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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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때로 우리에게 감미로운 산들바람을 보내고 때론 따뜻한 태양빛을 선사하며 때로는 삶의 계곡에 '불행'이라는 질풍을 불어넣고 일상을 뒤흔든다. 우리는 최선의-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일간지 사회면을 점령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 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사 한사코 들여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나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소설을 끝내던 날,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간절하게 바랬다. '그러나' 우리들이, 빅터 프랭클의 저 유명한 말처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을 표현하는 말중에 최적의 말이 바로 작가의 말에 담겨 있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었지만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사실과 진실 사이에 자리잡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라고.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는 참으로 충격이고 도발적이다.
신예작가 정유정의 7년의 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작가는 오래도록 기억되고도 남을 것이다. 본격적인 작가수업을 받지도 않고 전직 간호사 출신으로 이런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타고난 천상 소설가임에 분명하다. 천명관의 고래를 읽었던 충격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을 남긴다.

 

한순간의 사건이 어린 소녀의 죽음으로 그치지 않고 가해자인 사내가 그 아내마저 살해하고, 그리고 한 마을 사람들까지 수장되고야 마는 엄청난 사건으로 비화할줄이야 그리고 살인마의 아들이란 낙인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아들과 목격자의 고뇌가 나를 한없이 슬프게 하고 가슴 저미게 만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어던 처절했던 7년전의 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진실은 얼마나 다른 것인가.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지만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 월남에서 돌아온 새카만 최상사의 죽음과 수수밭 가운데 자리잡은 우물의 기억에 사로잡힌 최현수의 사연을 알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과거의 아픈 기억은 모두모두 훌훌 털어버리는 씨김굿을 한번 벌이고도 싶어진다.


그날 거기에 가지 않았더라면..그래서 아내가 밉다. 전화 한통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임에도 기어코 가게 만든 그런 아내가 웬수다. 보지 않은 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한 순간에 일어난 사건, 우연히 목격한 사건. 그로 인해 그들은 2주간 지옥을 경험하고 그후로도 7년.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면서 후회를 하게 된다. 아버지 최현수와 같이 치명타를 입을 정도로 교통사고후 살인을 하게 된다면 후회하는 정도론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안개가 자욱한 날, 갑자기 뛰어든 여아, 무면허 음주운전이란 두려움이 결국 그 아이를 목졸라 죽이고 세령호 수장시키게 이른다.

그리고 2주후 아내 강은주를 살해하고 저지대 마을을 수장시킨 살인마로 최현수는 체포되었고 아들 시원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아저씨 승환과 가는 학교마다 선데이서울을 배달받고 이곳 저곳을 부랑아처럼 떠돌게 되고 마지막으로 정착한 등대마을에서 오영제와 최후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최현수
고교시절까지 잘나가갔던 포수, 프로야구에선 1군 선발로 단한번도 출전하지 못한 그저그런 선수로 전락, 마지막으로 출전한 경기에서 느닷없이 찾아온 용팔이가 말썽을 부리고 부상까지 입어 은퇴후 경비업체에 취업, 내집 마련을 원하는 아내의 강권에 격오지 근무를 신청, 세령으로 발령
월남에서 돌아온 새카만 아버지 최상사의 폭력, 음주에 대한 트라우마, 그가 밤마다 맨발로 헤매다니게 만드는 수수밭에 있는 우물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 그 트라우마가 그를 지옥에..그래도 그는 아내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이 아닌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아들만은 살인마의 자식이란 소릴 안듣게 하고 싶었는데. 엄마 사랑은 받았으되 아버지의 사랑은 고사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상처입은 소심남.

 

아내 강은주.
풍만한 가슴을 타고난 어머니, 그리고 2명의 이부동생,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받지 못하고 인생을 먼저 알아버린 강한 여자. 정상적인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모두 받고 자란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사랑의 결핍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은 결혼해서 그 결핍을 채워줄 대상으로 남편과 아내를 바라보나 기대완 다르게 사랑은 엇나간다. 무능력한 남편, 술꾼이지만 아들 시원에 대한 사랑이 부부관계를 유지했던 힘이었다는 것을 안 여자지만 남편의 세령에 다녀온 후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 남편의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오영제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상한 인간. 편백나무를 성냥개비로 만들어 자신만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 취미, 아내 문하영과 딸 오세령이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 교정을 한다며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하는 남자.
소설에서 최현수의 악행에 대한 것은 이해가 되고 용납이 되지만 오영제의 악행은 손이 오그라들정도로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수가.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하는 부성애라기 보다는 인간의 악마성을 생각하게 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한번도 살아서 만나적 없는 소녀 세령과 영적으로 연결되어 시원 역시 인고의 나날을 보내고 오영제의 집요한 추적과 괴롭힘으로 그 역시 평탄한 삶을 살 수가 없다. 7년 전의 사건으로 다 끝났으면 좋으련만. 세령이 보살폈던 고양이 어니, 언제나 술래였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현실에 없는 곳 세령이지만 대한민국 어디에선가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던 것 같은 사실감, 손을 오그라들게 하는 한 사내의 처절한 사투와 집요한 복수를 위해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최초의 목격자 안승환을 집요하게 몰아가는 오영제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최현수가 최악의 선택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란 것까지도 예측하는 사이코 오영제, 그의 아내의 편지처럼 오영제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고서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7년이란 긴 세월을 복수의 일념으로 기다릴 줄 아는 오영제와 그의 음흉한 계획을 파악하기 위해 감방안에서 그날의 일을 복기하며 그의 노림수를 파악하는 최현수 운명적인 대결. 밤을 새워 읽어도 좋은 작품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 이후 시원이와 아저씨 안승환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마도 소설이 대박나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그의 아버지의 염려대로 시원이 역시 그 괴물에 휘둘리며 살고 있을까?

 

나에게도 최현수 정도는 아니지만 씻을 수 없는 기억 한자락은 없는지? 밤마다 나를 찾아와 싸돌아다니게 하는 그 괴물은 없는가? 아직까지는 내가 이기고 있다고 믿지만 언젠가는 나를 사로 잡아버릴수도 있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 자리잡은 그러나는 없는가 거듭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내 그 상황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측은지심이 저절로 동한다. 불쌍한 사내 최현수 그날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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