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빈둥거리다 길을 찾다 - 명문가 고택 편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3
이용재.이화영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한여름 낮 고택에 툇마루에 누워 본 적이 있는가? 솔솔 바람이 불고 등짝은 금새 시원해져 두눈이 사르르 감기는 기억들, 선풍기, 에어콘을 사용하지 않아도 여름을 날 수 있는 고택.. 너무 흔해서 그랬던가? 몰라서 그랬던가. 그저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곳, 어깨에 힘깨나 주던 양반들의 집,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 없고 학교에서도 우리 지역의 문화재에 대한 가르침이 전무하니 그저 있는 존재로만 알고 있는 곳프랑스에선 고성이나 고택을 체험공간이자 숙소 체인으로 활용하여 많은 외국인들이 찾게 만든 주역이 우리나라에 훈수를 두러 왔다는 뉴스를 봤다.

 

전국 방방곡곡 풍광 좋은 곳 치고 고색 창연한 고택이 없는 곳이 있던가? 서울 장안에 자리잡은 궁궐도 그렇고..이를 활용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관광수지 적자가 개선되지 않을까. 경복궁에서의 왕처럼 살아보기.. 나도 한번 비용이 아무리 높아도 해보고 싶지 않을까?
너무 흔해서, 너무 쉽게 접할 수 있기에 그것이 그리 소중하단 생각을 못했는데 최근에 문화촌 사업을 하면서 고색창연하던 돌담이 정비되고 새 기와로 갈아 입혀놓으니 옛날 맛이 안나 어색하다.

 

우리 시대의 한량을 자처하는 국내 1호 건축평론가 이용재님은 블로그 이웃이자 고등학교를 그만다니는 딸의 손을 잡고 전국 방방곡곡의 건축물(국보, 박물관, 성당)을 찾아다니는 좋은 아버지이자 글발, 말발이 아주 좋은 블로그 이웃으로 인연을 맺은 분이다. 획일화된 제도 교육의 틀안에 가두려는 나와는 완전히 달린 아버지, 답사 숙제를 미명으로 떠나는 답사가 진정한 답사가 아니듯 헐레벌떡 스쳐지나는 수준에 그치는 우리네와는 차원이 다른, 공대생은 인문학에 문외한이란 오래된 고정관념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폭넓은 지식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도 많은 건축물에 얽힌 역사와 사연을 구구절절히 꿰차고 있는지 궁금하다.

 

짓는 것은 참말로 중요하다.
농사짓다, 글을 짓다, 글을 짓다, 집을 짓다. 옷을 짓다, 짝을 짓다. 듣고 보니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건축가가 우러러 보인다. 정도전이 경복궁의 설계자, 회재 이언적의 담에 창을 낸 사연을 듣고 보니 조선의 사대부도 자신의 집의 터를 잡는 일에서 건물의 구도까지 두루 살필 수 있는 건축가였다는 것을,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좋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김수근, 김원, 승효상, 김진애의 이야기만 들어도 그렇다고 할 수밖에... 인문학적 소양을 많이 쌓을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이 책에 소개된 글들은 대부분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소개된 글이다. 솔직히 그것으로 눈동냥, 귀동냥을 일부 하기도 했지만 책으로 보니 더 좋다. 역시 컴퓨터로 읽는 것보다는 책으로 읽는 것이 제맛이다. 택시기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된 저자, 모쪼록 이 책이 날개 돋힌듯 팔려(이 책에 소개된 고택의 문중 자손들만 사서 본다면 대박나지 않을까? 문중차원에서 이 책을 구입해 자손들에게 필독케 하는 눈밝은 종중..) 그간의 품값을 모두 상쇄하고 다음 답사 기행을 아주 풍족케 하고 유학길에 오르는 딸을 지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그런 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길라잡이므로, 정부차원에서도 지원을. 문화재청의 한해 예산이 고작 4천억, 강남구의 1년 예산에 불과한 돈으로 전국의 문화재를 관리하기란 턱없

이 부족하다. 그러니 남대문이, 낙산사가 홀라당 타도 대책마련이 어려운 일 아닐까?

 

저자의 글은 쉽다. 재밌다. 간간이 곁들인 반어법투의 추임새(선비의 길 그제나 이제나 고달프죠, 왜놈들은 들으라, 126쪽)가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한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무겁고 무거운 듯 하면서도 가볍지만 어느 한구절 허투루 넘기지 못한다. 그것을 일일이 기억한다면 좋으련만 어느 고택을 찾아도 이 책을 동반하지 않고는 아는체 하는 어렵다. 그러나 너무 폭넓어서 그도 실수를 한다. 수정하면 되려만 옹골지게 블로그에 덧글을 남겨준 이의 글을 허락받아 동시에 소개한다.(논산 사계 고택편, 181쪽), 저자처럼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주민투표에서 패한 것이 분명한데도 한나라당이 승리했다느니, 희망을 봤다느니 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워진다.

 

나도 하나를 덧댄다.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조선시대엔 한강 이북의 사람들을 엄청나게 차별하여 사대부가 공부를 해도 과거 급제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워 홍경래 같은 반란자를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색다른 우리 역사(이흐근지음, 거름펴냄)의 홍경래의 난은 차별에 대한 항거인가, 역성혁명인가 편에서 과거급제자의 통계를 보니 우리의 통념이 틀렸다는 것을 논박한다.

 

해남 녹우당, 보길도를 다녀왔지만 학교에서 배운대로 들은대로 여전히 생가요 유배지로 알았는데 그것이 오류일줄이야. 고산 윤선도는 서울내기요, 보길도는 병자호란시 해남에서 의병을 모아 배를 타고 강화도를 찾았건만 대국놈들 천지라 다시 회항 탐라도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불시착한 곳이 보길도란다.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권력자의 고택, 대쪽같은 선비의 절개가 흐르는 고택, 학자와 예술가의 혼이 깃든 고택, 나눔과 베품으로 시대를 뛰어넘은 명문가의 고택으로 묶어 고택 쥔장의 인생역정, 그의 생각, 그리고 주련, 현판 등에 담긴 각양각색의 사연을 구성지게 읊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과 우수성, 그에 깃든 사상을 알게 되고 한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의 인생철학과 시대의 파도를 온몸으로 절절히 느끼며 인문학적인 깊이를 더할 수 있어 좋다. 시금털털한 맛걸리 맛이 나기도 하고 은은히 퍼지는 와인 향기가 나기도 하는 그런 책이다. 한상 가득 산해진미로 가득하게 우리 고택을 두루 관람하는 기분이 든다.

 

책에 소개되는 고택중 극히 일부분은 가본 곳도 있지만 생경한 인물과 고택도 많다. 국보로 지정된 건축물과 보물로 지정된 건축물 118곳,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145곳을 모두 찾아 다니려면 정말 많은 품과 시간이 들겠다.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놀며 간다고 해도 힘든 일을 저자처럼 끈질기게 매달리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 작업의 값어치는 지금보다 내일 더 빛나리라. 오늘 고택과 전통을 지키는 어르신들이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면 대를 이어야 하는 우리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추울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폭넓은 예산 지원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우리 건축물에 담긴 인문학적인 가치가 우리 국민들에게 두루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을 저자의 추임새에서 읽는다.

 

서핑을 하다보니 이 책의 표지그림의 주인공인 박정연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laquint/110038675052)를 찾았다. 이 분 역시 고건축 답사를 하며 많은 사진과 그림이 담겨 있다.
표지는 강릉 선교장의 중첩된 것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었던 점이 주요 건물의 사진마다 캡션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표지 그림에 대한 설명도 역시나 없었다. 아무래도 저자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를 손에 들고 전국을 다닐 답사객들이 나날이 늘어 나의 문화유산답기가 문화재 답사 붐을 일으키듯 고택 답사 붐이 일었으면 좋겠다.


나도 한량이 되고 싶다. 품을 들인 만큼의 보상이 나지 않는 일이래도 의무감으로 묵묵히 한길을 걸어가는 아버지와 딸처럼 나 역시 그런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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