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암살 미스터리 3일 1
이주호 지음 / 예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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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정병설교수가 진행하는 EBS TV 평생대학 역사이야기 한중록 편을 간헐적으로 시청중이다. 그의 주장은 사도세자가 미친것은 여러 사료를 보건데 확실하다는 것이며 관련 기사를 보니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쟁 때문이 아니다. 조절되지 않은 절대 권력의 왕이 미친 아들을 죽인 것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이나 이 소설과 충신: 영조 말 삼정승 자살사건 그 비밀의 기록(마르크 함싱크 지음, 문이당)과 상반되는 주장이라 한동안 논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지금껏 학계에서 <한중록>을 불신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내용들이 최근 다른 사료들을 통해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며 반박하고 있다. 그는 올해 초 네이버 카페에 <한중록> 관련 연재를 하며 <현고기> 같은 야사부터 영조가 쓴 사도세자의 명문(銘文), 사도세자의 편지 등 여러 사료를 통해 <한중록>에 관한 오해를 지적해 왔다.


20일 첫 방송에서는 '한중록, 역사의 기록인가 거짓의 기록인가?', 21일에는 '놀고 싶은 동궁, 사도세자'를 주제로 강의한다. 이어 3강 '인간 영조, 그는 누구인가?'(27일), 4강 '사도세자, 그는 과연 미쳤는가?'(28일), 5강 '사도세자, 그는 왜 죽었나?'(7월 4일), 6강 '정조의 공격'(5일) 주제 강연이 방송된다. (한국일보 기사 인용)


아내도 인정했고(한중록), 아들(정조)도 승정원일기의 사도세자 관련 부분을 삭제 상소를 영조에게 올린 것, 반대파인 김귀주에게 협조를 구하러 정조가 갔을때 그가 속대전을 던지며 미친 사람은 죄를 지어도 사형시키지 않으므로 미친 것을 인정하면 영조가 법을 잘못 집행한 것이 되고 인정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멀쩡한 아들을 죽인 셈이 되어 자신은 협조할 수 없다는 논거, 장인에게 약을 부탁한 서한, 영조의 사도세자를 위한 묘지석 등등의 사료가 입증하므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정교수의 주장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헷갈린다. 조선은 그 어느 왕조보다 많은 기록을 남겼다. 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왕을 중심으로 하는 거의 배부분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곤 하지만 드러내기 곤란한 부분은 사초를 많이 수정하거나 삭제하였다고 하니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했다면 오늘날의 논란이 없을 것인데 쉽지만 살아남은 자들, 승자들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지 않았을까..원안을 몰래 전했더라면.. 조선시대의 파란만장함과 숱한 사건들이 몇몇의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되고 독살설 등이 꼬리를 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영조 역시 왕이 되기까지의 의혹이 있었고 당쟁, 뒤주에 아들을 가두어 죽인 사건으로 인해 어느 한순간 편할날이 없었다. 장수한 왕의 뒤를 이를 후계자는 항상 좌불안석이었을거다. 왜냐하면 최고의 권력은 부모 자식간에도 공유하지 못하므로.


 

3일,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기전 3일간의 이야기를 두권의 책으로 담아낸 작가의 상상력에 놀랐고 삼정승이 사도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정말일까 궁금해 확인하니 사실이라니 또 놀랐다. 충신: 영조 말 삼정승 자살사건 그 비밀의 기록(마르크 함싱크 지음, 문이당)란 책에서도 이 작품과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음에 또 놀랐을 따름이다.


 

아무리 자식이 정신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아비가 죽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지아비보다 집안, 세자의 안위를 위해 한중록을 지은 혜경궁 홍씨와 친정아버지 홍봉한의 선택을 보니 권력이란 참으로 무섭다는 것을.


역사를 떠나 소설 자체로만 읽으면 정말 호기심을 자극하고 긴장감을 더해가는 연쇄살인사건, 이를 추적해 보면 모든 것이 사도세자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것..뿌리깊은 나무처럼 살인자는 회문시와 첩어란 조금은 난해한 단서를 남겨 더 소설에 몰입하게 만든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히스토리 팩션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효과도 더해 자주 읽게 된다.


 

어쨋든 아비에 의해 뒤주에 갇혀죽은 비극의 주인공 사도세자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은 분명하다. 온양 행차시 보여준 그의 호학군주의 모습, 정말 이 소설처럼 영조가 병중인 것을 틈타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를 꾀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이지만 설령 그가 광증이 있었다고 해도 그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아들을 위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보니 그것이 이 땅 아버지의 마음일진대, 만인지상의 권력을 지닌 영조의 마음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가슴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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