡아끌고 버티는 연명치료를
지금까지는 당연한 관행으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태클을 걸어야 합니다.
환자는 원치 않는 연명치료에, 가족들은 경제적 부담을 줌으로써
모두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예요.
고통경감에 주력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을
국가 차원에서 늘리는 일이 나와 가족, 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는 인식에 이르게 됩니다.
의학계도 연명의료를 사명으로 여기며 기계적으로 행하는 그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개개인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어느 누구도 박탈할 자격은 없으니까요.
그런 특권이 의사에게는 없습니다 결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윤리적 최선이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왔던 의료진들부터 각성하고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주길.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의료인의 판단보다 우선시되야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니까요.
대한의학회가 연명의료의 무익함을 처음 제기한지 17년 만인 2018년에 드디어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고 하는군요....;;
인간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공감대 형성 노력은 건너뛴 채
바로 입법 작업에 착숙했다는 것을 저자는 많이 아쉬워 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순서가 좀 바뀌긴 했어도 법과 제도부터 바꾸는 일이 의미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차근차근 바로잡는 그 시작이 되길 바래요!
저자가 하이데거라는 실존주의 철학자를 언급한 내용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삶이란 인간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야 하는 고통의 여정이라고 했다지요.
인간에게 늙어감과 죽음은 필연이라고 한다면
무의미하게 연명의료로 목숨을 연장할 것인가,
아니면 운명을 마주할 용기로 삶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실존을 되찾을 것인가.
죽기 전까지 선택의 연속이지만 ..... ^^;;
선택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무엇이 옳고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은 알면서도 행동하기는 참으로 어렵죠.
늘 우리는 살면서 이렇듯 실존의 문제에 부딪히나 봅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현실을 균형있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나아가 미래에 좋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삶에 실존의 문제를 붙잡을 수 있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삶의 목표를 재설정하는 데 있어서 인생 도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