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최후의 19일 - 상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그랬을까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으론 알았어도 홍길동전 이상의 높낮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 혁명가 허균은 몰랐을까? 허균이 지은 소설과 허균의 생각을 구분해서 본 아둔함이 깊숙히 파고들지 못하고 암기위주로 홍길동전을 대하다보니 그 진체에 접근하지 못했음을. 명나라에서도 인정했던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동생이기도 한 교산 허균이 꿈꾼 조선은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도올선생이 한신대에서 강의한 것을 EBS에서 방영하는 중용강의에서 율곡과 충무공이 손잡고 혁명을 했더라면~ 허균의 혁명이 성공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가정법을 던져본다. 그가 출옥을 했더라면, 결행일을 당겼더라면, 주저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득 밀려온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팩션을 읽을때마다 진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그럼 우리가 꿈꾸었던 혁명은~ 치기어린 한시절의 꿈이었던가?


모든 혁명은 아름답다. 모든 혁명은 슬프다. 더욱이 실패한 혁명은 더더욱이나.. 황소 여섯마리를 사지에 매어 처형하는 능치처참이란 극형으로 생을 마감한 혁명가 허균, 어찌 광해군의 총신이자 관송 이이첨과 한배를 탔던 이의 최후라곤 믿겨지지 않을 만큼, 관송 이이첨의 노림수도 있었지만 취약한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이첨만이 아니라 교산 허균도 의심했음을. 명확하게 내린 지시보다 두루뭉실하게 내린 교지속에 담긴 광해군의 노림수에 오히려 더 크게 당한 것은 아닐까.

 

폭군을 몰아내고 왕을 바꾼 반정은 많았어도 세상은 거기서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조선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배웠으나 4.19, 6.10을 거쳤지만 아직도 우리의 혁명은 여전히 아름답기 보다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과 비슷한 소재의 작품 슬픈혁명(정경옥지음, 여우볕출간, 2009)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박학다식한 소설중독자 김탁환의 문장과 해박함, 그리고 다양하게 등장하는 고색창연한 한문, 사자성어, 허균의 작품과 일화들이 어우러져 19일간 일어났던 허균과 주변 인물들의 일상과 고뇌가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렵다.

 

허균 최후의 19일은 그가 능지처참을 당하는 최후의 날에서 역순으로 사건 발생의 원인을 알려주고 있어 일순 어리둥절하고 갈피를 못잡게 만들면서도 원인이 무엇이었까, 우연처럼 보이는 작은 사건들이 얽히고 설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허균과 혁명의 주체세력들, 놓여날 수 없는 덫에 걸렸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한 교산! 왜 그랬을까? 그토록 싫어했던 관송의 주구노릇을 자처하면서까지 혁명을 준비했던 그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광해군을 그리도 신뢰했더란 말인가? 그럼 관송을 제거하고 광해군을 중심으로 새로운 조선을 꿈꾸면 안되었을까? 만주족이 명나라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던 시점, 명나라에게 원군을 보낸 그 시점을 결정적인 시기로 잡고 범궁을 노렸던~ 그

작은 인원으로 조선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취약했더란 말인가?

칠서지변시에도 배신자 박응서로 인해 낭패를 보았던 그, 왜 그날의 전략을 여인에게 맡겨더란 말인가? 모름지기 질문이 많이 하는 자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가정하고 있다는 것을 왜 그를 그토록 믿었을까? 박치의의 말처럼 절단을 냈더라면...

 

왜 작가는 허균 최후의 19일을 역으로 배열했을까? ~ 신예작가 정유정의 7년의 밤의 느낌과도 흡사하게 다가온다. 결론은 났지만 이유가 무엇인가, 이리저리 꼬인 사건들의 원인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묻게하고 독자들을 그 상황속으로 말려들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가는 곳마다기생과의 염문을 뿌리고, 탁월한 문장을 자랑하는 시인,  신선이 되기를 꿈꾸었고 서산대사, 사명대사, 한석봉에 닿아 있고, 명나라 외교의 달인인 그, 그가 왜 혁명을 꿈꾸게 되었을까? 왜, 왜, 신분의 차등이 없는 나라를 꿈꾸었을까, 동인의 영수였던 허엽, 허봉, 허성, 허난설헌, 그의 스승인 서자 출신의 손곡 이달, 그의 영향이었을까? 임란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은 허균, 전란에서 나라를 구했지만 신분의 질곡으로 유학이 승하는 나라에서 승려라는 이유로, 서자라는 이유로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숱한 사람들과 가까이 했기에 자연스레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던 것일까? 조선왕조를 인정하는 홍길동보다 한 걸음 나아가 율도국이 아니라 조선 그 자체를 새롭게 세우고자 했던 혁명! 그 설계자인 허균의 긴박했던 최후의 19일.

 

슬프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혁명가들의 이야기,  새로운 허균이 아들 허굉을 통해 다시 자라고 있음을, 태백산맥에서 패한후 하대치가 염상진 대장의 무덤에 마지막 인사를 떠나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세상을 한걸음 한걸음 변화시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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