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욕망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니고 있다.

 

욕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는 순간 채워질 때까지 멈추지 못하고, 놓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경험하고,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지고, 


그런 다음에는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진다는 저자의 문장이 말이 되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저는 왜 이 책을 대충 읽고 책리뷰를 남기지 못하고


2주를 꼬박 들고 다니면서 이제서야 지각 리뷰를 남기는 것일까요.....^^;


(오늘까지도 스타벅스에 들고 와서 드디어 완독했다는.....)


그럴 수 없음에도 사람마다 완벽하게, 내 맘에 들게 마무리하고 싶은 욕망은 기저에 깔려 있고


저는 캐럴라인 냅 생애 마지막 에세이 <욕구들> 을 읽고 난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이 책을 붙잡고 쉽게 놓지 못하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인상깊게 읽은 몇 군데 문장을 인용해서 나의 경험과 생각을 보태어


풀어내다 보면 왠만한 분량이 나오기는 할테죠.


나름 오랜 시간 북리뷰를 쓰면서 터득하게 된 기술이라면 기술이 될 수 있으니!


하지만 저의 지혜의 샘을 넓혀준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은 저만의 욕심.


 변변치 않은 책리뷰이지만 제 글에 공감해주는 이웃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있기도 하고


정성들여 쓴 글로 인한 주체자로서의 자유와 만족감을 향한 욕구는 아니었을까.





현대 문명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의 내면, 그들의 말과 행위에 대해서


연구하고 고찰해가는 작가들의 강력 추천을 받았다는 띠지의 홍보 문구가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킨 


캐럴라인 냅의 생애 마지막 에세이 <욕구들> 입니다.


Appetites : Why Women Want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려온 저자는 


<욕구들> 안에 거식증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절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원고를 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폐암 진단을 받게 되고 2002년 42세의 나이에 일찍 삶을 마감하게 되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식욕, 성욕, 인정욕, 만족감에 대한 캐럴라인 냅의 섬세하고 예리한 성찰이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쌓여온 경험들과 가족과의 관계, 주변의 일상들과 잘 버무려진 글이었어요.


전체적으로 단순명료한 글이 아니어서 눈으로만 읽어가다가는 다시 뒤로 돌아가는 일도 몇 차례 있었지만


담담하면서도 차분하게 들려주는 듯한 문체 덕분인지 긴 문장도 몰입하면서 읽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삶에서 '충족하는 일'이란 참으로 까다로운 것이 된 이유를 캐럴라인 냅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시각 중심적이고 상업적으로 탐욕적이며 재빠른 해결책과 즉각적 만족을 지향하는 우리 문화가 

 

거의 모든 길목, 거의 모든 전선에서 충족에 대한 바람을 부채질하는 동시에

 

정의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정해둔 기준이나 타자의 총합이 갈망하는 것이 마치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모두 한 곳을 향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라 믿고 내달리지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한 번만 귀 기울여 보았으면 해요.


이 사회가 나를 향해 부추기는 것이 무엇인지, 내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피곤하다 할지라도


깨어 있음으로 인해 나의 중심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캐럴라인 냅이 고통스러워 했던 것처럼 아마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허함과 불안감, 외로움, 고립감, 자기혐오, 슬픔 속에 허우적댈지도 모를 일입니다.






쇼핑, 다이어트, 성적인 문제 등 여성이 씨름하고 있는 욕구 문제들은 


지금도 어디에서나 도처에 깔려 있지만 개개인의 말과 행위에서 드러나는 그 민감한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입 받아온 이 사회의 관념상 여성의 욕구는 처음부터 제한되었고 축소되어 있고


여성의 갈망은 억제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어 왔으니까요.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만, 범위까지만 허락해야 한다는 관념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생기게 되는 것.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서 사회가 만든 틀 속에 갇혀서 검열 당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더불어 타자를 불편해 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이기도 하구요.


저자는 이 책 안에 자신이 현재 고통스러워하는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자신의 인생 여정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참으로 용기가 필요한 지점인 거 같아요.






저자가 거식증을 겪게 된 그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들과의 관계, 특히 엄마와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자에게는 가족에게서 조건없는 사랑을 받아온 풍요로움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외로움이 더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듯 해요.


갓난 아기 시절에 쌍둥이 언니와 달리 건강하지 못할 거라는 유모의 어이없는 판단으로 


언니보다 묽은 분유를 먹어야 했던 경험을 털어놓을 때


어쩌면 자신의 허함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포만이라는 개념을 박탈당한 생애 초기 저자의 경험이 슬픈 경험은 아니었을지 마음도 쓰이구요.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하는 시기이지만 그 때의 감정이 성인이 된 냅에게 남아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에 가족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이 세상 전부일텐데


캐럴라인 냅에게도 역시 인정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욕구의 핵심 대상이었을 거예요.


생애 초기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현재의 나를 형성했는지 들여다보는 계기를 심어주었습니다.


누구나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갈망하고 허기를 느꼈던 지점을 발견하게 될테니까요.


가장 공감이 되었고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이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당연스레 사랑이 충만할 거라고 신화처럼 굳게 믿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개개인에게 사랑보다는 상처와 아픔, 슬픔을 제공하는 근원지가 된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자처럼 상처가 남은 내밀한 속을 다 드러내어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마치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어서 두려울 수도 있는데


캐럴라인 냅의 용기 덕분에 저도 그동안 깊숙히 담아두기만 했었던 


가족에게서 받은 모든 사랑과 더불어 상처가 되는 부분까지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읽은 <욕구들> 에는 한 사람이 정말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개인에게 진정으로 충족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내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들여다 보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저자가 경험했던 가족과의 관계맺기와 허함과 갈망에 대한 감각들, 


자신이 허약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굶기를 통해 오히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고


거식증이라는 불안감을 오히려 긍정할 수 있게 해주었던 굶기 강박이 주는 혜택이라는 지점은


캐럴라인 냅만의 삶에 대한 통찰이 더해져서 평범하지 않게, 새롭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가장 주체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음식 거부라고 믿었던


저자의 처절한 고민들을 들은 독자라면 누구나 다독여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요.


일상적으로 음식이란 것이 여자들을 초조하게 만든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저자는 자신에게 가혹한 음식 거부를 통해 일종의 소리 없는 항거를 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에서 자유를 느꼈음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먹는 것에 대해서 자기혐오가 내면화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에게도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발견하게 해줄 만한 책이 될 것입니다.





"자기 몸과 싸우는 대신 자기 몸을 존재의 집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다 보면


자기 존재에 관한 개념을 포용하기 시작할 거예요."






캐럴라인 냅이 들려주는 말들 중에서 하나 고르자면 이 정도입니다.


이런 말들이 수두룩하게 들어 있는 에세이라는 것.^^


무언가 끝도 없이 갈망하는 삶이 이어지겠지만


그렇게 해서 소멸한다 해도, 영원히 채울 수 없다 해도 놓을 수 없는 것은 


저자도 그랬던 것처럼 희망이겠죠.


그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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