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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석의 유럽 건축사 수업 - 한 권으로 읽는 유럽 도시의 시공간
양진석 지음 / 와이즈베리 / 2025년 4월
평점 :

건축을 통해 요 근래 미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는데
간만에 느껴보는 기분좋은 촉촉함이었다.
역시 삶은 예술과 함께 해야 충만함을 느끼는 것인가 보다.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린 MBC의 인기 프로그램 <러브 하우스>를 통해
이름을 알렸던 건축가 양진석이
12년 남짓 운영해 온 건축교육 프로그램 포럼 속 내용들을
교양 인문학책 한 권 안에 모두 담아냈다.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아 일본 유학을 했던 시절이 있었고
건축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각계 각층의 오피니언 리더들 앞에서
건축과 사회,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매력적으로 들려주었다.
역사를 흥미롭게 보는 1인으로서
건축과 역사의 관계성 속에 인간의 가치관이 녹아 있음을 보여준 책이었다.

저자는 현대 건축의 뿌리를 유럽 건축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를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로
로마와 비로마를 데려온다.
이 책의 구성은 건축가 저자의 직관적인 해석에 따른 분류이면서 동시에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역사적 흐름을 따라간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리스*로마 건축 / 비잔틴*로마네스크 건축 / 고딕 건축
/ 르네상스 건축 / 바로크*로코코 건축으로 나누고 있고
이후 19세기 전후부터 현대까지의 건축은
신고전주의, 고딕 복고주의, 아르누보(안토니오 가우디)를 거쳐
역사적 전환을 이루는 산업 혁명 시기와 근대 건축으로 넘어간다.
이 중에서 역사에 관심있는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비잔틴 제국의 역사와 그에 따라 영향을 받아 형성된 비잔틴 건축이었다.

현대 건축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던 지점은
저자가 제시하기도 했던 역사적 흐름의 흥미로운 반복이었다.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에 근거한 로마 양식과
로마를 계승하면서도 한편 이를 벗어나고자
새로운 시도를 놓지 않았던 비로마 양식이
끊임없이 서로를 통해 자극과 영감을 받아
마침내 Creative함을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건축의 큰 줄기는 결단코 혼자서 이뤄낸 것은 없었다.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의 줄기가
다음에 올 새로운 사조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데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조화로움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던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숫자를 기반한 조화로움의 철학을 우주적 질서에서 찾았다.
단순히 느낌의 차원을 넘어서서 정확한 '수'에서 출발해
엄격한 원칙을 갖춘 '조화'로 완결되는 것이다.
정복의 역사를 통해 '로마'라는 타이틀이 완성되었고
도로와 수로의 확장으로 곳곳에 '로마적 도시'를 꽃피웠던 로마 제국이
쇠퇴하게 되면서 기존의 로마 양식에서 벗어나
등장한 것이 바로 비잔틴 건축이었다.
지금까지도 서양 문화의 바탕이 되고 있는 그리스*로마 양식은
현대 건축에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하지만
한 때는 이 대단한 로마 양식도 잠재웠던
비로마 양식의 선구자격인 비잔틴 건축이 있었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비잔틴 건축의 역사는
서기 330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Nova Roma"
새로운 로마의 시작인 것이다.
유럽 한복판에서 로마의 수도가 상대적으로 동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한 명의 황제가 넓은 제국을 혼자 다스리기 어렵게 되면서
서기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두 아들에게 나라를 양분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이탈리아 부근인 서로마 제국과(476년 멸망)과
그리스를 포함한 동로마, 터키, 시리아 같은 중동 일부에 위치한
동로마 제국(1453년 멸망)이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분기점이 되기도 하는데
바로 이 때부터 중세 시대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로마 제국과 달리 무려 14세기까지 유지되었던 동로마 제국은
멸망한 후 역사가들에 의해 "비잔틴 제국"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오스만 튀르크의 침입으로 인해 멸망하게 된 비잔틴 제국의 건축은
전반적으로 로마 건축에 바탕을 두면서도
동양적인 건축요소를 혼합한 형식을 취한다.
이는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그리스도교 세계를 향한
이슬람교의 침입을 막아냄으로써 완전히 이슬람의 문화방식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유럽의 고대 문화를 보호해왔기에 가능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변화의 길목마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흐름들이 있었다.
중세 시대의 신 중심적 세계관, 종교를 빙자한 왕권 강화의 목적으로
힘없는 시민들의 희생을 불러왔던 십자군 원정,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예부흥,
도시 국가의 발달,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주의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던 매너리즘의 등장,
종교개혁으로 인한 그리스도교의 분열,
타락한 교황청의 비인간적인 술책이었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귀족 사회의 사교적인 세상을 반영했던 바로크 양식,
퇴폐적인 장식미를 강조했던 로코코 양식,
시민혁명과 자유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면서
생겨난 기득권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정신,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 발달로 인간의 삶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현대 건축은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와 함께 건축의 양식도 바뀌어가는 이 모든 흐름들이 흥미로웠다.
교양 인문학 <양진석의 유럽 건축사 수업>을 통해서 새롭게 얻은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미학적으로만 접근했던 유명한 건축물들이
알고 보니 그만의 양식을 갖게 된 역사적 배경이 뒤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로마와 비로마라는 키워드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며
지금의 현대 건축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
역사가 그러하듯 건축 또한 앞으로도 잠시 옛것을 불러오기도 할 것이고,
기존의 방식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반동도 있을 것이며,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고전적인 방식에 입혀지면서 조화의 방식을 통해
어떻게든 진보해 나갈 것이라는 것도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물론 '인간 집단이 만들어내는 문명'이라는 변수가 있다.
서양적 사고, 유럽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만한 교양 인문학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