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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작가의 자전적인 체험이 배어 있는 작품으로도 읽히고 내가 건너왔던 동시대의 아픔이 배어 있지만 그 시절로부터 아주 멀리와 있는 지금의 가슴으론 그 당시의 절절했던 아픔이 쉽사리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80년대의 이야기처럼 들리다가 물대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90년대의 이야기로도 들린다.
언제나 캠퍼스는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가 진동하고 연일 연행되어 갔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막걸리를 마시며 불렀던 노래들, 그리고 울분... 언제라도 힘들고 괴로울땐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전화카드란 노랫말처럼 그들에겐 그들의 상처를 감싸안아 보듬어줄, 그들의 말을 들어줄 존재가 필요했던가. 각자의 상처가 더 아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인가..내내 아프고 저린 이야기와 사건들이 벌어진다.
윤미루가 키우는 고양이 에밀리, 자신의 실수로 발레리나의 꿈을 접어야 했던 언니와 언니의 분신자살로 입은 화상을 낙인으로 안고 살아가는 윤미루와 절친 이명서, 엄마의 죽음이후 방황하는 정윤, 그를 짝사랑하는 단이, 그들이 함께 했던 가장 행복했던 며칠간의 동거..
거기 어디야 내.가.그.쪽.으.로.갈.게
'어떤 시간을 두고 오래전, 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이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58p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365p
언젠가.
거기 어디야 내.가.그.쪽.으.로.갈.게.
함께 있을때 매순간 오늘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어떤 아픔도 견뎌내지 못할 아픔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끝내 그 아픔에서 놓여나지 못했던 미루와 단이처럼 내게도 상처받은 영혼을 지닌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다들 어떻게 살아들가고 있는지. 몇몇은 소식조차 끊긴지 오래다.
지나고 보면 그 시절조차도 아름다웠다고 말할수도 있지만 아름다웠던 추억만큼 우리의 젊은 영혼에 폭력의 생채기가 남아 있음인지. 아직도 아프다.
책에서 밑줄 그은 말.
'폭력에 이로운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써서는 안된다.' 89p
'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보내고 나면 다른 것들이 오나고 말이야. 이러느니 차라리 인생의 끝에 청춘이 시작된다면 꿈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이명서의 말..107p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만 떠오른다. 진실과 선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올바름과 정의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폭력적이거나 부패한 사회는 상호간의 소통을 막는다.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나부터 독립적이고 당당하길 바란다. 숨김이 없고 비밀이 없으며 비난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갈색노트 6 184p
'그때 내가 보았던 광경을 내가 어찌 다 잊겠나. 바래긴 해도 잊히지 않아. 그러니 자네들 보고 잊으라고 하지는 않겠네. 생각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각해. 이 부당하고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질문하고 회의해. 만일 내가 그녀의 편지에 쓰인 날짜에 제대로 도착했다면 나는 그녀를 살릴 수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녀의 죽음은 결정된 것이었고 다만 그녀는 나를 그녀의 죽음의 첫 입회인으로 맞이하고 싶었던 것일까. 알 수 없네...
인간은 불완전해. 어떤 명언이나 교훈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복잡한 존재지.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동안 따라 다닐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 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341p 윤교스의 말.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 볼때도 일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윤교수가 제자들의 손바닥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 354.
거기 어디야 내.가.그.쪽.으.로.갈.게
'어떤 시간을 두고 오래전, 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이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58p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365p
언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